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 중에도 기온이 30도 밑으로 떨어지지 않는 사상 초유의 초열대야. 서울만해도 열대야가 20일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아침 출근길부터 사람들의 표정이 밝지 않다. 에어컨이 있는 가정은 에어컨을 켜놓고 자다가 추워서 깨고, 끄고 자면 금세 더워져 또 깨는 걸 반복하기 일쑤지만 그나마 사정이 나은 축에 속하니 불평할 수도 없다. 에어컨이 있든 없든, 초열대야 속에 다들 잠을 깊이 자지 못하니 낮에 컨디션이 제대로 일리가 없다. ‘잠이 보약이다’는 옛 말이 결코 틀리지 않다. 이 더운 여름에 조금이라도 잠을 푹 잘 수 있게 도와주는 슬립테크(Sleep-tech)에 대해 알아보자.
슬립테크는 말 그대로 ‘잠자는 기술’, 잘 자고 잘 일어나기 위한 수면기술이다. 수면(Sleep)과 기술(Technology)이 결합된 슬립테크는 수면 패턴을 모니터링해 수면과 기상의 생리적 데이터를 기록, 잠을 잘 잘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술이다.
사람의 잠은 얕은 수면상태 다음에 오는 깊은 수면상태를 지나면 렘(REM) 수면 상태가 되는데 이러한 사이클을 잠을 자는 동안 계속 반복한다고 한다. 이 같은 사용자의 수면 데이터를 수집, 분석해서 수면을 돕는 게 슬립테크인데, IT 기술을 활용해 숙면을 돕는 제품이나 사용자의 수면 패턴을 모니터링하는 앱 등이 많이 나와 있다.
꿀잠 도와주는 슬립테크
수면 부족 문제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의 민간 연구소인 랜드연구소는 수면 부족으로 인한 미국의 경제적 비용이 최대 4110억 달러에 이른다고 발표했고 일본은 1380억 달러, 독일은 600억 달러, 영국은 500억 달러로 추산된다. 수면 관련 산업의 붐은 슬립테크를 가속화하고 있다.
슬립테크는 최근 들어 ICT 기술을 접목해 수면장애의 원인을 파악하고, 수면의 질을 높이는 제품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세계 3대 ICT 전시회로 꼽히는 CES와 MWC, 그리고 IFA 같은 행사에서도 슬립테크 제품들이 꾸준히 개발되어 등장하고 있다.
올해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가전전시회 CES 2018에서는 슬립테크 존이 만들어졌다. 센서가 부착된 매트가 사용자의 움직임과 코골이, 심박수 등을 체크해 모바일 앱으로 보여주는가 하면 사용자가 침대에 누우면 조명을 꺼주고 잠에서 깨어나면 방 온도를 높여주기도 한다. 또한 사용자가 코를 골면 목과 어깨에 자극을 주어 코골이를 멈추게 하고 실내 온도에 따라 매트리스 온도를 조절하는 제품이 선보이기도 했다.
IT 기반의 슬립테크 제품들
LG유플러스는 수면상태를 측정하고 분석해 건강한 수면습관 형성을 도와주는 ‘IoT숙면알리미’를 출시했다. 이 제품은 이용자의 호흡과 맥박, 뒤척임 수 등을 측정 및 분석해 종합적인 수면 상태를 이해하기 쉽게 점수로 환산하여 스마트폰 앱에서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잠든 시간, 잠들기까지 걸린 시간, 깊은 잠과 얕은 잠의 비중 등의 수면 정보를 일, 주, 월 단위로 알려주고, 자신에게 맞는 수면가이드도 함께 제공한다.
IoT 기술을 결합해 더 나은 수면을 취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수면 안대도 있다. ‘스마트 수면 안대’라 할 수 있는 이 제품은 얼굴에 가해지는 압력을 최소화하고 뒤통수에 압력이 가해지도록 설계되어 수면 안대를 착용해도 불편함 없이 잠을 청할 수 있다. 심장 박동 센서가 탑재되어 수면상태를 모니터링하며,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전용 앱을 통해 4가지의 사운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아울러 적외선 치료 기능이 지원되어 잠을 자는 동안 눈 주변의 혈액순환을 촉진시키며, 피부 및 건강 개선을 돕는다. 다른 나라로 여행 및 출장을 떠날 때, 전용 앱에 비행 날짜와 시간을 입력하면 새로운 수면 스케줄을 생성해 시차로 인한 피로를 줄여준다.
