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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잔과 용석/박지일<2020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감상 홍정식)
세잔의 몸은 기록 없는 전쟁사였다
나는 용석을 기록하며 그것을 알게 되었다
세잔과 용석은 호명하는 방법의 차이가 있을 뿐
하나의 인물이었다
나는 세잔을 찾아서 용석의 현관문을 두들기기도 하고 반대로 용석을 찾아서 세잔의
문을 두들기기도 했다
용석은 빌딩과 빌딩의 높이를 가늠하는 아이였고
세잔은 빌딩과 빌딩의 틈새를 가늠하는 아이였다
세잔과 용석 몰래 말하려는 바람에 서두가 이렇게 길어졌다
(세잔과 용석은 사실 둘이다)
다시,
세잔의 몸은 기록 없는 전쟁사였다
나는 세잔과 용석을 기록하며 그것을 모르게 되었다
세잔은 새총에 장전된 돌멩이였다
세잔은 숲의 모든 나무를 끌어안아 본 재였다
세잔은 공기의 얼굴 뒤에 숨어있는 프리즘이었다
용석아
네게서 세잔에게로 너희에게서 내게로
전쟁이 유예되고 있다
용석아
네 얼굴로 탄환이 쏘아진다 내 배후는 화약 냄새가 가득하다
세잔과 용석은 새들의 일회성 날갯짓, 접히는
세잔과 용석은 수도꼭지를 타고 흐르는 물의 미래, 버려지는
세잔과 용석은 공중의 양쪽 귀에 걸어준 하얀 마스크, 아무도 모르는
나는 누구를 위해 세잔을 기록하나
용석을 기록하나
도시의 모든 굴뚝에서
세잔과 용석이 솟아난다 수증기처럼 함부로
출처: 경향신문(www.kh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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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잔의 몸은 기록 없는 전쟁사였다
나는 용석을 기록하며 그것을 알게 되었다
최고의 직유와 은유와 비유를 보여주는 시입니다. A=B, A는 B다라고 하면, 내 마음은 호수요,라고 한다면 내 마음을 호수에 은유하고 있지요. 그런 의미에서 '세잔의 몸=기록 없는 전쟁사'가 되므로 은유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잔'은 누구인지가 더 큰 은유가 되겠지요. 세잔은 용석과 대비되는 어떤 인물입니다. 유럽이나 프랑스의 어느 인물을 우리나라의 '용석'과 대비시키는 거지요. 그렇다면 용석은 누구인가요? 제가 볼 때 두 사람은 평범한 사람입니다. 세상을 좌지우지하는 힘을 가진 이가 아닌 평민입니다.
세잔의 몸을 기록하며 용석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죠, 사람은 혼자서는 존재할 수 없는 겁니다.
세잔과 용석은 호명하는 방법의 차이가 있을 뿐
하나의 인물이었다
시인은 공통된 역사와 인식과 경험을 가진 다르지만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하나의 인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는 세잔을 찾아서 용석의 현관문을 두들기기도 하고 반대로 용석을 찾아서 세잔의
문을 두들기기도 했다
두 사람의 기록을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시인이 보입니다. 두 사람을 기록하면서 다른 곳,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 있어도 비슷한 인식과 유사한 역사를 가진 두 사람을 알게 됩니다.
용석은 빌딩과 빌딩의 높이를 가늠하는 아이였고
세잔은 빌딩과 빌딩의 틈새를 가늠하는 아이였다
하지만 두 사람은 보는 시선이 다릅니다. 인식이 다른 거죠. 같은 빌딩을 바라보지만 각자는 넓이와 높이를 바라봅니다.
세잔과 용석 몰래 말하려는 바람에 서두가 이렇게 길어졌다
(세잔과 용석은 사실 둘이다)
하지만 시인은 몰래 말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두 사람은 일종의 대립관계에 있으니까요. 두 사람은 같이 기록되는 걸 싫어하는 것 같습니다.
다시,
재미있는 화법이죠, 다시. 위에서 말한 내용을 다시 구체적으로 설명하든가, 아니면 다른 분위기로 전환시키겠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세잔의 몸은 기록 없는 전쟁사였다
나는 세잔과 용석을 기록하며 그것을 모르게 되었다
둘의 몸을 기록하면서 시인은 알게 되죠. 세잔의 몸은 기록 없는 전쟁사가 아니라, 평범한 평민의 일상이었다는 것을요.
세잔은 새총에 장전된 돌멩이였다
세잔은 숲의 모든 나무를 끌어안아 본 재였다
세잔은 공기의 얼굴 뒤에 숨어있는 프리즘이었다
세잔은 희생자였군요. 전쟁의 피해자, 총알받이, 그렇게 죽어간 역사의 희생물. 전쟁은 승자만을, 최고의 권력자만을 기록하잖아요, 사실은 영웅을 위해 죽어간 수많은 사람이 있는데 말이죠. 우리는 그들을 몰라요. 시인이 적고 싶은 건 그런 일반적인 사람의 일상입니다.
용석아
네게서 세잔에게로 너희에게서 내게로
전쟁이 유예되고 있다
우리 모두는 그런 영웅들의 전쟁담 아래서 살아가는 거죠. 서로에게 총을 겨누기도 하고요.
용석아
네 얼굴로 탄환이 쏘아진다 내 배후는 화약 냄새가 가득하다
구체적으로 시인은 상대가 쏜 총알은 결국 자신에게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이야기합니다. 폭력은 폭력을 낳고, 미움은 미움을 낳습니다.
세잔과 용석은 새들의 일회성 날갯짓, 접히는
세잔과 용석은 수도꼭지를 타고 흐르는 물의 미래, 버려지는
세잔과 용석은 공중의 양쪽 귀에 걸어준 하얀 마스크, 아무도 모르는
세잔과 용석은 커다란 권력의 희생물, 접혀지고, 버려지는, 아무도 모르는 잊힌 평민들입니다.
나는 누구를 위해 세잔을 기록하나
용석을 기록하나
시인은 누구를 위해서 이런 평민의 삶을 기록할까요? 권력자를 위해서, 잊혀간 희생자들을 위해서, 자신을 위해서, 아니면 우리 모두를 위해서?
도시의 모든 굴뚝에서
세잔과 용석이 솟아난다 수증기처럼 함부로
수많은 세잔과 용석이 오늘도 열심히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저 열심히 사는 거죠. 잊히고 잊혀도 그런 세잔과 용석이 모여서 역사를 이루어 왔으니까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를 만들어 온 사람들은 세잔과 용석 같은, 순이와 철수 같은, 톰과 메리 같은, 우리입니다. 우리가 없으면 역사는 이루어질 리가 없을 겁니다. 지금 이렇게 글을 읽고, 쓰고, 감상하고, 하는 모든 일들도 또 하나의 역사가 아닐까요? 물론 언젠가는 잊히겠지만요. 작은 일들이 모여 큰일이 됩니다. 샘물이 흘러 큰 물줄기가 되죠. 비가 옵니다. 이 비들도 하나씩 모여 바다로 흘러가겠지요. 물이 흘러 바다로 간다는 표현은 매우 진부한 표현입니다. 그러나 진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