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시기인 21세기의 지구. 세계는 정보화와 동시에 유럽과 아프리카, 아시아에 의해 초과학의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기 시작했고, 일부 초과학 전문가에 의해 과학자들이 꺼려하던 초과학의 정체가 언론에 발표되었다.
정보 통신과 WWW(World Wide Web)의 발달은 언론에 발표된 초과학의 진상을 더욱 많은 세계인들에게 전달시켜주었고 2001년 말에 초감각지각능력자 네트워크인 WEN(World ESP Network ; 통친 ‘웬’)이 창설되게 되었다. 웬은 초과학이라고 뭉뚱그려 칭하던 것을 마법과 초능력으로 나누어 정의해 세계에 공표했고, ESP 교육 기관을 만들어 ESPAO(ESP Ability Owner ; 초감각지각 능력 보유자)를 양성했다.
2007년, 세계는 ESPAO들로 인해 더욱 쾌적하고 편하게 살 수 있게 되었다. 다행히 비능력자들이 능력자들을 인정하여 다 함께 공존할 수 있게 되어 평화는 지속되었다. 물론 그 평화라는 게 대체적으로 평화롭다는 것이지 내전이나 이념과 종교 때문에 싸우는 것이 종료되었다는 걸 말하는 건 아니었다.
2008년, 유난히도 길었던 평화는 반미주의자들로 인해 끝나버리고 말았다. 이름 모를 마법에 의해 미국과 캐나다의 영토의 반이 초토화되었고 그 흔적으로부터 대백과사전에 나오지도 않는 괴생물체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가끔은 흑과 백의 날개를 지닌 인간들이 나와 전쟁을 하다 사라지기도 하고, 소머리를 한 인간들이 나타나 마을 하나를 휩쓸어버리는 둥 그렇게 괴생물체의 행동반경은 점점 넓어져갔다. 결국에는 대륙을 넘어오는 경우까지 생기니 세계는 그야말로 경악과 혼란이 끊이질 않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웬은 자신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스스로 나서며 UN 평화 유지군을 동원, ‘CGBP(Chaos Gate Breaking Project)’를 수립하고 구체적인 대책 마련에 힘을 썼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GB(Gate Breakers)’라 불리는 ESPAO로 구성되어진 부대였다. 그리고 2012년, 알래스카에 GBC(Gate Breakers Central)이 세워지고 전쟁이 시작되었다. 괴생물체로부터 민간인들을 보호하는, 그리고 대혼란을 멈추기 위한 성전(聖戰)이.
- 프롤로그 -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지상에서는 KE087편 여객기가 창공(蒼空)을 가르며 비상(飛上)을 시작했다. 쌍발엔진을 가진 A330-300이었지만 주날개가 길다는 특징 때문에 타 항공기보다 이륙속도가 늦었다.
고오오오-
PW4164엔진이 비행기를 이륙시키려 발버둥을 친다. 그 노력 덕분일까, 여객기는 단숨에 날아올라 영종도 상공을 비행할 수 있었다.
“누나, 우리 어디로 가는 거랬지?”
1등석 1열 창가에 앉은 소년이 옆의 소녀에게 물었다. 소녀는 소년의 질문에 황당해하며 왼손 검지를 쭉 뻗어 중앙에 걸린 LCD 모니터를 가리켰다.
“바보니? 내가 알래스카에 간다고 몇 번이나 얘기했는데!”
소녀의 말에 손바닥으로 이마를 치며 이제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소년. 정말 소년은 자신이 향하고 있는 곳을 잊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이륙한지 몇 시간도 아닌 몇 십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말이다.
소녀는 소년의 반응에 힘없이 고개를 돌리며 보조 가방에서 GB라고 적혀있는 수첩을 꺼내들었다.
“『Gate Breakers Manual』…….”
겉표지를 넘기자 목차가 적힌 첫 페이지가 나타났다. GB의 창설 목적, GB의 기본 생활, 메모지, 지도라고 적혀있는 걸 보니 진짜 매뉴얼인 모양이다. 소녀는 볼 것도 없이 수첩을 덮고 다시 가방 속에 집어넣어버렸다. 뭐, 이게 한국인 대다수의 특징이니 뭐라고 할 것까진 없을 것 같다.
“아휴~ 이거 정말 할 거 없네.”
소녀는 얼굴을 찌푸리며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SMS를 확인했다. 휴대전화의 액정에 ‘수신 메시지가 하나 있습니다. 확인하시겠습니까?’ 라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녀는 기판의 확인 버튼을 누르고 SMS를 읽어 내려갔다. 상당히 긴 메시지였는지 소녀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해갔다. 나중에는 휴대전화를 든 손이 덜덜 떨리기까지 했다.
“GB가 수행이 목적이 아닌 전투가 목적이었다고?”
소녀의 혼잣말에 옆에 앉아있던 소년의 시선 또한 소녀의 휴대전화로 향했다. 그리고 얼마 후 소년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다.
