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본 작품은 문화체육관광부(주최)와 한국도서관협회(주관)의‘체육진흥투표권 공익사업적립금’으로 추진된‘2013년 도서관, 문학관 문학작가 파견’사업 지원으로 집필됨.
번지 없는 주막
이시백
매화나무 등걸에 매달린 꽃들이 밤에 불을 켜놓지 않아도 마당을 환하니 밝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 결에 가장이마다 개불알만한 열매를 성글게 매달았다. 털어 보아야 한 보시기도 안 될 것을 몇 개 비틀어 보지만, 그나마 오갈이 들고 뒤틀린 쭉정이뿐이다. 건듯 지나가는 바람이 보잘것없는 열매 한 알을 양철지붕에 툭 내려놓는다.
보잘것없기로는 다 쓰러져가는 집이 더하다. 한때는 나룻배를 기다리는 장꾼들이며, 무주나 진안에서 흘러내려온 뗏목꾼들로 벅적거리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다 쓰러져가는 움막 꼴이 되고 말았다. 비스듬히 기운 외벽이며, 당장이라도 주저앉을 듯 내려앉은 추녀가 낡은 집의 곤궁한 처지를 한눈에 보여주고 있었다. 집도 주인 따라 가는 셈이었다. 바랑이가 수북이 자란 기왓장을 쳐다보며, 송만순 노파는 그 자리가 그대로 자신의 음택이 되리라 여겼다. 주인의 숨결이 다하여 더운 김이 끊어지면 가까스로 버티고 있던 집의 기둥이며, 서까래도 풀썩 주저앉고 말 것이다. 누구 하나 기억해 줄 이도 없는 세상에 오랜 세월 손때 묻히며 살아온 집만 덩그러니 남겨두고 가는 것도 개운찮은 일이었다. 그 자리에 집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남지 않도록 말끔히 사라지는 것이 마땅한 일이었다. 그런 노파의 생각에 대답이라도 하듯 담벼락에서 우수수 흙이 흘러내렸다.
이가 맞지 않아 여나마나한 문짝을 지쳐 놓고 노파는 벌써 눈두덩 위로 올라선 아침볕을 피해 손 가리개를 편다. 장마랍시고 비 한 줄기 시원히 뿌리지도 않은 채 푹푹 삶아대는 통에 지난밤도 자는 둥 마는 둥 잠을 설친 노파는 절룩이는 다리를 끌며 강 쪽으로 걸어 내려간다. 여느 해 같으면 물에 흥건히 잠겨 있을 강 가장이가 알몸을 고스란히 드러낸 채 뙤약볕에 자글자글 익어가고 있다. 채 마르지 않은 둠벙이 물비린내를 풍기며 날파리들만 풀풀 날려댔다.
손이라도 적시려면 적잖이 다리품을 팔게 멀어진 강가에는 굴삭기 한 대가 쇠로 만든 아가리를 허공에 벌린 채 버팅기고 서 있다. 달포 전에 집 뒤꼍의 아름드리 가시나무들을 찍어댈 때와는 영 행색이 보잘것없어졌지만 노파는 밤마다 그것이 제 정수리를 찍어 누르는 악몽에 시달리곤 했다.
“허기야 기계가 뭔 잘못이 있겄어?”
보를 막은 뒤로 눈에 띄게 흐름이 느려진 강에는 날이 더워지기 무섭게 푸릇한 이끼들이 자욱하니 덮였다. 연신 삶아대는 날씨에 강이라고 견딜 재간이 있겠는가. 미지근한 강물로 입안까지 우르릉우르릉 헹구고 나니 바짝 달아오른 해가 머리 위로 곧추섰다. 그야말로 머리가 벗겨질 더위였다.
날이 더워지면서 물것이 기승을 부리고, 부엌에 묻어놓은 독 속의 막걸리가 하루가 멀다하고 시어터지지만, 혼자 사는 늙은이에게는 더운 편이 나았다. 뼈마디가 오그라들게 앙살을 부리던 엄동의 추위가 버거운 것이 어찌 노파뿐이겠는가. 단골이라 할 것도 없지만 하루에 두어 번씩 드나들며 국밥이며 막걸리통이라도 비워주던 패들이 모두 이틀 벌어 하루 살기 바쁜 처지이다 보니, 날들이 꽝꽝 얼어붙으면 바깥 일거리가 끊어져 그마저 발길이 뜸해지곤 하였다. 유난히 추웠던 지난겨울에는 하루 놀고, 하루 쉬기를 일삼더니, 날이 풀리면서 벌그죽죽한 등산복을 걸친 이들이 오다가다 들러주는 바람에 벌이가 쏠쏠해졌다. 늙은이의 어두운 귀에도 경기가 어렵다는 소리가 들리는 판에 죄 거리로 내몰려 이리저리 부랑이라도 하는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날 풀리기 무섭게 강가로 쏟아져 나와 터덜터덜 걸어다니는 게 한둘이 아니었다. 어디를 가는 길이냐 물으면 미리 입이라도 맞춘 듯이 그냥 걷는 거라고 하니 참 맥없는 것들이다. 눈을 까뒤집고 벌어도 살기 힘들 세상에 그냥 느적느적 걷는 게 일이라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 대가리에 탈바가지를 뒤집어쓰고 불알이 툭 불거지게 들러붙는 옷을 입은 것들은 자전거라도 끌고 다니니 좀 낫다. 어디 생선 두름이라도 배달하는 일이라도 할 테니 말이다.
