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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씨네21
곡성,아가씨 개봉 전 인터뷰임
최동훈 김지운 나홍진 류승완 박찬욱 감독
최동훈_나는 콘티를 안 본다. 현장에도 아예 콘티를 안 가지고 간다.
김지운_나도 안 가지고 간다. 현장에 가면 연출부가 준다. (일동 웃음)
나홍진_최동훈 감독님은 완벽하게 콘티를 보며 영화를 찍는 줄 알았다.
최동훈_전혀 그렇지 않다. 현장 상황에 맞게 바꾸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쳐다보지도 않는다.
나홍진_그러면 촬영감독이 힘들어하는 것 아닌가.
최동훈_그래서 <도둑들> 때까지 쭉 함께 작업한 최영환 촬영감독이 <베테랑>을 잘 찍은 건가? <도둑들> 때보다 촬영이 좋더라고. (웃음)
류승완_이게 또 무슨 소리인가, 왜 이간질을. (웃음)
최동훈_사실 최영환 촬영감독은 나를 만나기 전부터 류승완 감독을 알았던 사이라, <베테랑>을 안 하면 욕먹을 것 같다고 하기에 미련 없이 보내준 경우였다. (웃음) 그래서 <암살>은 김우형 촬영감독과 하게 됐다.
류승완_김우형 촬영감독도 콘티 없이 작업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아마도 <거짓말>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등 과거 장선우 감독님과 많은 작품을 해서 그럴 것이다.
최동훈_일단 굉장히 빨랐다. 시간 개념이 정확하고 치밀하다. 무엇보다 김우형 촬영감독팀은 어떤 순간에도 포커스가 나가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배우들이 대단한 연기를 펼쳤음에도 포커스 문제로 쓰지 못하는 컷이 생기기 마련인데, 절대 그런 게 없었다. 나와 아주 잘 맞았다.
나홍진_보채서 그런 것 아닌가? (웃음) 나 또한 <곡성>을 촬영하면서 홍경표 촬영감독님이 왜 대단하다고 하는지 잘 알 것 같았다. 어떤 날은 새벽에 촬영부들과 흙투성이가 되어 숙소로 돌아오시는 일도 있었다. ‘어디 다녀오시는 거예요?’ 하고 물으면 ‘혹시 인서트로 쓸지 몰라 산에 가서 뭐 좀 찍고 왔다’고 하시는 거다. (일동 감탄)
김지운_그러고 보니 지금 거론된 모든 촬영감독과 다 작업해봤다.
감독 일동_?
김지운_단편 <사랑의 가위바위보>를 김우형 촬영감독과 함께했다. 다들 안 봤어? 촬영이 깊고 좋아.
류승완_정말 몰랐던 사실이다. 남산 계단에서 연인이 사랑의 가위바위보를 하는 지운사마표 멜로드라마다. (웃음)
<씨네21>_올해의 기대작으로 넘어가보자. <곡성>은 원래 2015년 개봉예정이었다가 계속 후반작업을 더 하는 중이고, <아가씨>는 크랭크업을 하고서 현재 편집 중이며, <밀정>은 중국 상하이 촬영을 끝내고 돌아와 이제 곧 한국 촬영을 시작하게 된다.
류승완_<곡성>은 영화계에 시나리오가 돌아다닐 때부터 영화인들의 깊은 관심을 받아왔다. 1차 편집본을 본 임필성 감독은 무서워서 잠을 못 잤다고 하고, 봉준호 감독은 급체를 했다고 했다. (웃음) 다른 여러 감독들에게 트라우마를 안겨준 <곡성>이 어떤 영화일지 나 또한 너무 궁금하다.
나홍진_정말 다들 괜히 그러시는 거다. 임필성 감독님이야 원래 겁이 많고 봉준호 감독님은 실제로 다리를 다쳐서 아픈 상태로 오셨다. (웃음)
최동훈_다른 감독들이 슬슬 하는 이야기가 있다. 2016년은 <곡성>의 해가 될 거라고. 그런데 4, 5월쯤 상반기 개봉예정이면 가족의 달에 개봉하는 건가? (웃음)
나홍진_맞다,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곡성>은 가족영화다. (일동 웃음)
김지운_나는 나홍진 감독이 건네준 시나리오만 읽었다. 그때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가끔 GV(관객과의 대화) 같은 걸 하면 모든 행사가 끝났는데도 자리를 뜨지 않고 있다가 슬쩍 내게 다가와서, 자기가 몇 십년 동안 쓴 시나리오라며 꼭 좀 읽어달라고 노란 봉투에 시나리오를 담아 건네시는 연세 지긋한 분들이 있다. 왠지 시나리오에 한자도 많을 것 같고 꼬불꼬불 붓글씨로 썼을 것 같은 그런? 딱 그런 느낌이었다. (웃음)
류승완_맞다, 시나리오에 진짜 한자가 많았다. (일동 웃음)
김지운_읽다보니 ‘와, 이건 미친 이야기다’ 싶은 거다. 감탄하면서 계속 읽었던 시나리오다.
