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하는 이계삼 선생님께 드리는 공개 편지
-『오늘의 교육』특집기사 「오늘날 학교 현장의 ‘교육 불가능’에 대한 사유」를 읽고
저녁 산책을 다녀왔습니다. 산책길에서 저는 이미 한 통의 긴 편지를 선생님에게 띄워 보냈습니다. 막상 그것을 글로 다시 옮겨 적으려니 막막해집니다. 이 막막함이 낯설지는 않습니다. ‘교육공동체 벗’과 인연을 맺은 뒤로 줄곧 그런 정서에 휩싸여 있었으니까요. 막막하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희망의 조짐이기도 합니다. 정년을 불과 오년 남짓 남겨놓고 이제 겨우 막막한 수준에 이른 것이 부끄럽긴 하지만 말입니다.
『오늘의 교육』창간호가 학교로 배달되어 온 날이었습니다. 퇴근 시간이 조금 남아 있어서 편집장 박복선 선생님의 발간사를 먼저 읽었습니다. 제목이 ‘희망의 페다고지를 위하여’였지요. 내용 중에 제도 투쟁을 위한 담론의 한계를 지적한 부분이 퍽 인상적이었습니다. 제도 투쟁을 위한 담론은 대안적 상상력을 담아낼 여지가 없으며, 대안적 상상력이 없는 실천은 결국 체재로 수렴될 것이라는 말에 크게 공감하였습니다.
특집에 실린 선생님의 글 「오늘날 학교 현장의 ‘교육 불가능’에 대한 사유」는 교정을 걸어 나가면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차츰 걷는 것보다는 멈춰 서 있는 시간이 더 많아졌습니다. 한 번인가는 잠깐 길바닥에 주저앉아 있다가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학교에서 집까지 걸어서 십분 거리를 삼십분도 넘게 걸어 집에 당도했습니다. 초인종을 누르자 아내가 문을 열어주면서 이상한 듯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당신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응. 왜?”
“당신 얼굴 표정이 좀 그래서.”
“얼굴 표정이 어때서?”
“늘 보던 당신 얼굴이 아니야.”
“무슨? 학기 초라 좀 피곤해서 그렇겠지.”
그렇게 얼버무렸는데 곧 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무슨 대화 끝에 아내가 저를 향해 버럭 역정을 냈습니다. 그 전에 제가 아내의 심사를 건드렸나 봅니다. 저는 평소 아내와 대화를 많이 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그날은 아무런 말도 제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뒤늦게야 혼자서 대화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지요. 아내가 버럭 화를 낸 그 순간에도 저는 정신이 다른 곳에 팔려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선언해버린 바로 이 말.
학교는 ‘의미 없는’ 공간이 되었다.
실로 오랜만이었습니다. 가슴이 짓눌릴 만큼 진지해져 본 것이. 마음이 아팠습니다. 마음이 아프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고 실감했을 만큼. 정말 학교가 ‘의미 없는’ 공간이라면 그 공간에서 살고 있는 학생들은 얼마나 불행할까? 아니, 그보다 먼저 저는 선생님을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어둠에 대하여. 결국은 불행함에 대하여. 선생님의 글을 읽을 때마다 그런 생각을 했었지요. 사람은 아는 만큼 비극적인 것인가? 그렇다면 지금의 나의 행복은 무지의 선물인가? 그것이 아니라면, 지금 내가 느끼는 이 행복감의 실체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선생님도 공감하실지 모르겠지만, ‘비극적’이란 단어는 시 나부랭이를 쓰는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비극적이지 못합니다. 그것은 아마도 비극의 문화적인 힘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이 영국인들에게는 인도와도 바꾸지 않을 만큼 큰 자부심이요 자산이었던 것처럼. 그런 비유가 인도인들의 입장에서는 거슬릴 수도 있다면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고 읊었던 허수경 시인의 아포리즘으로 대신할 수도 있겠네요.
