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의 인용문에서 언급한 <역사의 반복>은 1789년 대혁명 이후의 프랑스 역사가 고대 로마 역사의 반복이라는 것 입니다. 왕정에서 공화정을 거쳐 제정으로 변화하였던 고대 로마의 역사는 프랑스의 역사에서도 반복되었다는 것입니다.(왕정 ➡공화정 ➡제정)
설명하자면, 왕정인 구체제가 1789
년 대혁명으로 공화정(제1공화정)
으로 변하였지만, 이 공화정은 나폴
레옹의 쿠데타로 제정(제1제정)으
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1차: 왕정 ➡공화정 ➡제정)
그런데 프랑스 역사에서는 이 로마 역사의 반복이 한 번 더 되풀이 되고 맙니다. 전쟁으로 제국을 확대하던 나폴레옹은 연합국의 반격으로 패
배하면서 몰락하게 되고 프랑스에서
는 다시 왕정(왕정복고)이 성립됩니
다.
그러나 이 복고된 왕정은 1848년의 2월 혁명으로 다시 공화정(제2공화
정)에 자리를 내주게 됩니다. 이렇
게 다시 시작된 공화정을 나폴레옹
의 조카인 루이 보나파르트가 1851
년 12월 쿠데타로 뒤엎고 다시 제
정(제2제정) 체제를 만들어냅니다.(2차: 왕정 ➡공화정 ➡제정)
제1공화정을 쿠데타로 전복시켜 버
린 나폴레옹과 같이 조카인 루이 보나파르트도 제2공화정을 쿠데타
로 전복시켜버린다는 점에서, 프랑
스의 근대 역사는 되풀이 되고 있
다는 것이 마르크스가 말하는 <역사의 반복>인 것입니다.
그러나 삼촌(나폴레옹)이 반복시키
는 역사와 조카(루이 보나파르트)
가 반복시키는 역사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삼촌인 나폴레옹은 프랑
스 인민대중의 영웅이었으며 그런 영웅의 몰락이 비극적 결말을 갖는
다면, 삼촌의 이름으로 삼촌의 쿠
데타를 반복한 루이 보나파르트의 민주공화체제 유린은 희극 중에서
도 어처구니없는 웃음을 자아내는 소극(笑劇)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입니다.
나폴레옹의 가면을 쓰고 역사의 희
극을 연출한 보나파르트를, 마르크
스는 세계사의 희극으로 보지 않
고, 자신의 희극을 세계사로 파악한 인물이라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보나파르트에게 있어 희극은 세계
를 이루는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제물로 삼아 자신을 웃게 만든 것입니다. 마르크
스는 보나파르트를 범죄자이고 사기꾼이라고 비난하면서 그런 종
류의 범죄자, 사기꾼, 협잡꾼, 부랑
자, 거지, 소매치기, 노름꾼, 포주,
걸인 등의 룸펜프롤레타리아트 일
당을 이끄는 깡패 두목이라고 비
난하기도 합니다.
마르크스는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역사가 어떻게 보나파르트의 희극이 아니라 세계
의 희극이 되어야 하는 지를 제시
하고 있습니다. 이는 결국 인민 대중
이 보나파르트 같은 사기꾼에 당
하지 않기 위해서는 인민 대중 스스
로가 정치적/ 경제적으로 의식
화되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마르크스는 인민 대중이 계급으로 구성되어야 인민이 주도하는 역사를 만들어가게 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
다. 마르크스는 이 글에서 계급화의 문제를 프랑스의 소농민을 예로 들
어 설명합니다.
소농민들은 경제, 정치, 문화적 조건
만을 놓고 보면 그들만의 계급을 이룰 조건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이들의 경제적 정치적 이익이 지주 계급과도 모순되고 부르주아 계급과도 모순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정치 경제적 조건에 의해 소농민 집단이 그들만의 계급
을 구성할 조건이 갖추어져 있음
에도 불구하고 계급으로 조직화되
지 못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가족 단위로 따로
따로 흩어져 살고 있기 때문에 그들
의 공통의 이익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들의 이익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어떤 정치조직이 필요한지 등을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진단
하고 있습니다.
즉 소농민들은 그들끼리의 연대가 불가능한 상황에 놓여 있으며 이런 이유로 그들만의 계급을 조직할 수 없고, 그들의 대표를 통하여 정치적 행위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보나파르
트같은 사기꾼을 자신들의 대표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소농민들은 보나파르트
와 같은 정치적 사기꾼에게 농락당
할 수밖에 없습니다. 부르주아지
국가 체제에 의해 수탈당하는 소농
민들이 더 이상 수탈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들만의 조직된 계급으로 새로이 탄생해야 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봉건 체제에 의해 그리고 현재는 관료적 국가 체제에 의해 수탈당하는 소농민들은 산업 및 금융 부르주아지에 의해 수탈당하는 도시의 노동계급과 유사한 조건에 처해 있습니다.