최동훈_요즘 들어 ‘강한’ 영화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 나홍진 감독의 전작 <추격자>(2007)나 <황해>(2010)와 비교하면 어떨까 너무 궁금하다.
나홍진_다들 너무 부담스러운 말씀들이다. 아직 개봉하기도 전에 그러시면, 썩 좋지 않다. (웃음) 무엇보다 <추격자>와 <황해>의 연장선에서 <곡성>을 바라보는 시선이 많을 것 같은데, 일단 이야기도 분위기도 전혀 다르다. 앞선 두 영화를 함께한 김윤석, 하정우가 아닌 다른 배우들과 함께한 것도 어떤 영향이 있을 것이다.
류승완_나는 <부당거래> <베테랑>에 이어 <군함도>까지 황정민 배우와 세 작품을 하게 되는 셈인데, 그사이에 찍은 <곡성>의 황정민이 어떨지 진정 궁금하다. 게다가 그가 무속인으로 출연하는 것 아닌가.
나홍진_<곡성>에 무속인들이 많이 나오는데, 황정민을 제외하고는 모두 실제 무속인들을 캐스팅했다. 그런데 다들 황정민 선배의 연기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 실제 무속인들이 보기에 어색하거나 부족한 부분이 있어야 하는데, 진짜 대단하다고 말이다. 언제 그런 준비를 하셨는지, 놀랄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최동훈_홍경표 촬영감독님과의 작업이 어땠는지도 궁금하다.
나홍진_뭐랄까, 음 그분은 정말 비스트다. 야수. (웃음) 나도 좀 이상한 놈이라는 얘기를 듣는 사람인데, 정말이지 그분은 나를 한없이 이성적인 사람으로 만드시더라. (일동 웃음) 현장의 그를 보고 있으면 무슨 <아포칼립토>(2006)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 그야말로 원주민, 원시인이다. 그렇게 되면 감독과 촬영감독의 관계라는 관점에서, 누군가가 무엇을 요구하고 지시하고 따르는 관계를 넘어서게 된다. 일단 ‘촉’이 너무 좋다. 한번은, 시나리오 몇번 읽으셨냐고 물었더니 딱 한번 읽었다고 하시더라. (웃음) 그래서 걱정이 돼서 ‘지금 무슨 장면 찍는지 아시죠?’ 하고 물었더니 그저 ‘알아, 봤어’ 그러셨다. (일동 웃음) 아까도 따로 인서트 찍어오셨다는 얘기를 했는데, 헌팅을 함께 다녔던 공간에 대해서 자기만의 의지나 시선을 담은 무언가를 꼭 하나 만들어주신다. 좋은 경험이었다. 로케이션 대부분이 시골이다 보니 딱히 희한하게 생긴 산이나 높은 건물도 없는, 그냥 스카이라인 자체가 지평선과 다를 게 없는 뷰가 많다. 그래서 부감으로 찍지 않는 이상 화면에 하늘이 담기는 순간이 많다. 그러다 보니 구름이 가득한 해 없는 날, 비 오는 날에 대한 신경을 많이 썼는데 실제로 일기예보를 보고 비가 오기를 기다려 카메라를 펼치는 순간이 중요했다. 실제로 모레 비가 온다고 하면 홍 감독님이 그때부터 신이 나 계셨다. 비 맞고 산 뛰어다니고 너무 재미있었다.
김지운_내가 아는 홍경표는 산에서 버섯 따먹으며 야생으로 찍었을 것 같다. (일동 웃음)
류승완_아까 박 감독님이 <암살>과 <베테랑> 시나리오를 읽고 조언해준 얘기를 했는데, 나홍진 감독 사무실에 가면 익숙한 글씨체의 메모가 떡하니 액자로 만들어져 걸려 있다. 박 감독님이 <곡성> 시나리오 모니터를 해주면서 적어준 메모더라. 그걸 액자로 만든 거다. 나는 한번도 그런 메모를 못 받아봤다. (웃음)
박찬욱_나홍진이 무서워서 대충 모니터하면 뭐라고 할까봐 성의껏 리뷰를 해준 거다. (일동 웃음) 그래도 도움되는 얘기를 해주고 싶어서.
