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추리문학으로 분류하지만 교고쿠의 이 소설을 추리소설로 봐주기에는 약간의 문제점
이 있다. 어떠한 작품이 '추리문학'이라는 장르에 소속되기 위해서는 필연적인 장르적 속박
을 수용해야하는데, 그것은 '독자가 납득하는 상식적인 해결'이다. 독자는 납득할 수 있어
야 하고 자신이 범인을 알수 있었는데 속핬다는 느낌을 받아야한다; 이게 없는 소설은 독자
의 입에서 '이건 사기야!'말이 절로 나오게 하고 추리소설내에 집어넣을 수가 없다.
이는 해리포터가 그 기막힌 복선, 다분히 추리소설적 구성과 인물구도를 갖췄음에도 추리소
설로 분류되지 않는 이유와 같은 것이다. 독자는 4권 말미에 해리를 살린 것이 '볼드모트와
같은 핵을 가진 지팡이'라는 것은 복선으로 예측할 수 있지만 그것이 정확히 '프리오리 인칸
타템'이라는 것은 절대로 알 수 없다. 그것은 상식이 아닌 '작품내 고유설정'이기 때문이
다. 사건 해결을 상식에 기초하지 않는 것은 독자 추리의 자유를 앗아가버린다.
물론 추리문학 내에도 '작품 내 고유설정'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홈즈는 절대로 까먹지 않
는다든가 모든 목격자들은 기억력이 좋다는 식의 '사건을 위한' 설정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
것들은 사건해결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지 않으며 그저 추리게임에 도입되는 '룰'로 작용한
다.
그렇다면, 교고쿠도의 이 소설은 무엇인가?
우부메의 여름은 독특한것이, 사건의 해결을 상식이 아닌 '작품내 설정'에 대폭 의존하고
있다. 우선 주요 트릭인 '신뢰할 수 없는 화자 세키구치'가 있고 '판타지적 설정에서 기능하
는 탐정 에노키즈' 그리고 비현실적인 범인 '아무개(;)'가 있다. 여기서 독자는 어디까지가
설정이고 어디까지가 트릭인지 구별하지 못하고 작가가 만들어놓은 수많은 추상적 개념속에
서 허우적댄다. 하지만 독자는 이에 대해 작가에게 이의제기를 할 수 없다. 작품을 통한 작
가의 질문이 바로 이것이기 때문이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감각인가?
철석같이 믿고 있는 감각에 대한 새로운 의심과 순수한 관념이 만들 수 있는 비극과 트릭.
지극히 실제적인 룰을 따르는 추리소설을 쓰면서, 교고쿠는 관념의 세계를 비웃지 않는다.
그 무엇보다 현실성을 추구하지만 그에 따른 역으로 현실이 만들어내는 환각과 속임수를 보
여줄 수 있는 추리문학의 특성을 이렇게 이용한 작가도 있을 수 있을까.
인간 논리의 가능성을 긍정하는 장르인 추리지만, 사실 인간은 논리적이지 않기에, 작가는
그것을 말하기에, 나는 우부메의 여름에서 쓰인 트릭에게 사기라는 비난을 상큼하게 접어두
겠다. 상식과 비상식, 이성과 환상의 화해는 일상에서도 자주 일어나는 일이 아닌가. 우리
는 상식으로 비일상을 살고있기에.
첫댓글 정통 추리소설로 보긴 무리가 좀 있습니다. 그러나 스토리 구조와 결말까지의 논리적 연결은 탁월한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