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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크라이나 파병을 포함해 그 어떤 것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2일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영국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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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런던에서 공급한 무기(스톰 섀도 장거리 미사일 등)로 러시아 (본토)를 공격하는 데 반대하지 않는다." (3일 캐머런 영국 외무장관, 키예프(키이우) 방문시 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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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군관구의 미사일 부대가 해·공군이 참여하는 가운데 조만간 전술핵무기 사용을 위한 훈련 준비에 착수했다." (6일 러시아 국방부 성명)
푸틴 대통령의 집권 5기 취임식(7일)과 러시아의 전승 기념일(9일)을 앞두고, 러-서방 간에 오가는 말투가 한층 거칠어졌다. 러시아의 전술 핵무기 훈련 발언은, 2022년 2월 특수 군사작전(우크라이나 전쟁) 개시 이후 잊을 만하면 러시아에서 나왔던 핵무기 사용 경고의 최종판이라고 할 만하다. 우크라이나 일각에서는 '최후통첩'이라는 표현도 공공연하게 썼다.
rbc 등 러시아 언론과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러시아 국방부는 6일 성명을 통해 "푸틴 대통령의 비전략 핵무기(전술핵무기) 훈련 실시 명령에 따라 남부군관구의 미사일 부대가 훈련 준비에 착수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성명은 “이번 훈련은 비전략 핵무기의 전투시 사용을 위해 부대의 인원및 장비의 준비 상태를 점검하고, (서방 당국자들의) 도발적인 발언과 위협에 대응해 러시아 국가의 영토및 주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훈련 장소와 시기를 특정하지는 않았다.
러시아 국방부 청사/사진출처:주한러시아 대사관 페북
러시아군 남부군관구는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가까운 남부 지역을 관할하는데, 로스토프나도누에 있는 본부를 특수 군사작전 사령부도 함께 쓰고 있다. 지난해 6월 러시아 군사기업 '바그너 그룹'이 군사반란시 한때 점령했던 그 곳이다.
◇ 러시아의 사용 가능 전술 핵무기는?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전술핵무기는 전략핵무기와 달리 파괴 강도가 제한적이어서 한 도시 전체를 잿더미로 만들 수는 없다. 그러나 해당 지역을 방사선으로 오염시키는 등 유무형적으로 큰 피해를 안길 수는 있다.
전술 핵무기 공격에 쓰일 미사일(로켓)은 이스칸데르-M 시리즈의 9M723-1, 9M728 저고도 순항 미사일이다. 여기에는 5~50kg의 다양한 핵탄두 장착이 가능하다. 대규모 물류 허브나 군지휘 및 참모부 인프라, 방공 미사일 기지 및 기타 군사 시설의 타격에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의 이스칸데르 미사일 발사/사진출처:러시아 군사 텔레그램
러시아의 한 군사 전문 텔레그램은 "우크라이나로 이전될 미국 F-16 전투기의 일부가 배치될 것으로 보이는 카르파티아 산맥(러시아어로는 Карпаты, 우크라이나와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등 동유럽을 넓게 덮고 있는 산맥/편집자)에 있는 벙커 인프라를 공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의 전술 핵탄두는 또 미그(MiG)-31K와 투폴레츠(Tu)-22M3 전폭기에 탑재 가능한 극초음속 미사일 '킨잘'(Kh-47M2, 러시아어로는 Х-47М2 Кинжал)과 초음속 순항미사일 Kh-32(Tu-22M3 탑재), Kh-69 등 공대지 미사일에 실을 수 있다.
폭탄형 핵탄두는 곡사포 D-20(러시아어로는 гаубицы Д-20), 아까찌야(Акация), 엠스타-B(Мста-Б)와 S/SM(Мста-С/СМ), 기아찐뜨-B(Гиацинт-Б), 말리바(Мальва), 꼬알리찌야 SV(Коалиция-СВ), 자주포 삐온(САУ "Пион), 말까(Малка), 자주식 박격포 튤리빤(самоходный миномёт "Тюльпан) 등을 통해 발사할 수도 있다.
러시아 자주포 꼬알리찌야/사진출처:스트라나.ua
러시아의 240mm 자주식 박격포 튤리판/러시아 SNS ok
◇ 긴박한 러시아 각 부처
전술 핵무기의 훈련 발표가 나온 이날 러시아의 주요 부처는 긴박하게 돌아갔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캐머런 장관과 마크롱 대통령의 발언을 매우 위험한 수사"라고 비판하면서 전술핵무기 훈련을 정당화했고, 러시아 국가안보회의의 메드베데프 부의장(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영토로의 (프랑스) 군대 파견은 직접 참전을 뜻하며, 그럴 경우 세계적인 재앙이 올 것"이라며 "(공격 대상이 아닌) 국회 의사당이나 프랑스 엘리제 궁, 영국 다우닝 스트리트 10(총리 관저)에 숨어야 할 것"을 협박했다.
