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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준 (재불음악평론가, 오케스트라 지휘자, 르 쉐네 음악원 교수)
프랑스는 현재 교육과 관련해서 상당히 심각한 변화와 진통을 겪고 있다. 일부 정치인들의 대안이 없는 교육환경 변화로 해당 분야 교육자와 교육계는 신음하고 있다. 음악 분야 역시 예외는 아니다. 현재 파리를 중심으로 한 음악교육의 가장 뜨거운 주제는 개인교습의 폐지이다. 전통적으로 악기 연주는 한 명의 학생이 한 명의 교사로부터 전수받는다. 이 방법보다 나은 방법을 아직까지는 아무도 찾아내지 못했기에 이 방식이 고수되고 있는 것이다. 모두 20개의 구로 구성되어 있는 파리 시내에는 구마다 음악원이 하나씩 있다. 이 파리 시내 구립 음악원을 통해서 7세 전후의 어린아이들이 음악교육을 받기 시작한다. 5세부터 아이들은 음악원에 등록할 수 있는데, 5세에서 7세 사이에는 악기를 선택하고 배우기 이전에 기초적이고 일반적인 음악교육을 단체로 받는다. 간단한 리듬을 익히고, 악기의 소리를 구별해 내고, 또 노래를 부르는 것 등이 프로그램에 포함되어 있다. 7세부터는 자신이 원하는 악기를 선택해서 배울 수 있다. 이때 아이들은 대개 30분 정도의 악기레슨 시간을 부여받고, 수준이 올라갈수록 레슨시간은 30분에서 45분 그리고 60분으로 차차 늘어나게 된다.
그런데 지난해에 한 구립 음악원에서 한 프랑스 남성 교수가 청소년 여학생을 성폭행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런데 그 정도가 폭력이나 강제를 가한 것도 아니었고, 심각한 수준의 사건이 전혀 아니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모든 언론이 이 사건을 매우 크게 보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사건을 빌미로 음악원에서 현재 시행되고 있는 개인레슨 방식을 완전히 폐지해야 한다는 정치권의 입장 발표가 있었다. 물론 대부분의 학부모와 교수들은 이러한 파리 시의 입장에 전적으로 반대하고 있으며, 현재 서명 운동을 벌이고 있다. 교육적인 관점에서의 경험과 철학이 전혀 없는 개인교습에서 단체교습으로의 전환은 전적으로 경제적인 관점에만 기인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현재 파리를 비롯한 프랑스의 음악원에서는 전에는 없었던 우려할 만한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 예를 들어 클라브생(‘하프시코드’라는 악기의 프랑스어 이름)을 가르치던 교수가 은퇴를 하면 과를 폐쇄해버리고 악기를 팔아버리는 등의,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 발생하고 있다. 클라브생과는 악기 가격도 높고 유지비도 많이 들어가고 학생들도 그다지 많지 않지만, 클래식 음악의 역사와 다양성을 고려해 대개의 음악원에는 최소한 한 명의 클라브생 교수가 존재한다. 이런 상황에서 한 교수가 다섯 명에서 열 명 정도의 학생들을 동시에 가르친다면, 음악원과 해당 구 혹은 해당 시의 입장에서는 매우 경제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되지만, 예술교육을 경제적인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것은 매우 위험한 사고방식일 수밖에 없다.
만일 이러한 바람직하지 못한 변화가 지속된다면 이러한 변화를 수용하는 음악 교사들만 생존하게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음악교육의 진정한 가치와 효과인 호기심과 탐구심을 기르는 일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그저 형식적이고, 기능적인 교육이 될 수밖에 없다. 음악교육은 그 특성상 교사인 동시에 음악가여야지만 진정한 음악교육을 할 수 있다. 결국, 프랑스가 처한 이러한 음악교육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진정한 음악교육을 회복하려는 움직임과 또 진정한 음악교육을 할 수 있는 교사들을 양성하는 방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지난 2012년에 릴에 문을 연 상위 음악교육 과정 학교가 최근에 ESMD(Ecole Superieur Musique et Danse Nord de France, 프랑스의 음악과 무용 상위 학교)로 이름을 바꾸고 새롭게 정비되었다. 릴 국립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이자 오케스트라 지휘자인 장-클로드 카자드쉬가 ESMD의 총장직을 맡게 되었는데, ESMD는 프랑스의 음악교육을 담당하게 될 미래의 교사들을 양성하는 매우 중요하고 의미 있는 학교로 이미 커다란 관심을 받고 있다. 릴 시로부터 탄탄한 재정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 ESMD는 또한 프랑스 정부로부터 공인받은 학교이기도 하다. 그리고 시스템의 개혁을 통해서 이곳에서 수여 받게 되는 학위는 유럽에서도 공통적으로 인정받게 되도록 개편되었다.
