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으로 메르세데스-벤츠의 상징은 프리미엄급 세단이다. 로고인 '삼각별'은 이러한 벤츠의 브랜드 이미지를 상징하는 특별한 뉘앙스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최근 벤츠는 SUV 시장에서도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루어 냈다. 이제는 삼각별을 단 SUV가 전혀 낮설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메스세데스-벤츠 코리아가 공개한 '더 뉴 메르세데스-벤츠 GLB, GLA 250 4매틱'은 콤팩트 SUV 시장의 패권까지 노리는 벤츠의 야심이 엿보이는 형제 모델이다.
더 뉴 GLA는 2013년 벤츠 SUV 패밀리에 합류한 GLA의 2세대 모델이며, 뉴 GLB는 2019년 6월 최초 공개하며 SUV 라인업에 늦깍이로 들어섰다.
GLA는 2014년 국내에 첫 선을 보였다. 감각적인 디자인과 벤츠 브랜드다운 품질감으로 젊은 층에게도 어필하는 스포티한 모델로 짧은 시간에 자리를 잡았다. 이어 등장한 GLB는 보다 넉넉한 실내 공간과 편의기능으로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즐기려는 구매층의 마음까지 다잡고자 한다.
서울에서 경기도 가평 아침고요수목원까지 돌아오는 약 150km 구간을 '더 뉴 GLB'와 '더 뉴 GLA'로 번갈아 타고 달렸다. 두 차 모두 '4매틱' 모델이다.
서울에서 가평으로 가는 구간에 처음 만난 시승 모델은 GLB이다. 선보다 면을 강조한 GLB의 디자인은 날렵하고 세련된 느낌보다는 단단하고 안정감 있는 모양새다. 수직 형태의 전면부는 보수적인 느낌이고 짧은 오버행이 저돌적인 느낌을 준다.
뉴 GLB, GLA에는 모두 AMG 라인이 기본 사양으로 적용되어 다이아몬드 라디에이터 그릴과 19인치 경량 알로이 휠 등이 적용되어 있다. 장식이 훌륭한 고급 슈트를 걸친 젊은 근육질 남성의 느낌이다.
실내에 들어섰다. 운전석에 앉자 각각 10.25인치 디지털 계기판과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 하나의 와이드 디스플레이로 연결된 대화면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계기판이 매우 화려한 디자인인데 다소 현란해서 시인성이 떨어지고 벤츠에 기대하는 명품다운 디자인은 아니다. 내비게이션도 많은 정보를 담고 있으나 복잡하여 평소 티맵이나 카카오맵을 쓰던 사용자는 불편함을 느낄듯하다.
나파 가죽을 사용한 D컷 스포츠 스티어링 휠, 아티코 인조가죽 및 다이나미카 재질 시트와 카본 스트럭처 트림이 적용되었는데 품질감이 매우 좋다. 시트의 착좌감과 몸을 잡아주는 그립 또한 훌륭하다. 그런데 비상 버튼의 크기가 작고 위치가 애매하다. 복잡한 실내가 익숙해지기까지 조금 시간이 걸렸다.
계기판 하단에 3개의 원형 통풍구와 알루미늄 느낌의 다양한 소재는 오프로더 느낌의 개성을 살리고자 했다는 설명인데 운전석에서 바라보는 인테리어의 느낌은 고급스럽다기보다는 예쁘고 사이버틱한 느낌이다.
액셀러레이터에 발을 얹고 출발했다. 처음부터 묵직한 토크의 무게가 밀려온다. 조향감과 승차감이 상당히 부드럽다. 탄탄한 자세로 도로의 잡음과 진동을 효율적으로 잘 걸러준다. 그런데 고속 영역으로 가속을 하니 쭉쭉 뻗어나가는 느낌이 부족하다. 제원표에서 확인한 마력과 토크에 대한 기대에는 못 미치는 느낌이다. 가속이 되지 않거나 속도가 안 나오는 것이 아닌데, 주행 느낌이 점잖아서 스포츠 주행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아쉬움을 주겠다.
