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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7 (수) 장세동 “5·18 사과? 할 필요도 없고 할 것도 없어”
전두환씨의 최측근 장세동 전 공수특전사령부(특전사) 작전참모는 지난 5월 9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5·18 등) 역사의 모든 문제는 어느 시간이 도달하게 되면 다 밝혀지게 돼 있다. 세상에 비밀이 어디 있어? (훗날) 다 밝혀지게 돼 있다”고 말했다. 12·12 군사반란 가담 혐의로 3년 6개월형을 선고받았던 장씨는 ‘전두환씨 손자 전우원씨가 5·18에 대해 사과했다. 지금이라도 5·18과 관련해 사과할 용의는 있느냐’는 물음에 “다음에 그건 자연스럽게 돼. 그런데 지금 당장 할 필요도 없고 할 것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내가 필요하다면 열번이고 백번이고 천번이고 못 할 이유도 없다. 그런데 (이번에 사과한 전두환) 손주는 그때(1980년 5월)는 (태어)나지도 않았다. 그 사람이 자신의 느낌을 얘기한 건데, 그걸 (나와) 연계시켜 ‘당신은 어떠냐’(고 묻는 것), 그건 말이 안 된다”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장씨는 통화 중 여전히 전씨에게 깍듯한 존칭을 사용했다.
장씨는 “(전두환) 대통령도 대통령 하시면서 (피해자들에게) 일반적인 얘기로는 (위로를) 다 하셨잖아?”라며 “대통령으로서도 아픔을 간접으로 위로를 전부 다 했다. 그러나 유가족의 입장으로 봐서는 ‘그게 사과냐?’(라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5·18 유족들은) 희생된 아픔에 감정적으로 소화를 아직도 못 시키고 있다. 그 가족한테 무슨 말을 한들 희생된 분들의 영령이 살아나는 것도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회고록을 남길 생각이 있느냐는 물음엔 “나는 안 남겨”라고 힘줘 말했다. 그는 “나는 개별적인 건 생각이 없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그것을 가지고 또 다른 해석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모든 것을 내가 잘했다 하는 것으로 지금까지 한번도 해본 적이 없다. 모든 공은 그 사람들 몫으로 돌려줬지, ‘그건 내가 한 거야’라고 생색을 내본 적도 없고”라고 말했다. 전남 고흥 출신인 장씨는 12·12 군사반란 당시 30경비단 단장으로 쿠데타 지휘부의 참모장 역할을 했다. ‘부동의 2인자’로 꼽히던 그는 5공 시절 대통령 경호실장과 국가안전기획부장(지금의 국가정보원장)을 지냈다.
전두환 정권 시절 대통령 경호실장 등을 지내며 ‘부동의 2인자’로 군림했던 장세동(86)씨가 최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5·18 직전인 1980년 5월15일에 광주를 방문했다”고 밝혔다. 장씨는 당시 공수특전사령부(특전사) 작전참모(대령)였다. 5·18 직전 장씨의 광주 방문은 이상한 전 특전사 군수참모 등이 검찰 조사 등에서 진술한 바 있지만, 장씨가 직접 날짜를 특정해 방문 사실을 밝힌 것은 처음이다.
광주에서 아직 특별한 소요 상황이 벌어지기 전 신군부의 핵심이자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의 심복인 장씨가 광주를 찾은 것은 주의 깊게 살펴야 할 대목이다. 장씨는 항쟁 기간인 5월21일, 24일, 26일에도 광주 전투병과교육사령부(전교사)에 머물며 계엄군의 진압 작전 계획 수립에 깊숙이 관여한 의혹을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장씨가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의중을 광주 현지의 계엄군 지휘부와 공수특전여단에 전달하는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장씨는 5월 9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5월 15일 C-54 비행기(수송기)를 타고 (광주) 전교사에 잠깐 들러 이틀 뒤(5월 17일) 7공수 특전여단 2개 대대가 광주에 도착한다고 알렸다”고 말했다. 그는 “전교사 실무자들 몇 사람 만나 ‘(7공수여단이) 배속(된다는) 명령 받으셨죠. 잘 좀 돌봐주십시오’ 하고 얼굴을 내밀고 온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씨가 전교사를 방문한 5월 15일은 2군사령부가 닷새 전인 5월 10일 ‘학원소요에 대한 증원 계획’에 따라 전북 금마에 있던 7공수여단 4개 대대를 전북대, 충남대, 전남대, 조선대에 배치하기로 결정한 직후다. 7공수여단은 장씨의 광주 방문 이틀 뒤인 5월 17일 밤 10시쯤 금마 주둔지를 출발해 5월 18일 새벽 1시 10분 광주에 도착했다. 장씨는 “거기(광주)에 대대장만 덜렁덜렁 보낼 수가 없잖나. 여단장은 혼자여서 네군데(4개 대대)를 전부 다닐 수가 없었다”며 “내가 거기를 잠깐 들른 것은 내가 (특전사) 작전참모로 (7공수)여단장을 보조해준 것”이라고 했다.
