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우리가 들은 것을 누가 믿었느냐? 주의 능력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2. 그는 주 앞에서, 마치 연한 순과 같이, 마른 땅에서 나온 싹과 같이 자라서, 그에게는 고운 모양도 없고, 훌륭한 풍채도 없으니,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모습이 없다.
3. 그는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고, 버림을 받고, 고통을 많이 겪었다. 그는 언제나 병을 앓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돌렸고, 그가 멸시를 받으니, 우리도 덩달아 그를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
4. 그는 실로 우리가 받아야 할 고통을 대신 받고, 우리가 겪어야 할 슬픔을 대신 겪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받는다고 생각하였다.
5.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고, 그가 상처를 받은 것은 우리의 악함 때문이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써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매를 맞음으로써 우리의 병이 나았다.
6. 우리는 모두 양처럼 길을 잃고, 각기 제 갈 길로 흩어졌으나, 주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지우셨다.
7. 그는 굴욕을 당하고 고문을 당하였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마치 털 깎는 사람 앞에서 잠잠한 암양처럼, 끌려가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8. 그가 체포되어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그 세대 사람들 가운데서 어느 누가, 그가 사람 사는 땅에서 격리된 것을 보고서, 그것이 바로 형벌을 받아야 할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느냐?
9. 그는 폭력을 휘두르지도 않았고, 거짓말도 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그에게 악한 사람과 함께 묻힐 무덤을 주었고, 죽어서 부자와 함께 들어가게 하였다.
10. 주께서 그를 상하게 하고자 하셨다. 주께서 그를 병들게 하셨다. 그가 그의 영혼을 속죄제물로 여기면, 그는 자손을 볼 것이며, 오래오래 살 것이다. 주께서 세우신 뜻을 그가 이루어 드릴 것이다.
11. "고난을 당하고 난 뒤에, 그는 생명의 빛을 보고 만족할 것이다.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의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할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받아야 할 형벌을 자기가 짊어질 것이다."
12. 그러므로 나는 그가 존귀한 자들과 함께 자기 몫을 차지하게 하며, 강한 자들과 함께 전리품을 나누게 하겠다. 그는 죽는 데까지 자기의 영혼을 서슴없이 내맡기고, 남들이 죄인처럼 여기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많은 사람의 죄를 대신 짊어졌고, 죄 지은 사람들을 살리려고 중재에 나선 것이다.(사53장)
1 The people reply,
“Who would have believed what we now report?
Who could have seen the Lord's hand in this?
2 It was the will of the Lord that his servant
grow like a plant taking root in dry ground.
He had no dignity or beauty
to make us take notice of him.
There was nothing attractive about him,
nothing that would draw us to him.
3 We despised him and rejected him;
he endured suffering and pain.
No one would even look at him—
we ignored him as if he were nothing.
4 “But he endured the suffering that should have been ours,
the pain that we should have borne.
All the while we thought that his suffering
was punishment sent by God.
5 But because of our sins he was wounded,
beaten because of the evil we did.
We are healed by the punishment he suffered,
made whole by the blows he received.
6 All of us were like sheep that were lost,
each of us going his own way.
But the Lord made the punishment fall on him,
the punishment all of us deserved.
7 “He was treated harshly, but endured it humbly;
he never said a word.
Like a lamb about to be slaughtered,
like a sheep about to be sheared,
he never said a word.
8 He was arrested and sentenced and led off to die,
and no one cared about his fate.
He was put to death for the sins of our people.
9 He was placed in a grave with those who are evil,
he was buried with the rich,
even though he had never committed a crime
or ever told a lie.”
10 The Lord says,
“It was my will that he should suffer;
his death was a sacrifice to bring forgiveness.
And so he will see his descendants;
he will live a long life,
and through him my purpose will succeed.
11 After a life of suffering, he will again have joy;
he will know that he did not suffer in vain.
My devoted servant, with whom I am pleased,
will bear the punishment of many
and for his sake I will forgive them.
12 And so I will give him a place of honor,
a place among the great and powerful.
He willingly gave his life
and shared the fate of evil men.
