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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해도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사사기 3:12-31
when?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이끌었던 여호수아가 죽고 난 후부터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 사울이 통치하기까지의 약 300년 동안을 성경에서는 사사시대라고 부릅니다. 원래 ‘사사’란 단어는 히브리어의 ‘쇼페르’인데, 이 단어는 ‘판관’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사기 바로 앞에 있는 여호수아서 끝부분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모두 점령한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만, 사사기 1장에 보면 아직까지 이스라엘이 다른 이방민족들과 땅을 나누어 쓰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몇 지파씩 힘을 모아 자신의 땅을 지키게 되었는데 이 일을 주도적으로 했던 사람들이 바로 사사들입니다. 그러나 사사제도가 영원한 것은 아니었어요. 사사들이 외적의 침략을 막아내거나, 재판하는 일을 마친 후에는 모두 자신이 살던 고향으로 돌아가 예전의 생업에 종사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사사제도는 어디까지나 인간 왕을 세우지 않고 하나님이 직접 이스라엘을 다스리기 위해 임시적으로 운영되었던 제도였던 거지요.
그렇다면 성경에는 총 몇 명의 사사들이 등장할까요? 어떤 분들은 사사십육이니까 총 16명의 사사들이 등장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만, 성경에는 옷니엘부터 삼손까지 총 12명의 사사들이 등장합니다. 지난주에 제가 학개서를 설교하면서 선지서에도 대선지서와 소선지서가 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이와 마찬가지로 사사에도 대사사가 있고 소사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을 구분하는 유일한 기준은 성경에 기록된 분량이 얼마나 되느냐 하는 것뿐입니다. 우리가 사사들의 이름을 모두 다 기억하면 좋겠지만, 그것이 어렵다면 7명의 대사사 정도만이라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옷니엘, 에훗, 드보라, 기드온, 아비멜렉, 입다, 삼손, 이렇게 7명이 우리에게 친숙하게 알려진 대 사사들입니다. 이들은 한 결 같이 이방 민족의 침략이라고 하는 어려운 상황 가운데 등장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짧게는 6년에서, 길게는 80년까지 다스리면서 그 땅에 평화를 안겨주었던 사람들입니다.
자! 이쯤해서 재미있는 퀴즈를 내겠습니다. 열 두 명의 사사들 가운데 유일하게 여자는 누구일까요? 힌트를 드리자면, 유명한 개그우먼 가운데 이와 비슷한 이름을 가진 분도 계신데요. 네, 드보라입니다. 퀴즈를 한 가지 더 드리지요. 열 두 명의 사사들 중에 유난히 손이 세 개인 사람은 누구일까요? 네 맞습니다. 삼손입니다. 그러면 세계최초의 패션모델은 누구일까요? 이건 좀 어려운데요, 그건 바로 ‘입다’입니다. 이건 좀 더 어려운 건데요, 입다와 비슷한 이름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산에 올라가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입산입니다.
교회에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어떤 사람이 성경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이 인쇄물을 나누어 주시는데, 목사님이 성경구절을 치다가 오타가 났습니다. 중간에 단어 하나를 빼먹은 겁니다.
“자기를 부인하고”에서 가운데 “를”이란 글자를 빼먹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되었습니다. “자기 부인하고” 영어로는 with his wife!
이 사람이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렇구나! 신앙을 갖고 예수님을 따라가며 산다는 것은 나 혼자만이 아니라 아내하고 같이 가야 하는 것이로구나!” 그래서 아내를 전도해서 같이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정도면 참 즐거운 ‘오타’이지요?
사사기에는 반복되는 독특한 패턴을 가지고 있습니다. “범죄-징계-회개-구원-평안”이라고 하는 5대 구조인데요, 우리 오늘 본문 속에서 이 패턴을 찾아봅시다.
먼저, 12절 상 반절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므로…”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여기에 “또”라고 했으니까 그 이전에도 이와 같은 일이 반복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맞습니다. 첫 번째 단계는 ‘이스라엘의 범죄’입니다.