러시아 외무부/홈페이지 캡처
러시아 외무부는 자국 주재 영국, 프랑스 대사를 초치해 국방부의 성명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양국 정부의 자제를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무부는 주러 영국대사에게 “키예프(키이우)가 영국 무기로 러시아를 공격할 경우, 영국과 우크라이나 외부의 군사 목표물도 공격 타깃이 될 수 있다”며 "캐머런 장관의 발언을 즉각 철회할 것"을 촉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주러 프랑스 대사에게는 "국가 지도부의 호전적인 발언과 우크라이나 분쟁에 대한 파리의 개입 증가로 인해 분쟁이 더욱 확대됐다”는 외교 메모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외무부는 또 별도 성명을 통해 "미 F-16 전투기의 우크라이나 제공은 나토(NATO)의 고의적인 도발"이라며 "핵무기 운반체로 인식하고 대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무엇보다 관심을 끄는 것은 메드베데프 안보회의 부의장의 '제 2의 카리브해 핵 위기'(우리 식으로는 쿠바 미사일 위기)론이다. 그는 전술 핵무기 훈련 계획을 러시아가 1962년 쿠바에 SS-4 준중거리탄도 미사일 기지를 건설하면서 미국과 군사적으로 대치한 사건에 비유했는데, 이에 대한 반응은 대조적이다.
◇ 러시아의 공갈 vs 심각한 위기 국면
스트라나.ua는 "러시아의 '카리브해 위기 시나리오'(전술핵 위협)를 받아들이는 시각에는 여전히 두 가지가 공존하고 있다"며 "러시아의 또다른 핵공갈이라는 시각과 이전과는 다른 위협이라는 시각이 맞서고 있다"고 전했다.
우선 모스크바의 공갈론은 러시아가 지금까지 누차 비슷한 협박을 해왔다는 학습 효과에서 시작된다. 말이 앞설 뿐, 크렘린이 감히 공격을 실행하지 못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일부 정치인과 군사 블로거들은 "러시아가 몇 번의 핵 공격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면, 우크라이나에서 재래식 무기로 끝없이 싸우는 이유는 무엇이냐"고 반문했다. 또 "이같은 핵 무기 사용 최후통첩으로 서방의 대우크라이나 무기 공급을 차단할 수 있다면, 러시아가 왜 서방의 첨단 무기에 맞서 싸울 방법을 생각해 내겠냐"며 "공갈탄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러시아는 '쿠바 미사일 위기'를 재현하면, 서방 측이 핵전쟁을 우려해 러시아의 주장을 받아들일 것으로 보고 있다는 주장이다.
반대 의견은 바이든 미 대통령의 과거 발언에서 출발한다. 바이든 미 대통령은 2022년 10월 "러시아군이 현재 전장에서 수세에 놓였기 때문에 핵 위협은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미 CIA도 이즈음 대통령에게 러시아가 핵무기를 사용할 확률은 50% 이상이라고 보고한 것으로 나중에 밝혀졌다.
러시아의 위협을 '실제 상황'이라고 주장하는 세력은 "21세기의 '카리브해 시나리오'는 매우 위험하다"며 "과거(1962년)처럼 전쟁을 피하기 위한 타협이 지금 상황에서는 불가능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중국마저 핵무기 사용을 강력하게 반대하는 상황에서 러시아의 위협은 본심힐 수 있다"고도 했다.
러시아가 서방에 최후통첩을 제시할 이유가 충분히 있다면, 또 중국과 글로벌 사우스(남반구 개발도상 국가들)에게 이번은 진짜 '카수스 벨리'(Casus belli, 로마제국 이래 전쟁을 선포하는 공식 이유, 특히 최후통첩에 대한 반응을 보고 선전포고하는 경우에 주로 적용/편집자)라는 점을 확신시키고자 했다면, 크렘린은 실행에 옮길 수도 있다는 이들은 우려했다. 프랑스 등 일부 국가가 실제로 병력을 우크라이나에 파병한다면, 그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미국과 나토, 유럽연합(EU)의 많은 정책결정권자들이 우크라이나에 군대 파견을 대놓고 반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서방 측은 키예프가 패배 직전으로 몰리면, 나토군 파병외에 다른 방안이 있을까?
스트라나.ua는 "우크라이나의 패배와 항복을 피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 있다는 주장도 있다"고 강조했다. 바로 현전선에서의 휴전및 평화 협상이다. 모스크바의 전술핵 훈련은 궁극적으로 '협상을 주장하는' 세력에게 힘을 실어줄 것이라고 이 매체는 분석했다.
우크라이나의 사보타주(파괴공작)으로 불타는 크림대교/캡처
◇단기적 기대 효과는 역시 크림대교?
러시아의 단기적 전술 목표는 역시 (본토와 크림반도를 잇는) 크림대교의 방어다. 최근 몇 주 동안 크림대교가 영국의 '스톰 섀도'와 미국의 '에이태큼스' 등 우크라이나에 제공된 서방의 장거리 미사일 공격을 받을 것이라는 예측이 자주 나왔다. 공격 시점에는 푸틴 대통령 취임식과 전승기념일이 포함됐다
따라서 러시아는 전술핵 훈련 실시라는 성명을 통해 '피의 보복'을 위협함으로써 서방 측을 움직여 계획된(만약 타격 계획이 실제로 있다면) 크림대교 공격을 중단시키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