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이후 남북한간의 대치상태가 지속됨에 따라
대한민국 정부는 주요 동맹국인 미국에게 지나치게 의존적인 대북정보체계의 개선을 위해 1991년부터
독자적인 대북감시 및 정보수집계획의 일환으로 백두/금강사업이라는 암호명의 계획을 추진하게 됩니다.
이 계획은 1996년에 이르러 해외 방산업체로부터 공개입찰을 통해 결정하기로 하였는데
백두사업에선 미국, 프랑스, 이스라엘의 방산업체가 금강사업에선 미국과 캐나다의 방산업체가
각각 입찰에 참여하였습니다.
그해 6월 28일 대한민국 국방부는 백두/금강의 두 프로젝트 모두 미국의 방산업체를 통해
장비를 사들이기로 최종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당시 발표된 공식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첫째, 공개입찰에 참여한 업체 중 미국 만이 유일하게 FMS(대외군사판매제도)를 갖추고 있어서
이후 첨단 기술사업에 관한 미 정부의 보증을 받을 수 있다.
(대외군사판매제도 : 미국이 동맹국에 대한 안보지원의 일환으로 후속 군수지원이 용이하며
미 정부의 군사표준규격이 적용됨으로 품질상의 보증과 염가구매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으나
납품지연에 따른 책임대상이 불분명한 점과 특정가격 이하 제품에 대한 하자보증 불가 등의 단점도 있습니다)
둘째, 기존의 한미 연합정보체계를 흩뜨리지 않는 선에서 타국가의 장비보다 우선시 되었다는 점.
이에 따라 백두사업은 E시스템 사와 레이시온 사가,
금강사업은 로랠 사 (현 록히드 마틴 사)가 각각 선정됨으로써 마무리 되는듯했습니다.
그러나 선정된 업체들이 제시한 가격이 탈락한 경쟁업체들보다 훨씬 높게 제시됬음에도 불구하고 채택된 점과
당시 시험평가단으로부터 최저점을 받은 기종인 호커 800이 보다 높은 점수를 받은
이스라엘의 라파엘 사와 프랑스의 톰슨 사측 기종을 제치고 최종 선정된 점,
이렇듯 실전에서 불안한 평가를 받은 장비를 굳이 미국 군수업체의 영향하에 있는 FMS방식을 내세워
선정된 부분 등의 의혹이 탈락 업체들에 의해 제기되었고 급기야
1998년에는 군사 기밀사항유출혐의로 긴급체포된 전 현직 군 장성들에 대한 수사로 인해
96년의 방산업체 선정과정에 대한 의혹이 일부 주목을 받게 됩니다.
사건의 자세한 내막인즉슨
합참 정보본부 소속의 이화수 대령이 무기중개업체인 IMCL사에 소속된 무기중개상이자
전직 장성인 신동윤, 김장환 예공준장에게 백두사업과 관련된 기밀사항을 10여 차례 전달하였고
이를 받은 중개상들이 IMCL의 미국본사 사장인 린다 김에게 팩스로 보낸 혐의가 확인되면서부터였습니다.
한국식으론 김귀옥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로비스트인 린다 김에 관해선
1953년 경북 청도출생으로 1975년 또는 1979년에 도미하여 1995년에 무기중개업체인 PTT 사를 설립한 뒤
이를 IMCL 사로 개칭하는 한편 미국의 E시스템 사와 이스라엘의 IAI 사의 로비스트로도 활동하며
국내의 고위급인사들과 친분관계를 유지하는 미모의 여성 실업가정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업체선정과정에서 로비의혹이 제기됨에 따라 린다 김과 백두금강사업이 언론의 조명을 받기 시작하자
1996년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최종승인이 나기 3개월 전인 그 해 3월에 국방부 장관인 이양호가
자신의 고등학교 선배이자 환경부 장관인 정종택의 소개를 받아 린다 김을 만난 사실이 확인되었으며
린다 김과 이양호 장관 사이에 오고 간 편지가 발견됨에따라 백두금강 사업을 둘러싼
모종의 로비의혹이 점차 불거지게 됩니다.
