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의 행복 / 박경대
서랍 구석에서 낡은 노트 한 권이 나왔다. 30여 년 전, 직장생활을 할 때 사용하던 수첩이었다.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자 문득 여권의 유효기간이 궁금해져 찾던 중 발견하였다. 수첩에는 매일 있었던 일과 계획하는 사항이 한두 단어 형식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무심코 펼친 곳에도 흥미로운 내용들이 가득하여 마치 오래전 묻어 놓았던 타임캡슐을 열어 본 듯했다.
지금은 중견기업의 임원으로 근무하는 아들의 초등학교 입학식이며 주말마다 취미로 다녔던 사진촬영장소도 꼼꼼히 기록되어 있었다. 어머니의 병환이 적힌 곳에서는 눈물이, 큰 상을 받은 날짜에는 얼굴에 미소가 슬며시 피었다.
잉크가 번진 곳이 있어 펴보았다. 그곳에는 기억을 더듬어도 알 수 없는 여인이 등장하여 괜히 두근거렸고, 뒷장의 아프리카 마사이 마라 여행 일기를 읽을 때는 마치 방망이가 가슴을 치는 듯했다. 수첩의 마지막 한 장까지 감정은 널뛰기하였다.
맨 뒷장에는 나의 장래라는 글이 있었다. 다소 긴장된 기분으로 30여 년 전에 꿈꾸었던 소망들을 찬찬히 읽어 보았다. 항목 대부분은 엇비슷하게나마 이루었고 아직 성취 못한 것도 몇 개 있었다. 그 중 ‘작은 카페 갖기’라는 글을 보는 순간 가슴이 턱 막혔다. 요즘도 해가 바뀔 때면 수첩에 적어 두는, 30여 년을 가슴 속에 담고 있는 바람이었기 때문이다.
‘카페 갖기’의 계획은 아이들이 학업을 마치면 하지, 결혼을 시켜놓고 하지라고 했건만 실행되지 않았다. 그 뒤 정년이 되어 직장을 마치면 곧바로 한다는 생각을 가졌으나 그 또한 뜻대로 되지 않았다. 단지 바리스타 자격증만 겨우 땄을 뿐이었다.
절실히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하지만 세상일은 참으로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번화가에 번듯한 가게를 원하지도 않았으나 실행을 가로막는 난관은 사방팔방에 있었다.
자기 최면이라도 걸어보듯 가까운 이들에게 곧 한다는 말도 하고, 상호에다 인테리어까지 구상해 두었건만 한 해, 두 해 세월만 흘렀다. 그렇게 오랫동안 찻집을 가지겠다는 뜻을 이루지 못하자 가슴 한쪽에 늘 아련한 아픔이 자리 잡고 있었다.
어젯밤이었다. 저녁 늦게 커피를 마신 탓인지 잠이 오지 않아 자정이 다 된 시간에 TV를 켰다. 수백 개나 되는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 보던 중 한 곳에 눈이 멎었다. 화면에는 근육이 마비되어 평생을 누워서 글 쓰는 작가가 소개되고 있었다. 그는 아내와 같이 해변을 거닐며 바다를 한 번 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다. 그 뒤에 나온 시각장애인의 소망은 갓 태어난 손자와 눈을 한번 맞추고 싶은 것이었다. 프로가 끝난 뒤 한동안 머릿속이 하얘졌다.
TV에서 보았던 그들의 소원에 비하여 찻집을 갖겠다는 바람은 너무도 사치스러운 소망이었다. 죄스럽고, 부끄러웠다. 걷고, 보고, 먹는 것, 이 기본적인 행동과 욕구가 얼마나 소중한 거라는 사실을 절실히 느끼게 해준 프로였다.
문득 위로만 쳐다보면 조금은 더 이룰지언정 절대 행복하지 않고 만족할 수 없다고 말하시던 어머니가 생각났다. 그 말씀은 늘 더 어려운 사람들을 생각하라는 뜻이었으리라. 어머니는 원하는 게 많았던 나에게 아주 오래전 벌써 행복의 길을 말씀하셨던 것이다.
원하는 바를 다 이루었다면 더 살아갈 가치가 있을까. 이루지 못한 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더 큰 행복인지 모른다. 어쩌면, 정말 어쩌면 한두 가지의 꿈은 이루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것이 더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작은 카페의 꿈으로 생겨난 가슴의 아픔이 조금은 아물어진 듯했다.
보고 있던 수첩은 10년쯤 후, 다시 발견되길 기대하며 서랍 구석으로 밀어놓는다. (2024. 선수필 여름호)
첫댓글 그럼에도 고문님 꿈.
절대루 거두지는 마세요.
김선생님, 저에게 '포기'라는 단어란 밭에 모종 심을 때 쓰는 단어입니다...ㅎ ㅎ
격려 글 감사합니다.
『작은 카페 갖기』 희망,
그래도 박경대 자문위원님은
참한 세컨하우스를 마련했지만,
저는 그 세컨하우스가 꿈이었는데, 아직이니.^^
신 자문님, 두 집살림이 만만치 않습니다. 농사도 힘들고...
그래도 아내가 좋아하니 즐거운 마음으로 오도이농하고 있습니다. 신 자문님 감사합니다.
인생은 미완성이라고 가수 이진관이 열창했지요.
그 노래 한 곡으로 기억을 이어간 가수이기도 합니다.
대형 가수의 꿈이 왜 없었겠습니까 만, 느긋이 살아진다고 하더군요.
작고 초라한 읍내 카페에서 들은 인생 고백으로, 미완성의 삶이 어렴풋하게 나마 다가서더라고요.
산 좋고, 물 맑고, 정자좋은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어차피 인생은 미완성이라 하니 그러려니 하고 살렵니다. 김선생님, 댓글 감사합니다. 오늘도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자기가 정해놓은 버킷리스트도 어려운데 부부가 함께 해야 할 일이라면 생각지도 못한 장애물이 불쑥불쑥 튀어나오지 않겠어요ㅎ
그래도그만하면 박선생님 인생 잘 살아오신 겁니다~^^
장애물이 없는 일은 흥미롭진 않지요. 고속도로 보다 국도가재미를 느낍니다. 장선배 관심어린 격려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