장씨의 광주 방문은 전두환 신군부가 그해 2월 19일에 수립한 ‘소요사태 대비 계획’과 관련이 있다. 육군본부는 특전사(5월 6일)와 전교사(5월 9일)의 탄약 확보 현황을 점검하는 등 시위 진압 계획을 치밀하게 준비했고, 2군사령부의 특별건의에 따라 7공수여단을 전주·대전뿐 아니라 광주에서도 ‘사용’하도록 했다. 5·18 때 7공수여단을 광주에 투입할 수 있는 근거가 이때 처음 마련된 것이다.
장씨는 전남도청 앞 집단발포가 있었던 5월 21일 정호용 특전사령관과 함께 광주에 있었고, 5월 24일에도 광주 현장에 있었다. 장씨는 “5월 24일날 이제 (서울로) 돌아오려고 헬리콥터 시동을 막 걸고 있는데 (광주 송암동에서 군부대 간) 오인 사격이 났다”며 “그때 전교사 사령부에 있다가 그 헬리콥터를 타고 바로 현장에 가 부상자들 수송하는 것을 전부 보고, (서울로) 왔다”고 말했다. 장씨는 5월 27일 전남도청 등 시가지에서 이뤄진 최후 진압 작전 때도 광주에 있었다고 했다. 그는 “5월 26일 저녁에 광주에 가서 밤을 새우고 5월 27일 오전에 (서울로) 왔다. 새벽 4시인가 (상황이) 종료가 돼 더 있을 필요가 없었다”고 말했다.
장씨는 5·18 항쟁 기간 중 각종 작전에서 상당한 구실을 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그 내용이 구체적으로 밝혀진 건 거의 없다. 전두환 신군부는 그동안 시위대 유혈진압과 5월 21일 도청 앞 집단발포를 실행한 공수여단이 5월 23일까지는 전교사와 31사단에 배속돼 있었다는 점을 들어 발포·학살 책임을 부인해왔다.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은 지휘계통에 속해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5·18 당시 장씨의 광주 행적에 대해서는 1995~96년 12·12 및 5·18에 대한 검찰 수사 당시 별도의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장씨에 대한 검찰 조사는 12·12 군사반란에서 맡았던 역할에 집중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12·12 반란의 핵심이자 전두환의 심복이었던 장씨의 광주 행적은 당시 검찰 수사에서도 일부가 드러났다. 백남이 당시 전교사 작전참모는 1995년 12월 27일 검찰 조사에서 “(송암동 오인 사격으로) 공수부대원 9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는데, 그날 오후 장세동 특전사 작전참모가 전교사 작전참모실로 와서 저에게 ‘상황 전파를 잘못해 우군끼리 사고가 났으니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고 진술한 바 있다.
5·18 기간에 전교사 건물 1층에 있던 상황실과 별도로 2층 전교사 사령관실 옆에 ‘특전사 기밀실’이 설치돼 있었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백남이 전 참모는 1996년 1월 6일 검찰 조사에서 “정호용 특전사령관이 전교사 2층 감찰참모실을 전용방으로 썼으며, 그 앞 기밀실에 무전기 등을 설치하고”라는 증언을 한 바 있다. 신우식 당시 7공수여단장은 같은 날 검찰 조사에서 “전교사 2층 사령관실 옆에 평상시 사용하지 않는 소회의실에서 주로 머물렀다”고 진술했다. 그가 말한 ‘소회의실’은 기밀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익명을 요구한 5·18연구자는 “광주에 투입된 3·7·11공수여단장이 장세동씨 등과 함께 ‘기밀실’에서 수시로 회의를 하는 등 사실상 광주 투입 공수부대의 지휘부 역할을 했던 장소로 의심받고 있어 조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장씨의 광주 행적과 관련해 눈길을 끄는 부분은 장씨의 직속상관이었던 정호용 당시 특전사령관이 2021년 2월과 5월에 있었던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5·18조사위)에 낸 조사 신청서에서 5·18 당시 장씨의 광주 행적을 조사해달라고 요청했다는 점이다.
