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고향
윤동주
고향에 돌아 온 날 밤에
내 백골이 따라와 한 방에 누웠다.
어둔 방은 우주로 통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어둠 속에 곱게 풍화 작용하는
백골을 들여다보며
눈물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백골이 우는 것이냐?
아름다운 혼이 우는 것이냐?
지조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 게다.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백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가자.
(손진은 시인)
안 그래도 고향의 개소리를 들으며 윤동주의 이 시를 생각했습니다. 사람이 남에게 눈치나 보고 그들에게 비워를 맞추는 비굴한 자아를 '백골'이라는 말로 표현하여 냉정하게 자신을 들여다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요. 3연의 '풍화작용'이라는 말은 동주가 자연과학개론을 들으면서 배운 용어를 썼는데, 얼마나 의욕적인지요? 마침내 자아는 지조 높은 개에게 쫓기어(각성되어) 본연의 자아만 살아있는 '본향'(또다른 고향)으로 향한다는 서사입니다. 저도 최근 문예지 겨울호 4편을 쓰면서 매 시는 참된 언어를 향한 모험이요 긴장이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느꼈습니다.
흰그림자/윤동주
황혼이 짙어지는 길모금에서
하루종일 시들은 귀를 가만히 기울이면
땅거미의 옮겨지는 발자취소리,
발자취소리를 들을수 있도록
나는 총명했던가요.
이제 어리석게도 모든 것을 깨달은 다음
오래 마음 깊은 속에
괴로워하던 수많은 나를
하나, 둘 제고장으로 돌려보내면
거리모퉁이 어둠속으로
소리없이 사라지는 흰 그림자,
흰 그림자들
연연히 사랑하던 흰 그림자들,
내 모든 것을 돌려 보낸뒤
허전히 뒷골목을 돌아
황혼처럼 물드는 내방으로 돌아오면
신념이 깊은 의젓한 양처럼
하루종일 시름없이 풀포기나 뜯자.
‘또 다른 고향’과 연속하여 읽을 수 있는, 일본 동경에서 쓴 5편(1942년 4월 14일) 중 한 편 ‘흰 그림자’도 한번 읽어보시지요.
‘또 다른 고향’에서 백골을 떠나보낸 것처럼 이 시에서도 “괴로워하던 수많은 나를/하나, 둘 제고장으로 돌려보내”고 “연연히 사랑하던 흰 그림자들”을 포함하여 내 모든 것을 돌려 보낸 뒤,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차분한 자아(“신념이 깊은 의젓한 양”)가 되는 이미지가 보입니다. 참 좋은 시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