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리와 의무 사이
“의무를 마치 습관처럼 의지를 짓누르는 것으로 상상해 보라. 각각의 의무는 다른 의무들의 누적된 무게를 끌고 가며, 그 전체의 무게를 이용하여 압력을 가한다. (,,,) 하지만 이러한 의무들의 밑바닥에는 단순하고 기본적인 도덕적 의식(conscience morale simple, élémentaire), 즉 양심(良沁)에 대한 의무의 본질이 자리잡고 있다. 아무리 복잡한 의무라고 해도 기본적으로 이러한 도덕적 양심으로 환원되고 있다.” 베르그송,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 중에서
우리는 누구나 ‘나의 권리’라는 말은 듣기 좋아 한다. 하지만 ‘나의 의무’라는 말을 들을 때, 기분좋게 들리지 않는다. 의무는 다른 말로 당연히 져야하는 ‘짐’을 말하기 때문이다. 특히나 ‘권리’라는 말에 매우 친숙하게 된 현대인들에게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인생의 짐처럼 여겨지는 의무야 말로 사회와 공동체를 보호하고 질서를 유지하는 안전장치와도 같다. 베르그송은 이러한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생각을 곧 양심에 대한 의무의 본질이라고 규정한다. 아무리 복잡한 의무라고 해도 기본적으로 이러한 도덕적 양심으로 환원되고 있다. 이는 다시 말해 모든 의무는 곧 인간의 도덕성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진정으로 도덕적인 인간이라면, 모든 종류의 의무들을 잘 수행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이러한 베르그송의 관점에 따르면 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도덕적’이라는 말을 싫어하는 지도 알 수 있다. 도덕은 본질적으로 사회를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의무’를 다하라고 요청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도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주어지는 다양한 의무들, 가정적, 직업적, 사회적, 국가적 등의 모든 의무를 잘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도덕적으로 산다는 것은 마치 우리에게 굴레를 씌우는 것같고, 큰 짐을 지우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상가들 중에서도 ‘도덕’이라는 말을 지나치게 기피하는 이들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도덕적으로 산다는 것이 인간다운 것이며, 타당하고 좋은 것임을 인정하고 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비-도덕적인 경우에도 ‘도덕적임을 가장’하기 때문이다. 베르그송은 “우리는 가치 판단에 관련된 도덕적 원칙(préceptes moraux)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에도, 지켜지는 것처럼 보이도록 조치가 취해지는 것을 보게 된다”라고 말하면서 이를 도덕적이라는 것이 모두가 좋은 것임을 인정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보고 있다. 이는 사실이다. 우리가 길을 걸을 때 질병을 눈으로 직접 보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가면 뒤에 숨겨진 부도덕함을 보지 못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러한 숨겨진 부도덕함을 결코 스스로 내보이지 않으며, 오히려 도덕적인 사람처럼 가장한다. 그것은 무엇보다 도덕적인 사람이 이 사회에 도움이되고, 도덕적인 사람이 모두를 위해 필요한 사람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권리라는 말도 도덕적인 삶이 전제될 때 의미가 있는 말이다. 다른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의무를 다 할 때, 나와 내 이웃의 권리가 유지되며, 나와 내 이웃이 각자의 의무를 다할 때, 사회의 다른 사람들의 권리가 보장되는 것이다. 모두가 권리만을 요구하고, 누구도 의무를 다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누구도 자신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할 것이다. 반면 모두가 자기 의무를 다하게 되면 자연히 모두가 자신의 권리를 보장받게 될 것이다. 오늘날의 한국사회는 너무 권리만을 추구하고, 의무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하지 않기 때문에 이토록 사회가 도덕적으로 추락하는 것은 아닌지 한 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