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 수원교구 오늘의 말씀, 왕곡성당 카페, 마리아사랑넷,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살레시오회
은혜로운 초대에 기쁘게 응답합시다!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살펴보면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하나의 사이클이 거듭 반복되고 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하느님 측의 열렬한 초대,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 측의 거부, 하느님의 진노, 이스라엘의 회개, 그러나 또 다른 배신과 타락, 그리고 우상 숭배, 그러나 하느님의 크신 자비, 또 다시 이어지는 하느님의 초대, 그러나 은혜로운 초대에 대한 노골적인 거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다시 한번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의 길로 초대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하느님 나라의 큰 잔치를 베풀고 그들을 초대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은 또 다시 그 중요한 초대를 거절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사람은 몇 평 되지도 않는 밭 때문이었습니다. 그에게는 땅이 하늘보다 귀하게 여겨졌습니다. 안타깝게도 영원한 생명을 몇 푼 안 되는 부동산과 바꿔버린 것입니다.
두 번째 사람도 별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최근에 산 겨릿소 다섯쌍을 부려봐야 된답니다. 보아하니 일 중독에 빠진 사람입니다. 일의 노예가 된 사람들에게는 하느님의 존재나 영혼의 양식, 영원한 생명마저도 뒷전입니다. 과도한 일이 그들을 멸망으로 이끌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며 죽어가고 있습니다.
세 번째 사람은 막 결혼한 새신랑이었습니다. 그의 온 정신과 마음은 오로지 인간적 사랑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본능의 노예가 되어 영혼의 사정을 돌볼 겨를이 없었던 것입니다.
결국 하느님으로부터 제1차로 선택받은 민족, 민족들의 으뜸이자 장자였던 이스라엘의 운명은 끝장나버렸습니다. 하느님 초대에 대한 거듭된 거절의 결과는 멸망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자리는 이민족들이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잘 차려진 잔치의 좌석에 앉은 사람들의 면면은 우리 인간들의 상상과는 완전히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습니다. 100퍼센트 거기 앉을 것이라고 예상했던 대사제들, 율법의 전문가들, 바리사이들은 단 한 명도 앉지 못했습니다. 대신 그 자리에는 가장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가장 밑바닥 인생들로 채워지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정통 신앙인으로 자처했던 이스라엘은 그리스도이신 포도나무의 원줄기로부터 완전히 떨어져 나가버렸습니다. 그리고 이제 포도나무에는 이교 민족의 가지가 접목되어 기대하지도 않았던 포도 열매가 왕성히 열리게 된 것입니다.
먼저 불림받은 사람들, 특별한 선택을 받은 사람들, 정말 조심해야 할 일입니다. 우월감 갖지 말고, 내가 1등이라는 의식도 갖지 말고 늘 겸손하게 하느님의 뜻을 찾기 위해 노력할 일입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조원동주교좌 주임신부님
『본당 공동체가 하나 되게 하는 가장 완전한 길』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이들이 누구냐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은 종들을 보내어 사람들을 잔치에 초대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돈에, 어떤 사람들은 명예에, 어떤 사람들은 쾌락에 집착하여 그 초대에 응하지 않습니다. 미사에 나오지 않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어서 고을의 한길과 골목으로 나가 가난한 이들과 장애인들과 눈먼 이들과 다리 저는 이들을 이리로 데려오너라.”라고 하십니다. 이전에는 집사람들과 친척들을 불렀다면, 이제는 ‘한길과 골목’으로 나아가라고 합니다. 한길과 골목은 가난한 이들이 있는 곳입니다.
그래도 자리가 남자 주인은 이번에는 “큰길과 울타리 쪽으로 나가 어떻게 해서라도 사람들을 들어오게 하여, 내 집이 가득 차게 하여라.”라고 명령합니다. 점점 더 어려운 일을 시키는 것입니다. 집 안 사람에게 소식을 전하는 것은 쉽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는 것은 조금 어렵습니다. 그런데 큰길로 나아가 그들을 데려오는 것은 더욱 어렵습니다. 가난한 이들이야 부족한 게 많아서 잔칫상에 쉽게 나오겠지만, 길거리에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냉담자 회두, 가난한 이들을 향한 선교, 그다음은 길거리 선교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가두선교의 열정이 많이 식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성령께서 그 본당에 충만히 활동하지 않으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성령강림이 있었을 때 제자들은 무엇을 했을까요? 밖으로 뛰쳐나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모습이 가두선교입니다.
