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어제 행사를 잘 치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런 일들이 모두 복음이 전해지는 통로로 이어지게 하옵소서.
토요일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은 여신도 연합회 기독교 어버이 교육과 기도회로 모입니다.
은혜의 시간이 되게 하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저의 부족함과 부정성을 주님 앞에 또 들키게 하시니 은혜입니다.
그래서 십자가 보혈을 더욱 의지합니다.
정결한 마음, 겸비한 마음이 되게 하옵소서.
성령님, 말씀을 조명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5. 맞은편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제자들이 그를 보며 말하기를 엘리야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엘리사 위에 머물렀다 하고 가서 그에게로 나아가 땅에 엎드려 그에게 경배하고
16. 그에게 이르되 당신의 종들에게 용감한 사람 오십 명이 있으니 청하건대 그들이 가서 당신의 주인을 찾게 하소서 염려하건대 여호와의 성령이 그를 들고 가다가 어느 산에나 어느 골짜기에 던지셨을까 하나이다 하니라 엘리사가 이르되 보내지 말라 하나
17. 무리가 그로 부끄러워하도록 강청하매 보내라 한지라 그들이 오십 명을 보냈더니 사흘 동안을 찾되 발견하지 못하고
18. 엘리사가 여리고에 머무는 중에 무리가 그에게 돌아오니 엘리사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가지 말라고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였느냐 하였더라
19. 그 성읍 사람들이 엘리사에게 말하되 우리 주인께서 보시는 바와 같이 이 성읍의 위치는 좋으나 물이 나쁘므로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지나이다
20. 엘리사가 이르되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내게로 가져오라 하매 곧 가져온지라
21. 엘리사가 물 근원으로 나아가서 소금을 그 가운데에 던지며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 이로부터 다시는 죽음이나 열매 맺지 못함이 없을지니라 하셨느니라 하니
22. 그 물이 엘리사가 한 말과 같이 고쳐져서 오늘에 이르렀더라
23. 엘리사가 거기서 벧엘로 올라가더니 그가 길에서 올라갈 때에 작은 아이들이 성읍에서 나와 그를 조롱하여 이르되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 하는지라
24. 엘리사가 뒤로 돌이켜 그들을 보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매 곧 수풀에서 암곰 둘이 나와서 아이들 중의 사십이 명을 찢었더라
25. 엘리사가 거기서부터 갈멜 산으로 가고 거기서 사마리아로 돌아왔더라
(본문 주해)
15~18절 : 여리고의 선지자의 제자들이 요단강을 건너오는 엘리사를 보고 엘리야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엘리사 위에 머물렀다고 하면서 그에게 나아가 엎드려 절을 한다.
그들은 엘리사의 표적을 보고 엎드렸지만, 엘리야를 찾겠다고 한 것으로 보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 엘리야의 승천을 목격한 엘리사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이들은 엘리사의 말을 믿지 않았다.
이러한 모습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산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는 모습이나 마찬가지이다.
19~22절 : 여리고 성 사람들은 엘리사를 하나님의 선지자로 보았고, 엘리사를 자신들의 주인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들이 사는 이 성읍의 위치는 좋으나 물이 나쁘므로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진다고 엘리사에게 말한다. 토산이라는 것이 농산물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짐승의 낙태나 사람의 유산도 포함하는 말이다. 이런 이유로 이 성읍의 사람들은 물이 좋지 않다고 본 것이다.
그러자 엘리사가 소금을 물 근원에 던지며 말한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이 물을 맑게 고쳐 놓았으니, 다시는 이 곳에서 사람들이 물 때문에 죽거나 유산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21절, 새번역)
여리고 성이 한때 저주의 성읍이었지만 엘리사를 통하여 회복이 되는 것을 보여준다.
여리고성은 여호수아 때 정복하고 저주를 한 성읍이다. 여호수아가 여리고성을 무너뜨린 후에 이 성을 다시 쌓으면 그 자식을 잃을 것이라고 저주를 했는데, 이 예언대로 되었다.
그런데 이 성읍을 건축한 사람이 여리고 사람이 아니라 벧엘 사람이었다.
“그 시대에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건축하였는데 그가 그 터를 쌓을 때에 맏아들 아비람을 잃었고 그 성문을 세울 때에 막내 아들 스굽을 잃었으니 여호와께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를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왕상16:34)
한편 소금은 저주와 심판을 의미하기도 하며, 언약을 나타내기도 한다.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창19:26)
“그 진펄과 개펄은 되살아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될 것이며”(겔47:11)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장차 모압은 소돔 같으며 암몬 자손은 고모라 같을 것이라 찔레가 나며 소금 구덩이가 되어 영원히 황폐하리니”(습2:9a)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막9:49)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모든 성물은 내가 영구한 몫의 음식으로 너와 네 자녀에게 주노니 이는 여호와 앞에 너와 네 후손에게 영원한 소금 언약이니라”(민18:19)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소금 언약으로 이스라엘 나라를 영원히 다윗과 그의 자손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알 것 아니냐”(대하13:5)
23~25절 : 종교의 중심지 였던 벧엘은 북이스라엘의 첫왕 여로보암이 금송아지 신전을 만든 곳(단과 벧엘)이다. 엘리사가 벧엘로 올라갈 때에 길에서 작은 아이들이 성읍에서 나와 ‘대머리여 올라가라’며 엘리사를 조롱한다.