『소연아, 창환아. 아빠가 알아봤는데 GB는 WEN 직속 수행 단체가 아닌 북미 사태 대응 전투 단체라고 하는구나. 이륙하기 전에 메시지를 봤으면 좋겠건만. 만약 알래스카에 가게 된다면 어떻게 해서든 빼내어줄 테니 어떻게든 버텨 내거라.』
“거, 거짓말.”
“부모님께서 직접 보내신 거야.”
“…….”
“벌써 이륙해 버렸는데…….”
메시지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소녀와 소년의 이름이 소연과 창환이라는 것은 확실했다. 그리고 나머지 내용까지 사실이라면 둘은 정말 위험한 상황에 처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소녀는 허겁지겁 보조 가방을 열어 다시 수첩을 꺼냈다. 그리고 천천히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그녀의 표정은 점점 굳어져만 갔다.
“마…말도 안 돼…….”
남매는 10시간이 넘는 긴 시간동안 조용히 앉아만 있었다. 물론 기내식도 먹고 가끔 음료수도 마시긴 했지만 그건 극히 일부분일 뿐이었다.
여객기는 앵커리지 공항의 활주로에 사뿐히 착륙했고, 둘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창밖의 앵커리지 공항의 터미널을 바라보았다. 수행이라 생각하고 온 것이 전투로 변해버리니 어느 누가 충격 받지 않을 수 있을까?
“후우― 그래도 GBC에 가봐야겠지?”
소연과 창환은 여느 사람들과 같이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버스를 타고 입국 절차를 밟았다. 물론 남매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WEN(World ESP Network)을 통해 GB(Gate Breakers)에 입단하는 것을 정식적으로 신청했으니 GBC(Gate Breakers Central)로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남매가 입국 신고를 마치고 로비로 나서자 붉은 머리칼의 외국인 여성 하나가 ‘박소연, 박창환. 알래스카에 온 걸 환영해요!’ 라고 커다랗게 적힌 종이판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누나, 저 사람 뭐야?”
창환이 정말 궁금하다는 눈빛으로 소연에게 물음을 던졌다. 소연은 그 외국인 여성을 힐끔 쳐다보고는 창환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GB에서 나온 사람일거야. 아마 우리 얼굴도 알겠지.”
“그럼, 따라가야 돼?”
“응― 아마도.”
그 붉은 머리칼의 여성이 둘을 발견하고는 천천히 걸어왔다. 남매 역시 그 여성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한국에서 온 소연양과 창환군이 맞나요?”
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능숙하게 한국어를 구사하는 붉은 머리칼의 여성. 그녀는 아직 어린 창환군이 보기에는 민망한 짧은 미니스커트에 민소매티를 입고 있었다. 그나저나 어째서 그녀가 한국어를 이렇게 잘 하는 거지? 소연도 그것이 의문인지 조심스레 말을 꺼내 보았다.
“한국어를 잘 하시네요…….”
그녀는 싱긋 웃으며 왼손 약지에 껴진 반지를 보여주었다. 소연은 어째서 반지를 보여주는 지 알 수 없었지만 천천히 반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흠칫 놀라며 여성의 얼굴을 바라봤다.
“아시겠죠? 그럼― GBC로 안내할게요.”
“아, 네.”
공항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GBC. 큰 건물은 아니었지만 15층이나 되는 빌딩 전체를 사용하는 걸로 봐서 인원이 상당히 많은 모양이었다.
말을 정정하겠다. 인원이 그다지 많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안내원이 있을 정도라면 이 건물을 모두 사용할 만도 한데 어째서 3~6층만 사용하는 걸까?
“혹시……. 공간 확장 마법인가요?”
소연의 갑작스런 발언에 창환과 여성이 동시에 멈춰 섰다.
“소연양, 그런 얘기는 들어가서…….”
“아― 네.”
여성은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소연을 바라보았다. 소연은 그녀가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 지 대충 알아챘는지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건물로 들어섰다.
“단장실은 6층이에요. 단장님도 한국인이니까 반가울지도 모르겠군요.”
여성은 엘리베이터의 버튼 중 6이라 적힌 버튼을 누르고 단장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대부분 단장이 고집이 세다는 얘기였지만 말이다.
띵-
엘리베이터가 6층에 멈춰 서고, 천천히 문이 열렸다. 그러자 소연의 눈앞에 엄청난 광경이 펼쳐졌다.
스릉-
칼집을 빠져나온 장검이 소녀의 코앞에 멈춰서는 것이 아닌가. 조금이라도 잘못했으면 목이 날아갈 수도 있는 상황. 그러나 이를 지켜보던 붉은 머리칼의 여성은 걱정은커녕 짜증난다는 듯이 그 장검의 주인공을 바라볼 뿐이었다.