하느님은 필요한 자에게 그만큼 성령님을 부어주십니다. 모세에게는 엄청난 성령의 힘을 지팡이에 넣어 주셨습니다. 그 지팡이로 많은 기적을 일으키고 바다도 갈랐습니다. 그 힘을 통해 한 것은 무엇일까요? 서로 갈라졌던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가 되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모세를 따라 광야로 나온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와 갈라질 수 없었습니다. 모세를 따르지 않으면 만나도 먹지 못하고 바위에서 흘러나오는 물도 마시지 못하기 때문에 살 수가 없습니다. 물론 모세에게 불만도 품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하느님과 계약을 이루어 계약의 백성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먼저 성령이 충만해야 밖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먼저 그런 의도를 가져야 합니다. 매일 강론하는 이에게 성령을 더 주실까요, 아니면 평일 강론은 안 하고 주일 강론도 그냥 자기 생각만 말하는 사제에게 성령을 더 주실까요? 우리 의도가 중요합니다. 본당이 결국엔 밖으로 나아가 선교하겠다는 열정이 있다면 주님은 그 사명에 맞는 성령은 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그러한 본당에 어떤 일을 이루실까요? 대구교구 이판석 신부님은 지산성당에 있을 때 가두선교를 통해 7년간(1995~2002) 3,200명에게 세례를 주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본당이 하나 분가될 수 있었습니다.
2007년엔 서울 성내동 성당에서는 60일간 가두선교를 하여 5,000명에게 안내 책자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이때 1,600명에게 자기소개서를 받았고 그중에서 400명이 입교 등록을 하였습니다. 그중 300명이 세례를 받았다고 합니다.
가두선교는 확실히 효과가 있습니다. 그만큼 큰 희생과 용기가 따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때 성령께서 함께하셔서 이 성당에 주시는 가장 큰 선물은 무엇일까요? 바로 본당의 일치입니다. 일치된 본당은 하느님 나라의 행복을 누립니다. 하느님 집을 어떻게 해서든 가득 차게 하도록 노력합시다. 그러면 성령으로 본당이 일치되고 행복한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왕곡 주임신부님
복음: 루카 14,15-24: 하느님 나라의 잔치에의 초대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큰 잔치에 비유하신다. 여기서 하늘의 음식은 주님의 말씀이다. 그 말씀은 사랑으로 표현되고, 증거된다. 그 사랑은 실제로 하늘 음식이며 말씀이 베푸시는 잔칫상이다. 사랑은 모든 맛 좋은 양념과 함께 하늘에서 땅으로 한결같이 내려오고 있다. 모든 법과 말씀이 사랑에 달려있다(마태 22,40). 우리가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한다면(마르 12,30-31) 하늘에 마련된 잔칫상을 받을 것이다. 이 거룩한 식탁에서 먹고 마시는 이들의 기쁨과 평화가 얼마나 큰지 모른다. 먹으면 몸 밖으로 나오고 마는 그런 음식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주는 음식이다. 누가 여기 앉을 수 있을까? “하느님의 나라에서 음식을 먹게 될 사람은 행복합니다.”(15절) 그 사람은 누구일까?
잔치를 차리고 우리를 초대하는 분은 아버지이시다. 그리고 사람들을 부르러 간 사람은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신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다. 아드님은 “이제 준비가 되었으니 오십시오.”(17절) 하고 손님들을 부르신다. 이 잔치는 하느님께서 인간들을 위하여 그리스도 안에 마련하신 선물이다. 그분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를 용서하셨고 영광스러운 자녀가 되어 하늘나라에 갈 수 있게 하셨다. “그런데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양해를 구하기 시작했다.”(18절) 그들은 하느님의 일이 아니라, 사람의 일 때문에 핑계를 댔다. 사람의 일 때문에 하느님의 일은 보지 못하고 있다. 집주인은 건방진 부자들에게서 다른 민족들에게로 돌아선다.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이 초대를 가볍게 여겨 거절하였고, 그 초대는 다른 사람들에게로 옮겨서 갔고, 이어서 다른 민족들이 초대를 받게 된다. 그러면 우리의 삶은 어떤가?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인천가톨릭대학교 성김대건 주임신부님
자수성가해서 큰 재산을 모은 분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성공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그 성공을 만들었으니 얼마나 자랑스럽고 행복하겠냐고 이구동성으로 말했습니다. 하지만 몸이 좋지 않아 병원에 갔다가 암이 발견되었습니다. 몇 번의 수술을 했지만, 결국 이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뒤 이분의 자녀들 사이에 재산 상속 문제로 법적 분쟁이 생겼고, 이제 명절이 되어도 자녀들은 서로 만나지도 않습니다. 이 고인을 과연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분이 과연 행복한 사람일까요? 오히려 불행한 사람이라고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이 세상 삶에는 성공도 실패도 없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냥 각자의 인생만 있을 뿐입니다. 재벌 회장에게 성공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이를 더 좋은 인생, 즉 행복한 인생이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저 자기의 인생을 잘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 것에 행복이 있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보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며 자기 삶을 사는 사람이 행복하다고 하셨지요. 돈이 없어도, 세상의 지위가 높지 않아도 하느님 안에서 행복한 사람을 우리는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을 진정으로 성공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자기가 선택하는 많은 삶 안에서 진정한 행복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하느님 나라에서의 행복에 관해 이야기하십니다. 처음에 초대받은 사람은 여러 가지 이유로 초대에 응하지 않습니다. ‘밭에 가려고, 겨릿소를 부려 보려고, 장가를 들어서….’ 이런 이유로 응하지 않은 사람의 자리를 ‘가난한 사람들, 장애인들, 눈먼 이들, 다리 저는 이들’이 차지하게 된다고 하십니다. 하느님 나라의 초대는 그분의 주도권에 따라 이루어집니다. 그 초대에 우리는 무조건 응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하느님 나라의 초대에 응답했을 때만 가능했습니다. 세상 것을 위한 삶이 진정한 성공이고 행복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 것이 좋다면서 이것에 대한 욕심과 이기심을 내세워 초대해 주신 주님께 어떤 이유나 양해 따위로 요청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도 하느님의 부르심에 앞설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곧바로 응답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 안에서는 행복의 삶이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끝내는 영원 안에서 자신의 행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진정한 성공입니다.
