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울을 만나다 / 수필울 제 4집 수록
권 덕 봉
그믐달은 보는 이가 적어 그만큼 외로운 달이다. 객창한등(客窓寒燈)에 정든 임 그리워 잠 못 들어 하는 분이나, 못 견디게 쓰린 가슴을 움켜잡은 무슨 한 있는 사람 아니면, 그 달을 보아 주는 이가 별로 없는 것이다. 그는 고요한 꿈나라에서 평화롭게 잠든 세상을 저주하며 홀로 머리를 풀어뜨리고 우는 청상과 같은 달이다. <나도향/그믐달> 중에서
나도향은 스물네 살에 위와 같이 유려한 비유로 수필 <그믐달>을 써서 남겼다. 나도 그믐달 같은 글을 한 편 써보고 싶다.
고교 시절 국어 수업 시간에 ‘수필은 청자연적이다. 수필은 난이요, 학이요, 청초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이다.’로 시작하는 피천득의 <수필>을 의미도 모르고 읽었었다. 그때로부터 대략 사십여 년이 지나서 지도교수를 만났고 그분의 추천으로 <수필과 비평> 지에 신인으로 등단하며 수필과 인연을 맺었다.
“인연(因緣)의 의미를 풀어서 살펴보면 인(因)은 타고나는 것, 즉 디엔에이요, 연(緣)은 생활환경 같은 것이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콩은 같은 콩알을 맺지만, 어느 때 어느 곳에 떨어지느냐에 따라 싹이 나오기도 전에 새에게 먹히기도 하고, 고라니에게 싹이 싹둑 잘려 나가기도 하며, 비와 온도에 따라 그 열매 맺음이 다르다는 의미였다. 적당한 비와 온도가 유지되는 온실과 같은 수필울에 연이 닿았으니 한 십 년 부지런히 그리고 꾸준히 노력하면 비슷한 글을 한 편 쓸 수 있지 않을까?
상업고등학교 졸업 후 곧바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대학에 진학한 젊은이들이 철학과 문학을 접하고 있을 때 폴라로이드 사진기를 들고 신용카드 회원가입을 권유하러 다녔다. 기업체를 찾아다니며 재형저축을 팔기도 했다. 학력에 대한 열등감을 극복한다며 방송통신대학과 야간대학원을 졸업하여 학위를 갖추었지만, 직업에 맞추어 전공을 택하다 보니 문학은 접하지 못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일생을 다룬 전집 대망(大望)을 읽는데 이십 대를 다 보냈다. 삼십 대에는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 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 월간 <사이언스>와 월간 <과학동아> 같은 종류의 과학 관련 서적과 잡지만 주로 읽었다. 사십 대에는 이름도 생각나지 않는 자기개발서 따위를 읽는 것이 중요한 줄 알았다. 오십 초반에 직장에서 명퇴하였는데 그때부터 자영업을 십여 년 운영하고 밥벌이에서 물러난, 노인이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해가 될 때까지는 무엇을 읽었는지조차 모르겠다.
청장년 시절에 해보지 못했던 한문 공부가 하고 싶어 논어를 듣기 시작했다. 원문을 읽고 해석하는 방법을 배우는 강좌였는데 원문이 뜻하는 바를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말로 바르게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머릿속에 맴도는 생각을 제대로 나타내지 못하는 것은 글을 써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글쓰기 기초 강좌에 등록했다.
기초반 선생님은 “자신의 글이 세상에서 제일 잘 쓴 글이다.”라며 자신감을 가지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의견이 들어가지 않는 묘사를 쓰게 했다. 다음으로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것, 나를 기쁘게 하는 사람 등 단순한 생각들을 글로 써보라고 권했다. 그 이후에는 비유를 활용한 글의 예들을 보여주며, 비유를 잘 활용하면 아름다운 글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조금 익숙해지자 ‘여자의 흡연을 어떻게 보는가.’ ‘종교를 앞세운 싸움이 옳은가.’ 따위의 가치판단에 관한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다. 생과 사에 관한 생각도 써보고 싶은 욕심이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수필 수업을 찾아 듣기 시작했다.
수필 수업 첫 시간에 지도교수는 “문학은 현상을 적는 것이 아니다. 본질을 적어야 한다.”라고 했다. 예로서 정주영 회장이 북한으로 소를 끌고 갈 때 보내지 말라고 주장해야 소의 실향을 빗대어 실향의 아픔을 강조하게 되는 것이라 했다. 그리고는 예시 단락은 적게, 의미화 형상화를 통해 주제가 나타나는 일반화 단락을 많이 쓰라고 했다. 일반화가 없는 글은 생활 작문이고 생활 작문은 수필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무엇인가 잡힐 듯했다.
문학적 자질을 타고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훈련마저 받지 못했다. 체계적인 훈련을 받기 위해 그분의 지도하에 글 쓰는 이들의 모임인 수필울에 끈을 댔다. 단련을 삼 년 받아 이제 겨우 실눈을 뜨고 보니 글쓰기는 점점 더 어려워진다. 본질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어렵다. 처음 접하는 것처럼 보고, 그것도 다른 사람은 보지 못한 면을 찾아내어야 한다는데, 그런 일이 세상에 있을까 싶다.
합평 시간에 내놓는 글이 생활 작문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는 평이다. 게다가 주눅이 들었는지 요즘은 생활 작문조차 쓰지 못하고 있다. 좋은 글을 위해 생각하는 시간을 늘리고 젊어서 하지 못한 인문학 공부를 시작했다.
천재들은 한두 개의 작품을 만들어도 그것이 불멸의 작품으로 남지만, 많은 예술인이 수없이 많은 작품을 만들었기 때문에 좋은 작품을 남길 수 있었다는 사실도 잊지 말자. 생각만 하고 있어서는 아니 된다. 많이 써야 한다. 많이 쓰다 보면 그믐달 비슷한 글을 한편 지을 수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