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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기씨를 떠올리며
이 홍사
병실 창문너머로 화물열차가 지나가고 있다.
온통 지축을 흔들어놓고 개나리가 만개한 봄의 아지랑이 속으로 사라지는데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창문의 유리가 조금 흔들린다. 이제 무던할 때도 되었는데 좀처럼 그렇게 되지를 않고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신경이 쓰인다.
그제께 오토바이 사고가 났다.
그 때가 오전 열한 시쯤이었다. 하릴없으면 매일 출근하는 군대동기가 운영하는 타이어가게에 그저께도 출근을 해서 커피를 마시고 노닥거리다가 이발을 하기위해 들어가던 중이었다. 사월에 들어서니 날씨가 풀려 오토바이타기가 그만이었다. 강변도로에 벚꽃이 만개했다는 소리가 들렸다. 오토바이로 그 길을 영화의 한 장면처럼 달리려다가 오후시간으로 미루고 들어가던 중이었다. 꽃길을 달리러 강변도로로 갔었다면 사고가 나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운명으로 사고가 정해졌다면 할 수 없는 일이고.
오토바이를 타면 나는 절대로 과속을 하지 않는다. 결코 폭주족이 아니란 말이다. 하긴 이 나이에 폭주족이 있으랴만, 항상 여유를 가지고 방어운전을 하는데 그날은 실로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늘 다니는 길이라 요철로 튀어나온 맨홀이 어디 어디에 있는지를 알고 또 수도나 도시가스 공사를 하며 도로를 잘라 부실공사를 하는 바람에 움푹 패여 덜컹거리는 곳이 어디에, 몇 군데 있는지를 빤히 아는 길이었다.
사고가 난 곳은 집에서 오 분도 걸리지 않는 봉곡사거리 부근이었다.
신호는 연동식이라 지산삼거리에서 직진신호를 받고 경제속도로 정속주행을 하면 계속 직진신호가 터지게 되어 있다. 아무런 의심 없이 금호타이어 앞에서 직진신호를 받았는데 갑자기 눈앞에 자동차바퀴가 보이고 검정색 승용차의 보닛이, 쿵! 퍽! 무슨 소리인지 잘 듣지 못했다. 차량 보닛이 찌그러지거나 범퍼가 부서지는 소리였지 싶다.
어? 어! 할 사이도 없이도 그대로 박은 것이었다.
넘어진 오토바이는 연료탱크의 뚜껑이 날아갔는지 휘발유가 아스팔트에 콸콸 토해내고 있었다. 이거 불이 붙으면 죽는다는 생각이 들어 어떻게 기어서 나왔는지 나는 구미정형외과 앞 인도에 퍼질러 앉아 있었다. 오토바이는 갓길에 주차된 차 꽁무니로 기어들어갔고 아가씨인지 새댁인지 모르지만 젊은 여자가 본능적으로 기어 나온 나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아이고, 어떻게 해요? 괜찮으세요?
그 물음을 들으면서 자신의 꼴이 굉장히 추해져서 창피하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들이 흔히 쓰는 속된 말로 쪽 팔린다는 말이 적절하지 싶다. 여기서 말하는 쪽이란 얼굴을 뜻하는 속어인데 이 말을 흔히 쓰는 아이들이 알고 쓰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이 처참한 광경을 혹시 또 김대기씨가 보지 않았을까? 주위를 둘러보았다.
김대기씨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다행이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언제 빼물었는지 나는 담배를 물고 있었다. 왜 그 자리에서 만난 지 이십 년도 넘는 김대기씨를 떠올렸는지 모르겠다.
-어떻게 된 거예요?
새댁인지 처녀를 올려다보고 내가 그렇게 물었든가?
-저도 잘 모르겠어요.
-모르긴 뭘 몰라? 신호를 무시하고 유턴을 하다가 사고가 난 거지. 여기서 신호를 무시하고 차를 그렇게 잡아 돌리는 사람이 어디 있어?
언제부터 있었는지 뒤에 서있던 육십 대의 아저씨가 새댁의 말을 물고 늘어졌다. 자신은 바로 내 오토바이 뒤에 따라오던 차량을 운전했었다고 했다. 갑자기 사고가 나는 바람에 자신의 차도 하마터면 추돌을 할 뻔 했고 이쪽으로 피하려니 튕겨나간 사람이 오토바이와 누워 있어서 급브레이크를 잡고 가까스로 차를 세웠다고 했다. 그러면서 새댁을 호되게 나무랐다. 여자가 그렇게 정신없이 운전을 하다가 여러 사람 신세를 조지겠다는 말까지 거침없이 하며 핏대를 세웠다.
