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태자는 빈바사라 왕을 작별하고 아라라가란 선인의 거처를 찾았다. 선인은 태자의 상호가 원만하고, 심신이 맑고 고요함을 보고 스스로 공경하는 마음이 났다.
"존자여, 먼 길 오느라고 너무 피곤하겠소. 나는 존자가 오기를 기다렸소. 타는 불무더기 속에서 스스로 깨닫고 뛰어나오는 것은, 마치 비단밧줄 올가미에 얽어 매인 코끼리가 스스로 벗어 치우고 뛰어나온 것 같군요. 옛날의 왕자로서, 장년 적엔 오욕을 누리다가 늘그막에 나라와 향락을 버리고 떠나 도를 배운 것은 그리 기이할 것이 없지만, 태자는 아직 젊은이로서 능히 오욕을 버리고 이곳에 온 것은 참으로 기특하오. 어서 힘써 도를 닦아, 나고 죽음의 바다 저쪽 언덕으로 건너가야 하오."
"고맙습니다. 나를 위하여 나고 죽음을 끊는 법을 말씀해 주시오. 그 법 듣기를 원합니다."
그때 선인은 우주와 인생의 원리를 말했다.
"태자여, 모든 생명이 비롯한 곳을 명초라 하오. 혼돈 상태로서 무엇인가 분별이 없는 자리요. 그곳이 아만, 곧 '나'라는 생각을 일으키고 이 아만을 좇아 우치심을 내고 우치심을 좇아 애욕을 내며, 애욕을 좇아 오미진기五微塵氣(地ㆍ水ㆍ火ㆍ風ㆍ空의 要因)를 내고 오미진기를 좇아 오대를 내고 오대를 좇아 탐욕, 진심 등 모든 번뇌를 내며, 이 번뇌로 인하여 나고 늙고 병들고 죽음에 굴러 떨어지게 되는 것이오. 이제 태자를 위하여 대략 이것을 말하려오."
이 말을 들은 태자는 다시
"내 이제 당신이 말씀한 이치를 알겠소. 나고 죽음의 근본은 어떤 방법으로 끊게 되오?"
"만일 나고 죽음의 근본을 끊고자 하거든, 먼저 세속을 떠나 계행을 지켜 마음을 잘 조복 받고, 욕됨과 고통을 참고, 고요하고 한적한 곳에 머물러 선정을 닦아, 모든 세속적인 욕심과 좋지 못한 것을 여의고 마음을 살펴보아, 초선의 경계에 들어가며, 다음 모든 생각을 가라앉혀 감각ㆍ지각의 분별을 없애고 제이선에 들어가며, 제이선에서 얻은 기쁜 마음을 여의고 오로지 한 생각 고요함을 얻어 제삼선에 들어가며, 다음 그 한 생각도 놓아 모두가 고요하고 맑은 경계에 도달하여 제사선에 들어가게 되오. 어떤 도인은 이것을 해탈이라고 하오. 그러나 이것이 참된 해탈은 될 수 없는 것이오.
이 제사선에서 다시 모든 상대의 경계를 여의고 공처정에 들어가며, 다시 상대의 정신 경계를 여의고 식무변처정에 들어가며, 다음 식무변경계를 뛰어넘어 무소유처정에 들어가게 되오. 존자여, 나는 이 무소유처정에 머물러 있소. 이 법을 지혜로운 이는 오래지 않아서 스승과 같이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치게 될 것이오."
라고 했다. 태자는 그 가르침에 따라 선정을 닦아 오래지 않아 무소유처정을 얻었다. 그리하여 아라라가란 선인 처소에 갔다.
"당신이 스스로 알고 깨친 법을 나도 이제 깨달았소."
선인은 태자가 비상히 총명하여 그 법을 체득한 것을 알았다. 선인은
"존자와 같은 좋은 동행자를 얻은 것은 참으로 기쁘오. 진실로 행복하오. 내가 얻은 법을 존자가 스스로 얻었고 존자가 얻은 법을 내가 스스로 얻었소. 오시오, 나와 같이 우리 제자를 지도하여 주시오."
하고 최상의 경례를 하며 존숭했다.
이때 태자는 생각했다. '이것은 나고 죽음을 벗어나는 최상의 깨침과 열반은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선인에게
"이 무소유처정에 '나'라는 것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만일 '나'가 있다면 그 '나'는 앎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만일 앎이 있다면 그것은 다시 생각을 일으킬 것이요, 생각을 일으킨다면 다시 번뇌를 일으킬 것입니다. 만일 생각이 없다면 목석과 같을 것이니, 목석과 같다면 무엇이 열반을 체득할 것인가요?" 라고 물었다. 아라라가란 선인은 대답할 바를 몰랐다. 태자는 다시
"당신은 몇 살에 집을 떠나서 범행을 닦은 지는 몇 해나 되었소."
"내 나이 열다섯 살 적에 집을 떠나서 범행을 닦은 지 일백사 년이 되었소. 나는 오랫동안 닦았어도 닦아 얻은 도가 이것뿐인데, 존자는 얼마되지 않아 나의 얻은 바를 얻었으니 참으로 기특하오. 그리고 왕궁에서 자라난 몸으로 우리가 닦은 고행을 닦을 수 있겠소?"
"당신이 닦는 고행보다 더 어려운 고행이라도 나는 닦을 것이오."
선인은 태자의 지혜와 또 그 철저한 결심을 살펴보고 결단코 최상의 도를 성취할 줄을 알았다. 그리고 태자에게
"존자여, 존자가 만일 도를 얻거든 먼저 나를 제도하여 주오."
"좋소, 그리하리다."
하고, 태자는 아라라가란 선인을 작별하고 다시 울두람불이라는 선인을 찾아갔다.
6 태자는 울두람불의 처소로 갔다.
"존자여, 존자는 어떤 법을 스스로 알고 깨쳤소?"
"나는 공처정ㆍ식무변처정ㆍ무소유처정을 뛰어넘어 모든 인식을 초월한 비상 비비상처정을 얻었노라."
태자는 그 정을 익혀 오래지 않아 그 정을 체득했다. 그러나 태자는, 이 비상 비비상처정은 아직 번뇌가 다한 것이 아니요, 또한 일체종지를 성취한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이 삼매 밖에 더 훌륭한 삼매는 없습니까?"
"그보다 더 훌륭한 삼매를 나는 알거나 또 얻은 바도 없노라."
"이 삼매를 얻으면 나고 죽음을 깊이 벗어나게 됩니까?"
"그것은 나도 모르거니와, 이 삼매를 얻으면 팔만사천 겁 동안은 나고 죽음을 면할 수 있지마는, 그 뒤에는 나도 알 수 없노라."
태자는, 그것은 참으로 열반에 이르는 법도 아니며, 번뇌의 뿌리가 다 끊어진 도도 아님을 알고, 울두람불 선인을 작별하였다.
7 태자는 또 앞으로 나아가 우루빈라가섭, 나제가섭, 가야가섭이라는 모든 수행자를 찾아보았다. 그들은 삼형제로서 천 명의 제자를 거느리고 수행하고 있었다.
"그대들은 어떤 도를 닦는가?"
"우리는 물과 불, 또는 해와 달과 범천을 받들어 섬기로라."
"그것은 참다운 도라 할 수 없다. 물은 늘 차 있지 않고, 불은 늘 덥지 않으며, 해는 때를 따라 옮겨 가고 달은 찼다가 기울며, 또한 범천도 길이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다 변화하는 법이며 떳떳함이 없는 법이다."
하고 그곳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