그동안 저는 선생님이 사유하신 학교의 불가능에 대해서, 그로 인한 슬픔과 절망에 대해서 다분히 문학적으로 반응하지 않았었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러다가 그날 처음으로 사실적인 실감으로 다가오지 않았나 싶어요. 하지만 선생님의 글을 읽다가 잠깐 동안 길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던 그 순간에 저에게 일어난 현상은 그런 절망의 실감만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뜻밖에도 ‘언어’의 문제였습니다. 내 마음을 표현할 언어가 없다는 것. 그것은 시를 쓰거나 할 때 느끼곤 했던 그런 느낌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 언어를 찾고 있는 중입니다. 선생님께 긴 편지를 쓰다보면 그것이 찾아질 것 같은 예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사실은 그것이 이 편지의 목적이기도 합니다. 결국은 제 자신의 문제에 공연히 선생님을 끌어들인 것이지요. 미안하다고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날 밤, 아내에게 정중히 사과하고 제 방으로 돌아와 메일을 열어보니 작년에 담임한 제자가 보낸 편지가 와 있었습니다. 여수에서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전문계인 우리 학교로 전학 온 아이입니다. 한 마디로 성실의 대명사 같은 아이인데, 나중에 알고 보니 부모가 이혼한 뒤 동생은 아빠와 여수에서 살고 그 아이는 엄마 직장 따라 순천으로 이사를 온 것이었습니다. 언젠가는 저에게 영어문장을 가지고 와서 해석이 잘 안 된다고 가르쳐 달라고 했습니다. 관계대명사가 생략된 영어문장을 제가 더 신이 나서 설명해주었더니 아이가 얼굴이 환해져서 돌아가더군요. 그때만큼 제가 영어교사인 것이 행복한 적도 없었습니다.
사실, 전 그 아이와 많이 친하게 지내지는 못했습니다. 학급 운영을 조금 자유스럽게 하다 보니 제 세상을 만난 듯 짓고 까부는 녀석들이 많아 그들을 챙기기에도 힘이 부쳤던 탓이었지요. 그런 일종의 역차별을 하지 않으려고 나름대로 많은 신경을 썼지만 한계라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존재하곤 했습니다. 며칠 전에 그 아이에게 문자가 왔는데, 고민이 하나 있는데 저에게 편지를 보내도 되냐는 그런 내용이었지요. “당근이지!” 하고 답장을 보냈더니 며칠 뒤에 메일을 보내온 것입니다. 좀 길지만 원문 그대로 보여드리고 싶네요. 그래야 편지의 ‘리얼리티’가 온전히 전달될 것 같아서요.
선생님! 오랜만이에요! ^^*
전 요즘 목감기에 걸려 고생이에요. 선생님도 감기 조심하세요. 편지가 많이 늦었죠? 죄송해요. 바로 보냈어야 되는데... 저는 요즘에는 학교생활이 재미있어요! 처음으로 부반장도 되고, 애들이랑 이야기도 많이 하거든요. 제 고민이 뭐였나면.. 이번 겨울방학 때 서울에 사촌 언니 집에 다녀왔어요. 대학교도 구경할 겸, 서울 구경도 할 겸 해서 너~무 기대를 하고 갔는데... 그런데 가서 조금 충격을 받았어요. 저는 ○○보건대 간호과를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2학년 때 나름대로 관리도 했었는데 막연히 혼자 자취를 한다. 엄마가 방이라도 얻어주겠지....뭐 이런 생각을 했었는데 사촌언니를 보니까 반지하에 살더라고요.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지요.
언니는 서울에 있는 모 사립4년제를 다니다가 자퇴를 했어요. 월세 내고 아르바이트하고 매번 학자금대출 받아서 생활하기가 힘들었데요. 그래서 2학년 때 자퇴를 하고 빚이 900만원이 있다고 매달 20만원씩 갚고 있다고. 언니를 보니까 남의 이야기 같지가 않더라고요. 무리를 해가면서 대학을 가야하나 고민을 많이 했어요. 방학 때 주변에 이야기를 많이 해보고 생각도 해보니까 이번이 기회라고 생각해요. 상고에 진학했으니까 취업을 해서 몇 년 돈을 모으고 너 하고 싶은 거 하라고. 그래서 취업으로 결정을 했어요. 결정을 하니까 맘이 편해지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뭘 하고 싶은 지도 이제 알겠어요.