-119를 부를까요?
새댁이 손톱을 깨물며 물었다.
-잘 모르겠어요.
무슨 뜻이지도 모르고 무심코 대답하고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보닛과 범퍼가 찌그러진 승용차가 길을 막고 있었고, 거꾸로 처박힌 오토바이는 길가에 주차되어 있는 다른 차량 밑에 들어갔고, 그것을 피해서 차량들이 지나가는 것이 상당히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어디든 사고가 나면 가장 먼저 나타나는 게 견인차다. 어떻게 연락을 받았는지 가공할만한 시스템이다. 사이렌을 울리며 견인차가 도착하는 것까지도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그때까지도 김대기씨가 혹시 나타나지 않을까 초조해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새댁이 전화를 했는지 어쨌는지 모르지만 119 구급차가 금세 도착을 했다. 뒤이어 경찰차도 사이렌을 울리며 도착을 했다. 그러니 지나가는 차들도 슬그머니 고개를 빼고 상황을 보고 지나가니 길은 더 막히는 듯했다. 세 차선 중에 두 차선을 막고 있으니 자연스레 일대는 혼잡을 이루었다. 막연한 생각에 빨리 길을 틔워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19 구급요원이 다가와서 괜찮으냐고 물었다. 그 대답 또한 잘 모르겠다고 했다.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가는 게 좋지 않겠냐고 물었다. 흐릿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소방관 복장을 한 젊은 처녀였다. 내가 구급차를 왜 타? 뜨악한 생각에 이 처녀가 왜 이러나 싶었다. 괜찮다고 하면서 일어서니 경찰관이 바로 음주측정기를 들이 밀었다.
-이거? 어떻게 하는 거예요?
그냥 후, 불라고 했다. 내가 먼저 불고나자 운전했던 사람이냐며 여자보고도 불라고 했다. 둘 다 음주운전은 아니었다. 경찰은 조금 실망하는 눈치를 보였던가?
영양가 없고 재미가 덜한 얘기는 생략하여 대충하자.
그렇게 사고가 났고 오토바이센터를 하는 후배가 오토바이 전용리프트가 달린 차를 끌고 왔었다. 내가 오토바이센터를 하는 후배에게 연락을 했던가? 기억이 없다. 후배는 내 몸을 더듬어보고 다행이라며 오토바이를 싣고 갔다. 도로 가운데 비상등을 켜고 있던 찌그러진 차는 출동해서 대기하던 견인차가 어디론가 끌고 갔다. 구급차도 돌아갔고 경찰차도 돌아갔다. 혼잡하던 도로는 막힘없이 풀렸고 보험사 직원들이 알아서 과실을 조정한다고 했다. 나는 새댁과 연락처를 주고받고 바로 뒤에 있는 정형외과로 들어갔다. 출동한 보험회사 보상과 직원이 예약을 해두었다.
아들과 딸, 식구들이 다 따라 들어왔다.
한 달 후에 셋째 딸 결혼식이 있어서 그 날 입을 한복을 한복대여 가게에서 입어본다고 시집간 딸들과 제수씨가 마침 집에 와 있다가 내가 아들에게 태우러오라는 전갈을 하자 사고라는 말을 듣고 놀라서 식구가 모두 출동을 한 것이다.
오른쪽 무릎이 좀 불편했다. 절뚝거리며 들어가서 사진을 찍었다. 작은 정형외과에서는 사고가 어떻게 났는지 다들 알고 있었다. 구급차와 경찰차가 출동을 하자 내다본 모양이었다. 다행히 골절은 없었고 타박상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보상과 직원은 연락을 하겠다며 갔다.
식구들은 나와서 부근의 곰탕집에서 곰탕으로 점심을 먹었다.
곰탕은 국물이 진하지 않아 별로였다. 점심을 때우고 아내에게 아들 녀석의 차를 타고 들어가라고 하고 아내가 끌고나온 차를 빼앗아 타고 바로 이발소로 갔다. 아니다. 이발소로 가면서 약국에 들러 파스를 한 장 사서 무릎에 붙였다. 까딱 잘못했으면 목발을 짚고 결혼식에 혼주로 갈 뻔 했다는 생각에 아찔하기도 했다. 조금 쩔뚝거렸지만 대수롭잖게 생각하고 단골이발소에서 이발을 했다. 만약 아프다고 하면 아내가 오토바이를 못 타게 할 것 같아 아프다는 말은 가급적이면 아내가 듣는 데서는 하지 말아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발을 마치고 집에 들르지 않고 바로 후배의 오토바이센터로 갔다.
