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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病 없이 안락사 택한 104세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5/11/2018051102967.html
이상적인 죽음을 맞이한 인물로 흔히 미국의 자연주의자 스콧 니어링(1883~1983)을 꼽는다. 니어링은 여든에 자신의 '죽을 계획'을 글로 써놓았다. "나는 죽을 때 병원이 아니고 집에 있기를 바란다" "어떤 진통제 마취제도 필요 없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존중받으며 가고 싶다"…. 니어링은 백 살 생일이 다가오자 죽음을 예감한 듯 단식을 시작했다. 그리고 3주 만에 눈을 감았다. 니어링의 아내는 "그는 하루 일과를 마치고 휴식을 취하듯 편안하게 갔다"고 썼다.
▶몇 년 전 본지에 수필가 허숭실씨가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한 마지막 여행'이란 에세이를 보내왔다. 그의 아버지는 병원에서 암 진단을 받고 달포가량 전국을 여행했다. 사업할 때 어려움을 같이한 사람들을 만나 고마움을 표했다. 자신에게 등 돌려 서먹했던 사람들을 찾아가 위로했다. 병세가 악화됐지만 진통제를 맞지 않았다. "오래 앓는 것은 가족뿐 아니라 환자에게도 고역"이라고 했다. 보름 동안 곡기를 끊더니 잠든 아기처럼 세상을 떴다. 허씨는 "삶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저승사자가 달려들기 전에 저 세상으로 발걸음 옮기셨다"고 했다.
▶한 여론조사에서 "오래 살고 싶으냐"고 물었다. 모두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다시 "90이 넘도록 살고 싶으냐"고 물었다. 18%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누구나 오래 살고 싶어 한다. 중요한 것은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다. 삶의 질이 떨어지면 수명 연장일 뿐이다. 남의 신세 지지 않고 행복을 느낄 수 있을 때까지만 살아야 한다.
▶호주 104세 과학자 데이비드 구달의 죽음은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 그는 앓는 병도 없었다. 그러나 건강이 나빠지면 지금보다 더 불행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구달은 "죽는 것보다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게 진짜 슬픈 일"이라고 했다. 구달은 치사(致死) 약이 들어간 정맥 주사기에 연결된 밸브를 자기 손으로 열었다. 죽기 전 마지막 듣고 싶은 음악으로 베토벤 9번 교향곡의 '환희의 송가'를 꼽고, 읊조렸다.
▶구달은 단지 '너무 오래 살았다'고 생각해 죽음을 택했다. 그의 죽음은 삶의 존엄성을 위한 선택이란 면에서 볼 때 의사의 연명 치료를 거부하는 것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그의 '자살'을 미화할 것까지는 없지만 숙연하고 비장한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구달의 죽음은 고령화 시대 사람은 '언제까지'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는 물음을 던진다.
삶과 죽음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아무도 죽음 이후 죽지 않는 비물질인
마음이 가야 할 곳을 모르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한다.
해가 저물어 날이 어두워지면
모든 생명들은 자신이 왔던 곳,
자신이 쉴 곳으로 다시 돌아간다.
죽음의 그림자가 육체를 완전히 뒤덮게 되면
내 안에 존재하는 진정한 나인
‘마음’ 또한 그것이 왔던 곳,
생명근원의 원천으로 돌아간다.
우주 중심에서
빛viit으로 오는 생명원천의 에너지
‘빛viit’
그곳이 우리들의 마음이 온 곳이다.
출처 : 향기와 빛viit명상이 있는 그림찻방 P. 257
보이지 않는 세계
“큰 은혜를 받고
갚지 못하고 가게 돼서 송구스럽습니다.
학회장님, 건강하게 이 땅에 오래오래 머물러주시고
생각하시는 빛viit의 뜻이
다 성공적으로 이루어지시길 진심으로 비오며….”
지난 2011년 4월 29일 유길영 회원께서
세상을 떠나기 전날 우표까지 붙여서 남겨놓은 편지이다.
보이지 않는 세계,
사후의 세계로 넘어가는 분이 남기고 간 편지이다.
그분은 죽음 직전 무엇을 보았기에
밝은 미소 띠고 마지막 편지까지 남겼을까?
그 분은 어디로 갔을까?
육체는 남겨져 시체가 되었고,
시체가 되기 전까지 그 마음인 나는
보이지 않는 세계, 저승도 좋고 천국도 극락도 좋겠지만
빛viit의 나라
광채의 나라면 더욱 좋겠다.