두 번째를 보실까요? 12절 하 반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모압 왕 에그론을 강성하게 하사 그들을 대적하게 하시매”, 14절에도 보면,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왕 에글론을 열여덟 해 동안 섬기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두 번째 단계인 하나님의 징계입니다.
세 번째는 15절 상 반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라는 부분입니다. 일명 ‘이스라엘의 회개’입니다.
네 번째 단계는 ‘사사를 통한 구원’입니다. 15절을 다시 보면,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우셨으니 그는 곧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왼손잡이 에훗이라.” 이렇게 소개되어 있습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는 하나님의 평안입니다. 30절로 넘어가 봅시다. 한 음성으로 30절을 읽겠습니다. “그 날에 모압이 이스라엘 수하에 굴복하매 그 땅이 팔십 년 동안 평온하였더라.” 사사 에홋 때에는 80년의 평안의 때가 유지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또 다른 사사가 등장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제 좀 살만하니까 또 범죄하고, 평안하면 또 다시 범죄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또 다시 징계하시고, 이스라엘이 다시 회개하면 하나님은 또 사사를 보내사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이런 동일한 패턴이 무려 300년이 넘게 12명의 사사들에 의해서 반복되었던 겁니다.
여러분, 이러한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면서 무엇을 느끼십니까? 혹시 우리들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 같지 않나요? 세상에 살면서 지었던 죄를 눈물로 회개하고 용서받았지만, 그 용서의 감격이 식기도 전에 옛 죄의 습관으로 돌아가는 우리 자신들의 모습과 흡사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과 축복을 누리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고 세상 신들을 따라가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지 않습니까? 그래요. 우리는 사사시대에 그려진 이스라엘의 모습을 통해 우리 안에 있는 죄 성이 얼마나 끈질긴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왔지만 이방민족들을 다 쫓아내지 못했던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었지만 우리 안에 있는 죄의 세력을 다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은 늘 영적인 싸움터입니다. 그래서 이미 받은 은혜를 간직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이 절실히 필요한 것입니다.
who?
자, 그러면 우리 본격적으로 오늘 본문의 이야기로 들어가 봅시다. 오늘 본문 12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니라…” 범죄한 이스라엘을 징계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수단이 모압 왕 에글론입니다. 에글론은 주변 암몬 족속과 아말렉 자손들까지 모아 가지고 와서 이스라엘을 쳤습니다. 15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께 부르짖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한 구원자를 세우셨는데 그의 이름이 에훗입니다.
그런데 에훗은 사사로 부름받기 전에 이미 모압 왕 에글론에게 공물을 바치던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에훗은 길이가 45센티미터 정도 되는 좌우에 날선 칼을 만들어 그의 오른쪽 허벅지 쪽에 숨겼습니다. 그리고 모압 왕 에글론에게 공물을 바친 후에, 에훗은 공물 메고 온 자들을 모두 돌려보냈습니다. 에훗은 혼자의 몸으로 에글론을 찾아가 왕에게 은밀한 일을 알리겠노라고 말했습니다. 에글론이 신하들을 물리고 서늘한 다락방에 앉아 에훗과 독대하는 순간, 에훗은 순식 간에 미리 준비한 칼로 에글론을 살해합니다. 에훗은 왕이 있던 다락문들을 모두 잠가 자신이 도주할 시간을 확보합니다. 그리고 나팔을 불어 이스라엘 자손을 모은 후에 모압 용사 만 명을 죽이는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그리고 그 땅에 드디어 팔십 년 동안 평화가 임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한 절의 짧은 에피소드 성격의 또 다른 사사 이야기가 소개됩니다. 31절에 나오는 사사 삼갈 이야기입니다. 삼갈은 이스라엘이 블레셋에게 지배를 당했을 때 블레셋 사람 육백 명을 죽여 이스라엘을 구원하였습니다.
what?
자! 이것이 오늘 본문의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본문을 통해서 무엇을 느끼십니다.
