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의저편_제9장에서 고귀함에 대하여
* 이제 일차로 읽는 과정이 오늘과 내일이면 끝난다. 다섯 명이 힘을 모아 읽으니 읽는 속도가 빠르다. 읽었던 내용은 뭉쳐서 이리저리 떠도는 가운데서도 어디론가 한데 꽂히곤 한다. 아마 그런 부분들이 지금 알아차려야 하는 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더 생각해 보아야 하고 더 연결되어야 하고 그 연결이 어디서 어떻게 잿팟이 터지는 현상을 줄 수 있을지도 더 가보아야만 한다.
이상도 하지! 읽었을 뿐인데, 그리고 요즘은 워드로 옮겨보고 싶은 부분을 옮겨 보는 와중에 글의 맥락이 감이 온다. 책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문단 나누기하며 글쓰는 방식과 다르다. 다 이어붙여 진 채로 한 페이지 두 페이지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워드로 옮기는 과정에서 그 문단을 다시 나누어 보고 그 문단의 전후 맥락을 연결해 보는 것이다.
여기에 이렇게 내가 책 읽는 방식을 밝히는 이유는 우리가 함께 노 저어 가는 과정에서 <선악의 저편>을 공략하는 중이기 때문이고, 또 이리 공개적으로 일부를 올리는 이유는 지난 시간에 읽었던 책과 현재에서 읽는 책은 또 다르기 때문이다.
보통 철학 책을 읽어도 그 자신의 공부 방식은 잘 공유하지 않는다. 아마도 각자 조금씩 다르기 때문일 것이고 공부하는 과정이 힘겹기 때문일 것이다. 모두 2차 가공물 상태로 내놓는다. 나도 이렇게 올리기 주저스럽다. 그럼에도 올리는 이유는 넘쳐나는 열정 정도로 해 두자! ㅋㅋ.
무엇보다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올리는 것은 두려운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 그 두려움을 넘어서면 이 정보로 누군가는 또 다른 아이디어를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도 내공부하기 힘겨운데 어떻게 매번 올릴 수 있겠는가. 시간 내서 올릴 때만 올리는 거지만, 그래도 대체로 많은 것을 공유해왔다는 생각이 든다. 타인들의 정보로 내가 도움을 받았듯이.
그리고 아래 일부 책 본문 내용을 옮기면서 문단 나누기를 하여 놓았다. 이렇게 하면 책보다는 읽기가 훨씬 수월하다. 책으로 읽고 워드로 옮기며 내용을 이해하고 그 자신의 생각도 써보고......
지금 내가 조금씩 알아가는 <선악의 저편>은 이미 세상에 퍼질 만큼 퍼져 있다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어디서 어떻게 진행되었는가?는 생략되어 있다. 그 부분을 밝힐 때 어떤 맥락이 연결되어 그 자신에게로 각인된다고 생각되었다. 이미 풀어서 그 자신의 언어로 각색되어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너무 와전된 경우도 많다고 생각되었다.
그리고 '세상'에서 말하고 있는 바는 어떤 실행방식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하지만 그 원출처나 어떤 정신성은 잘 드러나지 않고 있어서 다소 맹목적이고 주술적인 형태로 비치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이 시점에서 보자면, 지금 나에게 드는 강렬한 생각은, 니체 철학은 강자 철학이고 고귀함의 철학이고 의리 철학이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고귀함'이란 우리식 표현으로는 '귀한 것'이다.
하지만 니체가 생각하는 고귀함이 고대인에 머물러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그 부분은 분명히 지금 현재와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니체 철학은 '도래하는 미래'를 염두에 둔 철학이기 때문이다.
분명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반응하는 지점들이 있다. 그것이 반드시 허영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보통 경시하기 쉬운 책들에서는 어느 정도는 신비주의 적인 뉘앙스가 풍긴다. 거기에는 공존하기 어려울 것 같은 고귀함(귀)과 부를 동시에 공존 시키고 있다.
보통 니체가 제시한 고귀함은 이기적이라고 여기는 요소들이라고만 볼 수도 있는데, 니체는 고귀함으로 보고 있고 현대에서는 '이기적 = 이타적' 이 같은 선상에 놓인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그 부분에 자신의 에너지가 반응하는 것을 자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책들과 방송 내용은 대체로 고전과 철학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고전과 철학의 또 다른 변주라고 볼 수 있다. 예컨대 요즘의 아이들이나 청년들이 지향하는 바를 끝까지 추적해본다고 했을 때, 그것은 바로 '귀한 사람'이라는 것, 즉 그만한 대접을 받고 싶다는 욕망에 기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어른들이라고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책들이 제시하는 것을 보면, 모두 고통을 받아들이라고 하고 있다. 이 말은 그 자신이라는 날뛰는 호랑이를 통제할 수 있느냐는 것일 것이다. 그 호랑이는 엄격함으로 통제되고 그 자신이 속한 곳의 룰(규칙)에 의해 강요 받고, 이러한 교육의 결과는 '의리'로 그 자신들을 결속시켜 놓는다.