나홍진_박 감독님이 시나리오 리뷰를 해주시면서 한 캐릭터와 한 신에 대해서 이건 안 좋은 것 같다고 한마디 써놓으신 게 있었다. 재미있으려고 넣은 것 같은데 안 좋다는 의미였다. 어쨌건 찍긴 했는데 편집실에서 막상 그 장면을 보니까 감독님의 말이 가슴에 와닿더라.
류승완_그래서 부적처럼 액자에 걸어놓은 것 같다.
최동훈_영화에 실제로 부적이 많이 나오지 않나?
나홍진_영화에 나오는 모든 세팅은 실제 무속인들의 도움을 얻어서 그대로 한 거다. 부적도 실제로 쓰는 부적과 똑같은 것들이다.
최동훈_왜 이런 이야기를 하냐면, <전우치>(2009) 때 부적이 나오는 장면이 좀 있었다. 날리면서 찍는 장면도 있었고. 아무튼 내가 건네준 <부적대백과사전>을 바탕으로 미술팀에서 만든 부적들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사고가 막 나는 거다. 길흉화복과 관계없이 그냥 멋진 디자인 위주로 부적들을 만들어서 그런 일이 생기는가 싶을 정도였다. 가령 이 장비 차는 무거우니까 이동하다가 미끄러지면 큰일나겠는데, 라고 말하면 정말로 미끄러지는 사고가 나고 그랬다. 지금에서야 하는 얘기지만, 그땐 정말 무서웠다.
류승완_감독들이라면 느끼게 되는 ‘현장의 기운’이라는 게 있다. <곡성> 촬영장을 두번 찾아갔는데 정말 그 기운이 남달랐다. 집 구경 한번 해보라고 해서 들어갔는데 너무 으스스하고 진짜 무서운 것 있잖나, 이 공간이 어떻게 카메라에 담기게 될까 궁금하고. 일단 배우들이 이제 막 잠에서 깬 것 같은 부스스한 날것 그대로의 표정이 살아 있었다. 천우희 배우의 얼굴을 보고 있는데, 이거 참. (웃음) 일본 배우 구니무라 준의 연기도 궁금하다.
김지운_크랭크업하던 순간 구니무라 준이 ‘나홍진!’ 하고 외쳤다는 얘기도 들었다. 어떤 마음으로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류승완_왜 그랬는지 나는 알 것 같은데? (웃음) 아무튼 나홍진 감독 진짜 무섭다. 전에 나와 임필성, 나홍진 감독이 함께 시체스영화제를 간 적 있다. 임필성 감독이 그때 극장에서 <황해>를 보다가 몸을 살짝 뒤척였다. 그랬더니 나홍진 감독한테 바로 문자가 왔다더라. “졸지 마세요.” (일동 웃음) 엄청 무서웠을 거다.
<씨네21>_촬영이 끝난 지도 꽤 됐는데 <곡성>은 아직 알려진 정보가 너무 적다. 흥미로운 단서를 더 줄 것이 없나?
나홍진_아직 후반작업 중이라서 말을 아끼고 있다. 영화에서 비가 한 7분 정도 내리는 신이 있는데 비가 그치면 이상한 현상이 생긴다. 동일한 빗소리도 아니고 아마도 그런 경험을 처음 하게 될지도 모른다.
박찬욱_비 멀미 같은 건가? (웃음) 정말 궁금하다. 러닝타임은 어떻게 되나?
나홍진_고민 중이다. 지금 충무로의 많은 배급 담당자들이 <암살>(139분)을 마지노선으로 생각하고 작업하라고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아마도 그게 극장 회차 때문인 것 같다.
박찬욱_난 큰일났다. 현재 상태의 <아가씨>는 2시간28분 정도 되는 것 같다.
김지운_다른 감독들이 <암살> 때문에 러닝타임 문제에 있어 좀 편해진 게 있다. 과거에는 무조건 2시간 안으로 맞추라고들 했는데, 2시간 넘는 영화도 천만 관객이 드니까 인식이 달라진 것 같다. 특히 <밀정>은 <암살>과 여러모로 비슷한 계열로 느끼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확실히 득을 보는 측면이 있다.