출처 : 향기와 빛viit명상이 있는 그림찻방 2012.08.25. 초판 6쇄 P. 156~157 중
삶의 마지막 정화 작용, 죽음
세상이 이토록 혼탁해지고
조화롭지 못한 것은
어쩌면 인간이 죽음을 제대로
이해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인간에게 언젠가 한 번은
죽음이 다가온다는 것은
누구나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사람들은 자신은 죽지 않는 듯
먼 남의 일로만 생각한다.
인간은 죽음이라는 과정을 통해
모든 것을 자기 것인 양 움켜쥐고
놓지 못하는 마음을
비울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세상에 태어날 때
빈손으로 왔기에
떠날 때도 반드시
빈손이 되어 간다.
그것은 조물주가 우리에게 주신
가장 공편한 진리이다.
따라서 죽음은 삶의 마지막
정화 작용이라고 말할 수 있다.
출처 : 향기와 빛viit명상이 있는 그림찻방 P.262중
삶의 마지막 정화작용, 죽음
세상이 이토록 혼탁해지고 조화롭지 못한 것은 어쩌면 인간이 죽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인간에게 언젠가 죽음이 다가온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마치 자신이 죽지 않는 듯, 죽음을 먼 남의 일로만 생각한다. 죽음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때가 되면 맞이해야 하는 일종의 통과의례와도 같다. 인간은 죽음이라는 과정을 통해 모든 것을 자기 것인 양 움켜지고 놓지 못하는 마음을 비울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따라서 죽음은 삶의 마지막 정화작용이라고 말할 수 있다.
죽음이 없다고 한 번 상상해보라. 인간의 교만함은 끝을 모르고 치달을 것이며, 결국 그 교만한 마음이 자기 자신의 삶 또한 고통스럽게 만들 것이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는 일이 자연스럽듯이 애쓰고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늙어 죽는 일 또한 자연스럽다. 이 또한 우주의 배려인 것이다. 쌩떽쥐페리의 동화에 나오는 어린왕자가 죽음을 통해 무한한 우주공간을 뛰어넘어 자신의 소혹성으로 돌아갔듯이, 우리는 죽음을 거침으로써 진정한 성장과 삶의 완성을 이루어 또 다른 영원한 세계, ‘빛viit’ 의 삶으로 넘어간다. 따라서 죽음은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이며, 나는 이 사실을 고요한 혼자만의 명상 속에서, 또한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접 할 때마다 선명하게 느끼곤 한다.
● 시신에라도 빛을…
박정우 교수를 만난 것은 1998년 가을, 한 지인의 소개를 통해서 였다. (이하 중략 물음표 P171 참고)
● 자신의 괘(掛)는 몰랐던 사주가
우연한 기회에 유명한 사주가인 박제상 씨를 만난 적이 있다. 평소친분이 있던 박래훈 국세청장의 식사초대에서 (이하 중략 물음표 P173 참고)
● 무불선사의 눈물
요즘 세상살이가 힘든 만큼 현실을 탈출하여 이상 세계를 갈구하는 사람들이 많다. ~ 1997년, 오랜 세월 기 수련을 통해 그 경지가 매우 높고 따르는 제자가 많다는 무불선사를 만났다.( 이하 중략 물음표 P175 참고)
하버드 대학에서 뛰어난 두뇌와 재능을 인정받았던 석학 박정우 교수, 세간을 떠들썩하게 할 만큼 이름 높았던 사주가인 박제상 씨 그리고 정신세계의 한 부분을 이끌었던 무불선사. 그리고 이외에도 수많은 사람들, 심지어 이름과 덕망 높은 수도자와 성직자들까지도 막상 죽음 앞에서는 자신의 마음 혹은 영혼이 어디로 가는지 몰라 불안에 떠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자신의 순수한 마음을 돌보고 보살피는 일에 소흘하였다면 제 아무리 살아서 세상에 이름을 떨치고 사람들의 추앙을 받았다 하더라도 그 또한 갈 길을 몰라 방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마음의 방황이 죽음과 함께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죽음을 통해 영원히 계속된다는 사실이다. 죽음을 통해 그의 마음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영원의 세계로 들어섰기 때문이다.