He took the place of many sinners
and prayed that they might be forgiven.”[a]
1. 우리가 들은 것을 누가 믿었느냐? 주의 능력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1 The people reply,
“Who would have believed what we now report?
Who could have seen the Lord's hand in this?
이사야 53장을 고난장이라고 부릅니다.
이 글은 주님이 오시기 전 수백년 전에 쓰인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실 것을 미리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사야가 말씀하시는 그리스도는 고난당하시는 분이셨습니다.
그것을 이사야가 설교한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여러분이 주일을 맞아서 설교를 듣듯이 사람들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설교가 정말로 이상하게 시작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읽어 봅시다.
1. 우리가 들은 것을 누가 믿었느냐? 주의 능력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1 The people reply,
“Who would have believed what we now report?
Who could have seen the Lord's hand in this?
이사야가 한 말씀입니다.
누가 지금 내가 전하는 설교를 믿어주기나 할까?
이렇게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당한데 누가 믿겠어!
설교자의 두 번째의 의심입니다.
이런 그리스도의 고난을 통해서 과연 주님의 능력의 손(the Lord's hand)을 누가 볼 수 있다는 말인가!
그 고난이 영생의 나라 문을 여는 열쇠일 줄이야!
그리스도의 그 비참하고 억울한 죽음을 하나님의 능력의 손이라고 믿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얼마 전 뉴스에 어머니 물건을 치우다가 사과 상장에 모아둔 돈뭉치를 쓰레기통에 버린 사람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놀랍게도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그런 식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그리스도의 고난을 다루는 중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을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다룰 것이라도 이사야가 예언했던 것입니다.
억대의 유명 화가의 그림으로 엿 사 먹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사건은 예수님 당시의 사건에 예언이며 동시에 우리의 현실에 대한 예언이기도 합니다.
이 설교를 누가 믿기나 할까?
그 예수님의 십자가가 하나님의 능력의 손(the Lord's hand)으로 보이게 할까?
2. 그는 주 앞에서, 마치 연한 순과 같이, 마른 땅에서 나온 싹과 같이 자라서, 그에게는 고운 모양도 없고, 훌륭한 풍채도 없으니,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모습이 없다.
2 It was the will of the Lord that his servant
grow like a plant taking root in dry ground.
He had no dignity or beauty
to make us take notice of him.
There was nothing attractive about him,
nothing that would draw us to him.
그런데 사람들이 훈민정음해례본을 엿으로 바꾸어 먹은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 일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는 주의 앞에서”는 영어 성경에 그것이 하나님의 뜻(It was the will of the Lord)이셨다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 전 주에 교회에서 대공사를 했습니다.
저는 포크레인 공사가 있을 자리의 장미 두 그루를 옮겨 심었습니다.
그것은 작년 봄에 오일장에서 사다 심은 것입니다.
작년에 붉은 장미까지 예쁘게 피웠습니다.
그것을 옮겨 놓은 다음에 보조 노릇하느라 일주일을 깜빡 잊고 지냈습니다.
그랬더니 봄을 맞아 물오르던 장미 가지에 여린 새싹들이 그대로 말라버렸습니다.
손으로 만지니 그것들은 그대로 바스라지고 말았습니다.
그것이 제대로 살아날지 의문이 갑니다.
그리스도의 모습이 그 싹 같으셨다는 것입니다.
마른 땅 사막 가운데 심긴 나무의 싹과 같았던 것입니다.
우리 눈에 사람들을 살려내실 그리스도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스스로도 살아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고운 모양도, 훌륭한 풍채도, 흠모할 아름다운 것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일부러(my will) 그렇게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옷 한 벌을 사도 가장 먼저 눈으로 확인부터 합니다.
색깔도 보고, 모양도 보고, 입어 보고 거울 앞에 서 보고.......
그런데 하나님의 일은 그렇게 겉을 보고 판단을 했다가는 망하고 말 것입니다.
