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수의 찔레꽃 / 월북시인 윤복진
찔레꽃 이원수 (신소년 1930.11)
찔레꽃이 하얗게 피었다오
언니 일 가는 광산 길에 피었다오
찔레꽃 이파리는 맛도 있지
배고픈 날 따먹는 꽃이라오
광산에서 돌 깨는 언니 보려고
해가 저문 산길에 나왔다가
찔레꽃 한잎 두잎 따 먹었다오
저녁 굶고 찔레꽃을 따 먹었다오
찔레꽃 이원수 (동시집『너를 부른다』창비 1979)
찔레꽃이 하얗게 피었다오
누나 일 가는 광산 길에 피었다오
찔레꽃 이파리는 맛도 있지
남모르게 가만히 먹어봤다오
광산에서 돌 깨는 누나 맞으러
저무는 산길에 나왔다가
하얀 찔레꽃 따 먹었다오
우리 누나 기다리며 따 먹었다오
찔레꽃 이연실 작사/ 박태준 작곡/ 이연실 노래
엄마 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
배고픈 날 하나씩 따 먹었다오
엄마 엄마 부르며 따 먹었다오
밤 깊어 까만데 엄마 혼자서
하얀 발목 아프게 내려오시네
밤마다 꾸는 꿈은 하얀 엄마 꿈
산등성이 너머로 내려오시네
엄마 엄마 나 죽거든 전래동요?
엄마 엄마 나 죽거든
앞산에도 묻지 말고 뒷산에도 묻지 말고
양지쪽에 묻어 주
비오면 덮어주고 눈 오면 쓸어 주
내 친구가 찾아와도 엄마 엄마 울지 마
(미국민요 ‘클레멘타인’에 이 가사를 붙여 이연실이 불렀음)
이연실은 박태준곡 ‘가을밤’에 이원수의 동시 ‘찔레꽃’을 개작하여 불렀다. 감정을 넣은 열창이지만 동요는 역시 어린이가 꾸밈없이 어린이답게 불러야 듣기 좋은 것 같다. (앞에 올린 곡은 이은미의 노래임)
이원수는 왜 ‘찔레꽃’을 개작하여 언니를 ‘누나’로 고쳤는지 잘 모르겠다. 아무리 배를 주린 시대였다고는 하지만 여자가 광산에 돌 깨러 다니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기러기 윤복진 시/ 박태준 곡
울밑에 귀뚜라미 우는 달밤에
기럭기럭 기러기 날아갑니다
가도 가도 끝없는 넓은 하늘로
엄마 엄마 부르며 날아갑니다.
먼 산에 단풍잎 붉게 물들어
기럭기럭 기러기 날아갑니다
가도 가도 끝없는 저 먼 나라로
엄마 엄마 부르며 날아갑니다.
그리운 고향 윤복진 시/ 외국 곡(Molly Darling)
먼 산에 진달래 울긋불긋 피었고
보리밭 종달새 우지우지 노래하면
아득한 저 산 너머 고향집 그리워라
버들피리 소리 나는 고향집 그리워라
이 내 몸은 구름같이 떠도는 신세임에
나 쉬일 곳 어디련가 고향집 그리워라
새는 종일 지저귀고 행복은 깃들었네
내 고향은 남쪽바다 고향집 그리워라
윤복진은 월북시인으로, 위의 2편의 동요는 그가 월북자라는 이유로 언제부터인가 음악책에서 자취를 감추고 다른 가사로 대체되었다. 그리고 우리의 기억에서도 사라져가고 있다. 윤복진의 동요(박태준곡) ‘기러기’는 교과서에는 ‘가을밤’으로 실려 있다. ‘가을밤 외로운 밤, 벌레 우는 밤...’으로 시작되는 이 ‘가을밤’의 가사도 좋지만 나는 어쩐지 ‘울밑에 귀뚜라미 우는 달밤에...’의 원 가사가 더 정겹게 느껴진다.
