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년전인 1907년 2월 21일은 한국의 근대사에 상징적인 날입니다. 한국민들의 기질을 잘 나타내주는 덕목인 타인에게 빚을 지고는 견딜 수 없는 그런 국민성을 만천하에 표출한 것입니다. 바로 국채보상운동이 시작된 날입니다. 국채보상운동은 일제가 한국(당시 대한제국)에게 제공한 차관 1,300만원(현재 가치로 치면 2,400억원)을 국민들이 주도해서 상환 즉 갚아나가자는 국민 대운동입니다. 1998년 IMF 사태때 금 모으기운동이라고 보면 됩니다.
일제는 1904년 한일의정서 강제 체결 이후 대한제국의 경제를 일본에 예속시키려는 방법으로 높은 이자를 가진 차관을 들여오도록 강요했습니다. 특히 1906년 통감으로 온 이토 히로부미는 대한제국의 경제적 개선을 미끼로 그해 일본으로부터 1,000만원 차관을 빌리도록 했습니다. 이 돈들은 대부분 한국인들을 조사하고 탄압하기 위한 일본의 경찰기구를 확장하고 많은 일본인들을 고용하는데 인건비로 사용되었습니다. 다시말해 차관은 일제의 침략수단에 이용하기 위해 어거지로 끌어들인 고리대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국사편찬위원회의는 일본으로부터 얻어 온 차관은 시설 개선의 미명아래 그들의 사욕만을 채워 주었으며 일본의 차관은 한국을 경제적으로 예속하려는 간책이었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대한제국의 지식인층은 그 간악한 차관의 의미를 간파했습니다. 그 더러운 돈을 갚지 않으면 악덕 사채업자처럼 두고두고 한국민을 괴롭힐 것이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당시 국채보상운동은 대구에서부터 시작됐습니다. 한때 대구는 한반도의 계몽지같은 지역이었습니다. 세상사에 문제있는 부분에대해 앞서 지적하고 혁신적인 의견을 많이 냈던 곳이기도 합니다. 대구의 대표적인 출판사인 광문사에서 특별회의를 열고 중대한 결의를 합니다. 참석자들은 "우리나라의 국채가 현재 1,300만 원인데 정부의 국고금으로는 갚을 수 없는 형편이라 국채를 갚지 못하면 장차 토지라도 주어야 할 형편이다. 우리 2천만 동포가 담배를 끊고 그 대금으로 매월 1명당 20전씩 모은다면 3개월 만에 국채를 다 갚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결의했습니다.
이때부터 남자들은 금주와 금연을 하며 돈을 모았으며 여자들은 비녀와 가락지를 팔아 나라의 빚은 갚는 데 동참했습니다. 양기탁 선생을 중심으로 한 신민회와 대한매일신보도 국채보상운동을 지원합니다. 일제는 화들짝 놀라 양기탁선생을 횡령 혐의로 구속했지만 양기탁 선생은 결코 횡령을 하지 않고 떳떳하게 국채보상운동을 지원한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국채보상운동으로 모아진 금품인지 모르고 도둑질을 하려한 무리들은 그 돈이 온국민이 피와 땀으로 모은 국채보상운동의 돈인지 알자 통한의 눈물을 흘리며 자신들의 집에 둔 물건까지 가져 나왔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대구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곧 전국민들의 호응으로 전국적으로 확산되었습니다. 1906년 을사늑약으로 분개하던 민족적 항거의식이 국채보상이라는 공동의 목표아래 전국민이 혼연일체가 된 민족적 운동으로 한꺼번에 거대하게 뿜어져 나온 것입니다. 거세게 불타오르는 국채보상운동은 일제 순사들이 대거 개입된 방해공작으로인해 지속되기는 힘들었습니다. 자발적인 운동인데다 구심적 세력이 든든할 수가 없었다는 점 그리고 일제가 당시 대한제국의 재정권을 장악하고 있었다는 것도 국채보상운동이 좌절할 수밖에 없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습니다. 하지만 국채보상운동은 한국민의 마음에 뭔가 묵직한 의미를 전달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국채보상운동은 그 후 3.1일제저항운동, 광주학생 항일운동, 4.19혁명, 부마민주항쟁, 6.10 민주항쟁, IMF 금모으기 운동, 촛불혁명 그리고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발령후 일어난 일련의 민주화회복 대규모집회로 이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야말로 한국민의 정신적 항거운동의 시발점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이밖에 오늘 2월 21일은 1362년 최영장군과 이성계장군이 홍건적 10만을 몰아내고 개경을 수복한 날이자 1936년 항일운동을 펼치다 검거된 신채호선생이 뤼순감옥에서 순국한 날입니다. 모두 이 나라를 위해 대단히 의미 있는 날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라가 매우 힘들고 국민들의 생활도 무척 어려운 때입니다. 그렇지만 한국민들은 위기때마다 모이고 단합해 뭔가를 이뤄내는 저력을 가진 민족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오늘도 그런 날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2025년 2월 21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