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친구의 한 장면
영화 ‘친구’가 개봉되던 해, 풀어 헤쳐진 교복에 옆구리에 가방을 끼고 길거리를 뛰어가던 영화 속 장면은 모든 중년들의 추억을 자극했다. 학창시절 한번쯤 경험했을 친구들과 함께 한 일탈과 반항을 떠올리며 잊고 지냈던 친구들을 찾아나서게 하기도 했다.
‘아무런 댓가없이 기분좋게 만날 수 있는 사람’
‘한 시절의 추억을 공유하는 사람’
‘있는 듯 없는 듯 꼭 필요한 공기’
‘속마음이나 내 어려운 걸 얘기할 수 있는 사람’
중년 남자들은 친구를 이렇게 표현했다.
친구는 우리 곁에서 또 다른 나의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 한다. 수십 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서 아무렇지도 않게 만나지는 것도 친구이며 싸웠다가도 돌아서서 웃게 되는 것도 친구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얼마나 잘 살아왔는가를 보여주는 바로미터, 그게 바로 친구이다
“난 친구가 많은 편이야. 그 중에서 내가 힘들거나 하면 불러서 얘기할 친구 있지. 네 다섯 명 정도? 난 친구들을 자주 만나는 편이야. 한 달에 4~5회는 보니까."
“친구는 많지만 아무 이해관계없이 만날 수 있는 친구는 많지 않아요. 옛날 친구들은 진짜 편하게 볼 수 있죠. 하지만 일 년에 한 두 번 만날까요? 그 외엔 야구동호회 같이 하는 친한 친구는 자주 보는 편이구요.”
“돈을 빌려줄 때 안 받아도 될 만큼 빌려줄 수 있는 사람이 친구이고 그렇지 않음 일 관계된 사람이겠죠? 뭐 남한테 도움을 요청하는 편은 아니지만 돈이 필요하다고 하면 흔쾌히 빌려 줄 친구 있죠. 속을 보여줄 수 있는 친구가 다섯 명 안쪽 정도요?"
친구가 없는 사람은 없다. 많은 친구를 가졌건 불과 몇 명의 친구만을 가졌건 누구에게나 친구는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을 친구는 몇이나 될까? 돈이 급하다고 하면 흔쾌히 빌려줄 수 있는 친구는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자신이 얼마나 잘 살아왔는가를 보여주는 바로미터가 있다면 그게 바로 친구이다. 오죽하면 죽을 때 옆을 지켜줄 친구가 한 명만 있어도 인생을 제대로 산 것이란 말이 있을까?
“남자도 친구들에게 고민도 얘기하고 속마음도 털어 놔요. 진로고민 같은 건 친구에게도 하지만 나보다 나이가 있으신 분들에게 얘기하는 편이죠. 그냥 힘든 얘기는 친구들에게 하죠. 답을 얻으려한다기 보다 하소연이죠. 상사가 괴롭힌다고 하면 친구들도 자기네도 그런 상사있다고 맞장구쳐 주고 뭐 그런 거죠? 결혼 전에는 그런 만남이 많았는데 결혼하고 나니까 아무래도 횟수도 줄구요.”
“초등학교나 고등학교 친구들은 만나도 스트레스 덜 받죠. 조심할 게 줄어드니까요. 너무 오래 떨어져 지냈어서 자주 보기 힘든 거구요. 고민이나 스트레스 있으면 친구에게 하소연해요. 근데 나이가 들수록 서로 바쁘고 하니까 만날 시간도 줄고 그러다 보니까 속깊은 대화할 시간도 줄어요.”
남자들은 너무 많은 사람들을 만나요. 오히려 진짜 친구 만나기가 힘들어요
- 여자들은 친구와 차도 마시고 영화도 보고 몰려다니며 구경도 하고 그래요. 남자들은 친구와 만나 뭘 해요?
“술 먹기 전에 스크린 골프를 치거나 당구를 치거나 하죠. 그리곤 술 먹고. 친구끼리 영화? 글쎄,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는데.”
“밥 먹고 술 한 잔 하는 거죠. 누구 생일이거나 해도 술 한 잔 하는 거구요.”
“같이 취미생활 하는 경우도 많아요. 날짜 맞추기가 점점 힘들어져서 그렇긴 한데. 만나면 당구하고 커피 마실 때도 있고 대부분 술이죠. 자주 못 만나니까 어떻게 지냈어? 그러면 그냥 그렇게 지냈지 그래요. 말없이 술 따르고 그 속에 많은 얘기가 있는 거죠.”
“친구들이랑 등산을 많이 갔지. 산을 올라간다는 의미도 있지만 얘기도 하고 또 내려오면 그냥 안 가잖아? 술 한 잔 하지. 친구들이랑 영화나 공연같은 거 안 봐? 왜 봐? 그건 여자랑 보는 거지. 남자 둘이서 껌껌한 데 뭐하게.”