ESMD 학업과정의 책임자인 자클린 브뤼케르는 ESMD의 궁극적인 목적은 완전한 음악가인 동시에 창의적인 음악 교사인 인재들을 양성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ESMD에서는 파리나 프랑스 음악원에서 DEM(Diplome d’Etude Musicale, 직업 음악가가 되기 위한 첫 번째 관문으로 지역 국립음악원 이상 음악원에서 졸업시험을 통해 받는 학위)을 획득한 젊은 음악가들이 입학시험을 통과해서 입학하게 되면 DNSPM(Diplome National Superieur Professionel de Musicien, 프로페셔널 음악가임을 국가가 인증하는 학위)과 DE(Diplome d’Etat, 국가 교수 자격증)를 동시에 획득할 수 있다. 사실 음악가인 동시에 교육자를 양성하려는 시도는 이미 과거에도 있었다. 프랑스의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알프레드 코르토가 바로 음악가이자 교육자를 양성하려는 목적으로 에꼴 노르말을 설립했었다. 에꼴 노르말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매우 수준 높은 음악교육을 지향하고 있기는 하지만, 사립음악원이기에 학비가 매우 비싸며 입학은 상대적으로 쉬우나 학위를 취득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에꼴 노르말의 최고 연주자 과정이나 학위들은 프랑스는 물론이고 국제적으로도 평가받고 있지만, 오늘날에는 한국, 중국, 일본의 아시아 학생들이 전체 학생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들 아시아 출신의 음악가들은 에꼴 노르말에서 학위를 취득한 이후에 프랑스의 음악교육 현장에서 활동할 기회를 거의 얻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구체적인 통계자료는 없지만, 일본인 피아니스트들이 몇몇 음악원의 반주과 교사이자 반주자로 활동하는 것을 제외한다면, 뛰어난 연주기량과 학위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여기는 언어의 장벽도 한 몫을 차지한다. 만일 외국인 음악가들이, 특히 아시아 출신의 음악가들이 불어의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다면, 릴의 ESMD에 도전해 보는 것은 음악가와 음악 교사로서의 미래를 보장받는 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SMD의 장점은 학비가 매우 저렴하다는 것이며, 그리고 소수이기는 하지만 전액 장학금을 받을 기회도 있다는 것이다. 릴의 ESMD에서 반나절을 보내면서 수업을 참관하기도 했는데, 그 가운데 피아노 교수법 수업은 상당히 흥미로웠다. 아직은 DE가 없지만, 이미 다른 음악원에서 피아노를 가르치고 있는 피아니스트들 열 명이 하나의 그룹을 이루어서 어린 학생과 청소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돌아가면서 가르치고 그 이후에 지도교수로부터 그들의 교육방식에 대한 비판과 조언을 듣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피아노 교수법 수업은 가르치는 방식에 대해서 늘 반성하고, 가르치는 행위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힘을 키워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최근의 여러 가지 심각한 국제정세와 또한 프랑스의 예기치 않은 변화들을 보면서 해보는 생각이 있다. 문화의 수준과 다양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조금 극단적인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만났을 때 문화는 결코 좋은 방향으로 흐를 수 없다는 것이다. 오늘날 곳곳에서 벌어지는 모습들을 보면 이러한 생각을 뒷받침해줄 뿐이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경제력이 없는 문화들을 도태시키고, 그 다양성을 무시하게 마련이다. 음악을 중심으로 하는 순수예술 교육도 비슷한 위치에 처해있고, 불행하게도 그리고 심각하게도 프랑스에서조차 이러한 음악교육의 깊이와 다양성이 무시되는 모습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릴의 ESMD는 어쩌면 스스로의 덫이라고 할 수 있는 학위체계에서 또다시 벗어나지 못해, 대안이면서도 궁극적인 대안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ESMD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교육 프로그램은 미래에 열정적인 음악가인 동시에 창의적인 교육자를 키우는 프랑스 음악교육에 새로운 불을 지피는 역할을 하리라 기대해 볼 수 있다.
총장인 장-클로드 카자드쉬는 필자에게 ESMD의 목적을 이렇게, 다소 폭넓게 정의했다.
“전문적인 음악 교사들이 일을 가질 수 있도록 하고, 또한 이들을 통해서 음악교육을 받음으로써 행복한 아마추어 음악가들이 늘어나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단순하고 순진한 표현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지나치게 지적이면서도 건조한 프랑스 음악교육 현실의 문제점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그의 말의 울림이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