전에는 대학을 꼭 가야한다. 라고 생각을 하니까 취업이 잘되는 과로 가자. 라고 생각해서 간호사가 되고 싶다? 뭐 이런 건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취업을 보장한다는 것에 혹 해서 간호과를 가야겠다...라고 생각했었는데 일을 하면서 야간대나 방통대를 다니자. 제가 하고 싶은 것은요. 가게를 차리는 거에요! 아기자기한 인테리어소품이나 퀼트나 나무반제가구를 제가 색을 입혀서 파는 거죠, 수강생도 받고요! 잘사는 아파트 앞에 작은 가게를 얻어서 하는 거에요. 까페처럼~ 제 작품도 전시하고 팔고 커피도 마시고 가라고....너무 재밌겠죠?! 저를 가르치는 강사님이 이렇게 생활하시는데 너무 좋아 보이더라고요~ 저도 이렇게 살고 싶어요!^^ 젊은 엄마들, 인테리어에 관심 있는 여자들을 타겟으로 하는 거죠. 제가 생활미술을 2년째 배우고 있는데 너~~무 재밌는 거에요! 정말 시간가는 줄 모르고 하는데 선생님께 선물했던 티슈케이스는 포크아트(fork art)라는 것인데 초급단계에서 만든 거예요. 이제 중급에 들어갔고요~
얘기가 딴 곳으로 흘렀네요...3월 10일 날 담임선생님이 하이닉스에서 취업공고가 왔다고 지원을 하라고 하시는 거예요. 개학한지 며칠 밖에 안 되었는데 벌써 원서를 쓰구나! 이렇게 빨리....요즘 자기소개서를 쓰고 있어요. 제 고민은 해결이 났어요! “하이닉스 합격하면 가자.” 로... 이런 고민거리를 말할 수 있는 선생님이 계셔서 참 다행이에요! 반 애들도 3학년이 되니까 서로 이런저런 고민도 이야기하고 그래요. 참 좋아졌어요. 헐..벌써 시간이 12시가 넘었네요! 저는 컴퓨터활용능력시험이 일요일에 있어서 문제를 풀다가 자야겠어요..ㅠ.ㅠ. 내일 뵈요~~~^^ 안녕~
그날 바로 답장을 보내놓고 다음 날 아이를 만나 메일을 보냈다고 말을 해주었는데 그 옆에서 그 말을 듣던 한 아이가 무슨 말인지 궁금해 하는 눈치였어요. 그러더니 며칠 뒤(바로 어제) 그 아이에게서도 메일이 왔지요. 전교조 전남지부 일꾼연수를 마치고 아직 일정이 덜 끝난 동료선생님을 기다리다가 메일을 읽게 되었지요. 그 편지도 원문대로 보여드리고 싶네요. 이번에 그 아이에게 쓴 답장까지. 함께 편지를 읽고 나면 어렴풋하게나마 제 언어가 찾아질 듯싶어서요.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이에요 3학년이 되어 처음으로 선생님께 이메일을 써보네요. 아직도 선생님을 생각하면 2학년 때 담임으로 가르치시던 선생님이 아직도 그리워요. 사랑과 관심으로 저희에게 애정을 쏟으셨던 선생님 그때를 생각하면 잊을 수가 없네요. 그렇기에 제가 지금 선생님께 이메일을 보내네요.
다름 아니라 선생님 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고민이 하나 생겼어요. 선생님도 아시다시피 전 ○○대 행정학과로 진학을 하여 행정직공무원이 되려고 했었지만 이번 2011년도 부 터는 대학수능능력시험을 봐야 되며 수능을 보지 않은 학생은 자격미달이라 불합격 처리 된다고 해요. 전 바뀐 모집요강에 크게 당황 했어요. 제가 그렇게 가기 원했던 대학을 가지 못한 슬픔에 아직도 마음 한 구석이 씁쓸해요. 태어나서 수능공부는 한 번도 안 해봤었고 수능이 필요하단 생각은 하지도 못했어요. 학교공부론 수능 고득점을 얻기도 힘들고 따로 시간을 내서 공부하기엔 너무나도 짧아요. 그래서 검정고시까지 생각했지만 저에겐 무리인 것 같아요. 수능을 본다고 해도 성적순으로 뽑기 때문에 힘들 것 같아요. 그래서 다른 학교를 알아봤지만 국립대는 수능을 포함하며 사립은 등록금이 너무 부담이 될 뿐이에요.