마당 한 귀에 호미로 되작거려 심은 쪽파가 어느 결에 바짝 고개를 쳐들고 하늘을 본다. 공사장 인부들 밥상에 올릴 찬거리가 마땅찮았는데 그것이라도 젓갈로 버무려 내놓아야겠다. 조금만 움직여도 삐거덕 소리를 내는 무릎을 간신히 주저앉히고 쪽파 몇 포기를 잘라내자니 벌써 이마에 진땀이 흥건히 배어나온다. 낡아빠진 소맷자락으로 이마를 훔치던 노파는 비스듬히 기운 자신의 집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슬리다 만 개꼴을 한 집은 자신이 보기에도 흉물스럽기만 하다. 양철판이며 슬레이트를 누덕누덕 얹은 지붕에는 부스럼처럼 돌멩이가 여기저기 지질려 있고, 비스듬히 기운 집은 가까이에서 기침만 세게 해도 풀썩 주저앉을 것만 같다.
“가만 놔둬두 무너질 텐디, 고걸 못 참아 재랄들여.”
목에서 가르랑거리는 가래를 한껏 긁어 올려 강가의 굴삭기 쪽에다 내뱉던 노파의 눈에 강가를 거니는 사람들이 얼비친다. 얼어붙었던 강이 풀리고, 강가에 심어놓은 벚나무에 꽃들이 화사하니 필 무렵부터 심심찮게 들러 빈대떡이며 두부 무침으로 막걸리 통이나 비워주는 것들 덕에 요즘은 먹고 살만했다. 여닫이문을 열고 빼꼼히 얼굴부터 들이밀어 주뼛주뼛 안을 살피던 이들은 무어가 그리 볼만하다고 말끝마다 탄성을 지르기 바빴다. 참 할 일도 어지간히 없는 것들이었다. 언제인지도 벌써 까마득하지만 읍내 천보당 약국 주인이 공화당 국회의원 해먹겠다고 나섰을 때, 집집마다 돌린 달력을 보고도 ‘와아’, ‘으아’ 탄성을 질러댔다. 거미줄이 칭칭 들러붙고 파리똥이 점점이 박혀있지만 이미자가 한복을 차려입은 그림이 보기 좋아서 벽에 붙여놓은 것인데 그게 뭐가 귀하다고 입을 벌려 소리를 지를까. 이젠 기운이 없어 한구석에 밀어둔 맷돌을 일삼아 돌려보고, 혹 전기가 나갈 때 쓰려고 천정에 매달아 둔 남포에는 불을 댕겨보라고 수선을 떨어대는 것이었다. 하루에 세 차례 드나드는 버스를 집어타고 읍내만 나가도 사람 빼고는 뭐든지 다 파는 마트가 즐비하니 들어서 있고, 골목마다 온갖 장사들이 늘어선 세상에 그을음내 나는 남폿불이 뭐가 그리 신기하다고 탄성을 지른단 말인가.
그런 중에도 시렁에 매단 돼지비계를 두어 번 둘러서 매운 고추에 신김치 척척 썰어 부쳐주는 빈대떡에 환장을 하고, 먹다 남은 되비지를 데워서 내어주면 며칠 굶은 것들처럼 달려들어 퍼먹는 걸 보자면 참 나라가 어렵기는 어렵게 된 모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이들을 보며 처음에는 행여 주머니에 든 것이 없다고 외상이라도 하자면 어쩌나 걱정을 했지만 아직 밥 사 먹을 돈들은 남았는지 꼬박꼬박 현찰로 내놓고 갔다. 어찌하였든 노파는 주머니에 들어오는 돈벌이로는 사대강인지 오대강인지 덕을 톡톡히 보는 셈이었다.
“쥐구멍에두 볕이 든다더니.”
어젯저녁부터 시큰거리는 무르팍에 파스 두어 장을 붙이고 나서 아침 겸 점심으로 찬밥에 물을 말아 달랑무 두어 쪽으로 때우려는데, 박봉석이 슬그머니 문을 열고 들어선다. 겨우내 쓰고 다니던 털벙거지를 봄맞이 삼아 벗어 버렸는지 희끗거리는 머리털이 흡사 서리 맞은 까마귀 행색을 닮았다. 보나마다 엊저녁에 처먹은 술에 속이 부대껴 뜨뜻한 국물이라도 얻어먹으려고 들른 것이리라.
