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일(성균관대 예술철학과)씨 박사논문 발표
“조선족 대중가요에 나타난 어머니像은?”
“오늘은 온 집안에 기쁨이 넘치는 날. 어머니를 높이 모신 환갑날이랍니다. 아- 어머니 오래 오래 앉으세요. 아들 며느리 차린 큰 상 어서 받으세요/ 고생 끝에 락을 보신 우리의 어머니 넘쳐나는 이 술잔을 어서 받으세요. 아- 어머니 오래 오래 앉으세요, 딸과 사위 드리는 절도 어서 받으세요/ 어머니 손길 아래 자라난 손군들도 할머니를 기뻐하시리라 나풀 춤을 춥니다. 아- 어머니 오래 오래 앉으세요. 손자 손녀 기특한 축복 어서 받으세요” 「오래오래 앉으세요(허동철 작사 박룡철 작곡)」
이 가사는 1980년대 들어서 조선족사회의 어머니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것으로 환갑을 맞이한 어머니를 위해 잔치를 열면서 애창곡으로 불러드리는 노래「오래오래 앉으세요(허동철 작사 박룡철 작곡)」이다. 이 노래는 중국 개혁개방 이후 연변 조선족 동포들뿐만 아니라 한족도 가사를 중국어로 번역해 부를 정도로 널리 유행한 노래였다.
「오래오래 앉으세요」의 “앉으세요”는 연변식 표현으로 건강하게 장수하라는 뜻이며, “오래오래”는 “많이 많이”, “오랫동안”이라는 뜻으로 오래오래 앉으세요라는 말은 어머니의 만수무강을 비는 말이다. 이 노래는 1980년대 들어서 조선족사회의 어머니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노래인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중국 조선족사회에서 ‘어머니’는 어떠한 존재였을까?
연변대 예술대학 작곡과를 졸업하고 2000년 초 한국에 유학생으로 나와 성균관대 음악철학 박사과정을 밟은 중국동포 박영일(40, 사진)씨는 최근 “중국 조선족 대중가요 가사에 나타난 어머니상을 연구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논문이 주목을 받는 것은 중국 건국 이후 조선족사회의 변화와 그에 따른 노랫말에 등장하는 어머니 이미지를 연구해, 조선족사회의 어머니가 어떠한 존재였는지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다는 점이다.
박영일 박사는 논문에서 “개혁개방 이전까지는 한 가족이라도 하더라도 한 곳에 모여 정담을 나눌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문화대혁명을 통한 계급투쟁의 결과로 ‘신분에 대한 철저한 감시’가 만연해 있었기 때문이다. … 그런 이유로 인하여 온 가족, 즉 친인척들이 한 곳에 모여 서로 이야기를 나눈 것은 거의 있을 수 없는 분위기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전술하였듯이 개혁개방 이후 「오래오래 앉으세요」를 통하여 진정으로 모든 인민이 해방되는 신호탄을 울리게 되었으므로 위 노래는 이 시기의 가족, 고향, 그리움 등등의 의미를 총체적으로 함유하고 있는 ‘어머니상’을 대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환갑잔치를 경축하는「오래오래 앉으세요」가사를 보면 어머니, 며느리 딸 사위 할머니 손자 손녀 등이 등장한다. 온 가족이 모여 어머니의 만수무강을 빌며 효도하는 단란한 가정의 모습을 엿볼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조선족의 어머니상은 1990년대에 들어서 또다른 이미지로 형상화된다. 고향을 떠나 외화벌이 길에 올라서면서 가족이 흩어지고 이국만리 땅에서 타향살이를 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노래가사에서는 어머니라는 이미지는 이산(離散)의 아픔과 고향, 그리움의 대상이 된다.
“아내도 갔다 남편도 갔다 삼촌도 갔다 모두다 갔다/한국에 갔다 일본에 갔다 미국에 갔다 로씨야로 갔다/잘 살아보겠다고 모두다 갔다/눈물로 헤여져서 모두다 갔다”
황상룔 작사 작곡의「모두다 갔다(2004)」, 이 노래가사에는 어머니에 대하여서는 직접적인 언급은 없는 가사이지만 이 시기의 어머니상을 가장 특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노래 중의 하나로 이산가족의 아픔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논문은 밝히고 있다.