정씨는 당시 “5·18 당시 광주를 네차례 방문했지만, 인사·군수지원만 담당했을 뿐 (나에게) 실질적인 작전 지휘권은 없었다”며 “1980년 5월 10일께부터 5월 27일까지 장(세동) 대령이 보고하지 않고 광주를 수차례 방문했지만, 지휘계통에서 배제된 나는 이유를 물어볼 수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씨의 이런 주장에선 특전사의 5·18 유혈진압 책임은 당시 진압군 지휘계통에 있지 않았던 자기보다 모종의 임무를 띠고 광주를 여러차례 찾았던 장씨에게 물어야 한다는 뉘앙스가 강하게 풍긴다.
이와 관련해 <한겨레>는 정씨에게 여러차례 전화를 걸고, 문자메시지를 보냈으나 응답하지 않았다. 물론 장세동씨는 정호용씨가 제기한 의혹을 일축한다. 장씨는 <한겨레> 통화에서 “(예하 여단을 타 부대에 배속시킨 이상) 절대 (그 부대의) 권한을 침범하거나 개입할 수가 없다. 사령관이 권한이 없는데 작전참모가 가서 뭘 한다는 것이냐”고 되물었다.
장씨는 ‘전두환 보안사령관에게 광주 상황을 보고했느냐’는 물음에는 “그런 데다 연결하지 마라. 전두환 보안사령관하고 특전사 작전참모하고는 아무것도 관계가 없다”고 부인했다. 장씨의 광주 행적은 5·18 당시 군 지휘권의 이원화 여부를 규명하는 데 있어 중요한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전두환씨 등이 5·18에 대한 책임을 부인하는 것은 당시 보안사령관이었던 자신은 계엄사령관-2군사령관-전교사령관-31사단장-공수 특전여단장으로 이어지는 지휘체계 바깥에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심복인 장세동씨가 특전사 작전참모의 자격으로 광주에 머물며 진압 작전에 개입했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신군부 실권자인 전씨가 대리인 장씨를 통해 광주 현장의 진압부대에 직접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방증이 되기 때문이다. 5·18 발포명령 책임을 규명하려면 장세동씨와 현지 보안부대장 등을 고리로 현장의 계엄군과 공수여단 지휘부로 연결된 비공식 지휘라인의 작동 양상을 집중적으로 파헤쳐야 한다는 뜻이다.
이준석·하태경·김웅 등 비주류… '김남국 사태'로 존재감
더불어민주당 출신 김남국 의원의 코인 투기 의혹 과정에서 날카로운 공격력을 보여준 국민의힘 인사들이 주목받고 있다. 이준석 전 대표를 비롯해 하태경·김웅 의원 등 비주류로 분류되는 인물들이다. 이들은 김남국 의원 사태에서 쟁점이 산으로 가지 않도록 중심을 잡았으며, 언론 보도를 바탕으로 새로운 의혹을 제기하며 이슈를 주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코인 투자 경험이 풍부한 것으로 알려진 이준석 전 대표는 초창기 '60억 코인 보유' 의혹이 제기됐을 때부터 '불법 내부정보 이용' 여부에 주목했다. 김남국 의원의 청렴 코스프레, 가상자산 과세 유예법 발의는 도덕적 비난 대상이 될지언정, 진상 규명과 멀어지고 여론전도 진영대결로 끝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재명 대표는 "'없는 척했는데 재산이 있었다' 이런 건 검증의 영역도 아니고 그냥 욕먹고 끝날 일"이라며 "잘못 물고 들어가면 되치기 당한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공개 시장정보 외 다른 정보 취득 및 이용 여부 △비실명 개인지갑 이체 여부 두 가지에 집중할 것을 제안했다.
실제 김남국 의원은 의혹 초기 "윤석열 라인의 '한동훈 검찰 작품'"이라며 진영대결로 몰아가려 했다. 하지만 '확실한 정보 없이는 잡코인에 수십억을 투자할 리가 없다'는 지적이 공감대를 얻으며 김남국 의원의 방어를 무력화시켰다. 김남국 의원이 상장 직전의 마브렉스라는 코인을 대량 매입해 이익을 봤다는 사실도 이 과정에서 새롭게 밝혀졌다.
