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정부가 숙명여자 대학교 초대 총장이 된 이야기
충남 예산 산골 마을에,
어떤 처녀가 17세에 결혼해서 시집살이를
하다가 19세에 과부가 되었다.
동네 사람들이 그를 보면,
"에게게.. ! 꽃이 피다 말았네..!" 하면서
애석하게 여겼고...
19살 과부는 고게 너무도 창피하고
기구해진 자신의 운명에 기가 막혀
하루는 결심을 하고, 거울 앞에 앉아
긴 머리카락을 사정없이 잘라내 버렸다.
젊은 과부가 마을 어르신들로 부터
"아직도 어린나인데 안됐다" 하면서
동정하는 말들이 너무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그러나 그녀는 그런 기구한 자신의 운명에
좌절해서는 안 된다 생각했고...
그래서 용기를 내어 무조건 서울로 올라가
지인의 소개로 어느 부잣집에 가정부로 들어갔다.
그녀는 그 집에서 열심히 일했고
주인 내외의 인정을 받게 되자,
어느 날 용기를 내서 주인집 어르신들에게
두 가지 부탁을 했다.
하나는 "야간 학교에라도 가서 공부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주일날이면 꼭 교회에 나갈 수 있게 해달라는 것" 이었다.
집 주인은 젊은 과부의 소박한 소원을 들어 주어
그녀는 당시 이화여자학당에 있는 야간부에 들어가서 공부를 했고
주일날에는 교회에도 나갔다
그녀는 학교에서 공부를 열심히 하더니 장학생이 되었고
학교에서도 그녀의 실력과 인품은 뛰어나,
그것을 인정받아 모범생이 되자
학교에서 그녀를 해외 유학 장학생으로 선발,
일본으로 유학을 보내 주게 되었고,
유학 장학생 신분으로 일본에 가게 된 젊은 과부는
너무 기뻤고 감사해서 더욱 더 열심히 공부했고
그 노력의 결과, 우수한 성적으로 소정의 과정을 마치고 귀국해
본국으로 건너와서도 그 실력을 인정받아
당시 조선총독부 장학사로 일하다가
해방과 함께 학교를 세우게 되었으니
그 학교가 숙명여자대학이고 그녀는 초대학장이 되었다.
그분이 바로 19세에 과부가 되어 서울에서 식모살이까지 했던
임숙재 (任淑宰,1891~1961) 선생님이다.
"임숙재 숙명영대 초대 총장 "
그녀는 숙명여대를 성장시켰을 뿐만 아니라 불굴의 의지 하나만으로
운명을 바꾸어 놓은 영국의 마가렛 대처 수상보다 더 억센
한국의 철의 여인이 된 것이다.
그분은 늘 제자들에게
"성공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려면,
고난(苦難)이란 환경을 저(임숙재) 처럼 잘 이겨내야
그 고난(苦難)이 인간으로 하여금,
무슨 일에서든지 그 환경을 극복할 능력을 발휘하게 해줍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저처럼 환경을 잘 다스려야 해요."
라고, 늘 가르쳤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