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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시편 23:1~6
심쿵은 신조어로 심장이 쿵할 정도로 놀람을 이르는 말로 하나님을 기쁨으로 심쿵하게 해드리자 입니다.
모든 사람은 취미생활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각자의 취미 생활에 미쳐 삽니다. 저는 저의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기가 취미고, 말씀을 묵상하고 설교준비가 취미고, 설교해야하는 것을 살아보는 것이 취미 생활인데 남들이 보았을 때도 미쳤다 합니다. 그리고 같은 영화 계속해서 시청하기, 산약초도 취미인 것 같고, 낚시도 취미인 것 같은데 이것들에는 미치지 않았습니다. 사무실에서 매일 혼자 말씀 보며 시간보내기 이게 진짜 미쳐 사는 것 같습니다. 또 있습니다. 요즘은 안하는데요. 별을 보고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입니다. 이건 언젠가 다시 시작하고 싶은 취미입니다. 천장에 하늘을 관찰 할 수 있게 지붕을 만드는 것이 꿈이기도 합니다.
저는 성경에서 가장 멋진 취미생활을 산 사람을 찾다가 시편 23편의 저자 다윗을 찾게 되었습니다. 엄청 멋진 취미생활을 살았구나. 그리고 이처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취미생활을 산 사람이 또 있을까? 있겠죠. 제가 여기에 꽂혀서 못 보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시편 23편을 연구하다보니까 그가 새아침이 밝아올 때, 한 낮에, 저녁에 하나님의 마음을 심쿵하게 해드렸구나. 그래서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하시고, 하나님이 먼저 스스로 만군의 여호와가 함께 해주신다 하셨구나, 그래서 만군의 여호와가 집을 친히 지어주신 것이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다윗처럼 하나님의 극진한 대우를 받고 싶으세요. 그럼 오늘부터는 다윗처럼 하나님을 심쿵하게 해드리기 위해 노력하시면 됩니다.
분명한 사실은 오늘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삶이 새롭게 출발하고, 마감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관리 안에 이뤄지고 있습니다. 죽었다는 것은 그에게 주어진 시간이 모두 소진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아직까지 주어진 시간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인생이라 합니다.
인생이라고 하는 것은? 인생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 주신 시간의 길이만큼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생은 시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은 시간이기 때문에 인생을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끊임없이 바꾸어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꼭 뒤돌아봐야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후 하나님이 주신 나의 인생의 시간을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얻기 위해 얼마나 바꾸며 살아왔는가? 왜냐하면 인생이란? 나의 소중한 것을 얻기 위해 나의 시간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하나님의 나라를 얻기 위해 내어주는 시간이 자신을 즐거워 미치게 하는 취미생활만큼이나 즐거운가? 아니면 아깝다고 생각하는가? 살펴봐야 합니다. 그 결과가 오늘의 모습이고, 내일을 만드는 결과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매일매일 내가 무엇과 내 시간을 바꾸며 살아가는지 모르면 언젠가 내 인생에 시간이 소진되는 순간 그 사람은 후회하지 않을까요?
학문에 자기 시간을 바꾸는 사람은 학자가 됩니다. 사람을 가르치는 일에 자기 시간을 바꾸는 사람은 교사가 됩니다. 상업에 자기 시간을 바꾸는 사람은 사업가가 됩니다. 도박에 자기 시간을 바꾸는 사람은 도박꾼이 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멍 때리기만 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삶과 자기의 시간을 바꾸고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닮는 일에 시간을 바꾸는 자는 모든 시간에 하나님을 얻는 생활이 됩니다.
아침에 동쪽에서 해가 올라올 때 장관이죠. 이것을 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죠. 또한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져 갈 때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죠. 그 색채가 매우 아름답죠. 이 아름다움을 보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사람은 그래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저는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이 서쪽하늘을 아름답게 물들여 놓으시고, 지친 나를 위해 위로해 주시는 그 어여쁜 마음을 우리가 느낄 수 있다면, 언제든지 하나님을 심쿵하게 해드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인생의 시간도 시간이 흘러가면 갈수록 아름답게 펼쳐져야 하지 않을까요?
