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추석 때 고향엘 갔는데,
아흔 여섯 살 드신 할머니를 모시고 사시는 나의 당숙님께서 쌀을 한 포대 주었네. 객지에서 먹고 사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으냐 하시며....
나는 기껏해야 배 한 상자를 선물이랍시고 가지고 갔는데,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는 말이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은 아닌지....부끄러웠네.
작년 수확한 묵은 나락을 보관해 오다 추석 무렵 방아를 찧은 것이라고 하네. 그 쌀을 서울로 가져와 지금까지 잘 먹고 있네.
근데,
지난주 고흥에 사시는 큰 누님이 쌀, 고구마, 검은콩 등을 택배로 부쳐 왔네. 누님이 보내준 쌀은 올 가을 수확한 햅쌀이어서 그런지 집사람이 밥을 한 끼 해보더니 찰지고 맛도 아주 좋다고 하더구만.
갑자기 집안에 쌀 풍년이 ....
아들 녀석은 군대에 가고 없고 딸 아이는 기숙사에 들어가 있고, 우리 내외 둘이서 쌀 먹어봐야 얼마나 먹겠는가?
집사람이, 당숙님께서 주신 묵은 쌀은 가래떡으로 만들어 주변 친구, 이웃들에게 나눠주고 우리도 좀 먹으면 어떻겠냐고 하네.
나도 대 찬성!
그래서 쌀 3말을 가래떡으로 만들기 위해 동네 떡집으로 갔네.
품삯만 해도 4만원.
쌀 3말로 가래떡을 빚으니 그 양이 엄청 나더구만.
거실에 놔 둔 가래떡 박스에서 모라모락 김이 나는 것이 왜 그리도 맛 있어 보이는가!
침이 꼴깍!
집사람이 가래떡 하나를 꺼내 나더러 먹어보라고 하면서 떼어 주길래 얼른 받아 먹었지. 자기도 한 입 덥석 ....
근데 집사람 인상이 갑자기 찌풀어지는 것이 아닌가?
문제가 생긴 것이네.
묵은쌀로 빚어서 그런지 가래떡이 찰기가 없고 오뉴월에 개×× 축 늘어지듯이
참기름 병에서 기름 떨어지는 것처럼 가래떡이 뚝뚝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이것을 이웃, 친구에게 먹어보라고 줄 수도 없고....
우리 둘은 고민에 빠져버렸네.
(사실 나는 고민도 안 했다네. 왜냐고? 가래떡이란 원래 그런 것 아닌가?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거든)
이 많은 양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집 사람은 떡볶이집에 그냥 공짜로 갖다주는 것이 좋겠다면서 나더러 주변 떡볶이집이나 알아보라네.
근데 똑볶이집도 겨울을 맞아 붕어빵집으로 업종 변경을 해버려 떡볶이는 취급 을 안 한다고 하네.
시간은 흘러 오전 10시에 가져 온 떡이 오후 3시.
드디어 내가 결단을 내렸네!!
“어려운 사이도 아니고 다 촌놈, 촌년들인데 맛이 좀 없고 찰기가 좀 없으면 어때? 먹을 것 귀했던 옛날을 생각해서라도 아니 친구의 성의를 봐서라도 욕은 하지 않을 거야! 무조건 갖다 주자! 대신, 묵은쌀로 빚어서 찰기도 없고 맛도 없다고 사전에 양해는 구하자!”
이렇게 집사람에게 제안을 했지.
제안이라기 보다는 어쩔 수 없는 고육지책인지도 모르겠네.
용기를 내서 집 근처에 사는 초딩 손경옥이 집에 먼저 가져갔네.
한 박스를 경옥이네 탁자 위에 내려놓고
“야! 이 가래떡, 묵은쌀로 빚은 것이라 맛도 별로이고 찰기도 없단다. 알고 먹어라 잉?”
경옥이와 그의 wife는 가래떡 하나를 꺼내 먹어 보더니
“맛 있구만 그래”
나는 그냥 해보는 소리러니 생각했지만, 우리집 사람에게는 그 말이 욕으로 들리었나 보다.
