문화통신2025.겨울호
비나이다 성주신께 비나이다
<두렁집 위 눈덩이>
“다들 일어났느냐?”
할아버지의 목소리였습니다. 언제나 새벽 동틀녘이 되면 일어나셔서 머리맡에 두었다가 살얼음이 서린 냉수를 한 사발 드셨지요. 집 난방이 안 되어 언제나 추웠습니다. 겨울이면 말할 때마다 입김이 방안에서 솔솔 피어올랐습니다. 화로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였지요. 그리고 궐련을 말아 몇 모금 피우시고는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나는 할아버지와 사랑방을 같이 썼기에 할아버지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지켜봤습니다. 할아버지의 일상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훤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좀 달랐습니다. 할아버지께서 벌써 밖으로 나가셔서 마당을 쓸든가, 나무를 패시든가, 뭐든 해야 할 시간이 지났는데도 방에 계셨거든요. 그리고 더욱 이상한 사실은 밖이 아직도 깜깜했습니다.
할아버지가 안방 쪽으로 향하여 그렇게 묻자, 이방 저방에서 대답이 들려왔습니다.
“예, 일어났어요.”
“나가자.”
할아버지는 사랑방 문을 열지 않고, 건넌방에서 부엌으로 나가는 쪽문으로 나가셨지요. 부엌에는 벌써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궁이에 나무를 때고 있었습니다. 소여물도 끓여야 하고, 아침밥도 지어야 했거든요.
할아버지께서 부엌으로 나가시고, 우리가 따라 나가자. 갑자기 긴장감이 돌았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부엌 대문을 바깥쪽으로 열지 않으시고, 문을 위로 들어 뜯어 안쪽으로 내렸습니다. 아뿔싸! 그 순간 하얀 눈이 부엌으로 쏟아졌습니다. 정말 나는 평생 처음 보는 순간이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눈이 내렸는지, 지붕과 눈높이가 맞닿아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간혹 볼 수 있는 강원도 산간지방의 풍경입니다. 그렇게 며칠 동안 눈 치우는 데만 매달렸지요. 특히 집이 무너질까 봐, 지붕 위의 눈까지 쓸어내렸습니다. 그해 겨울에는 마당에 눈이 키 높이보다 더 가득 쌓여 있었고, 3월이 지나면서 마지막 눈덩이를 치웠습니다.
이렇게 눈이 많이 내리고, 날씨가 추운 탓에 산간지방에서는 두렁집이나 겹집을 주로 지었습니다. 겹집은 방이 두 겹으로 겹쳐있어 추위를 덜 타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두렁집의 두렁은 논두렁, 밭두렁 할 때처럼 둑이나 언덕의 개념입니다. 우리가 몸을 빙 둘러 치마처럼 감싸는 옷을 일러 두렁이라 하잖아요. 이처럼 두렁집은 집 안에 생활에 필요한 부엌, 곳간, 우물, 마굿간[외양간], 장독대, 나뭇가리 등이 모두 있는 집입니다. 빙 둘러 있고요. 대문만 닫으면 외부로부터 차단됩니다. 겹집도 비슷한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요즘은 보기 드문 벽난로 고콜도 있었고요.
그 리고 무엇보다 흥미로운 사실은요. 문 옆에는 거름대나 쇠스랑 같은 농기구를 둡니다. 호랑이나 표범 같은 맹수가 공격해오면 물리치기 위해서입니다. 간혹 어떤 집은 문 앞에 발을 치기도 하는데요. 긴 장작을 밧줄로 엮어서 서까래에 매어 두었다가 밤이면 내립니다. 호랑이가 창호지로 된 문 정도는 쉽게 뜯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호환에 간 사례가 많고, 호랑이에게 물려가 죽은 사람의 무덤인 호식총(虎食塚)이 여기저기 있어 쉽게 그 위험을 볼 수 있습니다. 산간에서 살기가 쉽지 않았지요.
<산신과 가신의 가피>
그 때문인가요. 산에는 산신, 토지에는 터주신, 가옥에는 성주, 부엌에는 조왕신, 화장실에는 측신, 담장에는 업신 등 정말 많은 신이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매년 음력 4월 1일이 되면 산치성을 드렸습니다. 주루막에 쌀과 그릇, 그리고 노구솥 또는 새옹이라 부르는 작은 솥 하나 넣어 치성터로 갑니다. 산기슭 경관 좋고 계곡물이 졸졸 흐르는 치성터에서 쌀을 정성으로 씻어 노구메를 짓습니다. 가족들 모두 건강하고 호환을 피하게 해달라는 정성 발원이 이어집니다.