그렇다고 해서 제가 대학교 가서 열심히 하면 장학혜택도 있겠지만 저보다 뛰어난 아이들 사이에서 경쟁을 한다면 이기지 못한 자존심 때문에 더 독이 될 것 같아요. 전 너무나도 진학에 대한 고민이 큽니다. 취업을 생각해봤지만 보수적인 부모님께선 크게 반대하셨고 전 부모님의 의견에 따라 진학을 결정했어요. 하지만 돌아오는 건 고민과 걱정뿐이에요. 제 이야기는 여기까지 에요. 저의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답변 부탁드릴게요. 주말 잘 보내세요.
사랑하는 ○○에게
안녕~ 네 이름을 보고 너무 반가웠는데 편지를 읽어보니 네 슬픔과 고민이 손에 잡히는 것 같구나. 그래도 너무 실망하지는 말거라. 넌 성실한 아이이고 지금까지 한 것처럼 성실하게 준비하다보면 네가 원하는 길이 열릴 거야. 수능에서 고득점을 맞는 것도 어렵지만 행정직 공무원이 되는 것도 만만치는 않단다. 하지만 무엇이든 노력하는 사람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법이란다. 그리고 네가 지금 원하는 것이 당장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삶이란 또 다른 길이 준비되기 마련이니 우선 네 마음을 편하게 하고 여러 가지 너에게 좋은 길을 찾아보기 바란다. 여긴 선생님들이 연수를 받는 곳이란다. 집에 가서 편지를 쓸까하다가 네가 편지를 기다리지 않을까 싶어 편지를 쓰고 있구나. 주말 잘 지내고 월요일 날 학교에서 만나서 얘기 나누기로 하자. 알았지? 좋은 꿈 꾸거라. 사랑한다.
급한 마음에 편지를 써서 보냈지만 내일 학교에 가면 이 아이를 만나 무슨 말을 해주어야할 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무슨 말을 해주어도 그 아이에게 당장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니다. 그런데도 지금 제 마음이 이상하게 어둡지가 않습니다. 오히려 선생님의 글을 읽고 난 뒤의 후유증(?)마저 가신 느낌입니다. 교사로서의 제 본연의 자리로 돌아온 안도감 때문일까요? 이런 마음의 현상을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표현해낼 언어가 없다는 것이 저의 답답함입니다. 그렇다고 이 분명한 실체를 부인할 수도 없고 부인해서도 안 될 것 같습니다. 왜 저는 어둡지가 않을까요?
편지를 쓰다 보니 떠오르는 하나의 삽화가 있습니다. 꽤 오래 전일입니다. 부산에서 전교조가 주관하는 학생생활지도 직무연수에 강사로 초빙된 적이 있었는데 보내온 문건을 살펴보다가 연세대 조한혜정 선생님도 강사진에 포함되어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 수준에 부산까지 원정 강의를 나가는 것 자체가 무리였는데 전날 조한혜정 선생님 강의가 배치된 것이 심적으로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무식이 용맹이라고 한 번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동안 제가 만난 아이들 얘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아니, 아이들을 만난 제 이야기를 자랑삼아 하고 싶었겠지요. 강의가 끝난 다음 수강생들과 저녁을 함께 하는데 한 여선생님이 무릎걸음으로 다가와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 그냥 드리는 말씀이 아니고요. 정말 고맙습니다. 전 어제 잠을 설쳐서 오늘 여기 나올까 말까 많이 망설였어요. 그런데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말 고맙습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그때의 강의 내용을 어렴풋이 기억하는데 그렇게 고마워하고 감동할 그런 수준의 내용이 아니었거든요.(지금만 같아도 좀 더 잘 할 수 있겠지만요.^^) 나중에 알고 보니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날 합석하신 또 한 분의 여선생님의 입에서 나온 말입니다.
“조한혜정 선생님 말씀이 구구절절이 옳다 싶으면서도 정말 그분이 말씀하신 곳이 내가 근무하는 학교 현장이 맞나 의구심이 드는 거예요. 만약 그 말이 맞다면 전 교사로서 헛살아 온 거잖아요. 나름대로는 아이들을 사랑하고 꿈을 심어주고 싶고 그래서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싶어서 연수를 신청한 건데 이게 다 무슨 소용이겠나 싶은 거예요. 학교가 그렇게 망가지고 아이들 또한 망가졌는데 이런 연수가 무슨 의미가 있냐 말이에요. 그러다가 선생님의 강의를 들으니…”
고백하자면, 제가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서 느낀 혼란스러운 감동(말이 되나요?)도 두 여선생님의 그것과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교사로서의 제 존재가 부끄러울 만큼 제가 미처 사유하지 못한 것들, 간신히 (좀 과장되게 표현하면 죽을 듯이) 하나의 관점을 얻어냈지만 표현할 재간이 없어서 쩔쩔매고 있던 것들을 선생님은 깊은 사유와 진실의 언어로 이렇게 훌륭하게 피력해놓으셨지요.
