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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 - 제17회 응씨배 전국 대학생 바둑대회에 출전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우리 일행은 다시 짐을 챙겨 시합장으로 향했다. 개회식은 꽤 오래 거행됐는데 중국어를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기에 답답하기만 하다. 외국에서 언어장벽을 실감하니 공부의 필요성이 절로 느껴진다.
한편, 7박 8일 동안 우리가 생활하게 될 기숙사의 점심을 맛보게 되었는데 식판에 쌀밥과 여러 음식을 받고 앉으니 분위기가 한국 학교의 급식(?)과 비슷하다. 느끼한 음식도 있었고 먹을 만 한 음식도 있었는데 음식보다 더 무서운 것은 다름 아닌 날씨였다. 밥을 먹으면서 땀이 흘러내릴 정도였으니…. 정말 살인적인 무더위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짐을 풀기 위해 올라간 기숙사는 생각보다 좋았다. 학교 기숙사보다 넓고 특히 화장실이 방 안에 있는 게 마음에 쏙 든다. 약간의 휴식을 취한 뒤, 우리는 설렘을 안고 드디어 ‘응씨배 대학생 바둑대회’ 첫 판을 두러 시합장으로 향했다. 중국 사람들과 두는 바둑이라 왠지 묘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이곳에 오기 전에 ‘시합이란 생각보다는 즐거운 여행 갔다 온다고 생각하자’라며 다짐했었는데 시합 때 느껴지는 긴장감은 여기서도 생기는걸 보면 사람은 누구나 다 게임에서 승리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나 보다.
◇넷째 날 - 중국 상하이는 어떤 곳?
사흘 째 되던 날은 이 시합에 참가하는 모든 사람들(한국, 대만, 중국)의 단체 관광이 있는 날. 이른 아침 버스에 몸을 싣고 우리는 많은 곳을 관광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한국임시정부’, ‘예원’, ‘와이탄’이다. 중국에 ‘한국임시정부’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보니 새삼 신기했으며 우리 조상들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 분들의 희생 덕에 후손들이 이렇게 편안하게 잘 살 수 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에 죄송함과 고마움이 들었고, 평소 생각지 못하고 무심코 불평만 했던 필자의 부끄러운 모습들이 떠올라 고개를 들 수 없다. 이날도 역시 살인적인 더위 탓에 거리를 걷는 것이 정말 힘들었다.
두 번째로 갔던 ‘예원’이라는 곳은 중국의 전통적인 거리다. 우리나라로 말하자면 인사동과 비슷한 분위기라 할 수 있겠다. 일정에는 여기서 1시간의 자유시간이라고 되어 있었지만 중국말을 할 줄 아는 사람도 없고 실수로 길을 잃으면 찾을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말이 자유시간이지 계속 단체로 다녀야 했다. 해외는 처음이라 호기심 탓에 중간 중간 가보고 싶은 상점, 먹어보고 싶은 음식이 많았지만 다 참고 다음번으로 미루고…. ‘예원’에서의 관광은 나에게 아쉬움으로 남는다.
마지막으로 그날 밤, 유람선을 타고 ‘와이탄’ 거리를 감상했는데 너무 멋져 나도 모르게 ‘와~’하고 절로 감탄사를 내뱉었다. 특히 고층 건물들이 제각각의 매력을 뽐내며 높이 솟아 있는데 마치 라스베가스나 유럽의 화려한 도시를 연상케 한다. 그만큼 유람선을 타고 바라본 ‘와이탄’ 야경은 너무 낭만적이었다.
◇한국, 9전 전승으로 여자부 1위
18일, 19일, 20일은 오전 8시에 한판, 오후 2시에 한판으로 시합이 있었다. 내 기억으로는 18일 날 두었던 바둑이 제일 긴장되었던 것 같다.
4국 때 (김)채림이와 두고 5국 때 (김)지은언니와 두었는데 서로 연승한 상태에다가 중국사람 들에 비하면 더 강한 실력을 가졌기 때문에 그랬던 게 아닐까. 사실 마음속으로는 나중에 두기를 바라고 있었지만 필자만 너무 일찍 한국 사람과 두게 되어 대진 운이 나쁘다고 생각했었다. 물론 이긴다면 그만큼 더 좋지만….
그날 승리의 여신은 내편이었을까. 내용으로 보자면 두 판 다 그리 좋은 바둑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운 좋게 이길 수 있었다. 승리 탓에 조금 긴장이 풀린 필자는 남은 대국들에서 훨씬 마음이 편해짐을 느낀다. 그때만 해도 필자가 9연승을 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지만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5연승한 뒤부터 한판 한판을 즐기면서 두었던 것이 9연승과 우승의 원동력이 되었던 것 같다. 항상 그때 그 마음자세로 바둑에 임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여자는 20일 날 모든 대국 일정이 끝났고 1~3위 모두 당당히 한국이 차지했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중국 여자프로기사들도 6명 정도 참가했단다. 둘 당시엔 몰랐는데 우리(김희수, 김지은, 송예슬, 김채림)4명은 모두 프로기사들과 2판 정도는 다들 둔 셈.
한편 남자들은 총 11판을 두기 때문에 21일까지 시합이 계속되었다. 그 시간 여자들은 새롭게 알게 된 중국친구 2명과 함께 ‘예원’에서 자유롭게 쇼핑과 문화를 즐기며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참고로 중국시장에 가는 사람들을 위해 한마디 쓰자면 외국인에게는 엄청 바가지를 씌우기 때문에 무조건 깎아야 한다. 그것도 아주 많이. 요령만 잘 터득한다면 정말 많이 깎아주는 데가 바로 중국시장이기 때문이다. 이 날이 8박 9일의 긴 여정 중 가장 즐거웠던 날이 아니었나 싶다. 오후 3시 경. 우리는 다시 시합장으로 돌아가 시상식을 준비해야 했다. 도착해 보니 남자부도 1~2등(김대혁, 함영우) 모두 한국이 차지했다. 역시 우리나라 바둑이 세긴 센가보다.
그날 저녁, 회장님과 교수님, 그리고 중국 가이드 친구들과 우리 한국선수들은 모두 모여 승리의 축배를 들었다. 필자는 술을 정말 못하는데 그날 회장님께서 따라준 잔은 우승기념의 의미를 담고 있었기에 ‘원샷’을 했다. 그렇게 행복한 만찬을 즐기며 8박 9일의 중국일정은 막바지에 이르고 있었다.
◇바둑으로 엮어진 인연, 그들과의 짧은 만남 그리고 이별
7월22일 중국에서의 마지막 날. 잠을 푹 자고 오전 9시쯤 일어나 우리는 아쉬운 짐을 챙겨야만 했다. 각자 기숙사 앞에 큰 가방을 들고 하나둘씩 나타나는데 기분이 묘하다. 마지막으로 학교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버스에 오르는데, 그새 또 정이 들었나보다. 중국친구들은 공항까지 우리를 따라와 주었고 헤어질 순간이 되자 다들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데 이렇게까지 슬픈 걸 보면 사람의 정이란 참 무섭다.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며 우리 일행은 기어이 한국으로 돌아갈 비행기에 오른다.
그리고 한국 시간으로 저녁 7시 쯤,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해 발을 내딛는 순간 편안함과 함께 또 감회가 새롭다. 맑은 물, 상쾌한 공기, 맛있는 음식이 있는 중국에 다녀오니 평소에 당연한 줄만 알았던 것들이 이제는 너무 소중하게 느껴진다. 한국만이 가지는 소중함을 잊지 말고 감사히 여기며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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