그곳 또한 심심하면 들러서 커피를 마시며 다른 외제오토바이나 잘 꾸며놓은 고가의 오토바이를 구경하며 노닥거리는 곳이다. 가서 후배의 설명을 들으며 찬찬히 훑어보니 아무래도 오토바이 견적이 차량견적보다 웃돌 것 같았다. 오토바이는 국산이 아니라 세계적인 브랜드, 비싸기로 소문난 할리데이비선의 대형 오토바이라 대리점에 없는 부품은 미국에서 와야 하고 부품가격이 만만치 않다.
-야! 부품가격이 만만찮을 거 같은데?
-형님! 상대방 차가 부서진 것을 보니까 그렇게 박았으면 국산 작은 오토바이 같았으면 축 사망이었어요. 할리니까 그만한 것이지. 자고로 오토바이는 큰 것 타야 된다니까요. 사고가 나보면 알게 돼요.
*
잠깐!
포클레인 작업을 나간 기사에게서 전화가 온다.
발신인을 보니 강 건너 마을에 작업을 나간 포클레인 기사다.
전화가 와서는 안 될 시간인데? 이 시간에 전화가 오다니 불길하다. 조수부터 시작을 해서 기사를 거쳐 장비 차주를 오래 하다보면 그런 예감이 오는 법이다. 무슨 일이야? 또 뭔 고장인가?
.............
작업하는데 민원이 들어왔단다.
오늘 포클레인 한 대는 강 건너 마을 농지에 흙 고르기 작업을 나갔는데 이웃집에서 면사무소에 민원을 걸었단다. 내용은 포클레인 소음이 시끄럽다고 민원을 제기했다는 것인데 이건 아무래도 농지 주인이 타지 사람이거나 아니면 동네에서 인심을 왕창 잃은 작자이거나 아니면 민원을 제기한 놈이 좀 모자라거나 주변머리 없는 작자가 분명할 것이다.
세상 참 좋아졌다. 언제부터 세상이 이렇게 좋아졌는지 농지에 객토를 하고 흙 고르기 작업을 하는데 포클레인 엔진소음이 시끄럽다고 민원이 들어오다니? 참으로 지독히 좋은 복지법이 지배를 하는 무시무시한 복지국가다.
무시하고 수틀리면 민원을 제기한 놈을 농지에 묻어버리라고 했다. 그 말을 하는데 병실 밖으로 기차가 지나가는 바람에 소음 때문인지 못 알아들은 기사가 되물었다.
-뭐라구요?
-지랄하는 놈을 포클레인 바가지로 툭 쳐서 논에 묻어버리라고.
그 말을 수화기에 토해놓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
전화를 끊고 나니 정서가 좀 훼손되었다.
병실을 같이 쓰는 환자들이 통화내용을 들었는지 넘어다본다. 열이 받아서 말이 좀 거칠었나? 좀 민망해졌다.
내가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그렇지. 어제 후배가 하는 오토바이센터에서 견적에 대해 얘기하며 커피를 마시고 노닥거리다가 전화를 받고 김천 혁신도시의 KTX역사로 갔다. 술친구인 D선배가 보름간의 중국 여행을 마치고 기차로 내려오는 중이라고 했다. 시내버스를 이용해서 구미로 내려오겠다는데 내가 무사 귀국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한잔하자며 역사로 마중을 나가겠다고 우겨서 기차 도착시간을 알아냈다.
D선배는 중국여행이 잦다. 지역별 음식에 대해서 남다른 관심을 보이며 연구를 하는 인물이라 중국여행이 새로울 것도 없다. 중국 음식에 대해서 책을 낼 일도 아니지만 이번에는 충칭을 비롯해 그 부근의 시골을 더듬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시간을 맞추어 김천으로 올라가는 길에 보험회사 보상과라며 전화가 왔다. 운전 중에 전화를 받았는데 목소리가 깔끔한 아가씨였다. 보상과 직원이라는 말에 괜찮다고 했다. 그래도 자고나면 모른다고 하면서 혹시 나중에라도 병원에 가게 되면 메시지로 전화번호를 남길 터이니까 연락을 하라고 했다. 걱정은 고맙지만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런 일로 병원에 가는 걸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중기업체를 경영하다보면 그런 일에 시달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일명 나일론환자가 되어 병원을 들락거리며 무리한 보상을 요구하는 인물들을 경멸하다 못해 혐오하는 입장이라 병원이라는 말도 꺼내지 말라고 했다.