니체의 관점은 이러한 것이 고대인의 특성이라고 보았고, 이것을 '고귀함의 도덕'이자 지배자들의 도덕이라고 본 것이다. 반면 근현대로 올수록 이러한 도덕은 시시해져 버렸고 (그렇게 생각하는 경향) '현대적 이념'으로 대체되어 가는데, 여기에는 분명히 아이러니를 수반한다고 하였다. 아이러니는 결코 좋은 개념으로 사용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니체는 어떤 경고를 보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 생각한 것은 여기까지이다. 사람들이 이끌리는 것과 사람들에게 주어진 현실적인 것은 분명 괴리가 있다. 그 차이를 우리는 분명 느끼고 있는데, 현실의 정책은 계속 아이러니 양산으로 가는 것이 아닐까? 니체의 의문은 여기에 있는것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현재에서 느끼는 이런 의문들에 대해 더 추적해 보아도 좋지 않을까! 불일치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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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__<선악의 저편 제 9장에서 일부분 p277> _____
이와 같이 생각하는 고귀한 사람이나 용기 있는 사람들은 다만 타인에 대한 동정이나 행위에서 또는 무관심 속에서만 도덕적인 것의 특징을 보는 도덕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 자기 자신에 대한 자부심, ‘무아無我’를 근본적으로 적대하고 조소하는 것은 ‘공감共感’이나 ‘따뜻한 마음’을 가볍게 경멸하거나 경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확실히 ‘고귀한 도덕’ 에 속한다.
⎯ 강한 자들은 존경하는 법을 아는 사람이며, 이것이 그들의 기술이요, 발명 영역인 것이다. 나이든 사람과 혈통에 대한 외경 ⎯ 모든 법은 이 이중의 외경 위에 서 있다 ⎯ , 조상에게는 유리하게 후손에게는 불리하게 대하는 믿음과 선입견은 강한 자들의 도덕에서 보이는 전형적인 특징이다. * ‘이중의 외경’ 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기.
그리고 반대로 ‘현대적 이념’의 인간이 거의 본능적으로 ‘진보’ 나 ‘미래’를 믿고 나이든 사람에 대한 존경심을 점점 더 잃어간다면, 이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이러한 ‘이념’ 의 유래가 고상하지 못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 여기서 '현대적 이념'은 민주주의(?)를 가리키는 것일까?
그러나 대부분 지배자의 도덕은 현대 취향에는 낯설고 적대적이다. 사람들이 오직 자신과 대등한 사람들에 대해서만 의무를 지니며 좀더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과 모든 낯선 사람들에 대해서는 마음대로 또는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행위 해도 좋으며, 어떤 경우에든 ‘선악의 저편에서’ 행위 해도 좋다는 그들의 ‘엄격성’ 때문이다 * <선악의 저편>은 지배자들의 세상을 의미하는 듯하다. 강자들의 세상, 고귀한 자들의 세상. 책 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어서 좋았다. <선악의 저편> 제9장 19절 p277
⎯ : 동정이나 그와 같은 것이 필요하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인지 모른다. 오랫동안 감사하고 복수할 수 있는 능력과 의무 ⎯ 이 두 가지는 오직 그와 대등한 자 안에서만 있을 수 있는 것이다 ⎯ , 보복에서의 정교함, 우정에서의 세련된 생각, 적대자를 갖는 어떤 필연성 (말하자면 질투, 투쟁욕, 오만 등의 정동이 빠져나가기 위한 배수구로, 근본적으로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 이 모든 것은 ‘고귀한 도덕’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 동정은 동급에서만 일어나고, 오랫동안 복수할 수 있는 능력과 의무, 이것은 복수를 끝까지 하고 대를 이어서 한다는 것, 은원 관계가 명확, 즉 이것은 우리식으로 표현하자면 ‘의리’인 듯. 이것은 구조론과 통하는 부분이다. 공자도 ‘의리’를 중요시 했다. 의리가 지배자의 덕목인 것일까? 책임과 의무를 질줄 알기 때문일까.
어쨌든 이 부분도 반지의 제왕과 호빗의 모험, 또는 바이킹 족 이야기, 로마인 이야기 등등에 등장하는 것 같다. 동양적인 이야기와 서양의 이야기가 통하는 부분은 바로 이 부분인 듯하다. 니체는 그 당시에 이러한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사례들이 별로 없다고 하였는데, 현재에서는 워낙 많은 드라마가 만들어지고 소설이 쓰여지니, 넘쳐 난다. 하물며 영화 <기생충> 까지도.
그리고 요즘 시대 사람이나 아이들은 이것에 정신도 몸도 반응한다. 문제는 무엇에 그 자신의 정신과 몸이 반응하는지 모른다는 것(?). 겉이 아니라 더 깊이 그 안으로 들어가 보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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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표 표시는 내 생각임. 더 읽어 보고 파고 들어 봐야 더 알 수 있기에 확정적인 표현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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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사진은 니체에게 건배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