‘내 생각은 이러하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지난 시절 진행되어온 한국 사회의 변화와 무력한 대응의 자연스러운 귀결이므로 일단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근본으로 돌아가는 사유이다. 어설픈 희망의 언사, 개선의 노력들, ‘그래도 학교가 희망이다.’ 식의 언술은 그것의 현실적인 의미와 도덕적 가치를 떠나 이 교육적 불가능을 치유 불가능한 상태로 악화시키는 것에 기여할 뿐이다. 아인슈타인이 말했듯이 ‘문제를 일으킨 그 마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30쪽)
그러면서 ‘전혀 새로운 시선으로, 학교라는 공간을 재개념화해야 한다’고 했고, ‘교육이란 무엇인가’, ‘학교란 무엇인가’ ‘아이들을 왜 학교에 보내야하는가’라는 질문이 새롭게 던져져야한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학교란 무엇인가’를 물어야 한다.’고 하셨지요. 그리고 정말 무릎을 치고 싶을 만큼 속 시원하게, ‘아마도 오늘날 아이들은 학교를 ’어른들이 우리를 괴롭히기 위해 만든 공간’으로 정리하고 있을 것이다. 이것을 인정해야 한다.’라고 못을 박기도 했지요. 저도 인정합니다. 변혜정님과 안백린님이 쓴 「학교에 약한 엄마, 학교에서 상처 받는 아이들」에도 그런 모습이 그려져 있지요. 그 가슴 아픈 글을 읽고 대신 무릎이라고 끓고 사죄하고 싶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학교가 희망이다’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 문제입니다. 제게 고민을 풀어놓은 제자에게 ‘어설픈 희망의 언사’라도 하고 싶은 것도 문제입니다. 개선의 노력을 하고 싶은 것은 더 큰 문제입니다. 전 가끔 학생들에게 “선생님은 왜 늘 행복해 보이세요?”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어느 날인가 한 아이가 저에게 그렇게 물었을 때 저도 모르게 “응, 난 늘 내 자신하고 싸움을 벌이고 있거든.”하고 말을 했다가 스스로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었습니다. 전 제가 부족한 것을 알기에 저를 개선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합니다. 그래도 전 여전히 함량미달인 부족한 인간입니다. 이것이 겸손을 가장한 자만이 아닌 제 진실의 언어라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저 많이 부족한 거 잘 아시잖아요^^.)
저는 좋은 교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좋은 교사가 되기 위해 들러리를 서줄 학생들이 필요했는데(100%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나중에야 그것이 잘못임을 알고 저와 학생의 위치를 바꾸는데 성공(그것도 100% 성공은 아니지만)했습니다. 그것이 저를 개선하는 일이었습니다. 그 일 하나에 교사로서의 전존재를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것은 저에게 한 나라의 이름을 바꾸는 것 못지않게 더 중요한 일이었으니까요. 저를 지금도 저를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고, 그러한 노력들이 결코 ‘의미’ 없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의미 있는 일로 인해 저는 행복합니다.
당연히 학교도 저에게 의미가 없지 않습니다. 물론 선생님의 진의를 몰라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하지만 새로운 그림을 위해 학교를 ‘의미 없는’ 공간으로 정의 내려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새로운 학교가 재건되기까지 학생들이 거할 곳은 바로 학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가 근무하는 현실의 학교에서 저는 학생들과 여전히 의미 있는 만남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학교에서도 아이들과 진실을 소통하는 것은, 조금 버겁고 힘들뿐, 결코 불가능한 영역이 아닙니다.