“오늘두 죙일 자빠져 지낼 심인가베?”
박은 그 말에는 대답도 않고 제 집처럼 시렁을 뒤적거리더니 아까부터 칙칙 소리를 내며 끓고 있는 솥뚜껑을 연다. 지난 장에 돼지 뼈다귀가 살점이 제법 투실하니 붙어있어 사다가 시래기 넣고 밤새도록 끓인 진국이었다. 국자로 국물을 떠서 후룩후룩 들이키다가 혓바닥을 뎄는지 부엌에서 개 잡는 소리가 터져 나온다.
“저 오살을 헐 것이, 마수두 안한 국을 지분거려. 절구괭이루 손구락을 짓쪄 놓으야 정신을 채리려나.”
말은 그리하면서도 몸은 여전히 방안에 눌러 앉아있다. 박이 겨우내 달아 놓고 먹은 밥값만 해도 이십만 원을 훌쩍 넘겼다. 강가에 움막을 짓고 지내는 그는 공구리 일을 다니다가 밀차에 발을 다쳐 해동 무렵까지 집에서 누워 지냈다. 집이랄 것도 없이 낚시꾼들이 얼기설기 엮어놓은 움막에 천막을 얻어다가 겹겹이 뒤집어씌운 것인데, 한겨울을 그 안에서 얼어 죽지 않고 난 것이 용했다. 지나가는 전깃줄을 몰래 따서 움막 안에 전기장판을 쓴다고는 하지만 오죽하겠는가.
박의 움막에 비하자면 노파네 집은 대궐인 셈이었다. 다리가 서기 전까지 나룻배로 장꾼들을 실어나르던 시아버지가 손수 지었다는 집은 부엌 한 칸에 안방, 건넌방을 갖추고, 그 사이에 대청마루까지 끼어 있었다. 전쟁 중에 시부모를 차례로 보내고 나서 사고무친 혼자가 된 노파는 우렁 껍질 같은 집을 지금껏 지키고 살아왔다.
가진 게 몸뚱이밖에 없는 인생들이 겪는 고초를 빤히 아는 터라 노파는 입에서 나오는 말과 달리 박을 살뜰히 살펴 주었다. 낯선 개나 고양이도 집을 기웃거리면 먹던 밥을 나눠 주는데…
“저 허는 짓 줌 봐.”
국밥을 말더니 부엌 바닥에 묻어놓은 술독에서 막걸리까지 퍼 마시는 소리에 노파는 버럭 소리를 내지르며 자리에서 몸을 솟구쳤다.
“다 적어 놓으래니께.”
“적으믄?”
“날 풀리믄 한방에 해결헌다잖유.”
“지랄, 날이 풀리다 못해 골마지가 않을 판여.”
넉살 좋은 박은 이제 웬만히 해선 말도 타지 않았다. 입가심 삼아 달랑무 한쪽을 베어문 채 탁자 앞에 주저앉은 박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입을 연다.
“그나저나 면에선 벨 소리 없슈?”
면이라는 말에 노파는 찔끔 속이 켕긴다.
“있을 턱이 뭐가 있댜, 그것들이?”
“나야말루 큰집 잔치에 잡는 작은집 돼지 꼴유.”
“머리 시커먼 짐승 거둬멕일 게 아니래드니, 이 판국에 큰집 작은집이 워딨간? 애덜 말대루 살 길은 연대뿐이래잖여.”
“연대는 이대 옆에 있는 대학이구유.”
“그 알량한 움막 걷어갈께미? 불알을 떼다가 소금 찍어 석쇠에 궈 먹어.”
“할무닌 법이란 것이 을매나 착살맞은 줄 몰러서 용감허신거유.”
“내 손으루 내 밥 지어 파는디 뭔 눔의 법?”
“법에는 말이 필요없는 거유. 이거 한 장이믄 끝내는 거래니께.”
그러면서 박이 아까부터 만지작거리던 종이 한 장을 탁자 위에 꺼내놓는다. 뻘건 글씨가 큼지막이 들어박힌 종이는 노파의 눈에도 익은 것이었다. 까막눈인 노파는 그걸 전하는 군청 공무원 앞에서 보기 좋게 박박 찢어 내던져 버렸던 것이다.
“공문서 훼손죄까지 겹쳤으니 벌금을 물어두 곱으루 낼 테이구, 징역을 살어두 곱징역을 살 거유.”
“공문서 훼손죄만 있구, 늙은이 먹구 사는 장사방해죄는 는 중 알어?”
“하야튼 십칠일까정 비우지 않으믄 강제철거래잖유.”
“철거든 지랄이든 난 몰러.”
“야차 같은 깡패들이 난짝 들어내다 눌러앉히구, 포클레인으루 툭 밀믄 악 소리두 못 지르구 끝나는 거유. 요즘 법이라는 게 그렇게 착살맞대니께유.”
