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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3년(광해군 5) 선조의 계비인 인목대비(仁穆大妃) 폐비사건을 시작으로 하여 일어난 궁중비사를 기록한 글이다.
인조반정(仁祖反正) 뒤 대비의 측근 나인이 썼다고 한다. 그러나 문체와 역사적 사실을 들어 인목대비 자신이 쓴 것이라는 설도 있다.
《계축일기》는 공빈김씨(恭嬪金氏)의 소생인 광해군과 인목대비의 소생인 영창대군(永昌大君)을 둘러싼 당쟁을 중후한 궁중어로써 사실적으로 서술한 글이다.
묘사보다는 서술에 중점을 두고 있어 당시의 치열한 당쟁의 이면을 이해하는 데 보조 자료가 된다.
인목대비의 아버지인 김제남(金悌男)이 영창대군을 추대하여 모반하려 한다는 무고로 김제남 부자와 영창대군은 참혹한 죽음을 당하고, 인목대비는 덕수궁으로 쫓겨나 폐비가 되며, 그 뒤 갖은 고초를 겪은 끝에 11년 만에 인조반정으로 복위되었다는 이른바 궁중비사이다.
《한중록》 《인현왕후전》과 함께 3대 궁중문학으로서 소설문학 발달에 크게 이바지한 점을 높이 평가할 수 있다. 또한 조선 중기의 궁중에서 전개되는 풍속 ·인정 및 생활상을 잘 보여준 점, 한문고사를 피하고 순우리말을 구사한 점, 중후하고 전아한 궁중어와 문체를 남긴 점 등은 다른 작품에서 찾아볼 수 없는 귀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선조 41년(1618) 선조가 갑작스럽게 승하하자 광해군은 덕수궁 즉조당에서 조선 제 15대 임금으로 즉위한다. 왕위에 오른후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자신을 위협하는 세력을 제거하면서 이복동생 영창대군을 유배시켜 죽음에 이르게 하고 선조의 계비이자 영창대군의 친모인 인목대비를 폐서인시킨다.
광해군에 의해 친정이 풍비박산되고 어린 아들 영창대군마저 잃은 인목대비가 서인으로 폐출되어 오랜 세월 절치부심하던 곳이 바로 석어당이다.
마침내 광해군 15년 인조 반정이 일어나고 인목대비는 석어당 앞마당에 광해군을 꿇어 앉히고 36가지 죄를 묻고서는 폐위시켜 교동으로 유배보냈다. (문화재청)
석어당(昔御堂)
인목대비 (1962) 仁穆大妃 시대극 | 한국 | 122 분
감독 안현철...용문호객(1979), 아내여 미안하다(1971)
출연 : 조미령 인목대비 역, 김 상궁 역, 허장강 광해군 역, 신영균 능양군 역, 김승호 임해군 역, 최남현 선조 역,
광해군은 세자로 책봉되지만, 중전 인목대비가 뒤늦게 영창대군을 낳으면서 첩의 아들인 탓에 선조의 신임을 잃고 세자의 자리에서 밀려날 위기에 처한다. 이에 광해군은 김상궁과 계략을 꾸며 선조를 독살하고 왕위에 오른다. 하지만 왕이 된 광해군은 정사는 돌보지 않고 주색잡기에만 정신을 팔 뿐이다. 명나라 사신이 형인 임해군이 왕이 되지 않고 왜 아우가 왕이 되었느냐고 책문하자, 광해군은 임해군을 정신이상자로 몰아 명나라 사신을 속인다. 그리고 명나라 사신이 돌아간 후 광해군은 임해군을 교살한다.
또 영창대군과 인목대비를 모시는 신하들이 많은 것을 두려워한 광해군은 6살 영창대군을 역모죄로 몰아 강화도로 귀양보내고 인목대비를 폐비시킨다. 어느 날 광해군이 보낸 자객이 어린 영창대군을 방에 가둔 후 집에 방화를 해 영창대군을 살해한다. 결국 이를 보다 못한 신하들은 능양군의 지도하에 정변을 일으켜, 광해군을 몰아내고 인목대비를 복위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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