가을밤 이정구 시/ 홍난파 곡
착한 아기 잠 잘 자는 베개머리에
어머님이 홀로 앉아 꿰매는 바지
꿰매어도 꿰매어도 밤은 안 깊어
기러기 떼 날아간 뒤 잠든 하늘에
둥근 달이 혼자 떠서 젖은 얼굴로
비취어도 비취어도 밤은 안 깊어
지나가는 소낙비가 적신 지붕에
집을 잃은 부엉이가 홀로 앉아서
부엉 부엉 부르니까 밤은 깊었네
나는 어렸을 때 이 노래를 많이 들었다. 여자애들이 줄넘기하면서 즐겨 부르던 노래였다고 기억된다. 엄마가 등잔불 밑에서 밤늦게까지 바느질하는 정경이 눈에 선하게 느껴지는, 그래서 지금도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 노래이지만 라디오나 TV에서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고 그래서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노래이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1930년대의 작품이고 작사자 이정구는 북한의 시인이라고 한다. 해방이 되고 삼팔선이 그어질 때 그는 북쪽에 있었던 것 같다. 이 노래도 역시 금지곡이었던 것이다.
첫댓글 동요 가을밤 가사를 윤복진이 지은 것이었군요. 가을밤 제가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노래입니다만 월북시인이 가사를 지었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네요. 월북 시인이라는 이유로 남한에서 작품 자체가 금지된 사람이 여럿 있었습니다. 평안북도 시인 백석, 함경북도 시인 리용악은 일제 시대 때 정말 좋은 시들을 남겼던 작가들이었는데 월북 작가라는 이유로 불과 10여년 전까지도 작품이 거의 금지당하다시피 했었지요. 사실 월북 작가뿐 아니라 북한 작가들과 문학 자체에 대해서 우리가 더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현재 남한에 북한 문학에 대해서는 거의 잘 알려져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나마 알려진 북한 문학은 월북 작가가 분단 전
일제 시대 때 남긴 작품 정도가 대부분입니다. 이제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서 월북 작가가 북한에서 썼던 작품, 아예 북한에서 나고 자란 분단 이후 등장한 북한 문학에 대해서 일반인들이 더 알려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문학을 보는 것은 사람의 근본을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우리가 북한과 통일을 하려고 생각한다면, 적어도 그들의 생각과 생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테니까요. 이것을 위해 작지만 아주 의미있는 행동 중이 북한 문학을 독서하고 이해하는 것이겠지요. 문학과 지성사에서 거의 수 백 페이지가 되는 <북한 문학> 선집이 있는데 혹시 이쪽으로 관심이 있으시다면 꼭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귀거래사님께서 윤복진, 이정구 시인을 저에게 소개해 주셨으니 저도 좋은 북한 시인을 한 명 소개하겠습니다. ^^ '김순석'이라는 함경북도 청진(라남) 출신의 시인이 있습니다. 이 분은 사실 일제 시대 때는 나이가 젊어서 작품이 거의 없고 1950년대 60년대 북한 문단에서 주로 활동한 분입니다.(완전 북한 시인이지요) 대부분 북한 시들이 허황된 김일성 찬가 일색인데 김순석의 시는 매우 서정적이고 진실되며 아름답습니다. 아마 남북한을 통틀어서 이만큼 굉장한 서정시인을 찾기 어려울 정도일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말씀드린 문학과 지성사에서 나온 <<북한 문학>>에 이 분 작품이 열 편 정도 실려있습니다.
그리고 이원수 시인의 찔레꽃이 저렇게 여러번 개작된 것이었군요.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여러번에 걸쳐서 새롭게 고쳐쓰는 것은 종종 있는 일이지요. 그만큼 완성도를 높이겠다는 뜻일 것 같은데 저는 개작 이전 작품에서 더 좋은 느낌이 나는 부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저녁 굶고 찔레꽃을 따 먹었다오'가 왠지 우리 누나 기다리며 따 먹었다오 보다 울림이 저에게는 더 크네요. 비록 개작은 됐지만 두 버전 모두 작가의 작품이니까 둘의 존재 가치는 거의 동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가 아닌 '둘'을 같이 감상하면서 읽을 수 있는 것이 '개작'과 '개작 이전 작'이 같이 있는 것의 큰 매력인 것 같습니다.(작품 개작에 대해서 귀거래)
님이 더 알고 있는 좋은 작품이 있다면 말씀해 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
저는 별로 아는 것이 없습니다. 김순석의 시는 꼭 찾아서 읽어보겠습니다. 하여튼 무케길잔님의 정열은 정말 부럽습니다.
이건 좀 다른 이야기지만 저는'목포의 눈물' 이난영을 좋아하고 그 시대의 대중가요를 좋아합니다. 최근 차홍련이란 가수가 1943년에 부른 '아주까리선창'이라는 노래를 알게 되었습니다. 1970년대에 '신가야'라는 가수가 리메이크했는데 정말 매력적이더군요. 검색창에 '아주까리선창'을 치면 나오니까 한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