죽음의 문턱에 서면
죽음이 찾아오는 순간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제각기 다른 삶을 살아왔듯 생각하는 바도 모두 다르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음 이후의 세상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종교인들의 경우도 예외가 아닌 듯하다. 살아생전 큰 깨달음을 얻은 것은 물론 세상을 떠난 지금까지 대단한 추앙을 받고 있는 한 성직자 역시 막상 죽음이 눈앞에 다가오자 ‘죽고 나면 어디로 가는지 정 선생은 아시냐’고 물으며 불안한 속내를 비쳤다. 이처럼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사람이면 누구나 죽음 이후 무언가 이어진다는 사실을 본능처럼 감지하기 때문이다. 이 새로운 시작 앞에 무언가 나름대로 대비로 복을 많이 쌓은 사람은 그나마 마음이 편안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엄청난 불안과 고통에 휩싸이게 된다. 육체를 근본으로 하는 물질의 삶을 지탱하고자 평생 애지중지했던 많은 것들이 육체를 벗어난 비물질의 삶에 있어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막상 죽음의 문턱에 서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는 왜 열심히 돈을 벌지 못했나’ 혹은 ‘나는 왜 더 좋은 집에 호강하며 살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보다는 ‘나는 왜 좀 더 마음을 너그럽게 가지지 못했을까’, ‘나는 왜 좀 더 주변 사람들에게 베풀고 살지 못했을까’, ‘나는 왜 내 자신만 생각하며 이기적으로 살았을까’ 그리고 ‘왜 죽음이 찾아온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앞만 보고 살았을까’ 와 같은 후회를 한다는 것이다. 즉 순간순간의 삶에만 집착한 나머지 주변 사람들을 배려하고 베푸는 여유를 갖지 못했다는 사실을 아쉬워하고 후회하며 죽음에 대한 불안을 안고 삶을 마감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박 교수는 왜 마지막 순간까지, 시신을 통해서라도 ‘빛viit’ 을 만나고 싶어 했을까? 그것은 아마도 마음이 이끄는 본능과도 같은 것이리라 생각한다. 놀던 아이가 저녁이 되면 집으로 돌아가듯, 모든 집착과 욕심에서 벗어난 본연의 마음이 돌아가는 곳이 바로 ‘빛viit’ 이다. 우리의 마음이 본래 그 곳에서 왔기 때문이다. 이 알 수 없는 이끌림은 일생을 머나먼 바다에서 살던 연어가 죽기 전 자신이 태어난 계곡의 물 냄새를 찾아 돌아오는 것과 같이 신비롭고 또한 당연한 자연의 섭리이다.
이제 여러분도 ‘빛viit’ 이 전하는 죽음의 원래 의미를 알아야 한다.
죽음은 원래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과정이다. 아름답고 의미 있는 삶을 통해 늘 자신의 마음을 돌 본 사람은 죽음이라는 문을 통해 자연스럽게 원래의 고향으로 갈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우주 근본의 힘, 우주의 ‘빛viit’을 통해 가능한 일이다.
출처 : 물음표(?) 2005/07/05 초판1쇄 P. 170 ~ 180
죽음을 통해 찾아가는 영원한 삶의 의미
태어남, 삶 그리고 죽음. 이것은 그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우주의 큰 흐름이다. 들풀이나 곤충과 같은 미물에서 인간 그리고 은하계의 무수한 별들에 이르기까지 우주의 모든 생명은 태어나고, 살고, 죽는 과정을 거친다.
그림의 삼각형은 빛을 펼칠 때마다 내 손바닥에 나타나는 형태를 그대로 옮긴 것인데, 단순한 도안이나 상징물이 아니라 실제 이 힘과 함께 하는 특별한 심벌마크다.(그림의 삼각형 :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행복순환의 법칙 P. 225참고)
삼각형의 세 개의 변은 각각 태어남, 삶, 죽음을 뜻하며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침 없이 서로 동등하게 맞물려 이어진다. 다시 말해 태어남, 삶, 죽음 중 어느 하나도 더 중요하거나 혹은 덜 중요하지 않으며, 우주는 이 세 가지가 완벽하게 균형을 이루는 섭리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삼각형 안에 우주를 뜻하는 큰 원이 존재하고 그 안에 우주로부터 본성을 물려받은 ‘진정한 나’, 빛viit마음을 의미하는 작은 원이 들어 있다. 삼각형 안에 이 원이 들어 있는 것은 우주의 모든 생명 가운데 그 무엇도 태어나고, 살고, 죽는 이 우주의 흐름에서 예외가 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즉,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선조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삶을 바탕으로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내 생명이 탄생했고, 바로 나는 지금 이 순간 그 소중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생명은 유한하며 어느 시점이 되어 한계에 이르렀을 때 죽음을 통해 또 다른 시작으로 이어지게 된다.