우리 눈을 의지했다가는 치명적으로 그리스도를 피해 가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3. 그는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고, 버림을 받고, 고통을 많이 겪었다. 그는 언제나 병을 앓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돌렸고, 그가 멸시를 받으니, 우리도 덩달아 그를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
3 We despised him and rejected him;
he endured suffering and pain.
No one would even look at him—
we ignored him as if he were nothing.
그랬으니 당연한 일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를 멸시했고, 버렸고, 고통을 많이 주었고, 그랬으니 병을 앓으셨고, 왕따 당하시고.......
사람들은 피부가 검을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그들을 아프리카에서 잡아다가 시장에서 사고팔았던 것입니다.
용산의 전쟁 박물관 앞에 한 동상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전쟁 통에 만난 인민군 형이 국군 동생을 껴안고 있는 동상이랍니다.
눈에 보이는 이데올로기 껍데기로 동생이 형을 쏴 죽이는 것이 옳은 일입니까?
그런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렇게 하니 우리도 덩달아서 그 짓을 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보고서 그리스도를 멸시하니 우리도 그 사람들을 보고서 덩달이가 된 것입니다.
2. 그는 주 앞에서, 마치 연한 순과 같이, 마른 땅에서 나온 싹과 같이 자라서, 그에게는 고운 모양도 없고, 훌륭한 풍채도 없으니,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모습이 없다.
2 It was the will of the Lord that his servant
grow like a plant taking root in dry ground.
He had no dignity or beauty
to make us take notice of him.
There was nothing attractive about him,
nothing that would draw us to him.
왕이 내란을 명령하니 자신도 덩달이가 되어서 내란 가담자가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도 그렇게 죽임을 당하실 것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눈에 보이는 것을 믿어야 하겠습니까?
성경을 통해서 들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겠습니까?
애급을 나왔던 히브리 백성들은 뒤에서 쫓아오는 애굽 군대를 보고 있었습니다.
앞에는 시퍼런 홍해가 보였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저 홍해에 길이 있다.
그러면 여러분은 보이는 것을 가지고 판단하실 것입니까?
모세가 들려준 말씀을 듣고 판단하실 것입니까?
애굽의 군대들은 히브리인들이 바다를 건너는 것을 보고 뒤를 따라갔다가 물에 빠져서 죽었습니다.
그들 애굽 군인들은 모세사 들려준 말을 들을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독재자 바로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인들이 바다를 건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본 것을 따라 하다가 모두 바다에 빠져 죽고 말았습니다.
세상은 보고 하지만 하나님의 사람들은 성경이 들려주시는 말씀을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들이 그 동안 보고 행했는데 이제 듣고 행하자니 발이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신앙이란 엄청난 사건입니다.
판단의 근거를 바꾸어 놓은 사건입니다.
시퍼런 바다를 보고 하나님께서 길이라고 하시면 그 곳을 걸어가는 것이 신앙입니다.
4. 그는 실로 우리가 받아야 할 고통을 대신 받고, 우리가 겪어야 할 슬픔을 대신 겪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받는다고 생각하였다.
4 “But he endured the suffering that should have been ours,
the pain that we should have borne.
All the while we thought that his suffering
was punishment sent by God.
4절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볼 수 있습니다.
먼저 그리스도의 고난 역사적 현실을 이르는 것입니다.
4. 그는 실로 우리가 받아야 할 고통을 대신 받고, 우리가 겪어야 할 슬픔을 대신 겪었다.
4 “But he endured the suffering that should have been ours,
the pain that we should have borne.
둘째 부분입니다.
이 그리스도의 고난의 현실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4. 그러나 우리는, 그가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받는다고 생각하였다.
4 All the while we thought that his suffering
was punishment sent by God.
그들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제 멋대로 생각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어떻게 표현하십니까?
여러분의 언어를 가지고 예수님을 설명해 보시기 바랍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어린 양으로 설명했습니다.
29. 이튿날 요한은 예수께서 자기에게 오시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보시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입니다.(요1:29)
유대인들은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들이 드리는 제사의 가장 큰 의미는 속죄일 것입니다.
어린 양은 양의 문제로 죽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죄 때문에 죽을 운명이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내가 죽을 자리에 대신 죽으실 양이셨습니다.
