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회 등대문학상 최우수상]
라디오존데*radiosonde
김영건
고래가 죽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했던 참돌고래든
새끼를 등에 업고 다니던 귀신고래든 이미 예견된
죽음에 익숙해져야 했던 고래는 마침내
다정을 말하고 있다. 저만치 7천 년 전의 반대구 암각화를
엿본 고래의 깊은 바닥으로 하늘이 내려오고
나는 바다를 걷는 등대가 되어
어둠에 섞이고 있다.
행성의 지위를 잃어버린 명왕성쯤에서 보면
내가 입고 있는 팬티가 죽었다고 비를 내려 보낼 수도 있을 것 같은
저녁, 나는 내가 아는 모든 인간들의 머리를 물웅덩이처럼
밟고 다니기 시작하는 것인데
왜 그런 날 있잖아요. 누군가 놓아버린 풍선이 된
기분, 누군가 내가 태어나기 오래전부터 나를 기다렸고
너무 늦었다는 듯 나를 높이 던졌고
고래마저 가닿지 못한 깊은 바닥으로 나는 미련 없이
널브러졌고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나는 몸을 들락거리는 마음의 흔적을 보려고
하나뿐인 딸을 등에 업고 다니는 귀신고래처럼 하늘을
올려다보았을 테고, 그러다 내가 없는 곳으로 기울어지는
몸을 고래자리나 물병자리처럼 노래하며
받아쓰기 시작했을 것이다.
정말이에요. 살아있는 동안 한 번쯤은 감쪽같이
하늘도 땅도 없는 곳으로 사라지고 싶었어요. 라면냄비 속으로 풀어놓는
동물복지 달걀처럼, 생각보다 잘 보여서 뜨겁고 그만큼 어둡고
아픈 날들이 이어지고
고래는 죽으면 죽을수록 다정해졌다.
천변 어딘가 고래와 내가 들어가 살 방이 있는 까닭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고래는 죽은 게 아니라 내 안에서 숨을 쉬고 있는지
神의 이름이 흰 포말처럼 부서질 것 같았다.
GPS를 달아도 정확한 위도와 경도, 고도를 측정할 수 없는
마음에, 귀신의 무덤처럼 나도 몰랐던 나의 요새(要塞)에
휘-휘- 영원이란 말을 풀어놓는 시간, 남은 게
이것밖에 없네. 한 줄도 남기지 않고
줄 게.
—비.
지치면 미칠 수도 없다는 이야기를 나는
고래가 떠오른 바다에게 해주었다. 라면냄비 가득 빗소리가
끓고 있다.
* 대기 상층의 기상을 관측하는 장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