다음 차례는 송선숙이 집.
선숙이 역시 우리집에서 그리 멀지 않는 곳에서 산다네. 고향 친구랍시고 게장, 갈치 속젖 담으면 우리 먹어 보라고 갖다주곤 하는 초딩인데 우리는 그동안 주는 것은 없고 맨당 받아만 먹었지.
그래서 오랜만에 선숙이한테 웬수 좀 갚으려고 했는데
그놈의 가래떡 맛이 통....
선숙이한테 전화를 했더니 자신은 집 밖에 있고, 아들 녀석이 자기 집에 있을 거라고 하면서 아들을 대신 가래떡 받으러 주차장으로 보냈데.
나는 선숙이 아들에게 가래떡 상자를 전해주면서“맛이 별로 없단다!”하고 미리 말을 해 주었네.
선숙이 아들이야 사내녀석이 뭘 알겠는가.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하며 집으로 들고 들어간 뒷모습을 보고 방향을 돌렸네.
이번엔 나머지 한 상자를 가까이 사는 wife 친구 해자씨에게 주기 위해 그 친구집으로 차를 몰았네.
wife는 자기 친구에게 떡을 전해 주면서“뭐라뭐라 @%^^%*&.... 대화를 나누는데 그 내용은 알아들을 수 없으나 짐작컨대“맛도 없고 찰기도 없고....암튼 욕하지 말고 먹어 줘." 뭐 이런 대화가 아니었을까 짐작되네.
세 친구들에게 떡을 나눠주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은근히 걱정이 되데.
경옥, 선숙, wife 친구 해자씨.
다들 우리 욕을 얼마나 맣이 하면서 먹을까?.....
좋은 일 해 놓고도 언짢은 기분으로 시무룩하고 있는데
집사람이 우리 먹을려고 조금 떼어 놓은 가래떡 한 개를 꺼내,
나더러 먹으라고 주네.
근데 왠 일인가?
아까 찰기 없이 뚝뚝 떨어지던 가래떡이 시간이 흘러 조금 굳어서 그런지 꼬들꼬들하면서 제법 맛이 있는 것이 아닌가!
"다행이다. 친구들이 욕 덜 하겠다.”우리는 스스로 위안 삼았네.
저녁이 되어,
굳기 전에 썰어야 한다며 칼과 도마를 가져와, 참으로 몇 십년만에 떡국울 다 썰어 보았네.
도마는 하나인데 둘이서 썰어야 하니, 집사람은 우측 끄트머리에서 나는 좌측 아래 쪽에서....
좁은 도마 공간을 최대한 활용해 한 많은 그 가래떡을 썰었다네.
근데, 그거 아무나 써는 것이 아니데. 손이 아프고 어깨가 쑤시고....
허 허 허!!
나는 가락시장으로 가 고흥에서 난 자연산 굴 2근을 16,000원 주고 사왔네.
굴 한 움큼 넣어서 끌인 떡국 맛 죽여주데!
정말 시원해!
그날부터 우리집 식단 메뉴는“떡국”이라네.
아마도 당분간은 떡국을 지겹도록 먹어야 할 것같네.
ps))친한 친구에게 보낸 편지인데 어투를 바꾸지 않고 그대로 올렸습니다.
많은 양해를 바랍니다. |
첫댓글 월초님 정말 좋은 친구를 두셨습니다 농촌에 자라 성장을 한 나는 가래떡 이야기 서두에 글을 읽으며 이게 아닌데 하고 예감을 했지요 가래떡은 반죽이 참 중요 하답니다 아마도 떡 집에서 반중을 너무 질게 해주었나 봅니다 그럴 경유는 가래떡이 늘어나고 일정하지 않고 볼품도 없답니다 그런 떡을 먹으면 당연히 맛도 반감되겠지요 나중에 떡이 굳고 나면 아마 그때 제맛을 간직하고 있겠지요 그리고 반죽이 물은 떡은 오랫동안 보관하였다가 끓여도 딱딱 하지 않고 나름대로 장단점이 있답니다 월초님 좋은 수필 잘 보았습니다 늘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날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