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에서 보수와 진보 그리고 극우의 개념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그동안 숱하게 논란이 일고 서로 삿대질하고 갈등의 최일선에 섰던 그 보수와 진보의 개념이 다시 불붙게된 것은 바로 이재명 더불어 민주당 대표에 의해서입니다. 이대표는 이른바 그동안 보수진영에서 진보의 아이콘으로 평가하던 인물입니다. 태생부터 없이 자란 출신에다 학벌도 내놓을 것이 없으며 스스로 독학으로 대학진학을 해서 결국 사법고시에 합격한 인물이 바로 이재명입니다. 좋은 집안에서 출생해 한국 최고의 대학의 학과를 졸업해 8전9기끝에 고시에 합격한 윤석열과는 너무도 비교됩니다. 그래서 세상은 윤석열은 보수의 아이콘이고 이재명은 진보의 아이콘이라고 이름붙여 주었습니다. 보수와 진보의 개념도 모른 채 말입니다. 그런 이재명과 윤석열이 운명의 장난처럼 2022년 대선에서 맞붙었고 결과는 근소한 차이로 윤석열이 당선됐습니다. 이른바 보수세력은 보수의 대승리라면서 축배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정계 은퇴를 선언할 것으로 예상됐던 이재명은 민주당 당대표 선거에 당당히 압도적으로 승리합니다. 그리고 총선에서 한국 역사상 유래가 없는 여소야대를 만들었습니다. 죽은 이재명이 산 윤석열을 초토화시킨 것입니다.
그 이후 윤석열의 주변 인물들의 이런 저런 범법행위로 윤 대통령은 사면초가에 몰립니다. 야당은 제대로 수사를 하지 않는 역대급 무능한 검찰에 대항해 특검법을 통과시킵니다. 윤 대통령이 할 수 있는 것은 거부권행사입니다. 한국 역사상 최대의 거부권이 윤 대통령으로부터 이뤄졌습니다. 이재명 대표를 중심으로 한 민주당의 입법 견제가 윤 대통령을 향해 급진전됩니다. 그런 기류속에 2024년 12월 3일 한국 역사상 유래가 없는 평시 비상계엄이 선포되었습니다. 한국이 45년전으로 후퇴하는 것은 물론 한국역사상 최악의 판단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비상계엄을 선포하고부터 시작된 한국의 혼란상을 극복하기위해 민주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촛불과 응원봉을 들고 거리로 나왔습니다. 선과 악 그리고 옳고 그름의 판단을 생략한 채 태극기와 미국기를 들고나온 세력도 있습니다. 이들을 선도한 것은 극우세력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단어 정립을 하고 들어가야 합니다. 과연 보수와 진보 그리고 극우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그 개념조차 잊어버리고 서로를 향해 이런 저런 삿대질과 욕설을 서슴치 않습니다. 그들에게 그렇다면 진보와 보수 그리고 극우의 차이를 이야기하라고 하면 할 말을 잊는 사람이 상당수일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그런 개념이나 사상적 기초도 없기 때문입니다.
보수와 진보는 역사가 아주 오래됐습니다. 물론 중세시대까지 접근할 필요는 없습니다. 대충 프랑스 대혁명 시절부터 시작하면 될 듯 합니다. 루이 16세와 그의 부인인 마리 앙뚜아네트를 체포하고 단두대에 세운 그룹은 급진 진보세력입니다. 나라를 피폐하게하고 국민의 고혈을 빨아 자신들의 호의호식에 소비한 집단을 처단하자는 주장입니다. 그 세력을 통칭해 진보세력이라고 합니다. 귀족과 성직자 등을 중심으로 한 수구세력 반대측에 선 세력을 일컷습니다. 이때는 진보세력과 수구세력이 공존했습니다. 그러면 진보세력은 다같은 생각이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급진적으로 처단을 통해 정의를 실현하자는 급진적 진보세력과 서두르지 않고 정의실현을 추구하자는 점진적 진보세력으로 나뉘어집니다. 그들은 서로를 향해 삿대질을 시작합니다.서로에 대한 살해도 서슴치 않습니다. 결국 점진적 진보세력이 장악하고 급진적 진보세력을 제거합니다. 점진적 진보세력들이 당시 새로운 계급인 브루조아 즉 상인 중심의 신그룹과 합류해 이룬 것이 바로 보수세력입니다. 하지만 프랑스 혁명 당시 새로운 세상을 만들자며 최전선에 나섰다가 숱하게 희생된 세력들은 혁명의 과일을 챙기지 못합니다. 바로 노동자 농민 계층입니다. 그들은 점차 의식이 깨어나고 배움이 늘어나면서 새로운 집단을 구성합니다. 그들을 프롤레타리아 세력이라고 부릅니다. 이 세력들은 그후 만들어진 공산주의와 결합해서 공산혁명이란 것을 만들어냅니다.