그것이 유대 제사의 의미입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제사를 드릴 때마다 이 제사의 의미를 제대로 읽어내지 않았습니다.
제사 자체에 의미를 부여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세상을 살며 세상에서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전부 내 책임이다.
잘하면 내가 상 받고 못하면 내가 감옥 가고.......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 나라의 차이를 이르라고 한다면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모든 사고를 이기적으로 배타적으로 개인주의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복음이 사람들에게 충격적인 이유입니다.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을 것이다.(요3:16)
세상이야 누가 감옥에 가든지 말든지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이 아니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신 것입니다.
독생자를 어린 양의 희생 제물로 내놓으실 만큼 심각한 문제로 여기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죽을 운명을 생명으로 바꾸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5.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고, 그가 상처를 받은 것은 우리의 악함 때문이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써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매를 맞음으로써 우리의 병이 나았다.
5 But because of our sins he was wounded,
beaten because of the evil we did.
We are healed by the punishment he suffered,
made whole by the blows he received.
제가 제주도에서 교회 마당에서 닭을 길렀습니다.
어느 봄날이었습니다.
그것이 알을 품어서 병아리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 내가 알고 있던 그 닭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사료를 들고 가도 저를 향해 달려드는 것입니다.
목을 세우고 날개 죽지를 흔들어대면서 덤벼드는 것입니다.
실은 고양이든 개든 상대를 가리지 않았습니다.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제 새끼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이런 시각에서 보아야합니다.
하나님은 전적으로 우리의 편에 서 계신다는 것입니다.
죄를 범한 우리의 편이십니다.
6. 우리는 모두 양처럼 길을 잃고, 각기 제 갈 길로 흩어졌으나, 주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지우셨다.
6 All of us were like sheep that were lost,
each of us going his own way.
But the Lord made the punishment fall on him,
the punishment all of us deserved.
6절은 먼저 예외가 없는 사람의 현실을 이릅니다.
6. 우리는 모두 양처럼 길을 잃고, 각기 제 갈 길로 흩어졌으나,
6 All of us were like sheep that were lost,
each of us going his own way.
우리 모두 길을 잃어서 죽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이런 죽음의 현실을 하나님께서 해결하셨다는 것입니다.
6. 주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지우셨다.
6 But the Lord made the punishment fall on him,
the punishment all of us deserved.
제가 전도사 시절입니다.
청년들과 함께 지리산 종주를 했습니다.
통조림, 쌀, 김치, 옷가지, 랜턴, 버너, 텐트........
그것을 무겁게 등쳐 매고 전라도에서 경상도까지 3박 4일 걸어갔습니다.
등산은 참으로 매력적이지만 동시에 아주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청춘남녀가 만났으니 텐트 안에서 이야기 꽃이 핀 것입니다.
저는 제 시간을 산행하지 못 할 경우 닥칠 위험을 경고했습니다.
하지만 막무가내였습니다.
결국 우리는 제 시간을 놓치고 산행을 하게 된 것입니다.
낭떠러지에 떨어질 뻔도 했습니다.
어두운 산길을 행군하는 것은 정말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인생이 바로 그런 길을 잃은 죽음의 현실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때였습니다.
저기 멀리에서 렌턴을 든 한 무리가 우리를 향해 오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이 처지가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구조대를 만났던 것입니다.
그들의 길의 인도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물론 편히 누워 쉬지 못하고 우리를 위해 수고를 한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짐을 대신 지어주었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어떤 위험에 있는 줄도 몰랐던 것입니다.
그것은 죄였습니다.
주님은 우리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죽음의 짐을 대신 지어주신 것입니다.
실은 이것이 그리스도의 핵심인 것입니다.
이렇게 내 문제는 주님의 문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바로 이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내 문제가 타인 즉 그리스도의 문제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 일은 죄인들에게는 참으로 인정하기 힘든 일입니다.
6. 주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지우셨다.
6 But the Lord made the punishment fall on him,
the punishment all of us deserved.