“밥 잘 읃어 처먹었으믄 어여 가. 착살맞은 소리 그만 허구.”
“내가 거시기 허다는 게 아니구 법이 그렇대니께.”
해봐야 서로 입만 곤하고, 땡전 한 푼 생기지도 않을 대거리를 주고받는 중에 문이 살며시 열린다. 돌비늘 부숴놓은 듯한 햇빛이 열린 문틈으로 스며들어 시커먼 가게 안을 환히 밝힌다. 실눈을 뜨고 내다보는 새 어느 결에 무엇인가 품에 먼저 들어와 안긴다. 영미다.
“뭘 읃어 먹을게 있다구 여기는 맨날 드나든댜?”
대학교에서 무슨 신문 내는 일을 한다는 영미는 지난가을부터 심심찮게 찾아왔다. 무슨 금강 주변의 민속자료를 수집한다며 해봐야 한숨만 나오는 지난 이야기를 녹음기까지 틀어놓고 몇 시간이나 담아갔다. 그런 결에 정이 들었는지 제 입으로 손녀딸 노릇을 하겠다며 여간 살갑게 구는 게 아니었다. 차림새를 보아하니 그리 넉넉한 집에서 살아 뵈지 않는데 올 때마다 털신이며 목도리를 가져와 발에 신기고 목에 둘러주었다. 고마운 일이지만 노파는 입에서 험한 말만 내어줄 뿐이었다.
“이년아, 니 부모 등골 그만 빼먹구 한푼이래두 벌어서 시집갈 밑천이나 모아.”
영미는 요즘 처녀들답지 않게 그런 말에 노염도 타지 않고 구순하니 고개만 끄덕였다.
“할머니는, 참.”
“참이구 첨이구 간에, 저 멸치츠럼 허여멀거니 말라빠진 건 또 뉘여?”
“방송국 피디님인데요. 할머니 도와드리려고 오셨어요.”
“피딘지 피린지 따질 것이 증말 날 도와주겠다면 흘러가는 저 강물처럼 그냥 내버려두는 거여.”
말을 하고 나니 흘러가는 강물도 그냥 내버려둔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뒤미처 들었다. 무슨 놈의 공사를 한다고 난데없는 기계들이 강바닥을 긁어대고, 산더미처럼 쌓은 모래를 트럭으로 실어 나르느라 밤낮이 없었다. 몇 해를 뿌연 먼지 속에 덮여 지내다가 겨우 조용해지는가 싶더니 강 가운데 못 보던 둑이 가로질러 막았다. 가을이면 눈 쌓인 듯 하얀 갈꽃이 우거지던 강가에는 자로 잰 듯 반듯하니 포장도로가 생기고, 그때부터 자전거를 끌고 다니거나 일없이 팔을 위아래로 오르내리며 걷는 인간들이 어정거리기 시작했다.
“송챙이가 갈잎을 먹으믄 땅바닥에 떨어지는 벱여.”
않던 짓을 하면 끝에는 꼭 변고가 나게 마련이었다. 강가에 황새처럼 버티고 앉았던 낚시꾼들이 이따금 들러서 국밥에 막걸리나 비우던 노파네 집에 사람들이 떼를 지어 몰리더니 급기야 몇 십 년 동안 얼굴도 안 비치던 관것들이 종이 딱지를 들고 찾아온 것이다.
“그런데 늬덜은 밥이나 제때에 읃어 먹구들 다니는겨?”
대답도 듣기 전에 밤새도록 고아낸 뼈다귀 국물에 밥을 풍덩 말아 두 그릇을 던지듯이 밥상에 올려놓는다.
“할머니, 이걸 다 어떻게 먹어요.”
“먹는 벱을 모르믄 떠 멕여 줄까? 요즘 것들은 뼉다귀가 되어서두 쌀 쪘다구 오두방정을 떨메 다야튼지 뭔지 지랄을 헌다는디, 너나이 사흘만 굶게 놔야 혀.”
“난 하루만 굶어두 죽겠던디.”
곁에 쭈그리고 앉아 있던 박이 꼴에 사내랍시고 오랜만에 맡은 분 냄새에 코를 실룩거리며 두서없이 끼어든다.
“남정네가 체신머리이 낄 데나 안 낄 데나 끼지 말구 처먹으믄 어여 가.”
“아, 피디님두 오셨는디 말씀 줌 듣구 갈라구 그류.”
등을 떠밀어도 박은 넉살좋게 밥상머리 한쪽을 차고앉아 턱을 받치고 다가앉는다. 고양이 밥 먹듯 몇 숟갈 뜨는 시늉을 하던 영미와 피디라는 여자가 상을 물리더니 대뜸 녹음기란 걸 앞에 내어놓는다.
“그러니까 금강에서는 할머니네가 가장 오래된 주막이잖아요?”
