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침 계 3:7-13 말씀을 묵상하면서 빌라델비아 교회가 칭찬받은 이유가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계 3:8 ...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 ‘작은 능력으로!’ 그랬습니다. 필라델비아 교회는 작은 능력 밖에 없었던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을 지켰고, 주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는데 이 말씀이 제게 주시는 주님의 당부같았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는 중 빌라델비아 교회는 분명히 주님이 보시기에도 능력이 작았던 교회였는데, 어떤 능력이 작았다는 말인지, 사회적인 신분이 낮았다는 말인지, 가난한 사람들이었다는 말인지, 교인들의 수가 적었다는 말인지 은사가 적었다는 말인지 궁금해졌습니다.
어제 국내 성지 순례 둘째날 일정 중 문준경전도사가 사역하던 증동리교회에 갔다가 주님께서 제게 ‘작은 능력’이란 말씀의 의미를 깨우쳐 주셨습니다. 문준경전도사는 정말 ‘작은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여자에 대한 차별이 심했던 때라 공부를 하지 못하였고, 결혼하자 말자 남편으로부터 버림을 받았고, 삯바느질을 하며 연명하던 삶의 소망이 없던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전도자의 전도를 받고 교회에 갔다가 이성봉목사님께서 설교하시는 중 주 예수님께서 ‘남편에게 버림받은 자여 내게로 오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하시는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인생이 완전히 바뀌고 말았습니다. 특별 케이스로 신학교를 졸업하고 전도사가 되어 신안군 일대 섬마다 전도하여 세운 교회가 100교회가 넘습니다. 그녀가 오래동안 시무하던 증동리교회가 있는 증도는 주민의 90%가 신자이며 섬인데도 우상 제단 하나 없고 미신도 사라지고 제사드리는 집도 없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전도하다가 625 전쟁 중에 공산당 무리들에 의하여 비참하여 순교하였습니다. 그 후 그곳에서 많은 분들이 목사 장로 사모가 배출되었습니다. 대표적인 분들이 김준곤목사, 고재식목사, 이만신목사, 고훈목사, 정태기목사 같은 분들입니다.
문준경전도사님의 순교 기념관을 둘러보면서 주님께서 ‘작은 능력’이라 하신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았습니다. 작은 능력으로 가져도 얼마든지 주님의 말씀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문준경전도사님이 전도하여 세워진 임자 진리교회 이판일장로 일가 순교 일화도 마찬가지였습니다. 625 때 예배드렸다는 이유로 공산당 무리들이 어린아이들을 포함한 48명의 성도들을 생매장했습니다. 그 날, 문준경전도사님의 전도를 받고 예수님을 믿은 후 장로가 되었던 이판일 장로의 가족 13명이 다 순교하였습니다. 오직 그 날 목포로 갔다가 현장에 없었던 아들 이인재가 유일한 생존자였는데, 후에 국군 정벌부대가 가족들을 몰살시킨 원수들을 붙잡아 놓고, 총을 주며 마음대로 하라고 하였을 때, 그들을 쏘아 죽이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이 일어났는데, 순간 “원수를 사랑으로 갚아라” 하는 주님의 음성과 돌아가신 아버지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았답니다. 너무나 괴로워 몸부림치다가 결국 그 음성에 순종해 원수들을 용서했습니다.
온 가족이 다 비참하게 죽고 혼자가 된 청년 이인재, 그는 작은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원수를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그로 인하여 625 전쟁으로 마을에 불어닥친 무서운 보복 학살이 그쳤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교인들이 되었고, 마을은 완전 복음화가 되었습니다. 이인재는 나중에 목사가 되었고 고향 진리교회에 와서 목회를 하다가 은퇴를 하였습니다.
아, 정말 가슴이 터질 듯한 깨우침이었습니다. “작은 능력을 탓하지 마라!” 주님의 말씀이 천둥소리가 같았습니다. 부흥회도 아니고, 산기도도 아닌데, 마음 깊은 곳에서 불이 치솟는 것 같은 은혜가 임하였습니다. 고후 4: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작은 능력 밖에 없어도 상관 없는 일입니다. 심히 큰 능력을 가지신 주님이 함께 하신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였습니다.
문준경전도사님이 공산당에게 붙잡혀 목포로 왔다가 목포가 국군에 의하여 해방됨으로 자유의 몸이 되었을 때, 다시 증도로 돌아가려 하자, 이성봉목사님이 "지금 가면 죽어요. 조금 더 있다가 들어가세요" 하며 붙잡자 "전 죽어도 좋아요. 제가 안가면 교인들이 다 죽어요" 하며 굳이 다시 증도로 돌아갔다가 순교하였습니다. 그래서 증도에는 문준경전도사 외에는 한 사람의 순교자도 생기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때 함께 목포로 잡혀 왔던 양도천씨이란 신학생이 있었는데, 그는 “나는 안 가겠소” 하며 자기 살 길을 찾아 갔지만, 나중에 세계일가공회라는 이단의 교주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얼마나 두려운 일입니까? 무엇이 사는 것이고 무엇이 죽는 것입니까? 순교의 영광과 이단 교주가 한 순간에 갈라지는 것입니다. 고난당할 때, 고난당하는 것, 죽어야 할 때 죽는 것이 복임을 깨달았습니다.
언제나 능력이 문제가 아니라 믿음이 문제입니다. 마 17:20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큰 능력이 아닙니다. 내주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는 믿음, 주님의 음성에 귀기울이는 믿음, 오직 주 예수님 안에 거하는 믿음이 있으면 충분합니다. 출처: 영성일기. 유기성 목사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