이제 내 영생은 그리스도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양로원에서 저는 어르신들게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최후의 순간에 우리는 그 천국문 앞에 설 것입니다.
천사가 거기에서 우리의 길을 막으며 너는 죄가 많아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 때 어떻게 하시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할머니 한 분이 그러면 별수 없지......
말끝은 흐리셨습니다.
바로 이 문제입니다.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주님 대신 하셨다고 답하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내 죄의 문제를 해결하셨다고 답하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당히 하나님의 나라의 문으로 입장하시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지셨으니 내 치명적인 문제가 주님의 문제가 되었던 것입니다.
7. 그는 굴욕을 당하고 고문을 당하였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마치 털 깎는 사람 앞에서 잠잠한 암양처럼, 끌려가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7 “He was treated harshly, but endured it humbly;
he never said a word.
Like a lamb about to be slaughtered,
like a sheep about to be sheared,
he never said a word.
그리스도께서 그 속죄의 현장에서 일어날 일입니다.
주님은 엄청난 고난을 당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고통은 죽음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때 주님은 도무지 말씀이 없으실 것이라는 말입니다.
성경은 그가 결코 말씀하지 않으셨(he never said a word.)다고 두 번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그 고난을 묵묵히 실천하셨을 뿐입니다.
말이 아닙니다.
8. 그가 체포되어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그 세대 사람들 가운데서 어느 누가, 그가 사람 사는 땅에서 격리된 것을 보고서, 그것이 바로 형벌을 받아야 할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느냐?
8 He was arrested and sentenced and led off to die,
and no one cared about his fate.
He was put to death for the sins of our people.
지금 성경은 사람의 생각을 고발하시는 것입니다.
로마 병정의 손에 들린 휘초리가 휙 소리를 내며 하늘을 갈랐습니다.
못이 박히는 소리
그것은 사람 팔목과 발목에 둔탁하게 못이 박히는 소리입니다.
그 비명소리
그 피비린내
그 자리에서 사람들의 생각은 완고했던 것입니다.
그 그리스도의 고난에서 자신의 죄의 문제를 생각해 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9. 그는 폭력을 휘두르지도 않았고, 거짓말도 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그에게 악한 사람과 함께 묻힐 무덤을 주었고, 죽어서 부자와 함께 들어가게 하였다.
9 He was placed in a grave with those who are evil,
he was buried with the rich,
even though he had never committed a crime
or ever told a lie.”
가장 난감한 일은 하나님의 이름을 내세우면서 막상 마귀의 짓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내세우면서 장로교 내란 측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내세우면 어떤 방식이든지 정당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역의 방식을 주목해야 합니다.
그는 먼저 폭력을 휘두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그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내세우면서 계엄을 계몽이라고 하고 바이든을 날리면이라고 하는 사람을 주의하시라는 것입니다.
거짓말을 일삼은 목회자가 있다면 그를 떠나는 것이 여러분의 영혼을 위한 것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이나 되는 듯이 언어 폭력을 하는 목회자를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을 때도 그를 엉뚱하게 대우한 것입니다.
첫째로 악한 사람과 세상의 부자와 같은 취급을 했던 것입니다.
결국 그리스도는 사람들에게 전혀 엉뚱하게 인식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고질적인 또한 완고한 사고를 바꿀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님이 그를 바꾸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성령 하나님을 통해서 믿음을 가지게 된 것이 복입니다.
이 십자가의 고난을 누가는 이렇게 이해했습니다.
34. 시므온은 그들을 축복한 뒤에, 아기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 가운데 많은 사람을 넘어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도록 세우심을 받았으며, 비방을 받는 표징으로 세우심을 받았습니다.
35. -그리고 칼이 당신의 마음을 꿰뚫을 것입니다.- 이것은 많은 사람의 마음에 품은 생각들을 드러내시려는 것입니다."(눅2:34,35)
그 그리스도의 고난이라는 극약처방을 통해서 사람들의 생각이 드러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죽임을 당하셨다는 것입니다.
