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로 한 남자가 목을 부여잡고 찾아왔다. 누군가 목을 조르고 후라이팬으로 머리를 때렸다며 검사해달라고 요구했다. Human trouble 냄새가 솔솔 나는 그 환자는 고소네 어쩌네를 운운하면서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고 말했다. 이리저리 그 환자를 살피던 사이 또 한명의 환자가 안면부 통증을 주소로 응급실에 찾아왔다. 그리고 그 뒤를 한 건장한 청년이 따라 들어왔고, 그렇게 모인 세사람은 갑자기 만담을 주고 받기 시작했다.
상해를 입은 두사람은 서로 자기가 형님이라며 목소리를 높였고, 그 사이에서 한 건장한 청년은 둘의 싸움을 말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딱보기에도 멀쩡해보였던 두사람은 접수도 안한채로 한참을 누워서 니가 잘못했네 내가 잘못했네로 옥신각신 하더니 급기야 서로 경찰서에 고소하겠다며 으름장을 놓기까지했다.
이후 건장한 청년은 조용히 나에게 다가와 잠시 밖으로 나가 대화할 것을 요청했고, 살포시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선 치료비 많이 나올까 걱정된다며 동생들은 자기가 잘 달래서 집으로 데려갈테니 그때까지 시간을 조금 달라고 부탁했다. 나도 그 사람들에 만담의 결말이 너무나 궁금했기에 얼마든지 기다려주겠다는 말을 전했고, 동시에 그들의 사연을 조금 들려줄 수 없겠냐고 청했다.
이야기는 간단했다. 한 사람은 그 청년의 친구고 또 한사람은 직장 동료였는데, 함께한 술자리에서 나이문제 때문에 다퉜다는 것이었다. 그 청년은 84년 26살이었고, 친구는 빠른 85로 올해 25살, 직장 동료는 빠른 84로 올해 27살이었는데 그 친구들은 평소엔 그 청년과 말을 트고 지낸 사이였지만 우연찮게 세사람이 한자리에 모인 오늘 나이와 호칭 문제가 결국 주먹다툼으로까지 번졌다고 했다. 그래서 결국 치고 박고 신나게 싸우다 응급실까지 찾아오게 되었고, 응급실에서도 아무 처치도 받지않은 채로 누워서 서로 허세를 부리며 신나게 입배틀을 떨고 있었던 것이다.
공짜로 내게 세상 그 어느 이야기보다 코믹한 만담을 선사했던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한참을 웃었다. 나와 동갑내기여서인지 그들의 그런 모습이 귀여웠고 깜찍했다. 둘을 모아서 처치실에 가둬버리고 싶을 정도로 그들의 허세는 쩔었고 이소룡이 살아온다한들 그들의 입기술은 막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졸음이 쏟아지던 지루한 새벽시간의 응급실 근무를 그들 덕에 실컷 웃으며 보냈으며, 시끄러운 응급실 탓에 치료 중이던 환자들 모두 집에 가고 싶다고 퇴원요구를 하는 바람에 화이트 베드에 가까운 응급실을 만들 수 있었다.
둘 사이에서 고생하던 그 청년은 결국 중재를 포기하고 나에게 원하는대로 다 해달라고 요청했고, 나는 '빠른 84나 84나 빠른 85나 우린 모두 한민족이며, 너넨 모두 고만고만한 애들'이라는 거창한 휘호 아래 '선수납 후진료'에 상해의 원칙에 따라 설사 이학적 검사 소견은 미비했더라도 될 수 있는한 많은 검사들을 긁어볼 수 있도록 오더를 내렸다. 검사 및 처치비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듣자마자 그 두사람은 갑자기 급화해모드로 돌아섰고, 쩔었던 그 많은 허세들과 맹비난, 상처들을 뒤로한채 사이좋게 나란히 손잡고 응급실을 황급히 떠났다. 개인적으론 퇴근 시간까지 그들의 만담과 함께하는 광영을 누리길 원했지만 애석하게도 10여만원되는 진료비 앞에 모든 미움과 분쟁을 걷어내고 화해모드로 돌아선 그들 때문에 나의 간절한 바람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Human trouble치고는 점잖았으며 한때나마 나를 즐겁게 해주었던 그들이 내가 퇴근하기 전까지 다시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나는 오늘도 지겨운 응급실 라이프를 견디고 있다.
첫댓글 우리에게도 가끔 일어나는 일이죠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