오늘의 명언: 고통은 그 아픔 때문에 두려운 것이 아니라, 자신을 포기하게 만들기 때문에 무서운 것이다. 고통을 정면으로 응시하라. 그것이 너를 삼키지 못하도록(데오 그라시아스).
※김혜선 아녜스 - 출처 : 바오로딸콘텐츠, 묵상-말씀이 시가 되어
“이제 준비가 되었으니 오십시오.” (루카14,17)
이제,
하늘나라의 잔치가
시작되었네.
주님께서는
이미 준비를 다 마치시고
모든 이들에게
행복의 초대장을 돌리셨다네.
우리가
온갖 핑계를 대며
세상의 치마폭에 싸여있는 동안
하늘나라의 잔칫집은
낯선 손님들로
채워지고 있다네.
※김경진베드로 신부님 - 의정부교구 한마음청소년수련원(출처 : 묵상글 단톡방)
올바른 자선은
보답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베푸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자선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 다입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자선은
하늘에 쌓는 보화입니다.
보답을 바라는 자선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하지만 보답을 바라지 않는 자선은
죽을 때까지 이어집니다.
하늘나라에 보화를 쌓을 수 있는
초대장을 받은 나는 어떻게 하고 있는가?
‘자선과 희생의 기회’라는 초대장을
그 어떤 이유로 방치하고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입니다.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 - 구속주회
※이병우 루카 신부님 - 마산교구 합천성당 주임신부님
복음말씀
제1독서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드높이 올리셨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필리피서 말씀입니다.2,5-11
형제 여러분,
5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6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7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8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9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드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분께 주셨습니다.
10 그리하여 예수님의 이름 앞에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자들이 다 무릎을 꿇고
11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모두 고백하며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게 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큰길과 울타리 쪽으로 나가 사람들을 들어오게 하여, 내 집이 가득 차게 하여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4,15-24
그때에 15 예수님과 함께 식탁에 앉아 있던 이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그분께,
“하느님의 나라에서 음식을 먹게 될 사람은 행복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16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초대하였다.
17 그리고 잔치 시간이 되자 종을 보내어 초대받은 이들에게,
‘이제 준비가 되었으니 오십시오.’ 하고 전하게 하였다.
18 그런데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양해를 구하기 시작하였다.
첫째 사람은 ‘내가 밭을 샀는데 나가서 그것을 보아야 하오.
부디 양해해 주시오.’ 하고 그에게 말하였다.
19 다른 사람은 ‘내가 겨릿소 다섯 쌍을 샀는데 그것들을 부려 보려고 가는 길이오.
부디 양해해 주시오.’ 하였다.
20 또 다른 사람은 ‘나는 방금 장가를 들었소. 그러니 갈 수가 없다오.’ 하였다.
21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알렸다.
그러자 집주인이 노하여 종에게 일렀다.
‘어서 고을의 한길과 골목으로 나가 가난한 이들과 장애인들과
눈먼 이들과 다리저는 이들을 이리로 데려오너라.’
22 얼마 뒤에 종이
‘주인님, 분부하신 대로 하였습니다만 아직도 자리가 남았습니다.’ 하자,
23 주인이 다시 종에게 일렀다.
‘큰길과 울타리 쪽으로 나가 어떻게 해서라도 사람들을 들어오게 하여,
내 집이 가득 차게 하여라.’
2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처음에 초대를 받았던 그 사람들 가운데에서는 아무도
내 잔치 음식을 맛보지 못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