10. 주께서 그를 상하게 하고자 하셨다. 주께서 그를 병들게 하셨다. 그가 그의 영혼을 속죄제물로 여기면, 그는 자손을 볼 것이며, 오래오래 살 것이다. 주께서 세우신 뜻을 그가 이루어 드릴 것이다.
10 The Lord says,
“It was my will that he should suffer;
his death was a sacrifice to bring forgiveness.
And so he will see his descendants;
he will live a long life,
and through him my purpose will succeed.
이와 같은 이유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고통당하도록 정하셨던 것입니다.
10. 주께서 그를 상하게 하고자 하셨다.
10 It was my will that he should suffer;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흥함을 기대했을 것(that he should suffer)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my will)이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우리가 기대하는 것을 그의 고난입니다.
그의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10. 그가 그의 영혼을 속죄제물로 여기면,
10 his death was a sacrifice to bring forgiveness.
그리스도의 죽음이 곧 제물이셨다는 것(his death was a sacrifice)입니다.
그 제물이 사람들에게 죄의 용서를 가져올 것(to bring forgiveness)입니다.
그렇게 그리스도께서는 죽으심으로 결정되신 것입니다.
인간이 가장 불길하게 여기는 죽음을 통해 하나님은 그 분의 뜻을 이루신 것입니다.
10. 주께서 세우신 뜻을 그가 이루어 드릴 것이다.
10 through him my purpose will succeed.
그런데 그것은 또한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의 희생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뜻에서 주님 때문에 억울한 일을 당한다면 여러분은 기뻐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11. "고난을 당하고 난 뒤에, 그는 생명의 빛을 보고 만족할 것이다.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의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할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받아야 할 형벌을 자기가 짊어질 것이다."
11 After a life of suffering, he will again have joy;
he will know that he did not suffer in vain.
My devoted servant, with whom I am pleased,
will bear the punishment of many
and for his sake I will forgive them.
생명의 빛을 누리기까지 그 분명한 순서가 있는 것입니다.
그 희생이 우선입니다(After a life of suffering).
그 산고를 경험한 후에 기쁜이 자녀를 품에 안게 될 것입니다.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안에서 의미 없는 희생이 없다는 것입니다.
11.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의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할 것이다.
11 he will know that he did not suffer in vain.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에게 헛된 희생이 없습니다(he did not suffer in vain).
그 고난은 산통입니다.
산모가 산고를 치른 후에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대신 벌을 받으신 예수님을 인해 하나님의 영생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12. 그러므로 나는 그가 존귀한 자들과 함께 자기 몫을 차지하게 하며, 강한 자들과 함께 전리품을 나누게 하겠다. 그는 죽는 데까지 자기의 영혼을 서슴없이 내맡기고, 남들이 죄인처럼 여기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많은 사람의 죄를 대신 짊어졌고, 죄 지은 사람들을 살리려고 중재에 나선 것이다.
12 And so I will give him a place of honor,
a place among the great and powerful.
He willingly gave his life
and shared the fate of evil men.
He took the place of many sinners
and prayed that they might be forgiven.”[a]
그러므로라는 말씀이 중요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대신 우리의 벌을 받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영생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로 하나님의 나라의 몫을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그 마귀를 이기고 그의 전리품을 우리가 차지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안에서 천국의 자격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에게서 나의 생명을 찾는 것입니다.
그의 고난에서 영생을 보는 것입니다.
다시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바로 그리스도의 자세를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12. 그는 죽는 데까지 자기의 영혼을 서슴없이 내맡기고, 남들이 죄인처럼 여기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12 He willingly gave his life
and shared the fate of evil men.
첫째로 그리스도께서 생명을 내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찾을 것이다.(마16:25)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해 내 생명을 잃었는가?
살아계시며 하나님께서 바로 이 기준을 가지고 사람을 판단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여러분 혹시 뜬금없이 의심을 받은 적은 없었습니까?
그 때 얼마나 억울했습니까?
그리스도께서 의인으로써 죄인의 취급을 당하셨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가장 끔찍한 일들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이 두문제를 전혀 달리 대하신 것입니다.
그를 수용하심으로 우리에게 생명의 길을 여신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가 보이신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거기에 영생의 상급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