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절 도를 묻다
1 가바라성을 떠난 싯다르타 태자는 동쪽으로 향했다. 밤새도록 말을 달려 일백칠십여 리를 전진하여, 날이 밝아 라마 시에 이르렀다. 다시 후와미 하수를 건너 깊은 숲에 들어가, 가장 고요한 곳에 자리 잡고 앉아, 눈을 감고 명상에 들었다. 명상에서 깨어나자, 가엾은 차닉과 건보를 바라보며 말했다.
"차닉아, 너무나 애썼다. 너는 저 건보를 데리고 궁성으로 돌아가거라. 차닉아, 너는 나의 부왕께 이렇게 여쭈어라. '내가 만일 나고 늙고 병들고 죽음의 근심ㆍ슬픔ㆍ괴로움을 끊지 못하면 왕궁에 돌아가지 않으리라.' 하더라고. '내가 만일 가장 올바른 깨달음을 얻지 못하면 결코 부왕을 찾아뵙지 않으리라.' 하더라고. 그리고 '은혜와 사랑의 정이 다 없어지지 않을 때에는 대애도 부인과 야수다라를 다시 만나지 않으리라.' 하더라고."
그때 차닉은 땅에 쓰려져 울며
"소인이 어찌 태자님을 이곳에 두고 홀로 돌아가오리까?"
"응, 이 세상 법은 홀로 났다가 홀로 죽는 것이다. 어떻게 나고 죽음을 같이 하겠느냐? 나고 늙고 병들고 죽음의 모든 괴로움을 지니고서 어찌 좋은 너희들의 동무가 되겠느냐? 나는 이제 모든 고를 끊어 없애고자 이곳에 온 것이다. 이 괴로움이 끊어져 없어진 뒤에야 비로소 모든 사람의 좋은 동무가 될 것이다. 나는 이제 모든 괴로움을 여의지 못했거니 어떻게 너희들의 좋은 동무가 되겠느냐?"
"태자님, 궁중에서 자라나신 연약한 몸과 수족으로 어떻게 이 산 숲속, 가시밭, 자갈 위에 거처하실 수 있으리까? 또한 사나운 짐승과 독한 벌레의 침범을 어찌하오리까?"
"진실로 네 말과 같다. 궁중에 있으면 이 가시밭의 괴로움은 면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늙고 병들고 죽음의 괴로움이야 어찌 면할 수 있겠느냐. 또한 사나운 짐승과 독한 벌레의 침범의 두려움은 없을지 몰라도, 늙고 병들고 죽는 두려움이야 어떻게 면할 수 있겠느냐?"
차닉은 다시 할 말이 없어 울기만 했다. 그때 태자는 머리에 쓴 보배관의 귀중한 보물과 몸을 장식했던 황금, 진주, 영락 등의 패물들을 끌러 차닉에게 주며 말했다.
"차닉아, 보관 속의 보배는 부왕께 바치고, 목걸이는 대애도 부인께, 가슴걸이는 야수다라에게, 그 나머지는 여러 권속에게 나누어 주어라. 그리고 부왕과 대애도 부인과 야수다라에게 이렇게 여쭈어라. '내가 궁성을 떠난 것은 부왕과 대애도 부인과 야수다라를 이별하기 위함이 아니며, 또한 천상에 나기 위함도 아니다.' 라고 하더라고. '다만 나고 죽음을 두려워하고 그것을 끊어 없애기 위함이라.' 하더라고. 그리고 부왕께서 '태자는 아직 젊었으니 세상에서 할 일을 하다가 집을 떠나도 늦지 않다'고 하시거든, 너는 나의 말로써 이렇게 여쭈어라. '죽음이란 정해 놓은 때가 없다.' 하더라고. '사람이 젊어서 건강하다고 해서 늙고 병듦을 면할 수 없다.' 하더라고. 그리고 '내가 해탈의 도를 이루지 못하고는 결코 궁성에 다시 돌아가지 않으리라.' 하더라고. 그리고 '도를 이루면 곧 집에 돌아가 부왕님과 대애도 부인을 찾아 뵐 것이니, 근심 걱정 마시라.' 하더라고. 야수다라에게도 그와 같이 여쭈어라."