요즘 들어 귀가 아프게 들어온 말을 거듭하자니 노파는 넌더리가 나서 닭똥구멍 같은 입을 비죽거리며 툴툴거렸다.
“그거야 내가 돌아댕기믄서 죄 조사럴 헌 것이 아니니 모르겄지만, 강 건너서 뗏목꾼들헌티 국밥 말아 팔던 곰보할머니네 허구 여그가 젤 오래된 것인디, 그 노인네가 십 년 전에 시상 뜬 뒤루 문을 닫았으니 그런 줄루만 아는 게지, 뭐.”
얼굴도 내밀지 않던 면서기며, 군청 직원들이 찾아와 새퉁맞게 주막 이야기를 늘어놓을 때만 해도 설마 그것이 제게 미칠 일일 줄이야 어찌 알았겠는가. 문제는 사대강 공사로 온종일 마른 갈대만 버석거리고, 이따금 청둥오리들이 내질러 놓은 새끼들이나 삑삑거리던 강가에 난데없는 꽃밭을 꾸미고, 자전거 길을 만들어 사람들이 떼 지어 몰려들 적만 해도 그저 남의 다리 가려운 일로만 여겼던 노파였다.
“그러니까 군청에서 말하는 마지막 주막보다 더 오래된 거지요?”
“워디? 도리개 춘옥이네?”
읍내 쇠전 옆에서 대포집을 차려 갈보까지 두엇 들여놓고 한창 돈을 벌던 춘옥이 노름에 미쳐 거덜이 난 뒤에 강 아래편에 주막을 차린 건 사일구가 일어나던 해였다. 읍내에서 쓰던 ‘춘월옥’이라는 간판을 그대로 내걸다보니, 그 햇수까지 얹었다고 해도 시부모 때부터 붙박이로 주막을 해온 노파네와는 비교가 될 수 없었다.
“마지막이믄 워떻구, 내중이믄 워떻다구 지랄들이래?”
“할머니, 그게 아니에요.”
주막을 하는 것이 무슨 자랑이라고 장사를 해온 햇수를 따지는가 싶어 노파는 지금까지도 별로 그것에 대해서는 더 이야기를 늘이지 않았다.
“군청에서 거기다 이십억을 들여 새로 꾸몄거든요.”
이십억? 아무리 애들도 억이란 소리를 쉽게 내어놓는 세상이라지만, 노파는 억은커녕 만이라는 수도 제대로 헤아리기가 어려운 사람이었다. 반쯤 타다 만 채 비스듬히 기울어가는 제 집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춘월옥도 큰바람만 되게 맞으면 밤새 안녕하지 못할 처지는 크게 다르지 않을 터였다. 그런 집에 이십억을 들였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네미, 드럽게두 쓸 데가 나 부네. 그 돈을 나헌티 주믄 밤새두룩 깨물어라두 먹겄네.”
군청 공무원이란 작자가 찾아와 서산 엿가래처럼 톡톡 부러진 말로 몇 월 며칠까지 집을 비우라고 했을 때만 해도 노파는 콧방귀만 핑핑 뀌었던 것이다. 어디서 뒤져냈는지 강가에 자리 잡은 노파네 집 자리가 군 소유의 하천부지이고, 그 위에 얹힌 집도 번지수가 없는 무허가 건물이라며 철거 계고장이라는 걸 들고 찾아온 것이었다. 대를 이어 살아온 집에 번지수가 무슨 필요가 있으며, 땅콩 밭을 일궈 먹던 이장한테 시조부께서 벼 다섯 섬을 주고 산 땅이라고 이야기를 해도 소용이 없었다.
소용이 없기는 이쪽도 마찬가지였다. 번지수라는 것이 생기기 전부터 살아온 집을 무허가라고 부수라니 말이나 될 소리인가. 자다보면 지붕 위로 포탄 날아가는 소리가 밤새도록 들리던 동란 중에도 제 자리에서 꼼짝도 않고 지킨 집을 난데없이 비우라니 씨알이나 먹힐 소리인가.
“내가 살아 봐야 얼매나 더 살겄어. 자다가 눈 안 뜨믄 죽은 것일 텐디, 그라믄 장사치를 것도 없이 집을 풀썩 주저앉혀 묘루 쓰면 될 것을.”
노파가 한숨 섞인 소리로 주절거리자니 여태껏 한쪽에 얌전히 앉아있던 피디가 턱을 받쳐들고 다가앉는다.
“군청에서 거짓말을 하다가 들통이 났거든요.”
“그것들이야 입만 열면 거짓말인디 뭘 새삼스럽게.”
