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료·소재 분과 허원도
오랜만에 성인을 대상으로 강연할 기회를 얻었다. 한국과학 창의재단의 2024년도 과학문화 확산 프로그램을 우리 협회가 시행기관으로 지정받은 덕분이었다. 강연 장소인 ‘작은도서관’은 도서관 기능도 하지만, 동네 주민들의 커뮤니티 장소로도 활용되는 곳이었다.
강연 시작 전에 일찍 온 수강자를 대상으로 이 프로그램과 관련한 정부 기관과 ‘한국시니어과학기술인 협회’의 역할을 설명하면서 강연 기회가 마련된 배경과 과정을 요약했다. 그리고 “정부에서 좋은 취지의 정책을 편다 해도, 시민과 직접 마주하는 기관에서 관심을 가져야 그 혜택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열정 가진 도서관장과 사서 직원 덕분에 오늘 강연을 들을 기회를 얻었습니다.”고 말했다. 뒷자리를 채우고 있던 도서관장의 표정이 환히 밝아졌다.
나의 강연 제목은 ‘미술관에서 과학을 만나다’이다. 영국의 팝 아티스트인 줄리언 오피(Julian Opie)가 미술작품을 만들 때 사용한 재료를 사례로 들어 과학을 설명하는 내용이다. 제목에 끌린 탓인지 네 군데의 도서관에서 강연 요청을 받았다. 자원 빈국인 우리나라의 현실에 비추어서 재료과학의 중요성을 알리려 했다. 특히 우리의 실생활 속에서 사용하고 있는 신소재를 영상과 함께 소상히 설명했다.
60분짜리 강연은 늘 아쉬움이 남는다. 서울의 ‘강남구립 즐거운도서관’에서는 강연 시간이 끝날 때쯤 관장이 수강자의 동의를 구하면서 “한 시간을 넘겨도 좋으니, 강연을 계속해 주세요.”라는 요청이 있었다. TV 뉴스 중, 반도체 관련 부분만 2분으로 편집한 동영상을 보여주며 이어 나갔다. 그리고 “방송에서 나오는 용어들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되십니까?‘ 하고 물었다. 수강자들은 겸연쩍은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최근 수년 사이에 반도체는 거의 매일 뉴스에 등장한다. 그만큼 우리 산업과 경제에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의미이다. 실제로 삼성전자, SK 하이닉스 등, 우리나라 반도체 생산기업은 최고 수준의 세계시장 점유율을 지키기 위해서 총소리 없는 전쟁터에서 싸우고 있다. 이 산업이 미래에도 우리나라 경제를 주도하려면 더 높은 과학기술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김포 마산도서관 강연 홍보 포스터>
이 힘은 전국민이 관심을 가지고 양질의 과학기술 인력을 키워낼 수 있어야 만들어진다. 국민이 관심을 가지려면 뉴스에 등장하는 용어 정도는 이해할 필요가 있다. 반도체가 어디에 사용되는지, 반도체 산업이 우리나라 경제에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 메모리 반도체와 시스템 반도체는 무엇이 다른지, 팹리스(fabless) 회사와 파운드리(foundry) 회사는 무엇이 다른지, 미국의 엔비디아(NVIDIA)와 대만의 TSMC는 어떤 회사인데 뉴스에 빈번히 등장하는지, 등등 알아두면 좋을 단어를 쉬운 말로 해석해 나갔다.
이해가 깊어지면 알고 싶은 것은 더 많아지는 법이다. “내 자식을, 반도체를 연구하는 과학자로 만들려면 무슨 공부를 시켜야 하나요?”라는 단순치 않은 질문부터 “중국과의 경쟁에서 우리나라가 이길 수 있을까요?”라는 애국심 묻어난 염려도 뒤따랐다.
프로그램이 한창 진행된 지난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우리가 흘린 땀이 ‘나비효과’가 되어, 대중의 과학 문화 수준을 높이는 큰 바람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필자소개
KISTI-ReSEAT 프로그램 전문연구위원
명지대학교 신소재공학과 겸임교수
한국과학창의재단 과학강연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