저는 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이런 단어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먼저 15절을 봅시다. “그는 곧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왼손잡이 에훗이라.” 베냐민 사람이면 이스라엘 열두 지파 가운데 가장 마지막 지파 아닙니까? 그래서 훗날 사무엘 선지자가 베냐민 지파였던 사울을 찾아가 왕으로 기름부음을 베풀 때 사울이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 사무엘상 9장 21절에 보니까, “사울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이 아니니이까…?”라고 고백합니다. 무슨 말이겠어요? 베냐민 지파는 이스라엘 열 두 지파 가운데 가장 힘없고 작은 지파였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런 힘없고 작은 베냐민 지파 가운데서 사사를 뽑으셔서 민족이 어려울 때마다 구원하게 하셨단 말이지요.
또 하나 ‘왼손잡이 에훗’이란 단어도 생각해 봅시다. 성경에서 오른 손은 힘과 능력을 상징하는 대신, 왼손은 연약함과 불안정한 상태를 상징합니다. 지금은 왼손잡이를 창조성이 있는 행운의 사람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 당시에 왼손잡이는 불완전한 비주류를 상징했습니다. 더군다나 왼손잡이 에훗은 육체적으로 비정상이어서 곡물을 운반하는 사람으로서는 부족했어요.
또 우리가 에훗을 보면서 느끼는 것이 있지요? 조금 잔인하다는 느낌 안 드세요? 에훗이 모압 왕 에글론을 죽이는 과정을 보세요. 먼저 에훗은 에글론을 죽이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그리고 그 계획을 이루는 과정에서 왕에게 은밀한 일을 아뢰겠다면서 접근합니다. 그리고 에훗은 “내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 왕에게 아뢸 일이 있다” 며 서슴없이 거짓말을 합니다. 그리고 몸이 비둔해서 늦게 일어나는 기회를 포착해서 미리 준비했던 칼로 왕을 몸을 찌릅니다. 22절에 보면, 좀 잔인한 표현들이 가감 없이 소개됩니다. “칼자루도 날을 따라 들어가서 그 끝이 등뒤까지 나갔고 그가 칼을 그의 몸에서 빼내지 아니하였으므로 기름이 칼날에 엉겼더라.”
아마도 에훗이 에글론을 칼로 찌를 때에 있는 힘껏 찔렀던 것 같아요. 그래서 칼 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칼자루까지 그의 등 뒤까지 튀어 나왔던 거지요. 그리고 칼을 몸에서 빼내지 않았더니 그 상처 부위에서 대소변이나 혹은 기름 찌꺼기 같은 것이 나와 칼날에 엉겨 붙었다는 거지요. 성경에 왜 이런 잔인한 내용까지 상세히 기록되고 있을까요? 그냥 단순히 “에훗이 에글론을 칼로 죽였다.” 정도만 말해도 충분할 텐데 말이지요. 아마도 성경을 기록했던 분이 에훗이 에글론을 죽인 사건은 “좀 심했다”, “도가 지나쳤다”라고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에글론을 죽인 에훗의 행위는 성공적이었지만 그 방법에 있어서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바람직하지 않았다.” 이 점을 부각시키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분명 사람을 사용하실 때 세상 적으로 강한 사람, 잘 준비된 사람만 사용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출신가정도 훌륭하고 공부도 많이 한 분, 그리고 언변도 뛰어나고 리더십도 있는 분, 게다가 외모도 출중해서 사람들에게 쉽게 호감을 사는 분, 이런 분들만 사용하시는 게 아닙니다. 우리 인간의 눈으로 볼 때는 장애가 의심될 정도로 뭔가 불완전한 분, 그래서 무엇인가를 믿고 맡기기에는 영 석연치 않은 분들, 놀랍게도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사람은 이런 분들이십니다. 그게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사용하신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인가요? 혹시 ‘베냐민 사람 왼손잡이 에훗’처럼 뭔가 부족한 부분을 가지고 계십니까? 그러면 여러분도 하나님 앞에 충분히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연약한 자를 들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분 아닙니까?
