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내가 여러 가지 신통변화[神足通]를 나투었으면 좋겠다. 즉 하나인 채 여럿이 되기도 하고
여럿이 되었다가 하나가 되기도 하며, 나타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며,
마치 허공에서처럼 벽이나 담이나 산을 아무런 장애 없이 통과하고, 물속에서처럼 땅에서도 떠올랐다
잠겼다 하고, 땅 위에서처럼 물 위에서 빠지지 않고 걸어가고, 날개 달린 새처럼 가부좌한 채 허공을 날아가고,
저 막강하고 위력적인 태양과 달을 손으로 만져 쓰다듬기도 하며,
심지어는 저 멀리 범천의 세상에까지도 몸의 자유자재함을 발하기를[神足通].'하고 원한다면,
그는 계를 원만히 하고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에 전념하며 선을 경시하지 않고
위빳사나를 구족하여 빈집에 머물기에 전념해야 한다."
15.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내가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청정하고 신성한 귀의 요소로
천상이나 인간의 소리 둘 다를 멀든 가깝든 간에 다 듣기를[天耳通].'하고 원한다면,
그는 계를 원만히 하고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에 전념하며 선을 경시하지 않고
위빳사나를 구족하여 빈집에 머물기에 전념해야 한다."
16.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내가 내 마음으로 다른 중생들과 다른 인간들의 마음을 대하여 꿰뚫어 알면 좋겠다.
즉 탐욕이 있는 마음은 탐욕이 있는 마음이라고 꿰뚫어 알고
탐욕을 여읜 마음은 탐욕을 여읜 마음이라고 꿰뚫어 알며,
성냄이 있는 마음은 성냄이 있는 마음이라고 꿰뚫어 알며,
성냄을 여윈 마음은 성냄을 여윈 마음이라고 꿰뚫어 알며,
어리석음이 있는 마음은 어리석음이 있는 마음이라고 꿰뚫어 알며,
어리석음을 여읜 마음은 어리석음을 여읜 마음이라고 꿰뚫어 알며,
수축한 마음은 수축한 마음이라고 꿰뚫어 알고
흩어진 마음은 흩어진 마음이라고 꿰뚫어 알며,
고귀한 마음은 고귀한 마음이라고 꿰뚫어 알고
고귀하지 않은 마음은 고귀하지 않은 마음이라고 꿰뚫어 알며,
위가 있는 마음은 위가 있는 마음이라고 꿰뚫어 알고
위가 없는 마음은 위가 없는 마음이라고 꿰뚫어 알며,
삼매에 든 마음은 삼매에 든 마음이라고 꿰뚫어 알고
삼매에 들지 않은 마음은 삼매에 들지 않은 마음이라고 꿰뚫어 알고
해탈한 마음은 해탈한 마음이라고 꿰뚫어 알고
해탈하지 않은 마음은 해탈하지 않은 마음이라고 꿰뚫어 알기를[他心通].'하고 원한다면,
그는 계를 원만히 하고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에 전념하며 선을 경시하지 않고
위빳사나를 구족하여 빈집에 머물기에 전념해야한다.“
17.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내가 한량없는 전생의 갖가지 삶들을 기억하면 좋겠다.
즉 한 생, 두 생, 세 생, 네 생, 다섯 생, 열 생, 스무 생, 서른 생, 마흔 생, 쉰 생, 백 생, 천 생, 십만 생,
세계가 수축하는 여러 겁, 세계가 팽창하는 여러 겁, 세계가 수축하고 팽창하는 여러 겁을 기억하면 좋겠다.
‘어느 곳에서 이런 이름을 가졌고, 이런 종족이었고, 이런 용모를 가졌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이런 행복과 고통을 경험했고, 이런 수명의 한계를 가졌고,
그곳에서 죽어 다른 어떤 곳에 다시 태어나 그곳에서는 이런 이름을 가졌고, 이런 종족이었고,
이런 용모를 가졌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이런 행복과 고통을 경험했고, 이런 수명의 한계를 가졌고,
그곳에서 죽어 다시 여기 태어났다.'라고.
이와 같이 한량없는 전생의 갖가지 모습들을 그 특색과 더불어
상세하게 기억해낼 수 있기를[宿命通].’하고 원한다면,
그는 계를 원만히 하고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에 전념하며 선을 경시하지 않고
위빳사나를 구족하여 빈집에 머물기에 전념해야 한다.”
18.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내가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청정하고 신성한 눈[天眼]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고, 천박하고 고상하고, 잘생기고 못생기고,
좋은 곳[善處]에 가고 나쁜 곳[惡處]에 가는 것을 보고,
중생들이 지은 바 그 업에 따라가는 것을 꿰뚫어 알면 좋겠다.
