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교(기원,유래,특징)
루터교회라는 호칭의 유래
마르틴 루터는 본래 새로운 교회를 세우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동안 교회 안에 들어온, 성서적 근거가 없는 풍습들을 정화하고 고대교회의 순수한 신앙을 되찾으려 했다.‘루터란’이라는 명칭은 개혁자를 비판하는 이들이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경멸하는 말로 사용하였는데, 나중에는 이 말이 루터교인들 스스로 자신들에 대해 부르는 자랑스런 이름으로 고정되었다.
그 이후 루터교회는 북유럽을 중심으로 전 세계로 퍼지게 된다. 루터교회는 개혁자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으나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루터 자신도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자기 이름 '루터'를 붙여서 부르는 것을 극구 반대하였다.
“나는 사람들에게 내 이름을 더이상 언급하지 말아 달라고, 그래서 우리들을 루터교인이라 부르지 말고 그리스도인이라 불러 달라고 하였다. 루터가 무엇인가? 내 교리는 확실히 나의 것이 아니다. 내가 누구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히지도 않았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3장에서 자기들을 바울파 혹은 베드로파라 부르지 못하게 하였다. 도대체 이 약하고 추한 시체 같은 내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자녀들에게 나의 쓸모없는 이름에서 유래한 이름을 붙이겠는가? 아니, 안 된다. 나의 친구들이여, 모든 파당의 이름을 제해 버리고 우리들을 그리스도의 교리를 가지고 있는 그 분의 이름을 따라 그리스도인이라 불러 주시오.
”루터교는 온 세상의 그리스도의 교회는 하나임을 믿는다.“교회에 관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이 가르칩니다. 하나의 거룩한 교회는 영원히 계속될 것입니다. 이 교회는 복음이 순수하게 설교되고 성례전이 바르게 집행되는 성도의 회중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참 일치를 위해서 복음의 가르침과 성례전의 집행에 대하여 일치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인간의 전통, 곧 인간이 만든 의식이나 예식이 어디서나 같아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에베소서 4:5,6)고 사도 바울이 말한 것과 같습니다.”[1]아우구스부르크 신앙고백서, 제7조
신학논쟁과 일치
루터의 사후 독일에서의 루터사상은 비텐베르크에 중심을 둔 멜란히톤식 인문주의를 대표하는 ‘필립파’와 에나를 중심으로 한 ‘정통 루터파’ 간의 갈등으로 갈라졌다. 이들 간에 있었던 여러 논쟁들의 중재안과 칼뱅주의와의 논쟁에서 주장된 것을 채택한 것이 ‘일치 신조문’(1577년)이다. ‘일치 신조문’은 ‘아우구스부르크 신앙고백서’ 50주년 기념으로 출판된 ‘일치서’(1580)에 다른 루터교 신조들과 함께 게재되었다.
루터교회의 확산 북유럽
16세기 종교개혁이후 루터교회는 독일 루터교회에서 유럽 루터교회로 발전하였다. 1525년 이후 프로이센, 1527년 이후 북구 제국 스웨덴과 핀란드, 1537년 이후 덴마크와 노르웨이, 1539년 이후 아이슬란드와 그리고 발트 해의 여러 국가들 (1523 - 39) 등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였으며 그 외 일부 동부 유럽 지역으로 전해졌다. 독일에서는 ‘일치서’ 이후로부터 17세기 말까지는 루터교 정통주의의 시대이다. 이후 정통주의는 경건주의로 대체되었고, 경건주의 다음으로는 계몽주의가 뒤따랐다. 19세기 이후로 루터주의는 여러 다양한 신학 조류에 따라 조금씩 변화되곤 했다.
오세아니아와 미국
아메리카 대륙과 오세아니아 지역에서의 루터교는 주로 유럽으로부터 이민자들이 유입되면서 세워지기 시작하였다. 유럽에서 ‘30년전쟁’의 전화를 피해 일부 루터교도들은 미국으로 이민을 하였다. 이들은 초기에는 유럽 선교협의회들로부터 온 목사들의 목양을 받았다. ‘미국 루터교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뮐렌베르그는 1742년 프랑케 할레 선교회에서 파송되어 온 후, 북미의 루터교도들을 하나의 신앙고백으로 연합시키고 순수성을 보존하려고 힘썼다. 그는 루터교도들을 조직하는 데도 큰 역할을 담당하여 1748년 미국 최초의 루터교 대회가 열리게 되었다.
미국 미주리 시노드
기독교 한국 루터회와 형제교회 관계에 있는 미국의 미주리 시노드(LCMS)는 1839년 750명의 독일 작센의 거주자들이 ‘연합주의’와 종교의 합리주의를 피해 미국 미주리주로 이주한데서 시작된다. 월터 목사의 영도 아래 이들 이민자들은 바바리아의 뢰헤가 보낸 일단의 목사들과 함께 1847년에 첫 대회를 열었다. 미조리 의회는 1997년 선교 150주년 기념식을 가졌다.
아시아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루터 교회는 주로 유럽과 미주 지역에서 선교사를 파송하여 세운 교회이다. 두 대륙 가운데서도 아프리카의 탄자니아 등 일부 국가와 아시아의 인도네시아 교회는 괄목할만한 성장을 보이고 있다.
루터교 세계연맹
루터교 세계 연맹(LWF)은 1947년 세계 루터란들 사이의 공존과 협조를 발전시키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복음 전파와 기타 교회의 사명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여러 루터교회들과 그룹들을 지원하며 한편으로, 기독교의 가시적 일치와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삶을 실천하려는 진보적 기독교 운동인 에큐메니컬 운동에 대한 관심과 참여를 고양시킨다. 그 외에도 공동체로서 사회적, 경제적 정의와 인권을 증진시키는 데 노력하고 있다. 현재 124개 루터교회가 회원 교회로 가입하여 참여하고 있으며, 전 세계 루터란의 94% 이상이 그 회원이다. 그 본부는 세계교회협의회(WCC)본부와 함께 스위스 제네바에 있으며, 한국 루터교회는 1972년에 가입하였다.
교리
고대교회의 신조들인 니케아 신조(381), 사도신조, 아타나시우스 신조와 마르틴 루터가 자신의 신앙을 정리한 신앙고백인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을 통해 신앙을 고백한다.
3대 기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