D선배를 만나니 선배는 좀 수척해 있었다.
면도를 하지 않아서 그렇게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노구에 원거리 여행의 노고가 얼굴에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이제 갓 환갑이 지난 나이지만 D선배는 항상 자신이 노구라고 한다. 충칭에서 보낸 문자메시지에서도 노구에 원거리라 힘이 부친다고 했었다.
-맛있는 거 많이 자시지.
인사를 하고나니 왜 다리를 저느냐고 물었다. 내가 좀 절었든가? 경미한 교통사고가 있었다고 대수롭잖게 말하고 선배를 태우고 내려왔다. 무릎에 통증은 조금 있었지만 소주를 마시기에는 지장이 없었다. 뭐가 자시고 싶으냐고 물으니 얼큰한 곱창이라고 했다.
다리가 네 개 달린 것은 책상 빼고 다 먹는다는 중국에 곱창요리는 없나?
집에 차를 세워두고 앞 골목 선산곱창으로 가서 곱창전골로 이른 저녁을 먹으며 소주 두 병을 비웠다. D선배와 둘이서 만나면 정해진 양이다.
각 한 병!
묵언의 약속이다. 선배도 그렇지만 나도 더 이상은 마시지 못한다. 저녁마다 한 병이다. 나에게는 정해진 양이다. 어쩌다 집에서 홀로 저녁을 먹어도 반주로 한 병이다.
그걸 마시면서 충칭의 음식에 대한 얘기를 느긋하게 듣고 선배를 택시를 태워 보냈다. 보름간의 여행이라고 해서 짐이 많은 것은 아니다. 보름이든 한 달이든 배낭하나가 고작이다. 그렇게 홀가분하게 돌아다니는 양반이다. 기분 좋게 마시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무릎의 통증은 있었지만 자고나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며 딸 결혼식이 딱 한 달 남았는데 이만하길 다행이라고 여겼다. 어디가 부러지거나 얼굴에 상처라도 났으면 그런 낭패가 없는데 확실히 조상님들께서 돌보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김대기씨에게 이 처참한 사고가 들키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여겼다.
김대기씨는 내 고등학교 동기 상식의 불알친구다.
내가 무슨 일을 당하면 항상 그가 지켜보았다. 희한하게도 그랬다. 김대기씨는 내 친구 상식이의 마을 친구인데 나에게 무슨 일이 나면 그가 있었다. 김대기씨의 머릿속에 나의 존재는 항상 술주정꾼이나 사고뭉치로 각인되어 있을 것이다.
젊은 시절부터 그랬다.
내가 만취한 날이면 어김없이 그가 있었고 내가 누구와 싸운 날도 그가 지나가다가 우연히 보고 있었다. 참 희한했다. 무슨 일만 있으면 그가 어디선가 불쑥 나타났다. 나는 그에게 좋은 꼴을 보인 적이 없었다. 항상 취한 모습이었고 아니면 싸우는 모습이나 보여주기가 곤란한 모습이었다.
김대기씨를 생각하다가 잠이 들었고 김대기씨 꿈을 꾸었는지 어쨌는지 모르겠다.
새벽에 일어나니 몸에 이상이 왔다.
마음먹은 대로 몸이 움직이질 않는 것이었다.
전날은 사고를 당하고도 그렇게 잘 돌아다녔는데 새벽에 일어나 화장실을 가는데 걸음을 걸을 수가 없었다. 무릎의 통증은 예상을 했지만 그리 심하지 않고 견딜 만 했는데 양쪽가랑이 골반이 뻑뻑한 게 통증이 와서 걸음을 걸을 수가 없었다. 억지로 걸으니 골반부위에서 뻐걱뻐걱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화장실을 가는데 허리를 굽히고 양쪽 팔로 무릎을 잡고 구부리고 간신히 갔었다.
나에게는 새벽에 하는 일이 있다.
사무실로 내려가 배차상황을 훑어보고 장비들이 제가 갈 현장에 제대로 찾아 들어갔는지 확인을 하는 일이다. 하여 하루 중에 통화량이 가장 많은 시간이 새벽시간이다. 잘 찾아들어간 날은 조간신문만 훑어보다가 올라와 아침을 먹는데 일이 꼬이는 날은 전화를 주고받고 길을 일러주고 연결을 해주느라 정신이 없다.
