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아이들
정동식
마거릿 피터슨 헤딕스의 ‘그림자 아이들’이 출간된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사회 현실은 별반 나아진 점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책에 따르면 정부는 식량난을 이유로 셋째 아이 낳는 것을 법으로 금지했다. 소설의 주인공 루크는 열두 살 된 그림자 아이다. 이웃집의 용감한 소녀 젠을 만난 루크는 자기와 같은 처지에 있는 아이들이 많다는 걸 알고 젠의 죽음을 기화로 자유를 찾기 위해 세상 밖으로 나온다. 그리고 죽은 아이의 이름을 기부받아 위조신분증을 만들고 가짜 이름으로 살아간다.
소설의 인구법과 비슷한 사례는 중국의 산아제한이다. 중국 정부는 1979년부터 '한 자녀 정책'을 도입하여 강력한 인구 억제를 시도했다. 비록 지금은 내수 확대를 위해 세 자녀까지 허용하고 있지만 중국의 인구조절정책은 마거릿의 소설 내용과 가장 많이 닮아있다.
나는 십여 년 전 지금 이슈가 되고 있는 그림자 아이들과 비슷한 말을 들은 바 있다. 아침에 차를 마시며 가볍게 나누던 얘기여서 내용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히 머릿속에 남아있는 하나는 사건과 연루된 딸 아이가 취학연령이 넘었는데도 주민번호가 없는 아이였다는 사실이다. 이런 사례는 수사기관에서도 충격적인 일이었다.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출생신고 없이 살아간단 말인가? 정상적인 부모라면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부모가 자식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어떻게 키우려 했는지 나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림자 아이들 시리즈가 나오기 6~7년 전의 일이었다.
얼마 전, 소설보다 끔찍한 사건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다. 친모에게 생명을 잃은 아홉 살 아이가 언론에 보도되어 세상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아이는 출생신고 없이 9년 동안 의료보험, 어린이집, 학교 등 마땅히 받아야 할 아동의 기본적 권리조차 누리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떠났다. 다른 사람도 아닌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아야 할 엄마로부터 버림을 받은 채... 이처럼 존재하나 세상에 없는 아이, 마거릿은 이런 아이들을 소재로 다룬, 자신의 저서 ‘그림자 아이들’을 세상에 출판하며 청소년 문제를 화두로 던졌다. 신의 은총으로 태어났지만 행정기관에 등록하지 않고 사는 아이들이 한해 기준으로 약 4,000명 가량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림자 아이들이 생기는 원인은 무엇일까? 첫 번째는 출산 당사자들이 원치 않는 아이를 가진 경우이다. 두 번째 이유는 아이를 낳았으나 출산 후 어떤 사정으로 인해 양육할 수 없게 되었을 때이다. 이 두 경우는 비단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선진국은 물론 다른 나라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그림자 아이 발생의 세 번째 이유는 미등록 외국인이 낳은 아이들의 문제이다.
내국인과 달리 외국인의 경우에는 미등록 이주민의 사회문제가 곧 미등록 아동 발생과 직결된다. 부모가 미등록 외국인, 즉 불법체류자이니 이들로부터 태어난 아이들은 당연히 등록할 명부가 없지 않은가?
현재 대한민국은 전체인구의 약 3.9%, 200여만 명의 이주민이 함께 살아가는 다문화사회가 되었다. 국가가 이들을 위해 많은 정책들을 실행하고 있음에도, 체류자격을 얻지 못하고 사는 외국인이 너무나 많다. 지난 4월 말 기준 불법체류자는 41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미등록 이주민’들에게서 태어난 아동들은 출생신고도 하지 못한 채 입양 등 특별사정이 없는 한 고스란히 그림자 아이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에 놓여 있다.
그리고 마지막 원인으로 들 수 있는 것이 출생신고 시스템에서 발생하는 출생누락이다. 현재 행정기관의 시스템은 모든 아동의 출생신고를 확인하지는 못하고 있다. 현행법상 출생신고 권한은 부모에게 우선적으로 있으므로 개인 또는 부부간의 사정으로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아이들은 그림자 아이가 되어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그만큼 클 수밖에 없다.
위에서 언급한 네 가지 원인의 출생신고 공백을 줄이는 방안은 그림자 아이들의 발생원인에서 찾으면 쉽게 해결될 수 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원인의 그림자 아이들은 보호출산이나 비밀출산을 보장해 주면 된다. 아울러 출산의 당사자들은 새로운 경제활동을 할 수 있게 지원하고 그 아이들은 일단 국가기관에서 맡아 양육하는 시스템으로 가는 것이다. 어느 정도의 예산이 투입되더라도 반드시 해야 할 사업이다. 우리나라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가? 인구학자 콜먼 교수는 대한민국의 저출산 현상이 지속된다면 한국이 지구 상에서 ‘1호 인구소멸국가’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우리의 미래가 절대절명의 위기에 처한 만큼, 국가는 그림자 아이들의 양산을 막고 그들이 천부인권을 누릴 수 있도록 법령정비와 적정한 예산을 과감히 투입해야 할 것이다. 지금 추진하고 있는 출산정책이나 청년정책에 투입되는 예산으로 충당하면 모자람이 없다고 본다. 만일 재정상태가 좋지 않다면 세수를 고려하여 거기에 맞는 예산을 편성하면 될 일이다.