노파도 들어서 알고는 있었다. 낙동강변의 어딘가에 오래된 주막이란 것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관광객들이 발 디딜 틈 없이 몰려들게 되었다 한다. 그걸 군청의 어느 작자가 입을 놀렸는지는 모르겠지만, 내세울 것이라곤 금강 밖에 없는 군청에서 강 언저리에 붙어있던 춘월옥을 ‘금강의 마지막 주막’이라고 신문에도 내고, 텔레비전에도 비추어댔다는 것이다. 마침 사대강 공사가 끝나고 강가로 자전거길이며 꽃길이 만들어지면서 몰려든 사람들이 하루에도 수백 명씩 찾는 바람에 춘월옥은 명소가 되었다 한다. 군청에서 다 쓰러져가는 집을 손보고, 화장실도 신식으로 새로 짓고 그 곁에 홍보관이란 것도 만들어 옛날 사진이란 걸 모아 놓았다는 소리도 사람들 편에 전해들은 바 있었다. 노파는 그보다는 아침부터 벌겋게 술에 취해 자빠져 있는 게 일인 춘월옥 주인 여편네가 몰려드는 사람들을 어떤 몰골로 맞을지 걱정도 되고, 자못 궁금하기도 했다.
“나는 마지막두 싫구 그냥 죄용히 살게 해주믄 되어.”
노파는 공연히 사달을 만든 영미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맥 놓고 털어놓은 이야기를 무슨 신문인가에 싣는 바람에 이 야단이 벌어진 것이었다. 신문을 보고 찾아왔다는 이들이 ‘마지막 주막’ 어쩌고 할 때도 같잖아 대꾸도 않았던 것인데, 어느 자발 머리 없는 인간이 사진까지 찍어서 컴퓨터로 군청 어디인가에 올려 두었다는 것이다. 그날부터 춘월옥을 마지막 주막이라고 속인 군청을 비난하는 글들이 이어지면서 일이 시끄럽게 되었다는 것이다.
“거짓말이 문제가 아니라, 그걸 덮으려고 할머니를 내쫓으려고 하는 거잖아요.”
밤톨처럼 야무진 것이 웬만한 사내보다 나을 성 싶은 영미가 끼어들어 한마디 내어놓는다.
군청 홈페이지라는 곳에 항의 글이 수두룩하니 올라오며 시끄러워지자, 대책을 고심하던 군수는 송노파의 주막이 무허가라는 점을 이유로 철거를 시킨 것이다. 노파의 주막을 없애면 춘월옥이야말로 명실상부한 금강의 ‘마지막 주막’이 되는 셈이었다.
“우리 시어머니의 시어머니 때부텀 해온 주막이 워째 불법이여. 뭐시, 허가가 없어? 요즘은 시대가 바뀌어서 쇠불알에 붙은 금파리 같은 것들이 죄 벗구 나와 지랄들 허는 춤추느라 뜸허지만 라디오서는 가끔 틀어주는디 공무가 바빠서 못 들어봤나부네.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주막에 궂은비 허는 노래두 있잖여.”
“맞아요. 무슨 수가 있어두 할머니는 결사투쟁해야 해요.”
“결사투쟁?”
노파가 주막을 떠나지 못하는 데는 따로 사연이 있었다.
귀밑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남편은 신방을 꾸미고 꽃잠을 며칠 자기 무섭게 산으로 들어갔다. 당장 세상이 바뀔 것 같던 동란은 그리 오래되지 않아 판세가 뒤바뀌었다. 기세를 올리던 인민군들이 허둥지둥 보따리를 싸기 시작했다. 농사지을 땅을 나눠 준다는 말에 인민군을 따라다니던 남편은 그야말로 끈 떨어진 뒤웅박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나마 인민군들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 여기며, 그녀는 이장 노릇을 하던 집안 어른의 말에 따라 산에 숨어있던 남편을 불러내어 지서에 자수를 시켰던 것이다. 산에서 내려와 며칠 조사만 받으면 풀려난다던 남편은 경찰에 끌려간 뒤로 감감무소식이었다. 이리저리 수소문을 해도 행방을 알 수가 없고, 그저 풍문에 금강 언저리에서 총 맞아 죽었다는 흉흉한 소문이거나, 토굴에 몰아넣은 채 폭약을 터뜨려 떼죽음을 시켰다는 소리도 있지만 그런 건 믿을 바가 못 되었다. 세상 조용해질 때까지 산에 숨어있겠다던 남편의 등을 떠밀어 자수를 시킨 일이 노파는 두고두고 후회가 되었다.
그녀는 지금도 남편이 돌아와 수세미처럼 꺼끌꺼끌하고 허옇게 새었을망정 제 귀밑머리를 쓰다듬어 줄 날을 기다렸다. 문패도 없고 번지도 없는 주막을 남편이 어떻게 찾아오겠는가. 그저 원래 있던 강가에 들러붙어 꼭 지키고 있을 수밖에.
남의 속도 모르는 사람들은 노래를 흥얼거리며 노파의 집을 찾아왔다. 어디서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지 첫새벽부터 자전거를 끌고 온 패들은 으레 ‘번지 없는 주막’부터 걸터듬었다.
“여그가 번지 는 주막유?”