저도 학교에 대해서 ‘사유’해 본 적이 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 바로 코앞에 학교 건물이 지어지고 있을 때였습니다. 학교가 들어서기 전 그 땅에는 밤나무와 채소가 심어져 있었습니다. 그 생명의 땅에 회색 콘크리트 건물이 들어서자 저는 새삼 “학교가 뭐지?”하고 제 자신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생명의 땅을 뒤엎고 그 자리에 콘크리트 건물이 올라가는 것이 왠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서였지요. 학교야 말로 존귀한 인간의 생명이 다발이 모여 있는 곳인데도 그런 생각을 한 것을 보면 저 역시 교육적 불가능에 대한 사유를 깊이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어두운 사유 끝에도 학교에 들어서기만 하면 금세 표정이 밝아지곤 했습니다. 제 부족한 인식으로 체득한 경험적 지식을 절망을 심화시켜 가는 쪽으로 발전시키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보다는 아이들을 존귀한 하나의 생명으로 대하려는 노력을 했었지요. 아, 그러고 보니 제가 ‘절망의 심화’라는 말을 사용했네요. 제가 오해했다면 용서하십시오. 전 선생님 글을 읽고 바로 그 단어가 맴돌았던 것 같습니다. 지금 선생님은 새로운 그림을 그리기 위해 은연중에 절망을 심화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고 말입니다. 아니지요?
저도 아니라고 믿고 싶습니다. 다만, 몇 번이고 밑줄을 긋고 싶은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 때문이었을 거라고요.
'성찰이 밥 먹여주느냐고, 하나마나 한 소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 이 성찰은 학교의 존재 의미 자체를 묻지 않을 수 없는 현실에서 천금처럼 소중하다.(31쪽)'
'나도, 우리들 모두도 폐허 위에 있으면서 또한 출발점에 서 있다.(32쪽)'
편지를 보내온 두 아이는 지금 고민 중입니다. 그 중 한 아이는 스스로 해결책을 찾은 듯하지만 다시 길을 잃고 방황할 수도 있습니다. 또 다른 아이는 자신의 진로 문제로 더 많이 아파 보이고 힘겨워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두 아이 다 제가 보기에 건강한 아이들입니다. 제가 근무하는 학교에는 아직 이런 아이들이 많습니다. 한 아이는 인문계에서 전학을 왔지만 또 한 아이는 성적이 못 미쳐서 전문계로 온 아이입니다. 두 아이 모두 성실함이 저를 능가합니다. 그들에게 저는 절망의 언사를 쓰고 싶지도, 그래서도 안 될 것 같습니다. 또한 그들을 생각하는 제 마음에 절망감이 스며들도록 내버려두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럴 수 있는 시간을 쪼개어 희망의 언어로 소통하는 법을 배우고 아이들 스스로 희망을 연습할 수 있도록 곁에서 도와주고 싶습니다.
저는 두 아이의 문제를 둘러싼 사회의 거대한 벽에 대해서 관심이 없지 않습니다. 그랬다면 전교조에 가입하지도, 이곳 ‘벗’의 일원이 되지도 않았겠지요. 선생님께서 우리의 ‘성찰’을 전제로 대안으로 내놓으신 ‘인문학’과 ‘농업’은, 역시 무릎을 칠만큼 탁월하고 인문학적인 사유가 돋보이는 근본적인 대안임에 분명하지만, 그것이 우리 인간이 마땅히 품고 살아야할 ‘이상’에 근거한 장기적인 대안인 것도 사실입니다. 선생님이나 저나 그 이상을 현실화하는 대열에 함께 동참하고자 ‘교육공동체 벗’의 일원이 된 것일 테고요.
필요할 것 같아서 드리는 말씀인데, 저는 동료 교사들로부터 ‘이상주의자’로 이해되고 있기도 합니다. 저는 그 호칭이 싫지는 않지만 저를 오해하고 있지 않나 싶어서 답답함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조금만 힘써 노력하면 현실에서 곧 이루어낼 수도 있는, 그리고 꼭 그래야만 하는 일(가령 강제보충자율학습 같은)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닿을 수 없는 먼 이상쯤으로 여기는 것이 답답한 것이지요. 혹시 제 편지를 읽고 그런 답답함을 느끼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이제 편지를 정리할까 합니다. 오늘 다 하지 못한 말들은 또 다음을 기약하게요.