죽음은 육체를 ‘나’에게서 떠나보내는 과정일 뿐 끝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내 몸이 ‘나’인 줄 알고 열심히 먹이고 입히고 가꾸고 치장하지만, 이 육체조차 때가 되면 ‘나’와 분리해 떠나보내야 한다. 마치 애벌레가 허물을 벗고 매미가 되듯 내가 한동안 머물러 있었던 몸을 벗어나 또 다른 영역, 비물질의 세계로 넘어간다.
죽음의 의미를 알면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삶의 의미 또한 분명해질 것이다. 어떻게 사는 삶이 의미 있는지, 죽어서 허무하고 한스럽지 않은 삶이란 무엇인지, 영원한 행복으로 이어지는 길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다.
또한 우리는 죽음을 통해 예수나 부처와 같은 성자들께서 사랑과 자비를 나누거나 베풀 때는 ‘왼손이 한 일을 오른손조차 모르게’ 할 것이며, 대가를 바라지 않고 베푸는 ‘무주상보시’를 하라고 한 의미를 알게 된다. 즉, 죽음 이후에도 나를 밝은 곳으로 이끌어줄 진정한 내면의 복은 남에게 과시하거나 드러냄 없이 순수하게 지을 때 쌓이기에 진정한 복을 지어야 하는 것이다.
빛viit은 내 안의 나, 진정한 내가 유래한 바로 그곳에서 오는 힘이다. 따라서 이 힘과 함께하는 죽음은 내 마음의 고향, 어머니의 품으로 되돌아가는 것과 같다. 태어나 성장하고 노화되는 일이 인간의 의지가 아닌 자연의 흐름에 따른 것이듯 죽음 또한 삶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지 결코 고통이나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빛viit과 함께하는 죽음이야말로 이론이나 생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힘을 통해 현실에서 직접 체험하는 웰다잉(well-dying)이다.
출처 : ‘빛명상’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행복순환의 법칙
초판 1쇄 발행 2009/09/14
2017/12/15 초판 40쇄 기념판 P. 224~226 중
-행복한 죽음에 감사를 드립니다-
"죽음은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삶의 명제 중 하나입니다. 누구도 죽음을 피해갈 수는 없지요. 하지만 그 죽음이 두려운 것은 그 최후의 순간이 도대체 언제 오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조금씩 준비를 하십시오. 여사님은 아주 행복한 분입니다. 그 때를 알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래도 참으로 이상한 것은 집이나 병원에서는 그렇게도 포악하시던 어머니께서 선생님 앞에만 앉으면 순한 양으로 변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검사와 진단만도 수 차례를 받으시고도 어머니는 당신의 병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셨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어떻게든 어머니의 생명을 연장하고 고통을 덜어드릴 방법만 생각하다가 어머니의 집착에 질려가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새로이 태어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자신의 그 생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우리는 아주 다른 모습으로 태어날 수 있지요…….
"그럼, 선생님. 제가 죽는단 말씀이세요? 그래서 다른 모습으로 태어나라는 건가요?"
"제가 말씀드린 다시 태어나는 것이란 꼭 죽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어떻게 삶을 아름답게 정리하고 떠나느냐는 것이지요."
그렇게도 삶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못하시던 어머니는 선생님 덕분에 행복한 죽음을 맞으셨습니다. 저는 그 어머니 때문에 선생님을 만나 인생을 돌아보며 살 줄 아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출처 : 『행복을 찾는 사람들에게』P.171 ~180중
-죽음이란 새로운 통로를 여는 문입니다-
어머니께서는 저를 만나고 돌아가신 뒤, 거의 매일 전화를 걸어 초광력超光力을 받으셨습니다. 삶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못하는 당신을 질책하며 말입니다.어머니께서는 아주 좋은 곳으로 가셨습니다. 저는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뵙지는 못햇지만 명상으로 떠나시는 길에 빛viit의 축복을 보내드렸습니다.
자신이 떠날 시간을 준비하며 행복하게 눈을 감는 것과 동시에 남겨진 사람은 또 다른빛viit 을 찾아 발걸음을 옮겨 주는 것이 바로 행복한 죽음이라는 것이지요. 만일 떠나는 사람이 아무리 행복하다고 해도 남겨진 사람이 그를 놓지 않으면 결코 그 죽음은 행복한 죽음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초희씨. 이제 새로운 빛viit을 찾아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십시오. 그래서 어머니의 죽음을 행복한 죽음으로 만드십시오. 그리고 가시는 길에 힘겹고 어려운 일을 만나면 언제든 우주의 빛viit, 초광력超光力을 찾으십시오. 작은 등대가 되어 당신의 앞날에 새로운 빛viit을 찾을 때까지 영원히 지켜드릴 것입니다.