헌데 삼층인 집에서 이층인 사무실에 내려갈 수가 없었다.
그래도 내려가야 한다.
옷도 갈아입지 않고 휴대폰을 챙겨들고 간신히 계단 난간을 잡고 사무실에 내려갔다. 어기적거리며 사무실로 내려가면서도 혹시 이 꼴을 김대기씨가 보지 않을까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두리번거리면서도 내가 왜 이러나 생각했다.
김대기씨 노이로제인가?
그날따라 전화가 조용했다.
모든 장비가 현장을 잘 찾아 들어간 모양이었다. 조간을 보다가 엉덩이를 주물러 보았다. 손으로 주물러도 엉덩이 옆 골반부위에 통증이 나타났다. 깜짝깜짝 놀랄 정도의 통증이었다.
-이거? 뭐 뼈가 어긋났나? 희한하네.
조간을 접고 엉금엉금 기다시피 해서 삼층으로 올라갔다. 아내가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돌아보지도 않고 싱크대 앞에 서서 지나가는 소리로 괜찮으냐고 물었다.
-괜찮지 않아! 병원에 가야겠어.
-내 그럴 줄 알았다니까.
아침을 먹고 아내에게 운전을 시켜 병원으로 왔다. 어느 병원으로 가야하나? 생각하다가 담배를 피우기에 가장 수월한 병원을 택한 것이 이 병원이었다. 이 병원은 작지만 척추와 관절, 골절을 잘 보기로 지역에서 소문이 난 병원이다. 하여 환자들은 거의가 목발을 짚고 다니거나 휠체어를 타든가, 아니면 허리 보호대를 차고 있었다.
병원에서 접수를 하면서도 혹시 김대기씨가 이 꼴을 보지 않을까?
염려하며 주위를 살폈다. 살피면서도 생각했다. 내가 김대기씨로부터 왜 이렇게 자유롭지 못하지?
아! 김대기씨가 상당히 괴롭히네!
김대기씨와의 인연을 설명하자면 삼십 년 저쪽으로 세월을 되짚어야 한다.
당시에는 구미에 삼 공단이 조성되기 전이었으니 짧은 세월이 아니다. 삼 공단이 조성되기 전에 하수종말처리장이 강 건너에 먼저 들어섰다. 지금은 이주단지로 마을이 몽땅 이전을 했지만 그 당시에 상식이가 살고 있던 시미동은 피폐된 시골마을이 되어 개발제한구역으로 그 현장 부근에 남아 있었다. 나는 그 현장에서 포클레인 기사로 일하고 있었다. 당시를 되짚으면 다시 돌아가고 싶을 정도로 몸과 마음이 젊으면서 노동으로 잘 익은, 숙련된 기사였다.
그 현장의 부지정리부터 마무리까지 삼 년 가까이 일을 했는데 인부가 모자라 그 이웃동네의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그 현장에 일을 하러 나오곤 했다. 지금처럼 교통이 편리하지 못했고 워낙 오지라 타지의 인부들이 일을 하러 올 처지가 못 되어 현장에서는 숙련기술자가 아니면 그 부근에서 인부를 조달했다. 자연스레 돈맛을 알아버린 시미동 사람들이 농사일을 뒷전으로 미루고 일하러 많이 나왔는데 가로 늦게 군에서 전역을 하고 빈둥거리던 상식이도 일을 하러 왔고 거기에 끼어 김대기씨도 가끔 일하러 왔었다.
그 곳에서 일을 하면서 김대기씨가 상식의 이웃 불알친구라는 걸 알았다.
김대기씨는 말이 없으면서 성실했다. 그리고 손끝이 깔끔해서 일을 하면 잔소리거리를 만들지 않았다. 하여 하청을 맡은 업체에서 서로 데려다 쓰려고 했다. 전기부터 설비, 소방업체까지 하청업체가 열 개도 넘었다. 그 중에서 나도 막바지 공정에서는 하나를 도급받았다. 그 현장에서 오래 일을 했고 본 관로를 거의 다 매설해서 관로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다는 이유로 한 공정을 도급으로 받은 것이다. 직영처리가 된 빗물, 즉 도로의 우수를 받아내는 관로와 맨홀 매설을 하는 공정을 받았는데 도와줄 인부로 김대기씨에게 눈독을 들였다.
설비업체에서 일하는 김대기씨를 기다린다고 며칠 일을 미루었다가 시작했다.