마르크스는 계급으로 조직되어야 하는 소농민과 계급이 이미 형성된 도시 노동자들이 연대하여 부르주아 국가 체제에 맞서 투쟁할 때 그들의 계급적 이익이 확보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역사가 보나파르트같은 사기꾼의 희극에 머물지 않고 인민의 희극이 되기 위해서는 인민 대중이 계급으
로 조직되고 계급의 이름으로 투쟁
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습
니다.
칼 마르크스가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분석한 19세
기 중엽의 프랑스 역사는 현재의
대한민국의 현대사와 너무나 닮아 있습니다.
삼촌(나폴레옹)의 이름을 걸고 집권
한 다음 쿠데타로 황제가 되었던 루이 보나파르트와 박정희의 이름
을 빙자하여 집권에 성공한 현재의 대한민국 대통령은 흡사하게 닮아 있습니다.
보나파르트가 독자적 계급이 못되
었던 소농민들의 지지로 집권하였
듯이, 현재의 대한민국 대통령 역시 계급의식이라고는 찾기 어려운 대중들의 지지로 집권하였습니다.
또한 19세기 중엽의 프랑스에서 역사가 비극과 희극을 되풀이 하였
다면, 대한민국에서는 대중의 영웅
으로 만들어진 박정희가 측근에게 살해당하면서 독재 체제가 무너질 때 그것은 비극이었습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소극이 되풀이 될 것
이라고는 그 누구도 예상을 못했지
만 그것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윤석열/김건희 주연에 충암파 조연
의 소극이 시시각각 공연되고 있는 현실이 되어 버렸습니다.
확실한 것은 대중이 계급으로 조직
되지 못하고 자신의 계급적 이익
과는 반대로 정치 행위를 계속하는 한, 대중은 루이 보나파르트에 의해 농락당했던 프랑스 소농민의 처지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진정, 현재의 대한민국 상황이 소극
으로 마무리되기를 기원해봅니다!
<루이 보나파르트 브뤼메르 18일> 인용문 서너개
✔인간은 자신의 역사를 만들어가지만, 그들이 바라는 꼭 그대로 역사를 형성해가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 스스로 선택한 환경 아래서가 아니라 과거로부터 곧바로 맞닥뜨리게 되거나 그로부터 조건 지어지고 넘겨받은 환경하에서 역서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스스로 룸펜프롤레타리아의 두목이 된 보나파르트, 룸펜프롤레타리아에게서만 자신이 개인적으로 추구하는 이익을 대량으로 찾아내는 보나파르트,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보나파르트의 모습이며, 있는 그대로의 보나파르트다.
✔ 모든 근대적 금융업, 모든 은행업은 국가신용과 밀접하게 얽혀 있다. 그들의 사업자금 가운데 일부는 용이하게 현금화될 수 있는 국채에 이자를 받고 투자되며 대출된다. 그들의 적립금, 그들의 처분에 맡겨지며 그들에 의해 상업 및 산업자본가에게 배분되는 자본은 부분적으로는 정부발행 채권 소유자의 배당금으로부터 나온다.
시대를 막론하고 국가권력의 안정성이야말로 전체 금융시장과 이 금융시장의 성직자들에게 모세와 같은 에언자와 동격이라면 대홍수가 낡은 국가는 물론, 그것과 함께 낡은 국가의 빚까지도 휩쓸어 버릴 것처럼 위협하는 오늘날, 더욱 그렇지 않을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모든 '나폴레옹 사상'은 젊은 날의 신선함 속에서 미발달 상태에 있는 분할지 사상이다. 왜냐하면 전성기를 넘겨 살아남은 분할지에 대해 '나폴레옹 사상'은 하나의 불합리이기 때문이다. '나폴레옹 사상'은 단지 단말마적 고통의 환각이며 공허한 문구로 바뀐 말이고 유령으로 바뀐 정신이다.
제정부활의 이 같은 서투른 모방은 프랑스 인민의 전통의 압박으로부터 해방하고 국가권력과 사회 사이의 대립을 순수한 형태로 만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분할지 소유가 점차 몰락해가는 것과 함께 그 위에 세워진 국가구조 또한 붕괴한다. 근대사회가 요구하는 국가의 중앙집권화는 봉건제와의 대립을 통해 단련된 군사, 관료적 통치기구의 폐허 위에서만 대두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