출처 : 『행복을 찾는 사람들에게』P.181~183중
첫댓글 죽음을 통해 찾아가는 영원한 삶의 의미~~~학회장 귀한 말씀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귀한문장 차분하게 살펴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운영진님 빛과함께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삶이 있다면 필연적으로 죽음이 있는것인데 그것은 내일이 아닌 것처럼 살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웰다잉이 어떤것인지 생각할수 있게 해주신 우주마음님 학회장님 감사합니다
<죽음이란 새로운 통로를 여는 문>이라는 귀한 글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귀한 글 올려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죽음이란 새로운 통로를 여는 문 " 감사드립니다.
"병없이 안락사택한 것에대한 논단글과 귀하고소중한 빛글 감사드립니다.
죽음은 !!마지막 정화작용 죽음 !! ~죽음은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이다. 죽음은 원래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과정이다. 새로운 통로를 여는 문이다.!! ~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감사드립니다.!!
죽음은 끝이 아닌 또다른 시작이며...
진정한 나 빛마음이 유래한 그곳에서 오는 힘과 함께 하는 죽음이야말로 진정한 웰다잉이라는 사실!
귀한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죽음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해주신 학회장님의 귀한 글 감사합니다.
늘 빛마음을 돌보며, 보다 의미있고 아름다운 삶 살아갈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늘 잘보겠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삶의 마지막 정화작용 ㅡ죽음
빛안에서 그 의미를 알고 준비할수 있음이 감사합니다 .
귀한 글 올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죽음을 두려워만 할게 아니라 잘 받아드리고 삶과 죽음이 모두 연결되어있다는
귀한 말씀과 유길영회원님의 마지막편지 잘보고갑니다 감사합니다.
죽음의 의미를 일깨워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마지막 정화 작용인 죽음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귀한 말씀과 하루 하루를 빛마음으로 돌아보며 아름다운 삶이 되길 노력하겠습니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하는 소중한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마음이 돌아가야하는
내마음의 고향 빛마음에
감사드립니다.빛을 만나고 죽음의 진정한의미를 알게되었습니다.
우주마음님..,학회장님
감사드립니다
글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죽음 앞에서 빛이 생각났다는 것은
원래 우리가 그곳에서 왔고 그에 따른 본능이라는 말씀이 와닿네요. 죽음은 삶의 마지막 정화작용 ! 감사합니다 ^^
아름다운 삶을 살기위한 자극제가 되네요!
죽음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가르쳐 주신 회장님의 귀한 글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젠가 다가올 죽음 앞에서 후회하고 두려워하지 않도록..
그 분의 뜻에 맞는 아름답고 의미 있는 삶을 만들어 가겠습니다.
영원한 세상을 준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우주마음과 학회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죽음 내가 가야할고향
빛과함게 두려움없이 잘 맞이할수 있는 힘이 주어지기를 바랍니다
우주마음과 학회장님 감사합니다
<빛viit은 내 안의 나, 진정한 내가 유래한 바로 그곳에서 오는 힘이다.
따라서 이 힘과 함께하는 죽음은 내 마음의 고향, 어머니의 품으로 되돌아가는 것과 같다.
태어나 성장하고 노화되는 일이 인간의 의지가 아닌 자연의 흐름에 따른 것이듯
죽음 또한 삶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지 결코 고통이나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빛과 함께할 수 있는 삶을 허락하신 우주마음과 학회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름다운 내용. 숙연한 내용.
빛을 알고 빛과 함께 살아가며 내안의 빛마음을 밝혀서 죽음에 이르렀을 때 한 점 두려움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빛의세상으로 갈 수 있다는 확신.
지금 열심히 빛의 복을 지을 수 있도록 겸손 감사 배려 존중하는 마음 가지겠습니다.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게 해주시는 귀한 글 나누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마지막 정화의 과정인 죽음의 순간 후회가 남지 않도록 빛의 길을 따라 빛만 보고 가겠습니다. 늘 빛과 함께 할 수 있음에 깊이 감사올립니다.
삶과 죽음에 겸손해지고 웰다잉의 빛명상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