어느 현장이나 그렇듯이 막바지 공사에서는 난장판이다. 순서가 없다. 먼저 터를 차지하고 파는 업체가 우선이게 마련이다. 우리가 파서 관로를 묻고 나면 전기업체나 소방업체에서 다시 파면서 우리가 이미 일을 마친 관로를 다치기가 일쑤였고 우리가 파야할 곳에 도면을 무시하고 전기나 소방관이 묻혀있으면 이설을 요구해야만 했다. 그럴 때마다 좋은 말로 되는 게 아니다. 싸워야하는 것이다. 이기는 작자가 먼저 공사를 하게 되어 있다. 김대기씨에게는 그 현장에서 싸우는 모습만 보였다.
김대기씨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하여 술 마시는 사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듯보였다. 헌데, 나는 거의 매일 일이 끝나면 술을 마셨다. 현장의 장비기사들과, 원청업체의 감독과 술을 마시곤 했는데 마실 때마다 희한하게도 김대기씨에게 걸렸다. 김대기씨의 입장에서 보면 매일 싸우고 허구한 날 술 마시는 인간으로 보였을 것이다. 석 달 정도를 같이 일했는데 싸우거나 술을 마시지 않은 날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게 김대기씨 눈에 좋지 않게 비쳤을 거는 당연한 이치.
그 현장을 마치고 이삼 년이 지났을까?
비가 와서 일을 하지 않는 날이었고 나는 리스로 할부금을 불입하고 있었지만 중기의 차주가 되어 있었다. 그날은 대구에 계모임이 있어 같이 자란 고향마을의 불알친구들을 만나러 갔다.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몇 번을 빠졌는데 그날은 비로 공치는 날이라 참석을 했던 것이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그 당시에 노래방이라는 잡스러운 문화가 처음 들어왔을 때였다.
당시에 마이카시대는 아니었지만 나는 비교적 일찍 중고차지만 내 차를 가지고 있었다. 대리운전이라는 직업은 아예 없었고 음주운전 단속은 느슨했지만 술을 마셔야 한다는 압박감에 차를 가져가지 않았고 기차를 이용했다. 지금 생각해도 그건 잘한 일이었다. 차가 없다는 해방감에 만취가 되도록 마셨고 노래방이라는 델 처음으로 가본 날이었다.
이차를 거쳐 삼차까지 마시고 만취가 되어 택시를 타고 대구역으로 갔는데 꽤 늦은 시간이었을 거다. 선명하게 기억이 나지 않아 누가 먼저 시비를 걸었는지 명확히 모르지만 역의 노숙자와 시비가 붙어 몸싸움이 일어난 모양이었다. 몸도 가누지 못하는 내가 대합실에서 노숙자에게 깔려 맞고 있을 적에 둘러선 구경꾼 중에서 누군가가 나서서 말렸고 나를 부축해서 플랫폼으로 끌고 내려갔다. 그가 바로 김대기씨였다. 술이 취한 나는 눈을 껌뻑이며 그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며 누구신가 몇 번인가 물었고 기차를 타고는 그날 저녁에 먹은 것을 다 토했다. 먹을 때는 예쁘고 맛있는 것만 골라서 먹었지만 토하고 보니 짬뽕국물이었다. 다른 승객들은 놀라 자리를 피하고 달아났지만 김대기씨가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고는 내가 토한 토사물을 깨끗이 청소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 때 김대기씨는 무슨 일로 대구에 갔었는지 정장차림을 하고 있었다.
그날 일은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기차에 내려서는 택시를 같이 타고 내가 집에 들어가는 걸 보고 돌아간 모양이었다. 나는 그에게 미안하다거나 고맙다고 할 틈이 없었다.
그 다음에 만났을 때는 시미동 일대가 공단부지로 수용되고 이주단지에 공사를 하면서였다. 일부는 집을 다지어 이사를 들어왔고 더러는 집을 짓는데 한창 공사 중이었다. 그곳에 목욕탕 기초공사를 하러 장비를 끌고 나갔는데 장비에 이상이 생겼다. 작업 중에 트랜스미션의 케이스가 그대로 박살이 난 것이다. 어디에 부딪친 게 아니라 저절로 유압을 못 이겨 박살이 난 것이다. 참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흘러내린 작동유가 길바닥에 흥건한데 싸움이 벌어진 것이었다. 상대는 장비의 애프터서비스 요원이었다. 애프터서비스 기간이 지났으니 유상수리를 해야 된다는 말에 내가 화가 치민 것이다. 그 물건은 폐차를 할 때까지 깨져서는 안 되는 물건이니 무상으로 바꾸어주어야 한다고 우겼다. 애프터서비스 요원이 운전부주의라는 말에 발끈하여 욕설을 하고 싸움이 붙은 것이다. 한창 욕설을 섞어 언성을 높일 때 김대기씨가 나타났다. 김대기씨는 회사에서 퇴근을 하고 오는 모양새였다.