‘이들은 몸으로 못된 짓을 골고루 하고 말로 못된 짓을 골고루 하고 또 마음으로 못된 짓을 골고루 하고,
성자들은 비방하고, 삿된 견해를 지니어 사견업(邪見業)을 지었다.
이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처참한곳, 불행한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났다.
그러나 이들은 몸으로 좋은 일을 골고루 하고 말로 좋은 일을 골고루 하고 마음으로 좋은 일을 골고루 하고
성자들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를 지니고 정견업(正見業)을 지었다.
이들은 몸이 무너진 다음 좋은 곳[善處],천상세계에 태어났다.’라고
이와 같이 내가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고, 천박하고 고상하고,
잘생기고 못생기고, 좋은 곳[善處]에 가고 나쁜 곳[惡處]에 가는 것을 보고,
중생들이 지은 바 그 업에 따라가는 것을 꿰뚫어 알기를 [天眼通]'하고 원한다면,
그는 계를 원만히 하고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에 전념하며
선을 경시하지 않고 위빳사나를 구족하여 빈집에 머물기에 전념해야 한다.”
19.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내가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說]과 통찰지를 통한 해탈[慧解說](*1)을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기를[漏盡通](*2)하고 원한다면,
그는 계를 원만히 하고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에 전념하며 선을 경시하지 않고
위빳사나를 구족하여 빈집에 머물기에 전념해야 한다.”
(*1) ‘마음의 해탈[心解脫]’은 ceto(마음의)-vimutti(해탈)의 역어이고,
‘통찰지를 통한 해탈[慧解脫]’은 paññā(통찰지의)-vimutti(해탈)의 역어이다.
본경에 해당하는 주석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여기서 마음이라는 단어로 아라한과와 함께하는 삼매가,
통찰지라는 단어로 아라한과와 함게하는 통찰지가 설해졌다.
여기서 삼매(samādhi)는 감각적 욕망으로부터 해탈하였기 때문에 마음의 해탈이고,
통찰지는 무명으로부터 해탈하였기 때문에 통찰지의 해탈이라 하고,
무명이 빛바랬기 때문에 통찰지의 해탈이라 한다.
그리고 사마타[止]의 결실이 마음의 해탈이며,
위빳사나의 결실이 통찰지의 해탈이라고 알아야 한다.”(MA.ⅰ.164~165)
여기서 보듯이 마음은 삼매의 동의어로 마음의 해탈은 삼매를 통한 해탈이고,
통찰지의 해탈은 통찰지(반야)를 통한 해탈이다.
『디가니까야 주석서』에서 통찰지를 통한 해탈에는
마른 위빳사나를 닦은 자(sukkha-vipassaka)와 네 가지 禪으로부터 출정하여 아라한과를 얻은 자들로
모두 다섯 가지 경우가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DA.ⅲ.879)
그리고 마음의 해탈이 단독으로 나타나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대부분 이렇게 통찰지의 해탈과 함께 나타난다.
그러나 통찰지의 해탈은 단독으로 나타나는 곳이 있다.
이와 관련해서 양면해탈(兩面解脫, ubhato-bhāga-vimutti)도 언급해야 하는데,
요약하면 양면으로 해탈한 자(ubhato-bhāga-vimutta)는 무색계 네 가지 삼매와 더불어 아라한과를 증득한 자를 뜻하고,
통찰지로 해탈한 자(paññā-vimutta)는 무색계 삼매 없이 아라한과를 증득한 자를 말한다.
(*2) 니까야 전체에는 두 가지 누진통(漏盡通, 번뇌를 소멸하는 지혜, āsava-kkhaya-ñāṇa)의 정형구가 나타난다.
『디가니까야』와 『청정도론』과 본서 M4 §31, M27 §25, M51 §26 등에 나타나는 정형구가 첫 번째이고
둘째는 본경에 나타나는 본 정형구이다.
특히 『상윳따니까야』에는 모두 심해탈과 혜해탈을 통한 번뇌 다함으로 표현되는
본경의 정형구가 누진통의 정형구로만 나타난다.
『앙굿따라니까야』 와 본 『맛지마니까야』에는 두 가지 정형구가 다 나타난다.
20. “비구들이여, 계를 잘 지키며 머물러라.
빠띠목카(戒目)를 지키고 빠띠목카의 단속으로 단속하며 머물러라.
바른 행실과 행동의 영역을 갖추고, 조그마한 허물에도 두려움을 보며,
학습계목을 잘 받아 지녀 공부지어라.’라고 [앞서] 설한 것은 이것을 반연하여 설했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설하셨다.
그 비구들은 흡족한 마음으로 세존의 말씀을 크게 기뻐했다.
원한다면 경(M6)이 끝났다.
대림스님 옮김 『맛지마니까야』 제1권 243-25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