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오늘도 나는 주님을 나타내는 그릇으로 살아갑니다.”
-오늘의 말씀-
회개의 복을 이루라
06/26월(月)요일 1:5-9/ 마 18:21-22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고 말하면서 그대로 어둠 속에서 살아가면 우리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요, 진리를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요일 1:6)
인간의 근본적인 회개는 자신이 주인으로 살아온 것에 대한 회개입니다. 인간은 성령의 조명하심으로 자신의 어둠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자신이 주인으로 살고 있다면 원죄를 극복하는 회개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입니다. 원죄가 해결되면 십자가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어둠은 부활의 주님이 내 안에 주인으로 오셔야 피조물이 주인 노릇하는 원죄가 사라집니다. 근본적인 회개가 이루어질 때 비로소 천국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때부터 예수께서는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기 시작하셨다”(마 4:17).
일상의 죄를 돌이키는 회개에 대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구원받았지만 죄(자범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알아야 합니다.
원죄를 회개해도 육신이 살아있는 동안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주님을 영접했으니 죄를 짓지 않았다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는 것으로 그 안에 말씀(빛)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자신이 죄를 지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자신의 모습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죄를 지은 일이 없다고 말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합니다”(요일 1:10). 성도가 죄를 극복하는 첫 번째 단계는 내가 지은 죄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원죄를 회개한 사람이 자범죄를 회개할 때 보혈로 죄를 사해 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과 같이 우리가 빛 가운데 살아가면 우리는 서로 사귐을 가지게 되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해주십니다”(요일 1:7). 본문은 회개의 영적 진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죄를 회개하면 주님의 보혈로 다 깨끗하게 해주신다고 알고 있지만, 본문에는 “하나님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과 같이 우리가 빛 가운데 살아가면”이라는 조건이 붙습니다. 이 말은 우리가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 때 육신의 유혹으로 죄를 짓게 되면 자백하고 회개하면 주님의 보혈로 죄를 사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 십자가를 깨달아 옛사람이 주님과 함께 죽은 체험을 한 사람만 보혈의 능력으로 죄가 깨끗해진다는 것입니다.
▣습관 된 반복의 죄라도 진정한 회개가 그 죄를 이깁니다.
“그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다가와서 말하였다. 주님, 내 형제가 나에게 자꾸 죄를 지으면 내가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하여야 합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일곱 번만이 아니라 일흔 번을 일곱 번이라도 하여야 한다”(마 18:21-22). 주님은 베드로에게 형제가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하는지 묻습니다. 그때 주님이 말씀하시길 일곱 번에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이것은 무한대의 용서를 말합니다. 이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용서를 말합니다. 십자가를 체험하여 주님과 생명을 같이 하는 자, 즉 주님과 빛 가운데로 같이 가는 자는 얼마든지 회개하면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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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랑은 이 세상의 어떤 죄보다 크기 때문에 반복의 죄를 지어도 천 번 만 번이라도 회개하면 다 용서함을 받고 결국 성령의 역사로 죄를 이길 수 있습니다. 이것이 회개의 놀라운 복음의 비밀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을 때마다 계속 회개하면 결국 그 죄를 미워하게 되어 죄가 끊어집니다. 그러나 십자가 은혜로 원죄를 회개한 후에도 반복의 죄를 습관적으로 짓고 있다면, 진정한 회개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입니다. 죄를 짓지 않겠다는 결심만으로는 절대 죄를 이기지 못합니다. 진정한 죄를 자백하고 회개할 때 죄는 반드시 끊어집니다. 회개가 죄를 이기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회개를 이루는 축복입니다.
기독교가 세상 사람들에게 공격을 받는 것 중 하나가 ‘기독교는 무조건 죄를 짓고 보혈만 믿으면 용서를 받는다는 비윤리적 종교’라고 비판을 받는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의미 있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주님이 베드로의 발을 씻겨 준다고 하자 베드로가 사양합니다. 주님은 네가 발을 씻지 않으면 나와 상관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발’은 인간의 모든 행동을 의미합니다. 모든 행동(발)을 씻는 일은 십자가에 동참할 때 주님과 상관이 있고, 죄 사함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어느 날 한 청년이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자신은 교회에 출석하면서 회개하고 주님을 영접했으며 성령 체험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 믿기 전에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며 지은 죄 때문에 구원 못 받은 것 같고,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만 같아 괴로워서 목사님을 찾아왔다고 합니다. 정말 내가 구원받은 것인지 물었습니다. 그때 목사님이 청년에게 그러면 믿지 않는 친구도 그 죄 때문에 괴로워하더냐고 물었습니다. 그 친구는 죄책감이 없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때 목사님이 “자네가 죄를 짓고 괴로워하는 것 자체가 구원 받은 증거라네. 하나님께 회개하면 용서받을 것”이라고 위로해 주었습니다.
우리가 원죄를 회개해도 일상에서 죄를 지을 수 있고 그 죄 때문에 힘드니 주님은 죄 사함을 주시는 회개의 길을 열어주십니다. 죄는 나의 노력이 아닌 주님의 은혜로만 해결됩니다.
다른 사람은 다 아는데 나만 모르는 나의 죄가 있습니다. 나는 그럴듯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보여주셔야 알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지적을 하나님 말씀으로 받아들이면 그것은 내게 유익으로 다가옵니다. 과정에서 거짓에 속지 않아야 합니다. 만일 거짓 자아 중심의 삶이라면 아마 지적해주는 사람과 다투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지적을 주님께서 그 사람을 통해 주신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면 됩니다. 하나씩 깨닫고 변화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중심의 사고는 오히려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의 자리로 인도합니다. 하나님을 경멸하는 자를 하나님은 멸하신다고 합니다. 죄에서 멀어져야 합니다. 사단이 나를 통치하지 못하도록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죄에 대한 감각을 잊어버리는 순간 주님과 단절되기 때문입니다.
레위기의 제사법 중 번제에 대해 묵상하며 깨달은 것은 하나님께서 번제를 통해 우리의 죄가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알게 하십니다. 흠 없는 제물을 단칼에 죽여 껍질을 벗기고 각을 떠 불에 태우는 과정을 통해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는 결단을 하게 됩니다. 즉 끔찍한 제사를 통해 죄를 끊으라는 하나님의 제도적 장치라는 것, 그 기본에 사랑이 전제됨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 과정을 통해 죄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멀어지게 하는 것을 알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항상 기뻐하라고 했다면 항상 기뻐할 일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쉬지 않고 기도하라면 쉬지 않고 나를 지켜보시겠다는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것은 작은 일에 감사할 때 감사의 조건을 많이 만들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기본 전제입니다.
우리가 거짓 자아에 속는 것은 사단을 주인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입니다. 속는 순간 우리는 주님에게서 분리됩니다. 죄를 짓지 말라는 것은 하나님에게서 분리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직 습관적인 죄를 끊지 못했다면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그 죄가 하나님과 나 사이를 막고 있다는 것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그 또한 내가 끊을 수 없습니다. 결단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단번에 끊어집니다. 죄가 미워지고 싫어지니 끊을 수 있습니다. 애연가였던 사람이 성령의 강권하심에 담배가 끊어지니 이제는 담배 냄새가 역겹다고 합니다. 우리 몸은 거룩한 성전(주님이 거하시는 장소)인데 술, 담배를 한다는 것은 주님께 죄송한 일입니다. 진정한 회개를 통해 날마다 죄에서 멀어지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복음 앞으로(호세아)
https://youtu.be/erYsuW2Mf0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