하지만 2천cc 가솔린 엔진과 8단 DCT의 조합은 매끄럽고, 기본으로 장착된 컴포트 서스펜션은 편안하면서 안정된 승차감을 뒷받침한다.
목적지인 가평에 도착해서 뒷좌석과 트렁크 공간을 확인해 보았다. 2열 좌석은 제법 무릎 공간이 넉넉하다. 또한 천장이 높아 개방감도 좋다. 승용차로서는 중형급 이상의 공간감이 느껴져 2명 자녀를 둔 가정의 패밀리카로 손색이 없을 듯 하다. 트렁크 공간도 실용적이고 쓸 만 해 보인다.
가평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는 '더 뉴 GLA 250 4매틱'으로 시승차를 바꿔 탔다. GLA는 국내시장 출시 후 지난 여름까지 국내에서 1만2천대가 넘는 판매고를 기록하며 인기를 얻고 있다. 더 뉴 GLA는 외관 뿐 아니라 실내공간도 1세대 모델에 비해 넓어졌다.
GLA와 짧은 오버행, 단단한 숄더라인, AMG 디자인의 라디에이터 그릴, 19인치 알로이 휠 등 패밀리룩 디테일은 유사하나 쿠페를 연상시키는 측면 라인으로 날렵함과 역동성이 강조되었다.
운전석에서 느끼는 실내 공간 크기는 GLB와 유사하다. 다만 A-필러의 경사각으로 헤드룸이 조금 타이트한 느낌이 든다. 인테리어 감각은 대동소이하다. 동반석 수납 공간 등 다소 단순화된 부분들이 있는데 쿠션감 있는 내장재들이 고급스러운 느낌이다. 컵홀더 등의 소소한 기능도 편리하게 디자인되어 있다.
나파가죽의 D컷 스티어링 휠, 시트와 카본 스트럭처 등 인테리어 사양은 GLB와 동일하고, 세부적인 디자인 느낌이 좀 더 모던하고 진보적이다.
선루프는 천정 대부분을 커버하는 대형 사이즈인데 틸팅만 지원한다. 앞좌석보다 뒷좌석에서 레그룸의 차이와 머리 공간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뒷자리는 GLB와 달리 가족용으로는 조금 좁은 느낌이다.
차를 출발시키니 '아, 이거지' 하는 탄성이 나온다. 처음 GLB를 타며 기대했던 탄력적인 움직임과 차체 동작이 GLA에서 나온다. 승차감을 유지하면서 가감속과 코너링에 더욱 예민하게 반응한다. 훨씬 재미있는 드라이빙이다.
그런데 50~60km 정도 주행을 한 후, 타고 있는 GLA가 GLB에 비해 피곤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차의 움직임이 재미있으니 좀 더 과격한 운전을 했겠지만 차체의 예민하고 가벼운 느낌에서 오는 운전자의 피로감이 느껴졌다. '역시 중년의 나에게는 GLB인 것인가?'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X세대는 1968년을 전후하여 베이비부머 세대 이후에 태어난 이들로 지금의 40대, 50대에 해당한다. Z세대는 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세대로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다.
메르세데스-벤츠 더 뉴 GLB, GLA는 Z세대의 옷을 입고 X세대의 성격을 가졌다. 세련된 옷을 입고 발랄한 여자친구와 이 차 타고 클럽에 가면 딱 좋을 만한 모던하고 화려한 인테리어와 넉넉하고 인품 좋은 중년을 닮은 안락함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대부분의 연령이 만족할 덕목이 있는 차라는 이야기다. GLB와 GLA는 차급이나 크기의 차이보다는 성격이 어느 쪽으로 조금씩 치우쳐 있느냐는 차이가 날 뿐이다.
다만 가족을 생각한다면 당신의 질주 본능을 조금 잠재우더라도 GLB를 선택하길 바란다. 하다못해 2열 시트의 등받이 각도 조절은 GLB만 가능하다. 당신이 싱글이거나 애인(아내도 포함된다)만을 생각해도 되는 사람이라면 선택은 GLA다. 보다 재미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