“번지가 있나 나 식전댓바람부텀 호구조사럴 나온겨? 미친 넘들 같으니라구.”
“워째 손님헌티 넘자부텀 들이댄대유?”
“손님이구 작것이구 뭘 처먹을겨?”
“워매, 할머니 욕허는 솜씨럴 보니께 맞긴 맞게 찾아왔나 보네. 근디, 손님헌티 너무 심한 거 아뉴?”
“심혀? 더 심허게 심심헌 걸루 줄까?”
“할매는 워째 입이 그리 거신댜?”
“워쩌, 열무래두 심궈 먹을랴구 입에 거름을 내서 그런가부지, 아, 걸기루야 윗구녕보담 아래루 나오는 구녕이 훨 걸직헌디.”
“오매, 할매는 안즉두 상하수도에 하자가 으신가보네.”
“아참부텀 씰데는 아가리 그만 놀리구 뭘 처먹을겨?”
“빨간주댕이 오리지날루 줘봐유.”
“오리지랄이구 뭐시구 오래 살랴믄 막갈리루 혀.”
“막갈리는 싱겁기만 허구 배가 불러서 못 먹어유.”
“내가 여서 육십 년 넘게 장사를 해믄서 본께 이 동니서 소주 마신 노인네들은 환갑두 못 어먹구 갔구, 그나마 막갈리 먹는 노인들은 시난고난 허리 꾸부리구 여적지 드나들구 있다니께.”
하루가 멀다고 군청 공무원들이 드나들며 으름장을 놓았지만, 그럴수록 무슨 영문인지 부르지도 않은 사람들이 꾀어들었다. 아무리 욕을 퍼부어도 실실 웃으며 제 친구까지 데리고 동물원 구경 오듯이 다시 찾아오니 나중에는 말릴 힘도 없게 되었다. 알다가도 모를 게 세상이고 인심이었다. 한때는 빨갱이네라고 손가락질하며 사람 그림자도 어른거리지 않던 집에 청하지도 않은 사람들이 제 발로 몰려들었다. 누군가 「번지 없는 주막」이란 대중가요의 주막이 금강 가에 있다는 사연을 인터넷인가 컴퓨터인가로 올린 뒤로 더했다. 구경꾼들은 군청에서 애써 물레방아도 해놓고, 시원한 원두막도 마당에 세워두었다는 춘월옥에는 가지 않고, 다 쓰러져 가는 움막 꼴을 한 노파의 집으로 떼를 지어 몰려왔다.
하도 이상해서 연유를 물어보면 열에 아홉은 같은 답을 내어 놓았다.
“번지가 없잖아요.”
그런 이들은 막걸리통이라도 비우고 얼굴이 벌게지면 으레 젓가락 장단에 노래 도막을 내어놓았다.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주막에
궂은비 내리는 그 밤이 애절쿠려.
능수버들 태질하는 창살에 기대여
어느 날짜 오시겠소 울던 사람아.
아주까리 초롱 밑에 마주앉아서
따르는 이별주는 불 같은 정이였소.
귀밑머리 쓰다듬어 맹세는 길었소.
못 믿겠네 못 믿겠네 울던 사람아.*
북적거리던 손님들이 다 떠나고 나면 노파는 바람벽에 굽은 등을 기대고 자신도 모르게 그 노래를 흥얼거리곤 했다. 귀밑머리 쓰다듬어 맹세는 길었소. 자수를 하기 전날 밤에 남편은 귀밑머리를 쓰다듬으며 며칠만 기다리면 돌아오겠다고 손가락을 걸어 맹세를 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인민군을 따라 북쪽으로 떠나보내기라도 할 것을. 공연히 등 떠밀어 경찰에 자수를 시킨 것이 노파는 평생 한이 되었다. 눈은 지물거리고, 흐려졌지만 노파는 아직도 남편이 몇 번이고 손가락을 걸며 돌아오겠다던 맹세를 믿고 있었다.
“죽었으믄 혼이래두 찾아올겨.”
딴 데로 옮기면 보상금도 주고, 새로 주막을 차릴 자리도 봐 주겠다고 했지만 노파는 그럴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들이 그저 돈을 앞세워 남의 등을 떠밀고 있지만 노파는 강가에서 한 발짝도 떠날 생각이 없었다. 이곳을 지키고 살다가 이 자리에서 눈을 감아야 행여 죽은 남편의 혼이라도 만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노파는 반쯤 그슬린 채 비스듬히 기운 집을 버티고 있는 대들보를 아득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한창 기운이 좋았을 시절에 시아버지가 뒷산에서 아름드리 소나무를 찍어다가 얹었다는 대들보는 시커머니 숯검정을 품은 채 허공에 매달려있으면서도 여전히 집을 버텨주었다.