이렇게 부탁하고, 태자는 허리에 차고 있던 보배 칼로 머리털을 끊었다. 그리고 마침 어떤 사냥꾼이 짐승을 속이기 위하여 사문의 가사 옷을 입고 있는 것을 빌려 입었다. 가사 입은 사문은 짐승이 해치지 않기 때문이다.
차닉은 목메어 울며 하는 수 없이 싯다르타 태자의 처소를 떠나 궁성으로 돌아갔다.
2 태자는 거기서 발가바 선인을 비롯한 여러 수행자가 모여 도를 닦는다는 숲을 찾아갔다. 멀리서 태자의 모습을 바라본 여러 수행자는 태자의 그 비범한 골격과 혁혁한 위덕에 눈을 집중했다. 태자는 발가바 선인을 찾아 인사하고 그 수행하는 광경을 관찰하였다. 혹은 풀을 엮어 옷을 만들고, 혹은 나무껍질과 잎으로 옷을 만들어 입었으며, 혹은 하루에 한 끼, 이틀에 한 끼, 사흘에 한 끼를 먹으며, 또는 나무 열매나 꽃으로 요기하고, 혹은 물과 불을 신으로 받들어 섬기며, 혹은 해와 달을 신으로 섬기고, 혹은 한 다리를 들고 서 있으며, 혹은 진흙 먼지 속에 누워 있고, 혹은 가시덤불에 누우며 또는 물과 불에 누워 있기도 했다. 태자는 그것을 보고 발가바 선인에게 물었다.
"당신들이 하는 고행은 매우 기특하오. 그런데 고행으로 어떤 과보를 구하려 하오?"
"이 고행으로 장차 천상에 나고자 하노라."
"모든 것이 하늘에 나면 비록 즐겁다 하지만, 그곳도 복이 다하면 다시 육도에 윤회하게 되나니, 어찌 고행을 닦아서 마침내 고의 과보를 구하려 하는가?"
발가바 선인은 말이 막혔다.
3 그때 가비라성에서는 큰 소동이 일어나 성 안팎이 진동했다. 정반왕은 자리에 쓰러지고 대애도 부인과 야수다라 부인은 정신을 잃고 우는 소리에 궁중은 떠나갈 듯했다.
차닉이 태자의 보관과 의복과 패물들을 건보에 싣고 돌아오자, 정반왕과 대신들은 차닉을 태자를 도피시킨 죄로 죽이려고 했다. 그러나 차닉이 태자의 간 곳을 알므로 차닉을 앞세우고 대신 우다이가 말을 달려, 다시 라마 시를 더듬어 후아미 하수 건너, 발가바의 선인의 처소까지 찾아갔다. 거기서 어느 나무 밑에 고요히 앉아 있는 태자를 발견하고, 우다이는 태자 앞에 나아가
"태자시여, 태자를 잃어신 대왕께서는 은애의 정에 타는 불이 몸을 사르고 있소. 태자가 궁에 돌아가지 않고는 대왕의 몸에 타는 불을 끌 수가 없소. 대애도 부인과 야수다라 부인, 그리고 모든 권속은 다 근심과 고뇌의 바다에 빠져 있소. 태자시여, 이 가엾은 부모와 권속을 타는 불과 같은 바다 속에서 구원하여 주소서."
하고 애원하였다. 그러나 태자는
"내가 부왕과 대애도 부인 야수다라 부인의 은애의 지성을 모르는 것이 아니요. 그러나 그 은혜와 사랑의 모임은 언제나 반드시 이별하고야 마는 것이오. 조금 먼저 이별하나 늦게 이별하나 살아서 이별하나 죽어서 이별하나 반드시 이별하고야 마는 것이오. 내가 이제 부왕과 대애도 부인과 야수다라와 이별하는 것은, 이번의 이별로 말미암아 다시 이별이 없는 법을 닦으려 하는 것이오. 칠보 궁전 속이 매우 안락한 듯하지만 그 속에는 무서운 불이 타고 있소. 나는 한때의 이별ㆍ괴로움ㆍ근심을 견디고, 길이 이별이 없고 나고 죽는 근심 슬픔이 없는 길을 찾아 궁성을 떠난 것이니, 내가 그 길을 찾기 전에는 다시 궁성에 돌아갈 수 없소. 한때의 안락은 영원한 고통이며, 한때의 고통은 영원한 안락이 되는 것이니, 이 말로써 부왕께 또는 대애도 부인과 야수다라 부인에게 전하여 주오."