젊은 시절도 아름다워야 하지만, 날이 저물어갈 때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것처럼 나이가 들어갈수록 사람들의 마음만 감동시키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하나님을 기뻐하심의 심쿵으로 채워가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이 답을 시편 23편에서 찾았습니다. 오늘 그것을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은 성경말씀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많이 사랑받는 신앙고백입니다. 이 시는 우리를 한가로운 들녘과 잔잔한 물가로 이끌어 내어 그곳에서 평화스럽게 풀을 뜯고 있는 양들과 그 양들을 철저하게 보살펴 주는 목자의 모습을 보게 해 줍니다. 어떤 학자들은 다윗이 젊었을 때 이 시편을 썼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지만, 저는 그가 인생의 석양이 깃든 황혼의 들녘에서, 유년 시절 들판에서 양을 치던 날들을 추억하고, 소년과 청년, 중년 초기 시절을 사울 왕을 피해 도망하던 어려움을 뒤돌아보면서 하나님의 극진하고도 포근한 사랑의 마음을 감격하여 쓰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묵상하다 하나님을 심쿵하게 하는 세 가지를 찾았습니다. 이것이 다윗의 취미생활이었다는 것과 그는 그렇게 하루를 살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첫째 아침에 하나님을 심쿵하게 하는 방법.(여호와(어디든 계시는 분) 하나님이 내 아버지이심을 믿는 믿음)
한밤중에 아무것도 인지하지 못하는 사망과 같은 깊은 잠에서 뇌가 막 움직여갈 때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이것이 생각의, 말의 첫 고백이라면 하나님은 감동으로 심쿵 하시지 않을까요? 이보다 완벽한 것이 있을까요? 다윗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라고 고백한 뜻은 모든 부족함이 내 편에서 다 채워졌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필요가운데, 그 필요의 해결 자가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내 목자로 삼았기 때문에 내가 부족함이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 한 분만 우리 안에 계시기만 한다면, 온 우주를 창조하신 그 하나님이 내 목자가 되시기만 한다면, 그러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부족하다고 할지라도 언제나 만족함을 얻으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의 육신과 영혼의 갈급함을 미리 아시고 생수의 강이 넘쳐흐르게 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루를 시작하려고 뇌가 깨어날 때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습니다.”라고 고백하며 하루의 시간에 “하나님을 내 목자”로 모셔오는 그런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둘째로 점심에 하나님을 심쿵하게 하는 방법.(하나님을 생활의 현장 가운데 밀어 넣는 믿음)
이것은 “저를 위로해 주세요.”라는 고백으로 하나님을 내 생활의 현장 한복판에 밀어 넣는 것입니다. 아주 멋지게 하루를 열어 일터에 들어가 이리 치이고 저리 찢기고, 밀리며 정신없이 주어 진일에 몰두하다가 오후의 시간이 되면,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싸움의 한 복판에 다윗과 같이 하나님을 심쿵하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윗과 우리들의 생활이 다르지 않았다 생각합니다. 그가 자신에게 주어진 생활의 터전에서 즉 골리앗을 무찌르고 난 이후의 주어진 생활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싸우고, 몸부림쳤는지 그는 3절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생활이 얼마나 고단했는지 이 한 구절에 담았습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그는 매일, 매순간 죽음의 문턱위에 서있을 때, 하나님이 목자가 되셔서 자신을 소생시키셨다 고백합니다.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는지, 우리는 다윗만큼은 아닐지라도 우리도 마찬가지로 수많은 위기에 숨이 막힐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때 하나님을 심쿵하게 하는 점심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치열한 생활의 현장에 점점 몸과 마음이 지쳐갈 때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안위하시나이다”의 뜻은 “위로해 주셨습니다.” 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이렇게 요약했습니다. “저는 많이 지치고 힘들어요. 저를 위로해 주세요.” 이 한마디는 하나님을 심쿵하게 하는 것이라 저는 확신합니다. 여기서 “저를 위로해 주세요”라는 의미는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구원의 능력을 펼쳐 주시면, 하나님께 속해 있기에 하나님이 도우시면 된다는 믿음을 내포하고 있기에 하나님의 마음이 심쿵 하십니다. 저도 치열한 생활의 현장의 위기 때마다 이 고백을 했고, 그때마다 넘어가게 해주셨습니다.