솔직히 편지를 쓰는데 한 달은 걸릴 줄 알았습니다. 아직도 미진한 것이 남아 있긴 하지만 오늘 저는 제 언어를 찾은 느낌이 듭니다. 고맙습니다. 이 글이 선생님에게 어떻게 읽혀질지 모르지만 제가 어렵사리 찾아낸 언어로 진실을 담아 쓴 글이니 제 마음이 소박하게나마 전달되리라고 믿습니다. 아무리 편지글이라고 해도 좀 더 객관적인 글을 쓰기 위해서 준비한 자료들을 지워도 될 것 같습니다. 다만, <오늘의 교육> 창간호에 실린 글 중에서 한 대목을 빌어 제 마음을 대신할까 합니다. 늘 건승하시길 빕니다.
수업시간에 널부러져 있는 아이들을 세울 수 있을까? 학교 밖에서 자신의 몸을 상품화하는 십대 여성들을 건강한 일의 세계로 초대할 수 있을까? 물론 가능하다. 희망을 주는 것. 노력하면 더 나은 삶을 꾸리는 것이 가능하다는 믿음을 주면 된다. 그것이 가능할까? 물론 어렵다. 개인의 노력으로 어찌해 볼 수 없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힘을 합치면 그 가능성은 높아진다. 문제는 아이들로 하여금 그 작은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 가능성을 실천하고, 여럿이 연대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오늘의 교육> 발간사, '희망의 페다고지를 위하여'(박복선 편집장)중에서
-순천에서 낭만샘 안준철 드림.
|
첫댓글 샘 말씀 잘 들었습니다. 십분 공감합니다. 절망도 현실이지만 희망도 현실이니까요.^^
긴 글 감사합니다. 제가 선생님같은 분으로부터 이런 편지를 받을 만한 자격이 없다는 것을 우선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또한 제가 오늘의교육 창간호에 썼던 글은 읽는 이에 따라서 턱없이 부족한 글이라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딴에는 몇년동안의 제 고민과 고뇌의 결론이기도 했습니다. 조금 더 진지하게,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을 드리고 싶지만, 이런저런 바쁜 일정들로 시간이 녹록치가 않습니다. 선생님 글에 대한 답신은 조금 뒤의 과제로 미루고 싶습니다. 용서를 부탁합니다. 다만, 저는 오늘의교육 창간준비호에 썼던 것처럼 한 학교, 한 교실, 개별 교사와 개별 학생에서 이루어지는 만남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짙은 어두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좀더 솔직해지고 싶었습니다. 확실히 제가 가진 희망의 내용이란 그래도 제가 만난 아이들이 그래도 조금이라도 '다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글을 쓰고 책을 읽기를 바란 것입니다. 물론 그런 만남도 더러 겪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저는 제가 구체적으로 만나는 아이들에게서도 실은 판판이 실패하고 있었고, 많은 경우 제가 걸었던 개별 아이들과의 만남에서 얻었던 희망이란 무력한 자위였음을 깨닫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제 언어가 부족했고, 또한 이것을 풀어내는 제 실력이 부족해서 말만 '선정적'이고 알맹이 없는 글이 되어버렸다는 자책을 하고 있
습니다. 저는 제 실력의 한계를, 그리고 글을 준비하면서 투여할 수 있는 연구작업의 물리적 시간의 한계가 뚜렷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글을 쓰면서 답답했습니다. 왜 이런 글을 내가 써야 하는 거야, 하는.. 대한민국에 얼마나 많은 교육학자, 논객들이 있는데.. 그러나 말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학교는 영토를 다 빼앗긴 제왕 같은 존재가 되어 있다는 현실의 언어, 교육이라는 언어를 들이대기조차 무참한 현실을 진단하는 언어가 필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의 길고 묵직한 글에 앙상한 답변을 용서해 주십시오. 틈나는대로 제대로 된 편지를 올리겠습니다. 이계삼 드림
고맙습니다. 글 올려놓고 내가 무슨 짓을 했나 싶기도 했어요. 선생님의 마음이 곧 제 마음이기도 해서요. 편지 초안을 써놓고 수정을 할까 하다가 그냥 올렸어요. 그 거친 글에 저의 진의가 더 실려 있을 것 같아서요. 너무 서둘러 편지로 답하지 마시고(또 시간을 내야하잖아요) 언제 만나면 길게 얘기 한 번 해요. 언젠가 선생님 글쓰기의 고통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어요. 전 선생님의 글을 얘기한 것은 아니었어요. 마음을 얘기한 것이지요. 우리를 둘러싼 어두움에 대해서 작정하고 쓰신 것도 알아요. 그래서 저도 어두워진 것이고요. 소중한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선생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었던 거고요.
