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고양이로다
이장희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香氣)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
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푸른 봄의 생기(生氣)가 뛰놀아라.
- <금성>(1924) -
해 설
[개관정리]
◆ 성격 : 감각적, 즉물적, 상징적
◆ 표현
* 동일한 통사 구조의 반복과 세련된 비유
* 각운적 요소 → ~도다(1,2연), ~아라(3,4연)
* 정적 분위기(1, 3연)와 동적 분위기(2, 4연)
* 의미 전달보다는 대상의 이미지 전달을 중심으로 함.
* 주지적 성향의 날카로운 이미지 제시 → 시각, 청각, 후각적 심상
◆ 주요 시어 및 시구 풀이
*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 촉각적 이미지
* 고운 봄의 향기 → 후각적 이미지, 봄의 포근함.
*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 시각적 이미지
* 미친 봄의 불길 → 시각적 · 역동적 이미지, 봄의 생명력
* 고요히 다물은 → 청각적 · 시각적 이미지
* 포근한 봄의 졸음 → 촉각적 이미지, 봄날의 나른함.
* 날카롭게 쭉 뻗은 → 시각적 이미지
* 푸른 봄의 생기 → 시각적 이미지, 봄의 생동감
* 뛰놀아라 → 역동적 이미지
◆ 주제 ⇒ 고양이를 통해 연상되는 봄의 감각과 분위기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고양이의 털 - 봄의 향기
◆ 2연 : 고양이의 눈 - 봄의 불길
◆ 3연 : 고양이의 입술 - 봄의 졸음
◆ 4연 : 고양이의 수염 - 봄의 생기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작품은 봄과 고양이의 유사점이 시인의 감각에 의해 한군데 묶여진 작품이다. 고양이의 털, 눈, 입술, 수염에 각각 봄의 향기, 불길, 졸음, 생기가 연결되어 있다. 완전히 별개의 것으로 여겨지던 봄과 고양이가 결합되어 완전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신선한 감각이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심오한 의미보다는 그러한 신선한 감각에 주목해서 읽어야 마땅할 것이다.
흔히 이장희는 20년대의 모더니스트라고 불리워진다. 한국에 있어서 모더니스트라는 말은, 작품에 있어서 자연발생적인 감정을 억제하고 감각적인 언어를, 그것도 가능한 한 객관적인 입장에서 제시하고자 한 시인에 의해 쓰여진다. 그리고 이장희가 시를 쓰기 시작한 20년대 초반은 대개 한국 시단에 주관의 범람, 감상적 낭만주의가 판을 치고 있던 때다. 이런 때 그는 아주 냉정한 손길로 이미지 시의 제시를 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당시의 우리 문학계에 적지 않은 충격을 던져 준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 작품을 당시 시단의 경향과 비교해 볼 때, 고양이를 통해 봄을 드러내는 뛰어난 연상 능력과 완벽한 구조적 통일성은 인정되지만, 내면세계나 의식의 깊이나, 독자의 내면을 울리는 감동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는 아쉬움을 남긴다. 아무튼 섬세한 감각과 상징적 표현은 당시에 있어 시인의 독자적 위치를 마련해 주었다.
[작가소개]
이장희(李章熙)
호 : 고월(古月)
성별 : 남
출생~사망 : 1900년~1929년
본관 : 인천(仁川)
저작 : 실바람 지나간 뒤, 새 한마리, 불놀이, 봄은 고양이로다.
<정의>
일제강점기 「실바람 지나간 뒤」, 「새 한마리」, 「봄은 고양이로다」 등을 저술한 시인.
<개설>
본관은 인천(仁川). 본명은 이양희(李樑熙), 아호는 고월(古月). 대구 출신. 1920년에 이장희(李樟熙)로 개명하였으나 필명으로 장희(章熙)를 사용한 것이 본명처럼 되었다. 아버지는 이병학(李炳學)이며, 어머니는 박금련(朴今連)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대구보통학교를 거쳐 일본 교토중학[京都中學]을 졸업하였다. 문단의 교우 관계는 양주동(梁柱東)·유엽(柳葉)·김영진(金永鎭)·오상순(吳相淳)·백기만(白基萬)·이상화(李相和) 등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세속적인 것을 싫어하여 고독하게 살다가 1929년 11월 대구 자택에서 음독, 자살하였다.
<작품 활동>
1924년 『금성(金星)』 5월호에 「실바람 지나간 뒤」·「새 한마리」·「불놀이」·「무대(舞臺)」·「봄은 고양이로다」 등 5편의 시작품과 톨스토이(Tolstoi) 원작의 번역소설 「장구한 귀양」을 발표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후 『신민(新民)』·『여명(黎明)』·『신여성(新女性)』·『여시(如是)』·『생장(生長)』·『조선문단(朝鮮文壇)』에 「동경(憧憬)」·「석양구(夕陽丘)」·「청천(靑天)의 유방(乳房)」·「하일소경(夏日小景)」·「봄철의 바다」 등 30여 편의 작품을 발표하였다.
그의 시는 사후 1951년 청구출판사(靑丘出版社)에서 간행된 백기만 편의 『상화(尙火)와 고월(古月)』에 실린 11편만 전해지다가 1970년대 초반부터 그의 시연구가 본격화되면서 『봄과 고양이』(李章熙全集, 문장사, 1982)와 『봄은 고양이로다』(李章熙全集·評傳, 문학세계사, 1983) 등 두 권의 전집에 그의 유작이 총정리되었다.
이장희의 전 시편에 나타난 시적 특색은 섬세한 감각과 시각적 이미지, 그리고 계절의 변화에 따른 시적 소재의 선택에 있다. 대표작 「봄은 고양이로다」는 다분히 보들레르와 같은 발상법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고양이’라는 한 사물이 예리한 감각으로 조형되어 생생한 감각미를 보이고 있다. 이 시는 작자의 순수지각(純粹知覺)에서 포착된 대상인 고양이를 통해서 봄이 주는 감각을 집약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1920년대 초반의 시단은 퇴폐주의·낭만주의·자연주의·상징주의 등 서구 문예사조에 온통 휩싸여 퇴폐성이나 감상성이 지나치게 노출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는 섬세한 감각과 이미지의 조형성을 보여주고 있다. 바로 뒤를 이어 활동한 정지용(鄭芝溶)과 함께 한국시사에서 새로운 시적 경지를 개척하였다.
<참고문헌>
『봄은 고양이로다』(김재홍 편,문학세계사,1983) 『한국작가전기연구』(이어령,동화출판공사,1980) 『한국현대시인연구』(정태용,어문각,1976) 『한국근대시인연구』(김학동,일조각,1974) 『상화와 고월』(백기만 편,청구출판사,1951) 「기재 이장희군의 추억」(양주동,『현대문학』,1963.1.) 「조춘시정: 고월과 상화와 나」(윤붕원,『죽순』,1948.3.) 「고월이장희의 추억」(김영진,『여성』,1939.7.)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이장희(李章熙))]
첫댓글 감사합니다
무공 선생님
댓글 주심에 고맙습니다.
오늘도 건필, 건승, 건강과 함께 하시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