▲ IoT 기술을 이용한 ‘수면 안대’ (*사진 출처: Dreamlight 홈페이지)
노키아는 세계 최대 가전제품 전시회인 CES 2018에서 ‘노키아 슬립(Nokia Sleep)’을 선보였다. 센서가 부착된 매트 형태로 침대 매트리스 아래에 넣어두면 스마트폰 속 ‘헬스 메이트’ 애플리케이션(앱·응용프로그램)과 연동해 사용자의 움직임과 코골이, 심장박동을 체크해주며 사용자가 침대에 누우면 센서가 인식해 자동으로 방 안 조명을 꺼주고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면 방 안 온도를 올려주는 IoT 기기이다.
▲ 스마트 슬립 센서 패드 (*사진 출처: 노키아)
수면 패턴을 분석해 평소 수면 습관을 관리할 수 있게 도와주는 다양한 스마트폰 앱이 있다. 대표적으로 ‘슬립타임’ 앱을 들 수 있다. 이 앱을 실행하고 잠이 들면 사용자가 뒤척일 때마다 스마트폰에 흔들림이 전해지게 되는데, 이를 기록해 수면상태를 체크해준다. 사용자가 언제 잠들었는지, 언제 깊은 잠과 얕은 잠을 잤는지, 몇 시에 일어났는지 등을 상세하게 기록하기 때문에 그래프를 직접 확인하고, 사용자 스스로 수면패턴을 관리할 수 있다.
▲ 수면 패턴을 분석해주는 앱 (*사진 출처: 애플 앱 스토어 프리뷰)
이 밖에도 '백색 소음'을 통해 수면과 긴장 완화를 돕는 제품도 있다. 필립스가 선보인 '스마트 슬립 헤드밴드'는 백색소음을 이용해 귀에 쉽게 익숙해지는 자연스러운 소리로, 작게 반복되면서 주변 소음을 덮어주는 기능을 한다. 기기의 센서가 뇌파를 분석해 뇌의 활동에 따라 적합한 백색 소음을 들려주면서 잠이 들게 유도하고 깊은 수면 상태를 이어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 백색 소음을 이용한 수면 유도 기기(*사진 출처: 필립스)
코골이가 심한 사람을 위한 슬립테크 제품도 있다. 사용자들의 코골이를 모니터링하고, 수면을 분석하는 스마트베개인 지큐이다. 사용자는 지큐의 전용 앱을 통해 잠드는 데 도움이 되는 음악을 재생할 수 있는데 타이머를 설정하면 설정한 시간에 음악이 자동으로 멈춰 수면에 더욱 집중할 수 있다. 또한 사용자가 잠을 자는 동안 코를 골게 되면 베개에 부드러운 진동이 가해져 사용자가 최적의 수면상태를 찾아 수면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해준다. 뿐만 아니라 스마트폰 앱을 통해 코골이 점수 및 수면 데이터를 확인할 수 있다.
경제에도 영향을 미치는 ‘잠’: 슬리포노믹스
굳이 열대야가 아니더라도 한국인의 잠자는 시간은 다른 국가의 사람들에 비해 매우 적은 것으로 유명하다. 최근에는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와, 스마트폰 사용 등으로 불면증을 앓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른바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 수치로 따지면 최하위 점수라도 해도 과언이 아니다.
OECD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평균 수면시간은 6시간 48분으로, OECD 국가 전체 평균 시간인 8시간 22분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보험공단의 조사에서도 수면장애 환자는 2010년 32만명이었던 것이 2015년엔 45만명으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이처럼 수면이 부족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상황을 반영해 ‘슬리포노믹스(Sleeponomics)’ 시장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슬로포노믹스는 수면(Sleep)과 경제학(Economics)이 결합된 용어로, 질 좋은 수면의 중요성에 대해 공감하는 웰 슬리핑(Well-Sleeping) 시대로 향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최근 강남이나 종로, 여의도 등 오피스 밀집지역을 중심으로 낮잠카페가 생겨나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제 잠을 자는 것도 돈을 주고 자야 하는 시대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