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Ⅱ-104]아내(처妻)가 진정 하늘天보다 더 무서운가?
시중市中의 언어들이, 아무리 세태世態라지만, 듣고나면 실소失笑를 넘어 그렇게 씁쓸할 수가 없다. 우리가 흔히 쓰는 관용어나 속담을 빗대 유행이 된 말들이 있다. 인명재천人命在天과 인명재처人命在妻, 아무려면 사람(우리)의 목숨이 하늘에 달려 있는 게 아니고 마눌님(처)에게 달려 있을까? 혹자는 천하태평天下泰平을 처하태평妻下 泰平이라고도 했다. 하기야 마눌님의 심기가 평안해야 집이 조용할 테니 맞는 말같기도 하다.
아침에 큰처남이 예초기를 빌리려 왔다. 예초기 몸통과 칼날 있는 부분을 큰 보자기(코스트코에서는 쓰는)로 감싸는 게 아닌가? 승용차에 실을 것인데, 뭐 그렇게까지 해요? 하니까, 마눌님이 혹시 차에 기스날까봐 그렇게 하라니까 어쩔 수 없잖여, 한다. 아하, 그래요? 꼼짝마라네요, 허니까, 당근이지, 최서방은 안그려? 요즘에는 하늘보다 더 무서운 게 마눌님이여, 한다. 그것도 그럴 것이, 나 역시 방금 전 파프리카를 심으라는 원격명령을 받아 임실장에서 모종을 사온 길이다. 나로선 하기 싫은 일이지만, 다음에 검사(?)를 하면 지적사항이 될까 염려해서이다. 흐흐.
고속도로나 국도를 운전하다보면, 유난히 과속하는 차를 볼 때가 많다. 그럴 때 비아냥대는 말이 “장모나 장인이 돌아가셨나보다”이다. 자기 친부모가 돌아가셨다면 저렇게까지 과속을 하겠냐, 조수석에 앉은 배우자를 의식한 과속過速일 거라는 추측인데, 어쩌면 딱 들어맞는 말일 듯. 웬만한 집 벽에 걸려 있는, 한국적 상황의 대표적 가훈家訓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을 ‘처화만사성妻和萬事成’(아내와 화목하면 안되는 일이 없다)으로,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을 ‘진인사대처명’(남편으로서 최선을 다한 후 아내의 명령을 기다려라)으로 탈바꿈시키는 진기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손님이 왕’이 아니라 ‘아내가 왕’인 것이다. 어떤 사람은 아내가 시킨다고 손바닥에 '임금 왕王'을 쓰고 버젓이 손바닥을 앞으로 내밀기도 했다. 하기야, 우리나라 둘도 없는 대통령부터 솔선수범을 보이는데 개돼지같은 우매한 백성들이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더 나아가 ‘지성이면 감천’을 ‘지성감처至誠感妻’(아내를 지극정성으로 보필하라. 그러면 감동할지니)로, ‘순천자 順天者는 흥興하고 역천자逆天者는 망亡한다’는 진리의 말씀에서 天을 妻로 바꾸어 보라. 아내에게 순응하면 흥하고 아내를 거역하면 망한다는 뜻이지 않은가.
물론 말쟁이, 글쟁이들이 웃자고 만든 말이겠고, 시류時流를 약간은 반영했다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오죽하면 처갓집 가는 것을 ‘성지순례聖地巡禮’라 하고, 아내의 생일날을 ‘성탄절聖誕節’이라 하는 농담이 생겼겠는가. 친가의 모임보다 처가의 모임이 ‘영순위’가 된 지 오래이다. 고모보다 무조건 이모이다. 고모는 어쩌면 친척도 아닌지 모르겠다. 며칠 전 처가 6남매가 울릉도 3박4일 가족모임을 하는데, 간 크게도 농번기를 핑계로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으니, 그 후과後果를 어찌 감당할꼬?
어제(21일)는 ‘부부의 날’이다. 두 사람이 백년해로를 기약하며 사랑이라는 미명美名으로 만났으나, 일심동체一心同體, 한 마음이 되기 말처럼 쉬운 일인가? 한 몸(동체同體) 되기는 쉬워도 따로국밥, 두 마음(양심兩心)인 부부 투성이일진저. 친구들과 어제 마침 ‘부부의 날’ 이 화제에 올라 “두 몸이 한 몸 되어 둥글어봅시다는 뜻으로 만든 기념일이니, 오늘밤을 그냥 넘기면 죄인”이라 했더니 모두 배꼽이 빠지게 웃었다. 한 친구는 ‘둥글어’를 전라도사투리 ‘궁글어’라고 해야한다해 웃고, 한 친구는 왜 그날이 5월이냐고 물었다. 한 친구가 덧붙이기를, 매달 21일 ‘의무방어전’을 하면 1년 12번은 하겠다고 해 다시 폭소. 세상에 이 나이에 그렇게나 많이(?)? 그런데, 월말부부인 나는 어떻게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