검찰 출신인 김웅 의원은 페이스북에 '투신(투자의 신) 김남국'이라는 연재 글을 통해 자칫 파편화될 수 있는 문제를 팩트와 쟁점 중심으로 명확히 정리해 관심을 모았다. 의원들 사이에서도 "사안을 잘 이해하려면 김웅의 글을 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김웅 의원은 이번 사태의 본질을 △자금 출처 △내부정보 이용 여부 △P2E 업체의 로비 여부 세 가지로 정리한 뒤, 김 의원을 향해 주식 매도 내역과 업비트 계좌 입출금 내역, 업비트 거래내역 공개를 압박했다.
나아가 '내부조사를 통한 시간끌기'와 '물타기'가 민주당의 대응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김웅 의원의 예상대로 민주당 조사위는 "자료가 방대하다"는 이유를 대며 김남국 의원의 자진탈당까지 결과를 내놓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여야 국회의원과 보좌진 등을 대상으로 한 '코인 전수조사'를 제안했다. 물타기를 할 것이라는 예측이 정확히 들어맞은 대목이다.
하태경 의원의 경우는 소문으로만 무성했던 P2E 업체들의 국회 로비 의혹을 공론화하는데 역할이 컸다. 김남국 의원이 만약 검찰의 수사를 받는다면, 가장 직접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혐의라는 점에서 '입법 로비' 의혹은 특히 중요하다는 분석이다. 이재명 대표의 대선 공약이었던 P2E 규제 완화 등은 업계의 로비 결과이며 김 의원이 이를 주도했을 수 있다는 게 핵심이다.
하태경 의원은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P2E를 옹호하는 업계가 있는데 김남국 의원이 이를 허용하자고 앞장을 섰고, 심지어 이재명 대선 공약에도 이게 들어가 있다"며 "규제 완화가 되면 코인 가격은 확 오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코인 뇌물 사건 정황이 나오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페이스북을 통해서도 "대선 당시 게임 공약 검토할 때 출처 모를 수많은 P2E 합법화 제안을 많이 받았다. 사행성 게임에서 P2E만 제외해달라는 내용"이라며 "미래산업을 가장한 도박합법화였기 때문에 전부 거절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P2E 입법 로비는 있었다"고 확정적으로 말했다.
쇼핑카트 끌고 집에 가는… 강남 아파트 주민들
서울 서초구 뉴코아아울렛 강남점 직원 A씨는 “쇼핑카트를 점포 밖으로 끌고 나가 사용하는 것 자체가 문제인데, (주민들이) 전혀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건 명백히 재물손괴와 절도에 해당합니다. 바퀴가 훼손돼 안전사고가 우려된다’고 아무리 말해도 되려 항의를 하니까 이제 제재를 잘 안 하게 됩니다.” 지난 5월 15일 서울 서초구 뉴코아아울렛 강남점에서 만난 직원 A씨는 서초구 주민들이 쇼핑카트를 점포 밖으로 반출해 사용하고 있는 행태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한 주민이 카트를 가지고 점포 밖으로 나가길래 ‘짐도 무거우니 잘 사용하고 다음부터는 자제해달라’고 했는데, 오히려 화를 내며 ‘40년 넘게 사용 중인데,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고 말하더라”라며 “마트 물건을 가지고 가지 말라고 부탁하면 오히려 클레임이 들어온다”고 하소연했다. 쇼핑카트를 점포 밖으로 끌고 나가 개인용 카트처럼 사용하는 서초구 주민들 때문에 인근 마트·백화점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매년 100개가 넘는 쇼핑카트가 분실되고 훼손돼 금전적 손해가 만만치 않지만, 반출을 금지할 경우 항의가 들어오고 매출이 떨어질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이다.
일부 주민들은 “시민의식 실종”이라고 비판하고 있지만, 쇼핑카트를 사용하는 주민들은 “편리한 시스템”이라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어서 당분간 논란은 지속될 전망이다. 5월 16일 조선비즈 취재를 종합하면, 서초구 잠원동아·신반포자이·반포르엘2차·신반포2차·신반포4차아파트로 인근 마트·백화점의 쇼핑카트 수백대가 반출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곳 주민 다수가 쇼핑을 마친 뒤 구매한 물품이 당긴 쇼핑카트를 점포 밖으로 가지고 나와 자신의 집 앞까지 끌고 가는 것이다.