2000년대는 전 시대보다 훨씬 더 많은 조선족들이 타국으로 나가게 된다. 그러면서 고향을 주제로 한 노래들이 많이 나오게 되는데, 대중가요의 음악적 특성도 달라져 ‘연변식 트로트’가 등장하게 된다. 김성삼이 불러 히트를 친 「타향의 봄」이 대표적이다.
논문은 “이 시기의 어머니상은 중국의 경제발전 추세로 인하여 타향살이와 그로 인한 아픔 등을 ‘그리움’이라는 시상을 표현하기 위해 어머니라는 소재를 활용한 측면이 강하고 그 그리움은 다시 ‘이산가족의 아픔’을 소재로 한 것과 ‘민족적 정체성’이라는 측면을 보여준 것으로 나눌 수 있다”며 1990년대부터 2000년도 최근까지의 조선족 대중가요에 나타난 어머니상을 분석했다.
논문은 “1950년대부터 1970년대 후반까지는 중국 조선족의 음악예술은 한국보다 북한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후 중국의 개핵개방과 함께 외국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고 1990년대 초반부터는 한국과 왕래가 빈번해지면서 점차 한국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된다. 특히 한중수교 이후 많은 어머니들이 한국으로 돈벌이를 떠나면서 중국에 있는 조선족 사회 전반에 많은 영향을 끼쳤고, 이러한 현실적인 상황들이 대중가요에서 표현되기도 한다”고 밝혔다.
허세걸의 '고향생각'(1956), 베트남 전쟁 당시 '남월의 어머니'… 모성과 강인함 표현
논문은 ①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부터 1970년대 후반 ②1970년대 후반부터 1990년 초반까지 ③1990년 초분부터 현재까지로 구분해 조선족 대중가요에 나타난 어머니상을 분석했다. 논문에 시대적으로 조선족 대중가요에 나타난 대표적인 어머니상을 찾아볼 수 있는 노래 몇 가지를 소개한다.
○ 먼저 1956년 발표된 김인준이 작사하고 허세록이 작곡한 「고향생각」이다.
“남쪽 바다 수평선 우에 보름달이 떠올으면 젋은 병사 고향 그리워 야자수 부여잡고 노래부르네 노래부르네 함박꽃 피여나는 내 고향이여, 아 그리운 고향, 어머니 계신 고향”
이 곡은 중화인민공화국이 금방 성립된 시기였고, 가요의 주인공은 조선족 젊은 병사로 중국남방 부대에 입대하여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서정가요였지만, 반우파 운동으로부터 문화대혁명이 끝날때까지 인민해방군의 형상을 연약하고 무기력하며 병태적으로 부각했다는 점에서 사회적 버림을 받았고, 작곡가 역시 반동 작곡가라는 누명을 쓰고 비판대에 올랐고 20여년이나 억울한 나날을 보냈다고 한다. 이런 정치적 여파로 문화대혁명이 끝나는 1970년대 중반까지 어머니 관련 노래가 극히 드물었다는 것이다.
○ 두 번째, 베트남 전쟁(1965~1973) 당시 한국에서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노래가 나왔는데, 조선족사회에서는 「남월의 어머니」라는 노래가 나왔다는 점도 주목해 볼만하다. 당시 조선족동포는 인민해방군을 따라 북월로 파병되었다.
「남월의 어머니」에 나타나는 어머니상은 노래가사에 “야자수 우거진 전호속에서 남월의 어머니 죽창을 깎으시네”, “어머니 눈동자에 죽창이 비꼈네” 등으로 표현되어 매우 과격한 모습을 띠고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당시의 어머니상은 아마도 전쟁에 동원되는 병사들의 사기를 고려하고, 전시총동원체제하에서 여성이 해야 할 역할은 자식을 훌륭한 군인으로 키우는 것을 비롯해서 군인 유가족으로 꿋꿋하게 살아가는 강인함 등이 어머니상으로 대리형상화 되었다는 것이다.
○ 세 번째, 중국 조선족 대중가요 가사에 나타난 어머니상은 모성과 정치 이데올로기의 어머니라는 두 방향의 흐름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1980년대 초에는 단순히 모성으로서의 어머니가 아니라 사회주의적, 공산주의적, 국가주의적 어머니의 이미지로서 대중들에게 다가서고 있는 노래들이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정리=편집국
@동포세계신문(友好网報) 제320호 2014년 7월 18일 발행 동포세계신문 제320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