대신 우다이는 눈물을 흘리며
"태자의 말씀은 잘 알아들었습니다. 그러나 옛적에 도 높은 선인의 말씀을 들으면, 한 분은 '미래세의 과보가 있다.' 하고, 한 분은 '그런 과보가 없다.' 하였습니다. 미래에 과보가 꼭 있는지 없는지 확실하지 않은데, 이제 현세의 낙을 버리시고 미래의 낙을 찾는다는 것이 그 어찌 꼭 믿을 수 있는 일입니까? 어서 궁성으로 돌아가십시다."
"저 두 선인이, 하나는 미래의 과보가 있다 하고 하나는 없다 하니, 둘이 다 의심되는 말이지 확정한 말이 아니오. 나는 이제 그런 말을 좇는 것이 아니오. 나는 어떤 과보를 바라고 이곳에 온 것이 아니오. 눈앞에 있는 나고 늙고 병들고 죽음, 그것은 반드시 겪지 않으면 아니 되는 것이니, 나는 이것을 해탈하고자 하는 것이오. 나는 오래지 않아 나의 도를 보일 것이오. 나의 뜻은 마침내 뒤집을 수 없는 것이오. 돌아가서 부왕께 이렇게 전하여 주오."
하고 태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대신과 차닉을 작별하고 당시에 가장 이름 높은 도인 아라라가란을 찾아갔다.
4 대신과 차닉은 울며 왕의 사명을 완수하지 못한 채 돌아갔다. 태자는 남쪽으로 항가 하수를 건너 마가다 국에 들어, 그 수도인 왕사성을 지나갈 때이다. 시민들은 가비라성 태자가 지나가는 것을 보려고 파도처럼 몰렸다. 그 나라 빈바사라 왕은 높은 누각 위에서 태자를 바라보고, 수레를 몰고 나가 태자를 맞이하여
"인자여, 어찌하여 궁성을 떠났소? 당신은 일종씨의 후예로 전륜성왕의 덕상을 갖추었다 하는데, 당신이 만일 부왕이 계시기 때문에 왕위를 얻기 어려워서라면 내가 이 나라의 반을 나누어 주겠소. 그것이 적다면 이 나라를 다 내맡기겠소. 만일 내 나라를 가지기 싫다면 내가 이 나라 군사를 내줄 터이니, 다른 나라를 정벌하여 그 땅의 왕 노릇을 하도록 하오. 태자의 요구라면 무엇이든 다 들을 터이오."
라고 간청하였다. 태자는 왕의 호의에 감격하였다. 그러나 대답하기를
"대왕이시여, 왕은 본래 월종씨로서 성품이 고상하며, 하는 일이 탁월하다더니 과연 그러합니다. 대왕의 나라를 저에게 내어 주시겠다는 말씀은 너무나 고맙습니다. 그러나 저는, 내 나라도 버리고 나왔는데 어찌 대왕의 나라를 차지할 것이며, 하물며 군사를 일으켜 다른 나라를 빼앗겠소. 저는 이제 나라보다, 재산보다 귀중한 도를 위하여 집을 떠나 온 것이오. 세속의 오욕락을 구하기 위함은 아닙니다."
태자는 왕의 지나친 호의에 감격하여 세상 오욕을 탐하지 말고 바른 도로써 나라를 다스리기를 부탁하고, 왕을 작별하려 하였다. 왕은
"당신은 해탈의 큰 도를 구하려고 세상의 왕위도, 오욕도 다 버리고 집 떠난 사람이 되셨으니, 도를 이루시거든 나를 먼저 제도하여 주오."
하며 은근히 작별을 슬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