봄이 가기 전에 한 번 만나게요. 만사 재쳐두고 순천에 한 번 오세요. 아니면 제가 밀양으로 갈게요. 윤지형 샘도 오시라고 해서 한 번 날밤을 세워보게요. 교육공동체 벗에 와서 몇개월 저 나름대로 많이 아프고 힘들었어요. 편지에도 밝혔지만 제 언어를 찾는 시간이 필요했지요. 선생님 글을 읽다보면 솔직히 많이 속상하고 그랬어요. 내가 지금까지 뭐하고 살았나 싶었던 거지요.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지만 대화를 함께 나눌 수는 있을 것 같아요. 서로 얘기하다보면 구체적인 진실이 만나는 지점이 있겠지요. 봄이 오고 있네요. 서로 힘내게요.~
저는 글에서 이계삼선생님이 말씀한 짙은 어두움을 느끼며 읽었습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구요. 다만, 낭만샘처럼 터져 나오는 감정들도 주체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건 한 해 두 해 이야기도 하니고 비단 이계삼선생님의 글에서만 느꼈던 것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오히려 이 과정들이 참 좋습니다. 글을 읽고 느낌을 이야기 하고 오히려 이런 과정들이 우리 매체에서 살아숨쉬면 좋겠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제가 잘 하지 못하는 걸 이계삼선생님과 안준철선생님은 참 잘도 하십니다.^^ 부럽고 배우고 싶습니다. 하~ 오늘도 서울생활 3주째 첫날이 지나가는 군요. 제겐 벗들이 희망입니다.^^
고맙습니다. 편지글 올려놓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사실은 이계삼 선생님의 어두운 마음을 좀 환하게 해드리고 싶었던 것인데...저도 벗들이 희망입니다. 얼마나 좋은 지 모른답니다. 따듯하고 환한 봄입니다. 이런 봄날 마음이 어두우면 봄에게 미안하지요. 참, 합창 함께 할 수 있는지요? 혹시 바쁘신 일이 있으신지... 창립식 때 들었던 선생님의 정감 있고 안정적인 목소리와 한 번 더 섞이고 싶은데요...
명백한 것은 우리 시대 '교육 현실-학교'의 '짙은 어둠'과 '비극성'을 직시할 줄 아는 혜안과 용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이고또한 명백한 것은 어둠과 비극에도 불구하고 작으나마 교육의 가능성을 열어가는 벗들이 도처에 존재하며 그래야 한다는 사실이며, 또한 명백한 것은 절망을 절망할 줄 아는 사람, '불가능'을 소리높혀 증언할 줄 아는 사람과 안간힘으로 '가능성'
을 열어가는 사람이 결코 둘이 아니라는 사실--- 아닐까요? 더더욱 명백한 것은 이러한 명백한 사실을 이계삼 선생님과 안준철 선생님은 뼈 속 깊이 알고 있다는 사실--일 터이지요.
이렇게 폼 잡고(!) 말하는 제가 별 자격이 없는 것이---올해 인문계 고교에 투입(!)되어, 수업이다 보충 수업이다 야자 감독이다 네이스 입력이다 뭐다 정신이 없는 채, 도무지 '불가능'의 늪에 빠져 있기 때문임을 다들 아시겠지요? 겨우 한 가닥 잡고 있는 건---아이들을 향해 "씨바, 니네들과 나는 하나다--인간다운 삶, 진리를 향한 삶의 도정에서, 이 어둠과 불가능과 맞대면하여 스크럼을 짤 수 있는 벗들이 되는 거다" 다짐해 보는 마음 한 줄기. 번번이 놓치고 마는---다시 잡지 않을 수 없는---.
한마디만 더-- 이러한 대화의 존재야말로 '벗'과 '오늘의 교육'의 존재이유겠지요?!!
결코 둘이 아니라는 사실- 맞습니다. 고맙습니다.
창간호 이계삼선생님 글을 잘었습니다. 덕분에, <영혼없는사회의 교육>도 열독하게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글을 읽었습니다. 제가 교사가 아닌 것을 처음으로 후회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냥 학부모로서 이렇게 우리 교육에 대해, 아이들에 대해 진지하게 사랑하고 항상 고민하는 선생님들이 있다는 것 만으로 기쁩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