남편이 부역자로 몰려 경찰에 끌려간 뒤에 한 떼의 반공 청년이라는 것들이 몰려와 집에다 불을 놓는 바람에 그나마 홀랑 태워버릴 뻔한 집이었다. 그나마 배꾼들이 강물을 길어와 끼얹어주고 하늘이 기다렸다는 듯이 비를 주시는 바람에 중풍 맞은 사람처럼 반편은 되었어도 여태껏 자리를 지키고 남을 수가 있었다.
“석 달 장마에도 푸내기 말릴 볕은 난다잖우. 피디님두 오셨으니 뭔 수가 나지 않겄슈. 안그류, 피디님.”
박봉석이 대가리를 얼굴에 닿을 정도로 들이밀자 피디는 흠칫 놀라 뒤로 물러앉으며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피디는 군청이 거짓말로 ‘마지막 주막’이란 곳에 주민의 혈세를 낭비한 문제를 보도할 것이라고 했지만 노파의 귀에는 제대로 들어오지를 않았다.
박이 객쩍은 농담을 늘어놓고 있자니, 난데없는 찻소리가 마당으로 들어선다. 어지러운 발들이 우르르 몰려와 거침없이 문짝을 탕탕 두드린다. 무슨 일인가 싶어 지쳐 놓은 문을 슬며시 열어보니, 군청에서 나온 문화관광팀장이 반지레한 얼굴을 비듬히 들이밀고 어서 나와 보라고 손짓을 한다. 마뜩찮은 얼굴로 나가보니, 면 서기들 너덧이 트럭에서 무언가를 끌어내리고 있다.
“할머니, 이제 맘 놓구 원 이 장사허슈.”
팀장은 제가 군수를 구워삶아 주막을 계속하게 했다며 까치뱃바닥처럼 흰소리를 탕탕 늘어놓는다.
그리고 그이가 손으로 가리키는 곳을 보니, 관뚜껑만한 널빤지에 뱀 기어가듯 구불구불 적은 간판이 걸려있다.
‘번지 없는 주막.’
입에 침을 튀겨가며 제 공치사를 하기 바쁘던 팀장은 수첩을 꺼내들고 달려드는 피디를 보고는 움찔 뒤로 물러섰다가는 이내 자발 머리 없이 입을 놀려댔다.
“춘월옥은 어찌 되나요? 이십억이나 들였는데.”
“여그는 아무래두 번지수가 없으니께 그냥 번지 없는 주막으루 가구, 춘월옥은 엄연히 번지가 백힌 곳이니께 마지막 주막으루 공식적으루 가자 이거쥬. 말하자면 상생에 시너지 효과…”
“그러니까 군청에서도 거짓말한 게 아니다?”
“그렇쥬. 관청에서야 아무래두 번지수가 중요허니께, 행정적으루다가 여그는 아무래두 무허가니께 거스그허다 이 말씸이쥬. 그랴서 여그 으르신네는 번지 없는 주막으루 사시는 데까정 보전허자는 거쥬. 글구 이건 대외비 사항인디유, 낭중에 여건이 좋아지믄 마당에 「번지 없는 주막」 노래비두 하나 세울라구 그류.”
사람들 입에서 노파네 집이 ‘번지 없는 주막’이라 불리며 발길이 끊이지 않자, 춘월옥은 공식적으로 ‘금강의 마지막 주막’으로 지정하고, 노파네 주막은 그냥 ‘번지 없는 주막’이라 간판을 내걸기로 했다는 것이다.
“밥 처먹구 헐 일 꽤나 나 부네. 다 쓰러져가는 집에 간판은 달어 뭘 헌대. 그럴 심 있으믄 여그 바람에 덜렁거리는 문짝에 못이나 쳐 주구 가.”
모처럼 공치사를 늘어놓으려던 팀장은 춘월옥에 들어간 돈을 조목조목 따지고 달려드는 피디에 쫓겨 간판을 달아매기 무섭게 차에 올라 꽁지가 빠지게 달아날 참이다.
“그럼, 할머니네 집에 정식 허가를 내주는 것인가요?”
“아, 번지두 는 주막에 뭔 허가유?”
그러거나 말거나. 노파는 번지가 있건 없건 이곳을 떠나지 않게 되었다니 다행이었다. 그러나 세상 어디에 번지 없는 땅이 있겠냐. 속절없이 섣달 바람에 떨어진 가랑잎처럼 모진 세월에 어디론가 날아가 잃어버리고 만 것이지. 노파는 웃는 것인지, 우는 것인지 모를 얼굴로 비스듬히 기운 추녀 끝에 큼지막이 매달린 간판을 우두커니 바라볼 뿐이었다.
* 1940년 백년설 작사, 노래의 대중가요
—계간 『시에』 2013년 가을호
이시백
경기도 여주 출생. 1988년 『동양문학』으로 등단. 장편소설 『나는 꽃도둑이다』, 『종을 훔치다』. 소설집 『갈보 콩』, 『누가 말을 죽였을까』, 『890만번 주사위 던지기』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