남매와 똑같은 흑발에 갈색 눈동자를 지닌 중년의 사내. 그는 놀란 눈을 하고 덜덜 떨고 있는 남매를 바라보고 있었다.
“소연과 창환이라고 했던가?”
“이봐요, 단장님! 처음 온 애들한테 무슨 짓이에요!”
아무렇지도 않게 이름을 거론하는 사내. 아무래도 그가 GB의 단장인 것 같았다. 그녀가 발끈하고 소리치는 걸 보면 말이다.
“룬, 조용하라고. 자네 팀이라고 아끼는 건가?”
장검을 칼집에 꽂아 넣고는 남매를 이리저리 훑어보는 사내.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남매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아직 어리지만 실력은 있군. 아― 난 GB의 대빵인 ‘도주표’. 무슨 일 있으면 오빠한테 물어보면 돼.”
스스로는 오빠라고 주장했지만 단장을 제외한 셋은 마음속으로 ‘그건 아니야!’라고 외치고 있었다. 사실 도주표 단장의 외모는 절대 청년이 아닌 중년으로 보였으니까.
“그런데…….”
단장의 발언으로 썰렁해진 분위기를 틈타서 소연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그걸 말할 생각인 듯. 그들 남매는 절대 전투를 목적으로 GB에 온 것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응?”
“저희가 잘못 보고 신청한 것 같아요.”
순식간에 굳어지는 단장과 룬이라고 불리어진 붉은 머리칼의 여성.
“저희는 수행을 목적으로 신청했는데…, GB가 이런 곳일 줄은 몰랐거든요.”
다시 한 번 싸해지는 분위기. 주위가 적막하다 못해 고요해질 정도로 분위기가 침체되었다. 아무래도 단장과 룬은 새로운 단원을 엄청나게 기대하고 기다린 모양이었다.
소연은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 분위기에 도저히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동생인 창환은 그렇다 쳐도 단장과 룬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저기,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은데…….”
“그럼!”
소연이 용기를 내어 말을 꺼내봤지만 단장이 중간에 잘라버렸다. 아무래도 대답을 해 줄 모양이었다.
단장이 말을 이어갈수록 소연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져갔다. 단장이 WEN을 통한 신청을 무르는 것이 얼마나 큰 실례이고 국가의 망신이며 마법사의 위신을 떨어뜨리고 부모님께 불효하는 것이라며 별의 별 이유를 대고 신청 철회를 거부한 것이었다. 그러나 소연은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됐다. 그들 남매가 여기에 있어야 할 이유는 전혀 없었기에.
“저흰 돌아가야 해요! 몬스터와 싸우기 싫다고요!”
주인님, 전화 받으세요~ 주인님, 전화 받으세요~ 주인님…….
갑작스레 울리는 휴대전화 벨소리. 소연은 가방에서 휴대전화를 꺼내어 발신번호를 확인했다. 그녀가 모르는 번호. 하지만 소연은 왠지 받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통화 버튼을 꾹 눌렀다.
“누구세요?”
「소연양 휴대전화입니까?」
“네. 누구신데요?”
「아, 저는 한국 마법사 협회의 정민수라고 합니다.」
“무슨 일로?”
「저…….」
“말씀 하세요. 무슨 일이죠?”
「그게…….」
난데없는 통화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소연을 바라보는 단장과 룬. 통화가 계속될수록 소연의 눈가에 눈물이 맺히자 단장은 적잖이 당황스러워했다. 도대체 무슨 일인 걸까?
결국 몇 분간의 통화가 끝나고 새빨간 눈으로 단장을 바라보는 소연. 눈가에 눈물이 가득한 걸 보니 필시 좋은 일은 아닐 터.
“여기에 있을게요.”
소연의 발언에 단장과 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하던 소녀가 갑자기 마음을 바꿀 줄이야. 창환은 그런 소연의 선택에 의아한 듯 조심스레 다가가 물어보았다.
눈가에 맺힌 눈물이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창환은 그 말을 듣고 쓰러져버렸고, 단장과 룬은 그 말에 충격을 받은 듯 온 몸에 힘이 빠졌다. 정말 이상하리만큼 비극적인 상황. 도대체 그녀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그건 오직 신만이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첫댓글 와, 잘 쓰시네요. ^^
가미테즈님// 아, 아직 부족한 걸요. 더 열심히 써서 더욱 더 알찬 내용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칭찬 감사합니다~
역시.. 다시 봐도 감동이구려. 케이형님. 대단한겁니다. 박수~
GB라...겟벡커스가 생각나는 이유는...?
개인적으로 게임보이(Game Boy)가 생각나시길 바랬는데....[탕-]
으음. 중년의 아저씨에게 '오빠'라…. 무리한 요구군요. (웃음)
시놉시스에서 감동 먹었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하하'ㅡ'; 시놉시스에서 감동을 받으시다니! 체르노빌님!! 하늘바람님!! 역시 무리한 요구지요.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