들어보니 김대기씨는 공사를 하는 현장에서 가까운 곳에 집을 지어 이사를 들어왔고 국내 굴지의 전자회사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얼마나 무색했던지. 그 트랜스미션은 구조결함으로 처리되어 무상으로 교체수리를 했지만 고치기 위해 사흘을 대기하는 동안 매일 김대기씨를 계면쩍게 보아야 했다.
그 다음에 김대기씨를 만난 것은 또 술집이었다.
송정동의 시청 앞에 있는 무슨 식당이었다. 아마도 현장에서 회식이 있었던 자리였지 싶다. 당시에는 금오산 진입로 확장공사의 현장에서 일을 할 때였다. 소장이하 직원들과 장비기사들이 저녁을 먹고 술을 마셨다. 나는 상당히 취해 있었다. 김대기씨가 어떤 여자를 데리고 저녁을 먹으러 들어온 모양이었다. 그 식당은 낙지복음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었지 싶다. 김대기씨가 나를 먼저 보고 인사를 했다. 그걸로 끝났으면 좋으련만 술이 잔뜩 취한 나는 누구시냐고 물었고 술을 마시다가 다시 가서 누구시냐고 물었던 모양이다. 해코지한 것은 없어도 그렇게 물은 게 서너 차례나 되어 어떤 관계인지는 모르지만 여자와 오붓해야할 분위기를 다 깬 모양이었다.
그 다음에는 김대기씨의 얘기를 들은 것은 친구 상식이로부터였다.
상식이가 전화를 해서, 너 어제 저녁에 술에 떡이 되었지? 이런 식으로 묻는 것이었다. 어떻게 알았냐고 물으면 대기가 버스타고 지나가다가 너를 보았대. 시내에서 술을 먹었지? 마치 직접 본 것처럼 예사롭게 말을 하는 것이었다.
환장할 일이었다.
상식에게 그런 전화를 서너 번 받고 보니 어디서 술을 먹으면 김대기씨가 보고 있지 않나 살펴야했다. 누구와 싸우더라도 김대기씨가 보고 있지 않을까 조심을 해야 했다. 일테면 김대기씨 노이로제였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김대기씨에게 좋은 모습을 보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작년인가 김대기씨에게 미안하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상식이를 만났다가 김대기씨의 안부를 물었고 희한한 인연이라고 하며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해서 전화를 한 적이 있다. 살아오면서 늘 못 보일 모습만 보여주어 미안하다고 했으며 언제 조용할 때 만나 저녁이나 한 그릇하자고 약속했는데 아직까지 유예되어 있다.
혹시 이 병원에서 또 김대기씨에게 걸리는 것이 아닐까 노심초사했다. 그의 눈은 항상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
병원에서는 교통사고 환자라고 하니 사진을 마구 찍었다.
내 차례가 되어 의사를 만나는 과정에서 뼈에는 이상이 없고 근육이 놀란 것이라는 진단 결과가 나왔다. 근육을 이완시키는 주사를 맞으면서 며칠 입원을 하라고 했다. 가랑이를 벌리고 오토바이에 앉아 달리다가 그대로 충돌했으니 그 관성의 충격을 그대로 골반이 받은 모양이다.
일단 입원하기로 했다,
입원수속을 밟고 병실을 잡고 보험회사 아가씨가 생각나서 전화를 하려고 문자를 검색하니 없었다. 그저께 저녁에 병원을 갈 일은 결코 없을 거라고 지워버린 것이었다. 낭패다. 휴대폰에 남아있는 전날 통화내역을 다 뒤져서 다시 사고현장에 출동을 했던 담당자에게 전화를 해서 대인담당을 찾아서 입원을 했노라고 전했다. 어느 병원 몇 호실이냐고 물었고 보상과의 다른 대인담당 직원이 찾아갈 거라고 했다.
오늘은 고등학교 동기들 중에서 계모임을 같이하는 친구들끼리 부산으로 기차여행을 하기로 되어 있다. 나는 잠시 잊고 있었다.