예상을 했던 답변들이었지만 남자들은 친구와 대부분 술자리를 함께 했다. 취미생활을 함께 하기도 하지만 시간맞추는 데 어려움이 많다고 했다. 결혼과 함께 가족들과 일정이 있고 또 가족과 일정이 겹치면 친구와 만남은 뒤로 밀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흔한 남자들의 친구이야기
서로의 꼬리표를 비교하게 되는 순간이 온다. 친구사이일지라도.
“전 남자들이 나이가 들수록 인간관계가 좁아지는 이유를 알 것 같아요. 남자들은 너무 많은 사람들을 만나요. 그러니 시간이 없어서 진짜 친구 만나기는 힘들어요. 만나는 사람들 대부분 업무 때문에 관계가 형성된 사람들이니까 퇴직하거나 업무가 끝나면 관계가 끊어져요. 그러니까 나이 들면 자꾸 집에 있으려 하는 거 아닐까요?”
“여자들은 진짜 30년 동안 내내 그 친구들만 만나잖아. 쉽게 친구되기가 어렵더라고? 오히려 경계하고. 남자들은 그렇지 않아. 어디 가서 친구가 다른 사람 소개해 줘서 또 친구가 되기도 하고. 물론 남자들도 만나면 뒷담화해.”
친구는 내 부족한 부분을 보여줘도 되는 존재들이다. 그것으로 나를 공격하지 않기 때문이다. 서로 가진 것 없는 20대라면 친구끼리 비교하거나 상대적인 부족함을 느낄 것이 별로 없다.
하지만 40대를 넘어서면 하나둘씩 꼬리표가 붙기 시작한다. 직장이란 꼬리표, 직책이란 꼬리표, 타고 다니는 차라는 꼬리표 등등. 이런 꼬리표는 안 보일 땐 안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 밖으로 비집고 나와 서로의 꼬리표를 비교하게 되는 순간이 온다. 친구사이일지라도.
“아무래도 나이가 있으니까 만나면 자기 위치가 안정적이면 상관없는데 그렇지 않으면 불편하지. 돈 잘버는 친구가 있으면 모임에 크게 찬조하기도 하고 술 한잔 얻어 먹기도 하고.”
“동문회를 하면 동문회비가 별 거 아닌 사람도 있지만 그것도 부담스런 사람이 있잖아. 남들은 술값도 한번씩 내는데 그러지 못하면 안 나오더라고. 누가 뭐라는 것도 아니지만. 친구들 만나면 누가 힘들더라 그런 얘기 들을 때 있어. 그냥 그런가보다 하지. 전화해서 꼬치꼬치 묻고 그러진 않아.”
울어도 된다 기대도 된다 말해도 된다 친구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겐 모두 친구가 필요하다. 스쳐 지나가며 보여주는 친구의 마음 씀씀이에 가슴 한켠이 따뜻해질 때가 있다.
“내가 아프거나 힘들 때 신경써주고 말 한마디라도 해주면 그게 고마운 거지.”
“내가 수술해서 한달 가까이 입원했는데 한 친구가 거의 매일 왔었어. 이것저것 챙기고 관심 써주고. 근데 왜 그랬는진 몰라. 물어본 적 없고. 친구한테 고맙단 얘기, 글쎄 해 본 적 없는데. 뭐 그냥 알지 않을까?”
“저희 아버지도 아직까지 친구분들하고 식사하러 다니시고 하시니까 보기 좋더라구요. 아버지 보니까 나이들수록 친구가 필요한 것 같아요.”
“남자들은 자라면서 울면 안된다, 약한 모습 보이면 안된다고 배웠어요. 군대를 가면 완전 쇄뇌당하죠. 힘든 일도 악으로 깡으로, 남자답게,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그런 구호들 2년 동안 듣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러고 사회 나오면 또 거기서도 마찬가지죠. 그러니까 남자들이 약한 모습 보이면 안 된다고 생각하게 되죠.”
“남자들이 감정 표현에 약하잖아요.”
“고맙다 그런 말 안해 봤는데.”
친구는 팽팽한 긴장 속에 삶을 내려놓게 해주는 탈출구이다. 기대어 맘껏 울거나 손잡아 주지 않아도 남자들에게 친구는 그런 모양이다.
그런데 남자들이 모르는 것이 있다. 말은 해야한다는 것. 말은 안하면 상대방이 절대 모른다. 표현하지 않으면 날 낳아주신 부모도 모르는게 내 마음이다. 그러니까 말을 하시길. 친구에게도.
이숙정 객원기자
첫댓글 정답입니다.대부분 돈때문에 손절하는 경우가 많아요.
내가 힘들때 손 내밀어주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