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는 신에 의지하여 자신의 변화를 꾀하는 종교가 아니라 스스로 수양을 통해 깨달음에 이르는
개인 주도적 신앙이다. 불교는 종교라기보다 깨달음에 따른 자력 신앙이다.
우리가 쓰는 ‘부처’는 산스크리트어 ‘붓다(Buddah)’에서 비롯되었다.
붓다는 ‘눈을 뜬 사람’, ‘깨달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석가모니가 무엇에 눈을 떴다는 이야기일까?
정확히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이 세상은 무상하며 나 자신의 욕심이나 집착을 떨쳐낸다면
평온한 마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체득한 사람으로 보면 되겠다.
어느 날 그런 진리를 깨달음으로서 부처는 불안과 의문을 해소했다.
석가모니의 삶은 우리에게 유익한 교훈을 전한다. 석가모니는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은 뒤
인도 전역을 다니며 사람들에게 진리, 즉 불교의 기본 교리를 전파했다.
삶은 고통으로 가득하며 고통은 우리의 끝없는 집착과 탐욕에서 온다며,
지혜를 키우고 도덕적으로 살고 명상으로 마음을 수련함으로서 번뇌의 고통에서 해탈할 수 있다고 했다.
인간들은 누구나 자신 안에 부처가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정진하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비전을 주었다.
석가모니는 여든 살의 나이에도 승복을 입고 맨발로 시골 여러 곳을 다녔다. 석가모니는 죽을 때도 부처다웠다.
마을에 도착하자 대장장이 쿤타가 헌신과 환대의 뜻을 담아 정성스레 음식을 대접했다.
부처는 음식이 상했음을 알았으면서도 가난한 이가 정성스레 대접해준 것이니 베푼 사람의 마음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몸이 아플 걸 알면서도 먹었다.
그는 음식을 먹은 뒤 중병, 즉 이질에 걸려 상당한 고통을 받다가 죽었다. 그는 그 일을 후회하지 않았다.
더 살고 싶었다면 상한 줄 뻔히 아는 음식을 먹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부처에게 그러한 냉정함은 없었다.
석가모니는 가난하지만 정성을 베푼 쿤타에게 큰 연민을 보였다. 누군가 쿤타를 비난하면 쿤타는 죄책감을 느낀다면서 오히려 쿤타가 석가모니의 삶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제자들에게 말했다.
결국 쿤타는 석가모니에게 마지막 식사를 제공한 사람이 되었다. 석가모니는 제자들에게 말했다.
“누군가 대장장이 쿤타에게 ‘쿤타, 자네 때문에 사람이 죽었어. 석가모니가 자네가 준 공양을 마지막으로 드시고
돌아가셨어‘라고 말하면 자책감을 느낄 수도 있네. 나는 두 번의 공양을 받았다.
둘 다 같은 결실, 같은 결과를 보았고 다른 어떤 음식보다 위대했다. 어떻게 두 번일까?
나 석가모니는 한 번의 공양을 받은 후 완전한 깨달음을 얻었고, 또 한 번의 공양을 받은 후
어떤 집착도 남지 않은 해탈의 경지에 들어섰다.”
석가모니가 세상을 떠나려할 때 제자들은 스승이 없는 세상은 막막하여 몹시 슬퍼했다.
석가는 제자들에게 마지막 사자후를 남긴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가라!”
불교에서 진리를 구하는 길동무를 ‘도반’이라 한다. 함께 할 진실한 도반이 없을 경우 차라리 혼자서 가라고
부처는 가르쳤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만일 그대가 현명하고 일에 협조하고 예절 바르고 총명한
동반자를 얻지 못했다면.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어느 절 뜰 앞에 ‘자비무적(慈悲無敵)’이라고 새겨진 석판이 있다. 석가모니는 마지막으로 쿤타의 공양을 받고
계송으로 한 말이다. “보시한 사람은 복을 받고 마음이 자비로운 사람에게는 원수가 없다.”
자비를 영어로 compassion이라고 한다. 다른 사람과 함께(com) 고통 받는 것(passion)이 자비다.
즉, 기쁜 일도 고통스러운 일도 함께하는 것이 자비다.
석가모니는 죽음 같은 비참함 속에서도 상대에 대한 존중과 자비로 인류에 진정한 가르침을 설파한 성인이다.
* 즐거운 날 되세요 ㆍㆍ
첫댓글 귀한 글 잘 읽었습니다.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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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라" 는 말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을까요?
좋은 글 감동의 글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니 그대로 따를 뿐입니다^**
무쏘의 뿔처럼 혼자 가는게 편한듯 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