또 하나님이 사람을 들어 쓰실 때 인격적으로도 완전한 사람만을 사용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물론 이 말이 우리의 부족함을 합리화시키기 위한 기회로 악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인격의 사람, 사랑의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에훗처럼 잔인한 사람도 사용하셨습니다. 그의 잔인함이 하나님 보기에 합당한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은 그의 잔인함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을 구원하려는 목적을 변함없이 이루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가 첫째로 깨닫는 교훈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일을 이루기 위해 약한 자도 들어 쓰신다는 겁니다. 우리가 강해야만 쓰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이 점에 있어서는 성경에서 단 한 절에만 등장하는 사사 삼갈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31절에 보니까, 에훗의 뒤를 이어 삼갈이 사사가 되었는데 삼갈을 ‘아낫의 아들’이라고 소개하고 있어요. 여기서 ‘삼갈’의 이름은 이스라엘식 이름이 아니고 이방인의 이름입니다. 더구나 삼갈의 아버지 ‘아낫’은 당시 이방인들이 섬기던 신의 이름입니다. 그러니까 삼갈은 아낫 신을 믿던 이방인의 가정에서 태어난 이방인이었던 거지요. 아마도 그의 어머니가 이스라엘 사람이었는데 이방인이었던 남자를 만나 가정을 이루었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이방인이었던 이 가정이 여호와 신앙을 받아들이고 개종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 과정이야 어쨌건 중요한 것이 이전에는 이방인이었던 삼갈이 지금은 이스라엘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 위대하게 쓰임 받았다는 거지요.
더구나 삼갈이 블레셋 사람 육백 명을 죽였을 때 그 도구가 무엇이었지요? ‘소 모는 막대기’였습니다. ‘소 모는 막대기’는 한 쪽 뾰족한 끝부분으로 소들을 인도하고, 다른 한쪽에 작은 괭이가 붙어 있는 2-3미터 정도 길이의 농기구입니다. 더군다나 삼갈이 소 모는 막대기를 가지고 있었다는 말은 그가 전문적인 군사 훈련을 받은 사람이 아니라 그저 소나 키우던 농부였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런 보잘 것 없는 도구를 가지고 어떻게 잘 훈련된 블레셋 군사 육백 명을 죽일 수 있었겠어요?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아니겠습니까?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은 약한 자를 들어 쓰십니다. 아무리 약해도 하나님의 손에만 붙들리면 민족을 구원할 위대한 사사로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교훈은 “강점으로 일하라”는 것입니다.
네델란드는 국토가 좁은 나라입니다. 게다가 전 국토의 5분의 2가 바다보다 낮습니다. 그래서 네델란드 사람들은 일찍부터 땅이 아닌 바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선박들을 많이 건조해서 유럽의 해양권을 장악했습니다. 또한 장소에 관계없이 강점을 발휘할 수 있는 금융업에 집중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암스테르담이 유럽 금융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는 겁니다. 자신의 약점이 아닌 강점으로 일할 때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에 불평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내가 가지고 있는 보잘 것 없는 무기를 사용해서라도 당신의 일을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았던 에훗을 보십시오. 에훗은 자신의 약점을 강점으로 바꾼 사람입니다. 에훗이 모압 왕 에그론을 죽을 때 자신이 만든 칼을 사용했습니다. 그는 에그론을 죽이기 위해 자신의 오른쪽 다리 길이에 딱 맞는 한 규빗 길이의 칼을 만들어 그 칼의 좌우에 날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 칼을 자신의 오른쪽 다리에 숨겼습니다. 아마도 에훗이 오른손에 장애가 있었기 때문에 곡물을 운반하거나 왕 앞에 나아갈 때마다 모압 군사들이 그의 오른쪽 다리를 수색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무도 에훗이 그의 왼손으로 오른쪽 다리에 숨겨 놓은 짧은 칼을 뽑을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에훗의 전략이었습니다. 에훗은 왼손을 뻗쳐 그의 오른쪽 허벅지 위에서 칼을 빼어 왕의 몸을 찔렀습니다(21절). 그것도 여러 번이 아닌 단 한 번의 동작으로 상대방을 완전히 무력화시켰습니다. 아마 반복하고 또 반복해서 연습을 했겠지요? 결정적인 순간에 한 방을 날리기 위해 끊임없이 준비했을 것입니다. 에훗은 남들에게 다 알려진 자신의 단점을 이용해 오히려 그 단점을 장점으로 바꾸어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끊임없는 반복 연습을 통해 상대방을 한 번에 무력화시킬 수 있는 힘을 길렀습니다. 에훗은 단점을 장점으로 바꾸었고, 장점으로 일했던 사람입니다.
