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5일 말씀과 함께 기도와 함께 하는 오늘은 2023년 11월 9일, 목요일 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시편] [일편] [1절] [2절] [3절] 말씀 입니다.
1절 :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절 :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3절 :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아멘
[복있는 사람은?] 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나물 날곳은 입새부터 안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나물은, 나물이 올라올수 있는 그런 환경이 주어진 곳에서 올라옵니다.
사람들은 산삼을 귀하게 여깁니다. 산삼은 산속에서 저절로 올라와 저절로 자란 것을 산삼이라 합니다.
산삼 씨를 받아서, 사람이 산속에 뿌려서 기른 것은 [산양삼]이라고 하는데, 산양삼을 재배하여 고소득을 올리는 이들이 많습니다.
산삼이 주로 자라는 곳이, 어떤 곳인가를 사람들은 알기 때문에, 산양삼을 재배할때도 산삼이 잘자라는 그런 곳을 찾아서 산양삼을 재배합니다.
그래서 산양삼을 재배할때에는 깊은 산속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그늘이 너무져도 않되지만 그늘이 어느 정도 들도록, 키가 큰 나무가 있는 곳을 택합니다. 그리고 박달나무나 옻나무가 있는 곳을, 산양삼 재배지로 선호합니다. 그리고 물빠짐이 좋으면서도 습기가 있는 곳을 택하여 [산양삼]를 재배 합니다. 이처럼 산삼이나, 산양삼이 자라는 곳이 따로 있습니다.
시편의 대단원은, [복 있는 사람]으로 시작합니다. 복있는 사람은 타고나는 것이 아닙니다. 복있는 사람은, 복받을 자리위에서 살아야 합니다.
복있는 사람은 [세가지] 자리를 피해야 합니다.
첫째는,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도록 꾀는 자를 멀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도록 나에게 달콤한 말로 꾀일때에, [사탄아 물러가라]하고 멀리해야 합니다.
둘째는, 죄인들의 길에 서지를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떠난자들이 죄인들입니다. 하나님을 떠난자들은, 우리가 긍휼이 여기면서 기도해 주며 그리고 전도해야할 대상입니다. 악인들이 가는 길을 함께 가지 말아야 복있는 자입니다.
셋째는,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것]입니다,
악인들은 악한쪽으로 머리가 비상하게 돌아갑니다. "이번 주일만 나하고 등산을 가면, 거기에 요즘 실세라는 그분이 오시니까. 인사한번 땡겨놓게되면 두고 두고 덕이 될 것이라" 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그럴듯한 생각입니까? 꾀가 참 많은 생각입니다. 그러나 복있는 자는 아무리 생각이 기발하고 대단할지라도 하나님의 생각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말을 따라가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함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으면서, 자신을 믿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단한 것 같아도, 복있는 성도는 그런 사람들도 그리고 그런 모습을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복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입니다. 사람이 살아있다면, 하루 종일 숨을 쉽니다. 잠잘때에도 숨을 쉬면서 잠을 잡니다. 그런데도 숨쉬는 것이 힘들지가 않습니다. 복있는 자는 하루 종일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며 기억하며 기도하면서 사는 자입니다. 하루 종일 힘들지 않게 숨을 쉰다는 것은 복받은 자입니다. 숨쉬는 것이 힘들어 한다면 정상이 아닙니다. 건강한 사람은 내가 숨쉬고있다는 것 조차도 의식하지 못하고 삽니다. 복있는 사람은, 하루 종일 말씀 속에 살면서도, 굳이 의식적으로 성경말씀을 기억하며 생각하며 살아야지 하지 않아도 복있는 사람은 항상 말씀을 묵상하며 삽니다.
이처럼 복있는 사람은 [항상 시냇물이 흘러내려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이, 그의 심령은 성령의 은혜로 충만하며, 말씀으로 풍성하기 때문에, 그가 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기 때문에, 그가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합니다.
설령 지금 당장은 형통하지 않은 것 같아도, 좀더 두고보면, 형통하게됩니다. 욥이 그러하였습니다. 요셉이 그러했습니다.
예수님도 형통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로마의 총독의 손에 의하여, 십자가에 두손과 두발이 못박혀 죽을 정도로 형통과는 거리가 너무 멀었습니다. 주님은 형통이 아니라, 큰 불행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단 3일이 지나자 예수님은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무덤을 열고 나오셨습니다. 주님이 다시 사셨습니다. 즉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부활하신 주님을 믿는자는, 그 역시 부활할수 있도록 해주시는 권세를 받으셨습니다.
우리는 복있는 사람입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살도록 합시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복있는 자되게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성도로 살수 있기를 소원하오니 성령충만케하여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 – 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