이들은 물건을 집 안으로 옮긴 뒤 가져 온 쇼핑카트를 반납하지 않고 아파트 단지 내에 세워두고 있었다. 아예 대문 앞에 쇼핑카트를 놓고 분리수거 배출 등을 위해 쓰레기를 실어 나르는 데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지난 5월 10일 오후 잠원동아아파트 단지에 들어서자 쇼핑카트 수십대가 방치돼 있었다. 한 쇼핑카트는 아예 주민들이 통행하는 아파트 입구 앞에 서 있었다. 이날 이 아파트 단지 내에 세워진 쇼핑카트만 26대였다. 인근 신반포자이아파트 단지 내에는 30여대가 세워져 있었다.
이렇게 버려진 쇼핑카트는 마트·백화점 직원들이 직접 회수하고 있다. 대형 트럭을 동원해 쇼핑카트를 실은 뒤 다시 점포에다 가져다 놓는 방식이다. 이곳 관계자에 따르면 매일 200개 이상의 쇼핑카트를 회수하고 있다. 쇼핑카트가 점포 밖에서 사용되다 보니 매년 100~200개가 분실된다고 한다. 쇼핑카트를 직접 회수하는 직원 B씨는 “아파트 단지 말고도 대로변에 버린 경우도 많고, 한강·테니스장 등 별의별 곳에 많다”며 “사람들이 다니다가 길에서 쇼핑카트가 보이면 우리한테 전화하고, 우리가 그걸 찾으러 간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 아파트 단지에 수거하러 갔더니 아파트 보도블록이 깨진다고 (쇼핑카트를) 끌고 가지 말라고 했다”며 “카트를 아파트까지 끌고 가는 것은 문제가 아니냐. 회수하는 트럭 소리가 시끄럽다고 해서 트럭도 전기차로 바꿨다”고 토로했다. 이들이 쇼핑카트를 반출하는 이유는 편리함 때문이다. 자동차를 타고 쇼핑을 한 뒤 아파트 단지에 주차를 하면 도보로 이동하는 것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데다 주차한 곳에서 자신의 집까지 무거운 짐을 들기가 불편하다는 것이다
“사용한 카트는 반드시 지정된 장소에 반납해 달라” “카트는 자사의 자산으로 건물 밖 외부 반출을 금지한다”
“쇼핑카트 외부 사용 시 바퀴 훼손 및 안전사고 발생의 원인이 된다” .뉴코아아울렛 강남점 내부에는 이런 안내 문구가 이곳저곳에 붙어 있었지만, 일부 주민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쇼핑카트를 끌고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그러나 점포 내에서만 사용하도록 제공되는 쇼핑카트를 개인 물건처럼 사용하는 것은 시민의식 실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주민 C(34)씨는 “시민의식이 이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에 충격”이라며 “남의 물건을 훔쳐오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 아이들 보기에 부끄럽다”고 했다. 이어 “관리비로 돈을 모아서 아파트 단지 소유의 쇼핑카트를 만들고 운영하면 되지 왜 남의 물건을 훔쳐 오냐”며 “문제를 문제로 보지 않는 것이 심각한 것 같다”고 했다. 일부 주민들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다른 아파트 단지도 이러한 시스템을 하루 빨리 도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5월 10일 쇼핑카트를 끌고 아파트 단지로 들어온 60대 여성은 쇼핑카트 사용에 대해 “부정적인 것 보다는 긍정적인 의견이 더 많았다”며 “쇼핑카트를 끌고 오면 시간도 단축되고 기름값도 아끼고 더 경제적이다. 한국에서도 이런 시스템이 도입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은 “마트에서는 다소 불편할 수 있겠지만,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며 “주기적으로 카트 픽업도 오고 있다”고 했다.
한 주민은 “잠깐 (쇼핑카트를) 가져가는 것이고, 다 쓰는 것”이라며 무엇이 문제냐는 반응이었다. 인근 마트·백화점은 제대로 된 제지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쇼핑카트 반출을 금지하면 오히려 항의를 받고 매출이 떨어질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한 점포 관계자는 “매일매일 그냥 수거하는 방법밖에는 없다”며 “위치추적기를 다는 등 다른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최대한 회수를 많이 하려고 한다”고 전했다.
종림길 26......원주시 신림면 용암2리 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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