고등학교 다닐 적에 친했던 친구들끼리 모은 계인데 인원을 열한 명이고 계의 역사는 거의 삼십 년이 넘는다. 오랜만에 하는 기차여행이고 봄나들이인 셈이다. 해운대로 가서 해변을 좀 걷다가 자갈치에 가서 점심을 먹고 저녁차를 타고 올라오기로 되어 있었는데 모든 계획은 총무를 맡은 상식이가 기획했고 나머지는 그저 따라가서 잘 먹고 잘 놀기만 하면 성공적인 모임이 되는 것이다. 이번 달 계모임 대신에 하는 여행인데 한 달 전에 약속을 했고 총무인 상식이가 벌써 기차표를 예매해두었다고 했다.
사고 때문인지 잊고 있었는데 병실에 도착해서 자리를 잡고 옷을 갈아입고 보험회사와 통화를 끝내니 문자메시지가 들어왔다. 내일 아침 여덟 시까지 역으로 나오라는 상식이의 문자였다.
내일이었던가?
낭패다.
총무인 상식에게 전화를 해서 갈 수 없음을 설명해야 했다.
알리고 싶지 않았지만 그 일로 전화를 하는 과정에서 얘기가 길어지고 오토바이 사고가 어떻게 났음을 자연스럽게 밝히고 말았다. 그러면서 전화 말미에 혹시 김대기씨를 보더라도 이 일은 말하지 말라고 했다. 상식은 김대기씨와 이웃에 산다는 것과 거의 매일 만난다는 게 좀 마음에 걸렸다. 그 말에 상식이는 껄껄 웃었다.
-왜 웃어?
-너? 대기를 되게 무서워하네? 대기가 지금 같이 있거든, 통화내용을 다 들었거든.
약 올리려고 하는 말 같아 정색으로 정말이냐고 물었다. 상식이의 말에 의하면 집에 화장실 수도가 고장이 나서 화장실을 수리하는데 기술자를 부르기에는 어중간한 일이라 옆집에 사는 김대기씨의 손을 빌리고 있다고 했다.
-그 양반이 회사에 안가고 왜 너희 집 화장실을 고치냐?
-대기가 요즘 삼 교대하는데 아침에 퇴근을 했거든.
-야 희한하네. 난 무슨 사고만 치면 그 양반에게 걸리냐? 이게 무슨 악연이야?
-악연이 아니고 좋은 인연이야. 전생에 대단히 절친한 사이였을 거야.
그 말을 끝으로 상식은 많이 아프냐고 물었고 나는 견딜 만 하다고 대답했고 부산을 다녀와서 한 번 들르겠노라고 했다.
그게 어제의 일이다.
시계를 본다.
지금쯤 친구들은 부산 자갈치 어디에선가 회를 먹으며 술을 마시고 있을 것이다.
김대기씨!
이번에도 걸렸다. 희한하다.
가만히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푸근하다. 김대기씨에게 걸릴까봐 노심초사했는데 이번에는 다른 방법으로 일러주게 되어 버린 셈이다.
참말로 김대기씨와의 인연은 희한하다.
왜 이렇게 좋지 않은 모습만 보여주게 될까? 상식이 말마따나 전생에 무슨 인연이 있는 걸까?
내일쯤에는 퇴원을 해야겠다.
어디가 부러진 것도 아니고 물리치료는 통원으로 받아도 무방하다. 하루를 자고나니 골반의 통증이 약간 옅어졌다. 무엇보다 불편한 것은 병실에 있는 사람들과 생활 패턴, 라이프스타일이 맞지 않는 것이다. 나는 초저녁에 자고 새벽에 움직이는 인간인데 같은 병실에 있는 환자들은 자정이 넘도록 안 자고 텔레비전을 본다. 그리고 아침에는 도통 일어나지 않는다. 전부 목발에 휠체어, 보기 좋은 모습이 결코 아니다. 하루를 견디어 보니 정나미가 떨어진다. 새벽에 다들 자고 있는데 불도 켜지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하고 멍하니 천정만 보고 누워 있었다. 지겹기 한이 없는 시간이었다.
헌데, 정말 김대기씨가 상식이네 화장실 수리를 하면서 통화내용을 들었을까?
그를 떠올리려니 얼굴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김대기씨의 머릿속에 각인된 나라는 존재, 술주정꾼이거나 싸움꾼. 아니면 사고뭉치, 그 아름답지 못한 이미지를 지우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병실 밖으로 또 화물열차가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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