이 고백을 하다보면 눈물이 앞을 가릴 때가 참 많아요. “저를 위로해 주세요” 이 고백은 다윗에게 펼쳐졌던 하나님의 승리의 오른팔의 보호의 역사가, 치열한 생활현장에 펼쳐지게 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그래서 점심에 “하나님 저를 위로해 주세요” 라는 고백으로 여러분의 치열한 생활현장 한가운데 하나님을 밀어 넣는 지혜로운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내 생활의 현장에 밀어 넣는 그것이 승리의 비결입니다.
셋째 저녁에 하나님을 심쿵하게 만들기(하나님의 나라를 꿈꾸는 마음)
그동안 집요하게 추적을 계속해오는 원수들을 피해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빠져나온 그가, 태양이 기울어갈 때 서쪽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석양처럼 하나님께서 자신을 그렇게 그 모든 고통을 그 아름다움으로 채우셨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한 낮에 다가오는 모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는 자신이 이제 빛없는 어둠에서 허덕이다 끝날 것 같았는데. 그 때“여호와가 내 목자이십니다. 여호와가 나를 위로해 주실 줄 믿습니다.라는 믿음을 가지고 그 길을 하염없이 걷고 걸었더니 하나님이 내게 이런 석양의 삶을 주셨다고 5절에 고백합니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이런 은혜를 경험하며 그는 6절의 고백을 통해 하나님을 마음을 크게 놀라게 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우리 주향기교회 성도님들의 하루를 마무리하는 고백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들은 저녁에도 생활의 현장에서 괴롭힘을 받던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아 괴로워하고, 내일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할 때가 엄청 많이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다윗도 그랬습니다. 사울을 피해 도망치면서 숨을 곳이 없어졌을 때 “내일은 어디에 숨어야할까?”하는 걱정에 가득한 저녁을 맞이했을 때 그는 잠들기 전 이런 고백을 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것이 6절입니다.
전 이 고백이 하나님을 아침, 점심을 넘어 하나님을 온전히 심쿵으로 빠뜨리고, 마음이 기쁨의 환의에 빠지게 하는 그런 신앙고백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더 좋은 아침을 만들어 주시려고 열심히 일해주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 다 같이 6절을 읽겠습니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아멘. 그런데 너무 길죠. 그래서 이렇게 요약했습니다. “저는 지금 정말 힘든데 그래도 하늘 아버지의 집에 거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 고백의 힘은 이렇게 나타날 것입니다.
언젠가 달려갈 길을 다 달려가고, 걱정과 수고가 다 끝나게 될 바로 그 때, 우리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뜨겁게 맞아 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 달려갈 길이 많이 남아있고, 그런데 죽음의 음침한 골짜기에 놓여있고, 내가 무너지기를 고대하는 원수들의 목소리와 막대기가 여전히 힘차게 휘몰아치고 있는 그 현장에서 “저는 지금 정말 힘든데 그래도 하늘 아버지의 집에 거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 고백은 하나님을 온전히 심쿵에 빠지게 할 것입니다. 이것이 아버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이후부터 여러분에게 주어진 시간을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취미생활이 되도록 바꾸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의 뇌가 깊은 잠에서 일어나 눈이 떠지려할 때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십니다.”가 고백되어지고, 치열한 생활의 현장에서 힘들어질 때 “여호와의 위로가 필요합니다.” 라고 고백하며 일과를 마치고 집에 들어와 잠자리에 들 때 “저는 지금 정말 힘든데 그래도 하늘 아버지의 집에 거하는 것이 좋습니다.” 라고 하는 이 고백이 저와 여러분의 취미생활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이렇게 표현해도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 여러분을 보시고 너무 기쁘셔서 미치고 팔짝뛰지 않으실까요? 막 덩실 덩실 춤추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니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가 흘러나오더라고요.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다윗의 이고백이 여러분의 취미가 되어 하나님을 끊임없이 심쿵하게 해드리며, 모든 시간에 하나님의 집에 거함으로 만군의 여호와를 누리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