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하나님의 집 - 만나성전 Rev. dhleepaul(M.div) .
날자: 2026.07.19 주일 낮 예배
말씀: 갈3:13/찬323.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제목: 십자가의 속량- 율법과 은혜
선포: 대한예수교장로회 만나교회담임 이덕휴목사
성경본문: 갈3:13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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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혜찬양: (118) 서로 사랑하자 -by 오세영/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by Anvelyㄴ
본문의 배경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저주를 받으신 것은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기 위함입니다. 여기서 '기록된 바'라는 말씀은
신명기 21:23에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자'라는 구약의 예언의 말씀을 주님께서 이루신 것입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은 우리의 죄와 그로 인한 저주를 대신 짊어지시고, 우리가 더 이상 율법 아래에서 정죄받지 않도록 해 주셨습니다. 이 구절은 그리스도의 희생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하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는 자유와 은혜의 복음을 환기합니다. 이 구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 아브라함의 복이 모든 민족, 즉 이방인에게도 미치게 되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이는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축복이 유대인뿐만 아니라 모든 인류에게 확장되었음을 나타냅니다. 또한, 이를 통해 우리는 믿음으로 성령의 약속을 받을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축복과 성령님의 임재가 믿는 자들에게 모두 주어지는 것이며, 이는 구약의 약속들이 신약에서 완성됨을 보여줍니다.
1. 나무에 달리신 주님
속량(贖良)은 대가를 지불하고 억압상태에서 자유함을 얻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속량이라는 말은 속죄함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 갚아주시고 우리의 죄를 탕감받게 스스로 나무에 달리신 주님의 희생입니다. 옛날 조선시대의 속량은 노비가 대가를 지불하고 양인(良人)으로 신분을 바꾸는 제도였습니다. 이런 신분적인 문제는 돈이면 해결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속량은 은금으로 사고파는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의 영혼의 문제를 감당하시기 위한 주님의 은혜의 속량이요 값진 보배의 천국 시민권을 우리에게 선물하신 것입니다. 값없이 스스로 십자가에 달리셔서 우리를 위하여 보혈의 피를 흘리신 주님께 이 시간 갚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속량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회복, 죄의 용서, 구속과 연결되며, 오직 주님의 속량만을 통해서 하나님과 인간과의 화목이 이루어짐니다. 다만 천주교(가톨릭)에서는 주님의 피보다 더 중요한 것은 면죄부라는 증서를 신부에게 돈주고 사는 행위입니다. 신부가 죄인된 신자들에게 돈받고 죄를 사해주는 행위입니다. 고해성사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도 웃기는 짓거리입니다. 신부에게 신자들이 고백하는 것입니다. 죄를 낱낮ㅌ이 고백하고 죄사함을 받는 행위입니다. 그 외에도 견진성사라응 것이 있어서 신부에게 신앙고백을 하는 등 웃기는 신앙행위가 주님의 거룩하신 십자기의 보혈의 피를 더러움으로 분칠하는 행위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톨릭은 이슬람 또는 이스라엘의 광신도들처럼 주님의 은혜에 먹구름을 끼치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죄의 속량은 오직 주님의 십자가의 피흘리심입니다.
2. 그리스도의 대속
예수님은 죄 없으신 분이지만 우리의 죄와 저주를 대신 지셨습니다. 십자가에서 그리스도께서 저주를 받으심으로 인하여 신자들은 율법의 저주로부터 해방되고, 은혜와 자유 안에서 구속을 받게 됩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주님의 은혜로 속량(속죄)하였습니다.
이는 단순한 죄 사함을 넘어, 하나님의 약속과 성령의 임재를 누리는 새로운 신분으로서 천국시심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죽어서 영혼이 하늘고 올라갑니다. 주님과 낙원에 거하게 되는 것을 기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할렐루야!!!!~~~~~
율법과 은혜의 관계: 율법은 인간의 죄를 드러내는 ‘거울’ 역할을 하지만,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 신자들은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않아도 구원받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율법을 모두 지킬 수 없는 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주시는 은혜의 멧시지는 율법을 모두 다 지킬 수 없으니가 간단하게 말해서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것을 우리가 해서하고 믿으시면 그것은 주님의 은혜를 저버리는 결과이며 그리스도인의 믿음이 아닙니다. 율법은 우리는 죄의 사슬에 묶어놓은 하나님의 율법에 묶인 노예의 상태이자 바리새인이나 율법학자들의 가식적인 믿음입니다.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사랑이 없고 그 사랑을 실철하라는 주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바로 나는 십일조생활 하고 주일성수하고 거짓되이 생활하지 않고 성경에서 말하는 대로 다 실천했다고 말하는자가 있다면 그것은 위선입니다. 그 안에 사랑이 없는 것은 울리는 꾕과리에 불과하다고 사도바울은 말했습니다.
3. 주님의 은혜에 사랑으로 답하라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고전13:1-4). 사랑이 없는 자는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고전13장을 우리는 '시링징'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율법의 노예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모두 다 지킬 수 없습니다. 인간의 본성은 죄와 더불어 선한 마음을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동양철학에서 말하는 성악설(순자)과 성선설(맹자) 등으로 나위어지지만 창세기에서 말하는 복음의 오늘의 말씀의 주제는 인간의 행위가 아닌 그리스도의 대속과 믿음을 통한 구원이 사도바울이 말하는 갈라디아서 3장의 중심 메시지입니다.
결론
갈라디아서 3장 13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이 신자들을 율법의 저주에서 해방시키고, 믿음으로 은혜와 자유를 누리게 한다는 복음의 핵심을 선포합니다. 주님의 선하심으로 우리는 이제 구원받았습니다. 감사드리는 마음은 우리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의 열매를 내 안의 심령에 못박고 그 열매의 의미를 깨닫고 실천하는 일입니다. 그것은 갈라디아 5:22-23입니다.
오늘도 우리 만나인을 위하여 주님께서 주신 말씀은 살전5:16-18입니다. 함께 봉독하시면서 말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