당시 발견된 편지에는 두 사람 사이의 부적절한 애정관계를 담은 내용이외에도 업체 선정과정에 대한
사적인 개입을 의심할 수 있는 내용 등이 포함되어있었으며 더불어 편지를 주고받은 이양호 장관 외에도
다수의 정계 인사들이 린다 김과 연루되어있을 것이라는 추측을 불러오기도 했습니다.
(당시 편지 내용의 일부가 올라온 기사의 주소 : http://news.donga.com/3/all/20000503/7531331/1)
(이후 린다 김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기도 했다고 증언한 이양호 장관은 같은 해인
96년 10월, 경전투헬기 관련사업과정에서 대우중공업 사이에 뇌물수수혐의로 인해 구속수감됩니다)
린다 김의 로비의혹에 대한 수사는 2000년 4월 30일, 검찰이 그녀를 백두금강 사업과 관련한 군사기밀 취득과
백두사업과 관련된 군 장성들에게 뇌물공여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게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됩니다.
그러나 수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5월 8일 검찰은 린다 김에 관해서
더 이상 수사할 것이 없다는 점을 들어 수사를 종결짓게 됩니다.
그 까닭으로는 문제시 된 백두금강 사업관련 의혹에 대해선
이미 군 수사기관과 감사원 등에 의해 수차례 걸러진 상태이며, 이양호 장관과 린다 김 사이의 관계가
검찰수사단계까지 가야하는 것은 적절치 않고 언론에서 제기하는 의혹이
검찰이 수사해야 할 범죄단서까진 아니라는 점에서였습니다.
하지만, 린다 김 로비의혹이 단순 스캔들이 아니라는 주장과 더불어 이에 관한 전면적인 재수사의 여론과
세간의 관심은 더욱 증폭되었고 이를 반영하듯 당시 신문에는 그녀의 과거행적과 사생활 등을 다룬 기사가
빠짐없이 등장하곤했습니다. 결국 같은 해인 2000년 7월 7일에 서울지방법원에서 열린
린다 김에 대한 판결에서는 뇌물공여혐의와 군사기밀취득 혐의로 인한 죄질의 불량에 따라
불구속 기소 상태에서 구형된 징역 3년과 자격정지 3년의 판결에서 징역 1년의 실형 선고를 내림으로써
법정구속 판결을 받게 되었지만 이윽고 열린 9월 21일의 항소심에서
징역 1년과 집행 유예 2년을 구형받게 됨에 따라 그녀는 구치소 수감상태에서 풀려나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뒤인 9월 29일 린다 김은 로스엔젤레스 행 비행기 편을 타고 미국으로 출국하고 맙니다.
이로써 그녀의 출국과 동시에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로비의혹은 막을 내리게 됩니다.
최근 린다 김은 여러 언론매체를 통해 종종 그녀의 근황을 보이고 있더군요..
종종 신정아 사건과 비교가 되기도 하던데 린다 김 자신도 신정아 사건과 비교당하길 거부하듯이
이 사건의 파장자체가 신정아 사건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어마어마한 사건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첫댓글 나라의 안보를 담보로 돈을 챙기려는 사람들...
ㄷㄷ
덧붙이자면 이 사건은 결국 98년 당시 백두사업에 관한 군사기밀사항 유출혐의로 연루된 전 현직 군인사 6명 정도만 구속수감되었을 뿐입니다. 정작 백두사업의 정보를 빼돌린 회사의 총책임자는 불구속 상태 (정확히는 아주 잠시동안은 법정구속...)로 입건되었다가 돌연 미국으로 출국하였고요.
몇 해전 SBS에서 방영해준 드라마 로비스트도 그렇고 신정아 사건 때도 다시금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린다 김 씨는 최근 몇몇 매체와 인터뷰에서 백두금강 사업 입찰당시 공군 출신의 이양호 전 국방장관이 정부 내 권력암투의 희생양이며 자신또한 이 전 장관과의 부적절한 관계가 없었음을 토로하는 언급을 자주 하지만 권력암투와 부적절한 관계가 실제있었는가의 여부를 떠나서..백두/금강사업이 당시로선 최대규모의 대북정보체계 프로젝트이자 어쩌면 자주국방이라는 큰 그림에서 중요한 기점이 될 수도 있었음에도 해당 정무관들의 도덕성 부재로 인해 결과적으론 국방사업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무너뜨린 사건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