유럽지역에서 새로운 계층으로 등장한 보수세력들이 한동안 그들의 세계를 구축했습니다. 하지만 식민지 전쟁의 여파로 일어난 세계 1차대전의 후유증으로 유럽은 또 분열됩니다. 특히 1929년부터 불어닥친 세계 대공황으로 세계는 다시 대혼돈속으로 빠져듭니다. 그런 시기에 등장한 것이 바로 극단적 사상입니다.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로 부터 시작된 이 극단적 사상을 파시즘이라고 합니다. 일반적인 독재사상과는 조금 다릅니다. 일반적 독재주의 상당수는 군부의 쿠데타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대부분인데 이 파시즘은 그렇지 않습니다. 정당하게 선거를 통해 선출된 세력이 독재정치를 행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독재정치에 대해 국민들은 반감을 가지는데 반해 파시즘은 국민들로부터 상당한 호응을 얻습니다. 그래서 자발적 독재정치 내지는 호응적 독재정치라로 하는 것입니다. 경제적으로 피폐하고 주변 강대국들에게 억눌린 국민들을 요상한 방향으로 선동합니다. 경제적 사상적 표류를 하는 국민들의 좌절감과 외로움에 호소하는 파시즘은 유럽을 휩씁니다. 극단주의자들을 양산해 냅니다. 이래 죽나 저래 죽나 마찬가지라는 사고가 나라와 사회를 뒤덮습니다. 이를 극우주의라고 부릅니다. 이 극우주의는 이웃인 독일로 급하게 전파됩니다. 히틀러라는 선동가가 중심이 된 나찌즘은 세계 2차대전을 만들어 냅니다. 훗날 극단적 사상 즉 파시즘을 극우주의라로 부릅니다. 하지만 극우는 극단적 보수주의라지만 사실 보수주의는 그렇지 않습니다. 파괴적이지도 배타적이지도 않습니다. 보수를 욕하는 짓입니다.
그렇다면 보수와 진보의 개념이 다소 확연하게 갈립니다. 보수는 현 시스템의 가치를 우선시하면서 문제점을 보완하고 개선하면서 점진적으로 더 나은 사회와 시스템을 추구한다면 진보는 다소 급진주의적으로 급하게 개혁을 이루려는 것을 의미합니다. 보수와 진보는 둘다 나은 사회를 만들기위한 사상이지만 그 방법에서 차이가 납니다. 또한 보수는 성장 우선적인 생각입니다. 뭔가 먹을 것 향유할 것을 많이 만들어야 개인과 국가가 향상될 것이라는 데 중점을 두는 반면 진보는 우리가 가진 것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 즉 분배에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장이 없는데 무슨 분배가 가능할까요. 성장없는 분배는 성장을 포기하고 그냥 나눠갖자는 다시말해 같이 죽자는 것과 다름이 아닙니다. 당장 먹고 살기도 힘든데 빚내서 나눠갖자는 생각은 나라를 망하게 하는 지름길이지요. 지금 아르헨티나 등 몇몇 나라가 그렇습니다. 얼마전 부유함의 상징이었던 인광석 보유국 나우루가 지금 세계 최빈국이 된 것도 바로 배분의 함정속에 빠진 것 때문이었습니다.
실로 제대로 된 나라의 사상은 보수와 진보가 적절히 합쳐져야 가능합니다. 그런 개념을 가진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중도 보수라고 평합니다. 뭔가 성장하도록 만든 뒤에 그 결실을 합리적으로 나누자는 생각을 가진 그룹을 중도 보수라고 한다는 말입니다. 중도라고 하니 뭔가 기회주의자같은 생각이 드는 모양지만 양손 모두 사용하는 개념으로 보면 됩니다. 보수는 앞에서도 말했지만 현재의 상황을 잘 보수하고 손질해서 사용하자는 것입니다. 재건축으로 건물을 파괴하고 새로운 아파트를 짓는 것보다 시간도 짧고 비용도 절약되는 리모델링을 하자는 개념과 같습니다.
사실상 완벽한 보수적 시스템과 완벽한 진보적 시스템은 존재 불가한 모습입니다. 보수와 진보는 어느 정도 교집합이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한국은 지금 가야할 길이 너무 험하고 깁니다. 그런 긴 여정을 가야하는 데 보수냐 진보냐 타령에 너무 함몰되는 양상입니다. 그리고 한국의 현실에서는 엄밀한 의미에서 진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지금 공산주의 종주국인 러시아와 중국 그리고 북한에서도 공산주의에 대한 개념이 사라졌고 그냥 통치를 위한 방편에 불가한 것이 이데올로기입니다. 이제 한국은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그 고리타분한 보수 진보 타령에서 제발 벗어나길 기원합니다. 조선에서 왕이 사망한 후 왕비와 왕의 어머니의 상복을 둘러싸고 혈투를 벌인 그런 구태를 되풀이 할 수는 없습니다. 제사때 잔을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돌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제사를 잘 지내는 것이 목표아닙니까.
한국정치사상 진보라는 개념이 뿌리 내릴 공간이 아주 적었습니다. 예전 진보세력은 공산개념과 상당히 일치했습니다. 한국은 한국전쟁이라는 사상 유래가 없는 이른바 내전을 치뤘습니다. 전쟁후 한국에서는 반공교육으로 날이 새고 날이 졌습니다. 국민들 사이에 공산주의 개념은 발붙일 틈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권력을 장악한 이승만 등 독재권력이 자신들을 보수라고 칭하니 상대편에 있는 야당 즉 민주당세력은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진보라는 타이틀을 내세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뭔가 내거는 것을 즐기는 정치판의 논리상 그렇습니다. 그런 전통이 지금까지 내려와서 민주당은 진보정당이고 반대편의 신한국당 국민의 힘 등등 셀 수 없이 많이 이름을 바꾼 그 당은 보수정당이 되버린 것입니다. 되려고 된 것이 아니고 그냥 된 것이라는 말입니다.
세계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모든 것을 내세우고 사활을 건 싸움을 벌이는 데 아직도 그 박물관에나 있을 보수 진보싸움에만 몰두할 수는 없습니다. 보수와 진보의 가치를 모두 인정하는 그러한 사회적 타협을 이뤄 힘차고 굳건한 한국의 미래를 개척해 나가는 것이 지금 한국인이면 해야할 필연적인 의무라로 감히 생각합니다.
(보수 진보의 개념과 출발적 차이는 기존의 이론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미리 밝힙니다. 제 나름대로의 생각과 판단을 기초로 한 것입니다.)
2025년 2월 21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