또 삼갈은 어떻습니까? 그는 자신이 가장 잘 사용할 수 있는 무기를 택했습니다. 바로 ‘소 모는 막대기’였습니다. 그는 그것으로 블레셋 용사 육백 명을 죽였습니다. 소 모는 막대기가 비록 무기로서는 보잘 것 없지만, 그 보잘 것 없는 무기가 삼갈의 손에 붙들려지자 무서운 강력한 무기로 바뀐 것입니다. 사람은 무엇이든지 자기 손에 맞는 것으로 일해야 합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트릴 때 사용했던 무기는 또 무엇입니까? 보잘 것 없는 물맷돌 5개였습니다. 그러나 그 보잘 것 없는 무기가 다윗의 손에 들려지자 적장 골리앗을 쓰러뜨릴 만큼 강력한 무기가 되었습니다.
위대한 복음 전도자 바울을 기억해 봅시다. 바울은 설교자로서 큰 약점을 가지고 있었는데 바로 언변이 좋지 않았던 것입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보낸 두 번째 편지에서 무엇이라고 고백하나요? “내가 비록 말에는 부족하나 지식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바울은 말에는 부족하다고 스스로가 인정할 정도로 언변이 좋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이 우수개소리로 이렇게 이야기하시더라고요. “바울이 얼마나 설교를 못했으면 설교를 듣던 유두고가 창문에서 떨어져서 죽었겠느냐?” 물론 우스갯소리지만 바울 스스로가 인정할 정도로 그는 말에는 부족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바울도 강점이 있었잖아요? 바로 지식에는 강점이 있었던 것이요. 바울의 글에 얼마나 큰 힘이 있습니까? 바울의 글을 연구해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들이 수두룩해요. 지금도 바울 서신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무슨 이야기이지요? 바울도 설교 대신 자신의 뛰어난 지식으로 기독교를 변증하고, 신약성경의 절반을 기록할 정도로 엄청난 사역을 감당했던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항상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 “내가 가진 장점이 무엇인가?” 하는 겁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없는 것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보다 우리가 가진 것으로 주님을 섬기기 원하세요. 비록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라도 주님 손에 들려지면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는다는 심정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how?
레인이라는 의사가 이런 글을 썼습니다. 어느 날, ‘경직성 분열증’ 환자가 자신을 찾아왔답니다. 경직성 분열증이란 병은 갑자기 몸이 굳어지는 증세를 보이는 병입니다. 의사로서 강구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사용해 보았으나 그 사람의 병이 호전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전기충격이나 약물로도 그 병을 고칠 수 없게 되자 이 의사는 환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당신의 병을 현대 의술로는 고칠 수 없으니 그 병을 고치려고 애쓰지 말고 그냥 그렇게 사십시오. 그 대신 경직성 분열증을 약점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강점으로 사용할 곳을 찾아보기 바랍니다.”
얼마 후 이 의사에게 감사의 편지 한 통이 날아왔습니다. 그 환자가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하는 데 필요한 모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편지에는 그 일이 자기 체질에 딱 맞는 직업이라서 너무 좋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꼼짝도 않고 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괴로운 일이겠지만 경직성 분열증 환자인 그는 한 번 자세를 잡고 힘만 조금 주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시간 보내는 것은 식은 죽 먹기라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자신의 질병을 약점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장점으로 잘 활용한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오늘도 여러분을 사용하셔서 이 시대를 구원하기 원하십니다. 이 시대를 구원하고 이 땅에 하나님의 평화를 선사할 영적인 사사들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자는 연약한 자입니다. 약한 자를 들어서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약해도, 부족해도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기만 하면 영적 사사로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강점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여러분이 여러분의 강점을 발견하고 그것으로 하나님께 봉사하길 원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마감하면서 이러한 사실이 나타내는 것이 무엇입니까? “구원은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겁니다. 약한 자를 들어 강하게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길로부터 구원은 임합니다. 이 귀한 은혜와 축복이 여러분에게 함께 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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