이미 엘리사가 엘리야의 사역을 승계 받은 소문이 났을 것이다.
그런데도 벧엘의 아이들은 엘리사를 보고 대머리라고 놀리면서 올라가라고 한다.
‘올라가라’는 말은 벧엘로 올라가는 길이기에 올라가라는 말도 되지만, 엘리야처럼 하늘로 올라가 버리라는 말도 된다.
우상 숭배지가 되어버린 벧엘의 대부분의 사람들의 여호와에 대한 불신앙과 그 선지자들에 대한 조롱을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들어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다.
엘리사가 뒤로 돌이켜 그들을 보며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매 곧 수풀에서 암곰 두 마리가 나와서 42명의 아이들을 죽여버린다.
‘42’는 요한계시록에서는 마흔두 달 즉 삼 년 반의 심판의 기간으로 나타난다.(11:2, 13:5)
그러므로 하필 마흔두 명의 아이들이 죽임당한 것은 지금 이스라엘이 심판을 받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나의 묵상)
성경을 읽다 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 장면이 나오는데 오늘 본문 23~24절 말씀이 그러하다.
엘리사를 대머리라고 놀렸다고 수풀에서 곰이 나와 42명의 아이들을 찢어 죽였다니 말이다.
그래서 복음을 모르고 단순하게 생각할 때 가지는 잘못된 해석과 의문 그리고 비판들이 줄줄이 나온다.
‘주의 종을 대적하면 이렇게 저주받는다’
‘어린아이를 죽이다니, 하나님이 얼마나 잔인한가?’
‘어린아이들이 아니라, 이미 성인이 된 젊은 청년들이다’(그렇다면 어린아이를 죽이면 죄가 되고, 성인들은 죽여도 되는가?)
‘아무리 모욕을 당해도 그렇지, 선지자가 그것도 못 참는가?’
‘구약 시대는 신약시대처럼 은혜의 시대가 아니라, 율법 시대이기 때문에 그렇다.’
하지만 23~24절은 앞의 19~22절과 이어서 보아야 한다.
저주의 상태에서 벗어나 회복된 성읍이 된 여리고(19~22절)와 종교적인 성읍이 타락하여 저주받게 된 벧엘(23~24절)의 대비되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이는 구약 선지자의 두 가지 역할-회복과 심판-을 잘 보여준다.
여리고는 저주의 성읍이었으나, 선지자를 알아보고, 선지자의 말씀을 들음으로 그 저주가 풀린다. 땅과 물이 회복된 것이다.
그러나 벧엘은 종교의 성읍이었으나, 우상숭배지로 타락하여 여호와의 선지자를 조롱하였기에 저주를 받는다.
구약의 참 선지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면 그 사람이 아무리 저주의 상태에 있을지라도 구원을 받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지 않고 배척하면 그 사람이 현재 아무리 부귀영화를 누리는 상태에 있다고 할지라도 그 사람은 영원한 저주를 받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시는 일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되지 않는다.
결혼 후 교회일로 많이 바빠진 내가 친구들을 만날 틈을 내지 못하니 친구들이 말한 것이 있다.
‘우리가 다 예수를 믿어도, 끝까지 안 믿을 사람이 너라고 생각했는데.....네가 예수 믿다니....너무 이상하다.’ 라는 것이다.
사실 교회를 다닌다고 다 예수님을 진짜 믿는 것이 아니지만,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일단 그렇게 보일 것이다.
하지만 어설픈 걸음을 교회로 인도하신 분도 분명 하나님이시고, 30년이 훌쩍 넘는 그 세월을 자기사랑의 우상숭배와 자기의로 가득한 종교생활을 거치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시다.
또한 드디어 복음을 알게 하시고, 생명의 교제를 하며, 십자가에 연합되는 것을 소원하는 자 되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시다.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과는 분리되어 난 저주의 인생, 죽음을 향해 달려가던 내 인생에 주님께서 찾아오셔서 소금을 쳐 주시며 생명으로 회복하게 하신 것이다.
죽음의 물을 말씀으로 고쳐주심으로 생명수 안에 마음껏 거하게 하신 것이다.
내가 원한 것도 아닌데(아무것도 몰라서), 주님께서 찾아오셔서 끝장내주신 저주의 생이 얼마나 진저리나는 것인지를 이제는 안다.
그러므로 날마다 말씀 앞으로 나아가 주님께서 회복시키신 이 생명을 누리며, 위로부터 공급되어지는 생수로 날마다 새로워지는 것이다.
(묵상 기도)
주님,
죽음과 저주의 성읍 여리고가 생명으로 회복되었습니다.
죽음과 저주만이 가득했던 제 인생이 생명으로 회복되었습니다.
영원한 생명의 양식이신 예수님만을 자랑하고 사랑합니다.
영원한 생명수이신 예수님을 증거하는 인생 되게 하옵소서.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