“일 년 열두 달 365일 윤년은 13달이 지나가더라도 일 년 신수가 좋아 가족 모두 아주 곱게 나게 해주십시오.”
할아버지의 정성은 우리 가족 모두 아무 탈 없이 일 년을 나게 했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할머니는 매년 집을 지켜준다는 가신(家神) 성주를 모셨는데요. 시루떡을 해놓고, 정성 소원을 빌고요. 한지를 접어 쌀을 담아 예단으로 신체(神體)를 매달았지요. 부엌에서는 조왕신께 정성 발원을 했고요. 정말 그 모습 볼 때마다 가슴 찡했습니다. 얼마나 정성이 깃들었는지, 칭얼대고 떼쓰는 어린 저도 경건한 순간이었습니다.
“집의 대신 성주님, 부엌의 신 조왕신. 일 년 열두 달 365일 하루도 거르지 말고, 그저 우리 식구들 무쇠처럼 건강하고, 배불리 먹고, 편안하게 지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자식 많이 낳으라고 삼신께는 매년 한지에 쌀을 담아 삼신달을 올렸습니다. 그러고 보면 모두 풍년과 배부름과 자손 번창을 바라는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엄마, 왜 여기 밥을 떠서 올려놔요.”
“이 밥은 타관 땅에서 공부하는 삼촌과 서울 가 일하는 네 누나 배곯지 말라고 차려놓은 게야.”
“그럼 먼저 아버지 서울 가셨을 때도 그래서 밥을 따놨네요.”
어머니는 누군가 집을 떠나 출타하면 꼭 사람 수만큼 밥그릇을 떠서 밥솥 뒤에 뚜껑을 닫아 따뜻한 밥을 올려놓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사랑이 진하게 다가와 눈물짓습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천지신령께 비나이다. 우리 아들 입학시험 꼭 붙게 해 주십시오.”
어머니는 장독대에 정화수를 올리고, 자식들 시험이나 집안에 특별한 일이 있어 성공을 빌 때는 두 손을 모아 비비면서 비손질을 했습니다. 정말 손바닥이 다 닳도록 그렇게 빌었지요. 우리가 지금껏 아무 탈 없이 사는 이유는 모두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의 정성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디 신이 따로 있나요. 그분들이 가신이지요.
<집지킴이 구렁이>
“어이구 용이구먼.”
할아버지는 담장에 걸쳐 있는 황구렁이를 보면 용(龍)이라고 말했습니다. 가끔 우리 집 돌담에는 커다란 황구렁이가 있었습니다. 구렁이를 보면 그냥 못 본 채 지나기가 일쑤지요. 아니면, 구렁이나 이무기라 하지 않고 용이라고 합니다. 마치 경주 안강들 김부대왕 이야기와 같은 표현입니다. 용이라고 불렀을 때와 뱀이라고 불렀을 때 다른 반응이 나타나지요. 뱀이나 이무기라고 부르면, 승천하지 못하고, 용이라고 부르면 정말 용이 돼서 승천한다고 합니다.
“그냥 두어라. 업신이야.”
행여 아이들이 구렁이를 치우려고 하면 할아버지는 그냥 두라고 했습니다. 구렁이는 우리 집의 업신(業神)이었거든요. 재산을 일게 해주는 신이며, 일을 만들어 주는 신입니다. 그렇게 그냥 두면, 얼마 후 어디론가 몸을 감추었습니다. 구렁이가 나타나면 다들 조심했습니다. 행여 업신을 화나게 하거나 하면 다른 집으로 간다고 믿었습니다.
옛날 시집간 딸이 겨 가마에 든 구렁이 업신을 가져가서 부자가 되고, 친정은 망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마도 우리 어른들도 그렇게 업신을 이해한 듯합니다.
“여보, 이제 우리 집이 생겼어.”
결혼 후 이집 저집 전세로 떠돌다가 처음 우리 명의의 집이 생겼을 때 아내가 한 말이 생각납니다. 참 좋아했지요.
우리가 사는 집은 사람이 사는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닙니다. 비바람만 막아주는 역할에 그치지 않습니다. 가족의 사랑이 깃들고, 추억이 있고, 건강한 삶을 지켜주는 행복의 공간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열심히 가꾸고 보수하고 청소해야 하지요.
집에는 가신이 있어 늘 우리를 보호해 주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 가신은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성주와 조왕신께 빌어주던 할머니, 어머니가 아닐까요. 항상 우리를 지켜보는 가신이 있는 한 가족 구성원은 서로 사랑하고 배려하고 존중하며 살 수 있습니다.
우리 가족 모두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