<씨네21>_<아가씨>는 여성 퀴어영화를 다뤄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출발해 원작을 발견한 것인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
박찬욱_물론 여성 퀴어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긴 했다. 하지만 <아가씨>는 원작을 접하고 영화화하기로 결심한 경우다. 그런데 막상 그렇게 결정한 순간 원작과 초반부를 빼고는 완전히 방향성이 달라졌다.
<씨네21>_<밀정>에 대한 호기심은 오히려 공유라는 배우에게서 생겨나기도 한다. 김지운 감독은 <장화, 홍련>(2003) 정도를 제외하면 언제나 송강호, 최민식, 이병헌, 김혜수 같은 뭔가 익숙한 완성체 같은 배우들과 작업해왔다. 기존의 이미지를 활용하거나 그것을 비트는 식으로 말이다. 그래서 공유와의 호흡이 어떨까 궁금하다.
김지운_아직 촬영 중이라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는 부분이 많은데, 영화에서 자금을 만들어 의열단 본부인 상하이로 보내고, 또 송강호와 친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지 못하는 인물이다. 실제로 공유는 무척 사려 깊고 상황에 대한 안배를 잘해주는 성격인데, 그게 역할과 잘 맞는 부분이 있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정서적인 측면을 많이 고양시켜주는 역할인데, 특히 후반부에 큰 역할을 한다. 그런데 사실 공유가 중요하게 출연하는 부분은 이제부터 막 촬영할 예정이다. (웃음) 그와의 작업에 대한 기대가 컸고 아직까지는 고스란히 남겨져 있는 상황이라 나 또한 궁금하다. 본래의 고운 심성과 성격이 담기면 좋을 것 같다. 무엇보다 또 다른 배우인 신성록과 더불어 그 탁월한 기럭지의 간지가 진짜 좋다. (웃음) 다들 옷태가 장난이 아니다. 신성록은 그야말로 뱀 같은 연기를 하고, 한지민은 연기의 안정감이 장르영화의 클리셰와 부딪히며 묘한 케미를 만들어낸다. 또 엄태구는 억누르다 순간적으로 분출시키는 에너지가 좋은 배우다. 그처럼 연기, 촬영, 미술 등 현장 분위기가 모두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것 같은데, 나만 조금 더 흥을 가지고 분발하면 그런 것들을 다 잘 살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웃음)
나홍진_요즘 상하이 날씨가 안 좋은 것 같은데, 비가 계속 왔었나?
박찬욱_나홍진은 역시 비 얘기다. (일동 웃음)
김지운_비가 자주 왔다. 안개도 자주 끼고 추울 땐 아주 으슬으슬했다. 사실 날씨의 도움을 얻지 못했다. 처음 갔던 한달은 ‘콜드 누아르’를 표방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척 더웠고(웃음), 이후로는 계속 비가 와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날들도 많았다. 원래 따뜻한 곳이라 난방기구 시설이 잘돼 있지 않아서 계속 냉랭했다. 주택이 난방에 적합한 구조들이 아니어서 제작진의 노고가 컸다.
최동훈_해외 촬영을 하다보면 한국 온돌의 위대함만 깨닫게 된다. (일동 웃음)
나홍진_<암살>은 화면 안에 앰버(보조광선)가 많았다. <밀정>은 어떤가?
최동훈_<암살>은 의도적으로 앰버를 많이 살린 경우다. 그래서 나도 <밀정>이 궁금하다.
김지운_<밀정>은 거의 뺐다고 보면 된다. <암살>과 <밀정>이 어떻게 다를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아마 그런 차이들이 있지 싶다. 콜드 누아르라는 컨셉을 잡으면서 전체적으로 차갑게 가고 싶었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목재로 된 공간이 많아서 한계가 있더라. 그래서 의식적으로 화면 안에서 온기를 빼는 쪽으로 갔다. 시선의 차가움 등도 가져가려고 했는데 그런 온기가 생겨나는 경우에는 혼란이 왔다. 스타일로서 누아르라는 장르에 접근하기보다는 인간의 비상과 추락, 내면의 어떤 변화 같은 것 위주로 드라마를 강화해 찍어가는 과정에 있다. 거기서 빚어지는 관계의 교란 같은 것들이랄까. 그래서 결과적으로 배우가 많이 보이는 영화가 될 것 같다. 미묘하게 변화하는 감정 연기가 많아서 처음부터 배우들에게 스몰 액팅을 주문했다. 아마도 스타일로서의 장르보다 인물의 드라마가 더 도드라지지 않을까 싶다.