세 번째 이유인 미등록 외국인 아동문제는 불법체류자를 줄이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언젠가부터 내국인이 취업을 꺼리는 분야에 외국인들이 많이 투입되는 현실태를 고려하면 시행 중인 고용허가제를 현실에 맞게 완화해야 한다. 고용허가제란 내국인을 구하지 못한 중소기업이 합법적으로 비전문외국인력(E-9)을 고용할 수 있는 제도이다. 이에 따라 근로자는 국내에서 3년간 일할 수 있으며 특정 요건이 충족되면 1년 10개월을 연장할 수 있다. 4년 10개월 근무 후, 성실근로자로 인정되면 출국 후 3개월 이내에 다시 입국하여 최장 약 10년간 우리 나라에서 일 할 수 있다.
문제는 불성실 근로자의 출국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불법체류자가 발생한다. 이들은 출국하면 재입국이 원천적으로 봉쇄되기 때문에 불법체류자가 되는 위험을 감수하고도 그냥 눌러앉으려고 하는 것이다. 이런 외국인들은 출국이 순조롭게 진행되도록 관리가 필요한데 실정은 그렇지 못하다. 외국인 출국관리가 방만하게 운영되고 있어 추적이 어렵다고 한다. 이민청 등을 신설하여 주관부서를 정하든지,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을 확충하던지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출국해야 할 외국인이 버젓이 남아서 경제활동을 한다면 더 많은 불법체류자가 생기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왜냐하면 불법체류자 친구의 유혹에 빠져 눈앞의 이익만 보고 이리저리 이직하다 또 다른 불법체류자를 양산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노동시장의 책임도 있다고 한다. 일부 회사는 정규직원 대신 용역회사 직원을 선호하다 보니 외국인 불법체류자 발붙일 빌미를 주게 된다.
가까운 일본에서는 ‘지식과 경험이 많은 외국인’ 즉, 1호비자의 경우는 5년의 체류기간이 주어지며 이직이 가능하고, 2호 비자인 ‘뛰어난 기술력을 가진 인재’에게는 파격적인 대우를 해준다. 이들에게는 체류기간의 제한이 없고 가족동반도 가능하다. 대신 불법체류자에 대한 상시단속과 벌금, 고용주의 사업허가 취소 등 강력한 처벌이 뒤따른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웃 일본의 제도를 벤치마킹할 필요도 있다고 본다.
마지막 원인인 출생신고의 시스템상 문제는 법 개정을 통해 해결이 가능하다. 아이가 출생한 의료기관에서 출생 사실을 행정기관에 의무적으로 통보하도록 하는 이른바 출생통보제도를 시행하는 것이다. 현재 출생아의 약 99.6%가 병원에서 태어나고 있다. 의료기관이 의무적으로 행정기관에 통보하는 제도가 확립될 경우, 병원 이외의 장소에서 태어나는 0.4%의 아이를 제외한 모든 아이의 출생신고가 가능하게 된다. 그만큼 그림자 아이들이 생길 개연성은 상당히 줄어들 수 있다. 다만 출생 통보 업무로 인해 의료기관의 업무부담이 가중되어 의료서비스의 질이 나빠질 부작용이 대두될 수 있으므로 이 점은 충분한 연구를 통해 보완해야 한다.
지금까지 방치되다시피 했던 그림자 아이들의 인권!
정부 소관부처에서는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공청회 등 충분한 여론수집을 거쳐 앞의 대책들을 포함한 중장기 대책을 수립하면 좋겠다. 이런 정책은 어떤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일관성 있게 꾸준히 시행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장차 그림자 아이들을 위한 인권향상에 정부와 모든 국민의 공감대가 형성되어 우리 대한민국이 진정한 선진문화강국으로 발돋움할 날을 기대해 본다.
(2023.7.18)
첫댓글 그림자 아이들 말만 듣던 일들이 우리 앞에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림자 아이들의 출생 경로 와 대책을 소상히 제시하여 잘 알 수 있습니다. 반드시 시정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불행한 그림자 아이들이 없기를 기원합니다.
출생은 축복이고,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다고 합니다. 부모의 역할이 있을 때 가능합니다. 법과 제도로 어려운 가슴아픈 현실, 국민적 관심이 있어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