박찬욱_그런 필모그래피의 변화로 보자면, <아가씨>의 특징은 여태까지의 내 영화 중 대사가 제일 많다.
김지운_그러고 보니 <밀정>도 그렇다. (웃음)
박찬욱_게다가 원작에서 가져오지 않은 대사가 대부분이다. 연출자 입장에서는 중요하고 큰 차이다.
김지운_나도 가끔 <밀정>이 내 영화 같지 않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었는데, 주로 배우들이 대사를 많이 할 때다. 자신을 감추고 쇼잉을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니까 떠벌리는 연기를 많이 주문한다. 여태까지 한번도 그런 떠벌리는 캐릭터를 한 적이 없어서 생소하더라.
박찬욱_비슷하다. <아가씨>에서도 상대를 속여야 하니까 그런 순간들이 꽤 있다.
최동훈_반대로 난 그런 캐릭터들이 즐비한 영화들을 찍어왔기에 <암살>이 어색했다. (일동 웃음) <암살>은 전체적으로 조용조용하니까 내 영화 같지 않더라. 그처럼 대사 많은 영화를 하니까 즐겁지 않았나?
박찬욱_나는 이번에 대사 많은 영화를 하니까 확실히 즐거웠다. (웃음) 나홍진 감독은 어땠나?
나홍진_<아가씨>와 <밀정>에 비하면 훨씬 더 일찍 촬영을 끝낸 영화인데, 아직도 어떤 영화가 될 것 같다고 정리해서 드릴 말씀이 없다. 단지 날씨를 원하는 대로 담아내고 싶었다. 영화에 대한 구체적인 얘기도 없이 그렇게 얘기하면 너무 불친절하려나. (웃음) <곡성>은 캐릭터의 대사나 그런 것보다 자연적인 요소들이 큰 영향을 미치는 영화가 됐으면 했다.
<씨네21>_내년 봄 촬영에 들어가게 될 <군함도>와 아직 차기작을 정하지 못한 최동훈 감독의 이야기도 듣고 싶다. 특히 류승완 감독은 언제나 시대와 밀착한 이야기를 다루는 데서 오는 에너지의 쾌감이 컸기에 <군함도>가 과연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류승완_<군함도>는 내 영화 중 처음으로 과거로 가고, 또한 다루지 않았던 다른 세계를 다루는 첫 번째 영화다. 지난 몇년간 만든 영화들은 로케이션 촬영을 즐기며 자유분방하게 찍은 것이었다면, <군함도>는 세트 분량이 엄청난 영화가 될 것 같다. 이제 시나리오 수정을 마무리하면서 마지막 여러 고민을 붙들고 있는 중이다. 무엇보다 세기를 넘어 20세기의 이야기다. 그게 나에겐 특별하다. ‘시대’를 다루어야 한다는 고민이 가장 크다. 군함도에 처음 갔을 때 사람들이 여기서 어떻게 살았는지, 어디서 어떤 사람들이 흘러오게 된 건지, 너무 궁금했다. 축구장 2개 정도 되는 크기에 많을 때는 5천명 정도가 모여 살았다. 땅은 좁은데 사람들을 몰아넣어야 하니까 건물은 계속 위로 올라갔다. 감옥도 아니고 전쟁포로들도 아닌데 사생활은 전혀 없는 이상한 공간이었다. 물론 그 안에서도 계급이 나뉘고 삶의 방식도 다 달랐다. 1960년대에 만들어진 미드 중 나치의 포로수용소를 소재로 한 <호간의 영웅들>이라는 작품을 좋아했는데, 그게 떠오르면서도 그것과는 또 다르다. 그런 여러 요소들을 어떻게 흥미롭게 묘사하느냐가 핵심이다.
박찬욱_군함도에 있던 사람들이 바다에서 탈출하려고 하면 얼마나 차갑고 괴로웠을까.
나홍진_아니다, 11월의 바다는 따뜻하다. 충분히 가능하다.
류승완_정확하다. 오히려 여름이 아니라 11월에 그냥 둥둥 떠다닐 수 있을 정도로 따뜻하다더라. 역시 <황해>를 만든 사람이라 모르는 게 없다. (웃음) 그리고 군함도의 로맨스도 그려볼 생각이다. 2017년 여름 개봉이 목표다.
첫댓글 와...얘기하는영화들 다봄
다 남자뿐이네
집 가서 읽어봐야지
촬영감독까지 싹다 알탕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